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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종언 / 가라타니 고진
[특집] 문학의 종언과 한국문학
이 논문은 기존에 출간된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 b)에 실린 동명의 강연문과는 완전히 다른 글로, 『가라타니 고진 정본집』 제 5권 『역사와 반복』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 그의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가 구체적인 작품을 떠난 공허하고 추상적인 논의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1
□ 가라타니 고진
오에 겐자부로의 『그리운 해(年)에 보내는 편지』를 읽고, 나는 로렌스 더럴(Lawrence George Durrel)의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를 떠올렸다. 그 작품에서 제 1부는 ‘나’라는 소설가의 화자에 의해 씌어지고, 제 3부는 그 소설을 ‘나’가 반성해서 다시 쓴다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제 3부는 3인칭 객관적 소설로서 씌어지고, ‘나’는 그 속에서 한 인물로서 철저하게 상대화되고 있다. 제 1부나 제 2부에서는 남녀관계였던 세계가, 여기서는 정치적 세계로서 조감된다. 제 4부에서는 다시 ‘나’의 시점으로 씌어지고 있다. ‘나’는 클레아라는 여자에게 인도되어, 어떤 자기인식에 도달하고, 최종적으로 소설을 쓴다는 의식 그 자체로부터 벗어난다. 그리고 ‘Once upon a time(옛날 옛적에)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함으로서 끝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는 연애소설이고, 정치소설이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교양소설이고, 또 소설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자가 말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전체소설’이다. 다양한 시점이 종합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것이 아니라, 시점(주관성) 그 자체가 절대적인 주관성으로서, 같은 것이지만 시점 그 자체의 소멸로서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것이다. 최후단계에서, ‘나’는 이제 소설을 쓰는 것을 그만둔다. 이리하여 최후로 ‘이야기(物語)’가 나타난다.
이와 같이 말하면, 이것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구성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즉 이 4부작은 자연적 의식, 자기의식, 이성, 절대지에 각각의 장이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것은 소설가로서의 ‘자연적 의식’이 절대지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이와 동시에 그것은 소설 그 자체의 종언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더럴 자신은 그 4부작(사중주)의 구성을 상대성이론의 ‘시공연속체’로서 생각했다. 헤겔 등은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읽은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에서 생각하는 것은 기껏해야 4차원 = 4부작이라는 구성뿐이다. 그것이 실제로 『정신현상학』과 같은 구성을 취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그것이 헤겔과 닮았다는 것은 여기서는 소설과 소설을 쓰는 것, 또는 소설과 소설을 쓰는 자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의식경험의 학’인데, 의식의 경험이란 대상의 경험임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의식, 즉 자기의식의 경험이다. 따라서 그것은 전방을 향한 주체(주관)의 운동임과 동시에, ‘끝’으로부터 회귀하는 즉 정신이 자기 자신으로 회귀하는 운동이 된다.
소설이 소설에 대한 의식, 소설을 쓰는 것에의 의식과 구별되기 어렵게 나타날 때, 그것은 이미 소설의 끝을 예감하는 것이다. 더럴이 대항했던 것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또는 종언(끝)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종언이 미리 주어져 있는 것 같은 유대적 시간성이었다. 더럴은 그것에 대항하여 아일랜드적 웃음을 대치시키려고 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환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오에 겐자부로) 것이다. 그 점에서 더럴은 아인슈타인의 시공연속체라는 개념으로부터, 물리학적 의미에서 벗어나 선적으로 길게 늘려져가는 ‘시간’의 관념을 넘어서는 힌트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작품의 구조는 훨씬 헤겔과 닮아있다.
『그리운 해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단테의 『신곡』이 구성과 의미 부여를 가능하게 하는 키(key)텍스트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신곡』은 혼(정신)이 그 정화에 이를 때까지의 ‘경험’의 기술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도 그 자신의 『신곡』을 썼다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신곡』으로부터는 소설과 소설을 쓰는 자라는 이중성 속에서의 ‘경험’은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그리운 해에 보내는 편지』의 시점은 일본 사소설가의 ‘말기의 눈’과 닮았지만 다른 것이다. ‘말기의 눈’도 일종의 ‘노년’적이지만, 그것은 그저 심리학적 주관에 지나지 않다.
예를 들어 칸트가 말하는 주관은 실은 세계를 구성하는 ‘노동’의 주체를 의미한다. 즉 그것은 가설과 실험에 의해 진리를 획득해 가는 근대과학에 기초한 것이다. 헤겔에게서도 정신이란 세계를 산출하고 변형하는 노동으로서 있다. 『정신현상학』에서 ‘의식의 경험’은 ‘정신의 노동’에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운 해에 보내는 편지』에서 씌어있는 ‘경험’은 무엇보다도 work(작업=작품)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외적 세계 속에서 ‘나’가 우연히 만나는 경험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작가로서의 경험이다. 『그리운 해에 보내는 편지』가 더럴이 그랬던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헤겔을 닮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의식의 경험’이 말하자면 노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에 있다. 사실, 오에 겐자부로는 소설이 천재의 작업이나 해프닝이 아닌 ‘노동’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또 타인에게 노골적으로 말해온 (미시마 유키오를 제외하면) 유일한 작가이다.
그러나 여기서 인용된 work는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으로서 알려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사소설 또는 자전으로서 읽을지 모른다. 그리고 거기서 오에 자신에 의한 통렬한 ‘자기비판’을 또는 교묘한 ‘자기변호’를 읽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동시에 주의해야 하는 것은 기이 형을 시작으로 이 안의 인물이 여기서 인용되고 있는 텍스트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작품 안에는 ‘나’가 일찍이 쓴 작품으로서 『만연원년의 풋볼』이 회고되지만 『그리운 해에 보내는 편지』의 소재는 그 작품에서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운 해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기이 형이 『만연원년의 풋볼』의 다카시(鷹四)의 모델이 되었던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그 반대다. 바꿔 말해, 『그리운 해에 보내는 편지』라는 텍스트는 마치 텍스트 바깥의 세계나 역사를 쓰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텍스트 내부에 있다.
즉 ‘나’는 마치 ‘오에 겐자부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명확히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에 의해 씌어진 자서전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모든 텍스트가 저절로 완전히 짜여진 것으로서 존재한다. 그것은 한편으로 ‘나’의 경험임과 동시에, 말하자면 텍스트라는 주체의 자기실현이다. 헤겔의 경우, 개체의 ‘의식의 경험’은 다른 한편으로 ‘정신’의 자기실현이라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운 해에 보내는 편지』는 그야말로 헤겔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좋다. 최후에 다음과 같은 광경이 나타난다.
기이 형, 나는 이 장면과 함께 그날 아침 덴쿠보 큰 노송 섬의 광경을 생각한다. 기이 형은 풀밭에 누워있다. 조금 떨어져 오셋짱과 동생은 풀을 뽑고 있다. 그리고 어느 샌가 나도 또한 기이 형 옆에 누워있고 히카리와 오유도 풀 뽑기에 가세한 듯하다. 해는 명랑하게 엷은 초록 버드나무 새싹을 반짝이게 하고 짙은 초록인 큰 노송도 간밤에 내린 비에 새로 씻겼는데 건너편 산벚꽃의 하얀 꽃송이가 흔들린다. 시간은 유유히 흐른다.
위엄있는 노인이 나타나 어찌하여 이렇게 멈추어 있는가, 산으로 달려가 더러움을 없애라, 그렇지 아니하면 신은 너에게 나타나지 않으시리니 하며 우리를 꾸짖으셔서 허둥지둥 서둘러 큰 노송 뿌리 근방으로 달려 올라가지만……. 시간은 순환하듯이 흘러 다시금 기이 형과 나는 초원에 누웠고 오셋짱과 동생은 풀을 뽑고 있으며 아가씨 같은 오유와, 어리고 천진난만함 그 자체여서 장애가 오히려 티없는 귀여움을 더할 정도인 히카리가 푸른 풀을 뽑는 사람들 속에 끼여든다. 태양은 명랑하게 엷은 초록빛 버드나무 새싹을 빛나게 하고 짙은 초록빛 큰 노송도 그 색이 한층 뚜렷한데 건너편에선 산벚꽃 하얀 꽃송이들 쉴새없이 흔들리고 있다. 위엄 있는 노인은 다시 나타나 소리를 지르겠지만 모든 것은 순환하는 시간 속에 계속되는 평온하고 진지한 게임 같아서 서둘러 달려 올라갔던 우리는 다시금 큰 노송 섬의 풀 위에 놀고 있으리라…….
기이 형, 이 그리운 시절 속, 언제까지나 순환하는 시간 속에 사는 우리들을 향하여 나는 몇 통이고 몇 통이고 편지를 쓸 것이다. 이 편지를 비롯한 그 편지들이 당신이 사라진 현세에서 내가 죽을 때까지 써 나갈, 이제부터 할 일이 되리라.
이 목가적 광경, 모든 것이 부정을 빠져나온 후에 긍정되는 광경에서, 우리는 말하자면 once upon a time이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이 회복되고, 모든 것은 ‘순환하는 시간 속의 평온하고 진실한 게임’이 된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헤겔이 말하는 ‘절대지’이다.
2
□ 오에 겐자부로
그런데 ‘절대지’란 인간학적으로 말하면 ‘노년’을 의미한다. 실제 헤겔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노년은 명확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생활한다. 왜냐하면, 노년은 이전에 품어온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방기해버렸기 때문이고, 또 노년으로서는 일반적으로 미래가 뭔가 새로운 것을 약속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노년은 오히려 자신이 어쩌면 또 우연히 만날지도 모르는 어떤 것 속에서 일반적 본질적인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노인의 감각은 오로지 이 일반자 및 과거를 향해 간다. 그리고 노인은 이 일반자의 인식을 과거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이처럼 과거가 된 것 및 실체적인 것에 대한 상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으로 해서, 매우 심하게 현재의 개별적인 것과 자의적인 것 - 예를 들어 이름 - 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반대로 노인은 경험이 부여하는 현명한 교훈을 자신의 정신 속에서 강고히 지키고 있어서, 젊은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을 의미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지혜 - 즉 주관적인 활동과 그들 세계가 이처럼 생기 없이 완전히 합치하고 있다는 것 - 은 대립을 갖지 않은 아이시절로 복귀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노년의 물리적 유기체의 활동이 과정을 가지지 않은 습관이 됨으로, 살아있는 개별성의 추상적 부정으로 - 즉 죽음으로 - 나아가는 것이다.
이리하여 인간에게 있어 연련의 경과는 제변화의, 개념에 의해 규정된 전체성으로서 귀결된다. 그리고 이들 변화는 유가 개별성과 함께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정신철학』, 船山信一 譯, 岩波書店, 2000年)
이리하여 노년은 소년기로 회귀하고, 순환이 완성된다. 물론 이것은 헤겔 특유의 인식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낭만파 시인(예를 들어 워즈워드나 코울리지)과 평행하고 있는 것이고, 낭만파의 근본적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정신의 발전이란 직접적인 감성적 체험에 대한 내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런 성숙은 바로 직접적인 것의 상실이기도 하다. 헤겔은 말한다. “어떤 인간이 교양이 있는 인간이면 그런 만큼, 그것만으로 더욱더 많이 그는 직접적 직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직관의 경우 동시에 상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새로운 것을 거의 전부 보지 않고, 대개의 새로운 것의 실체적 내실은 오히려 이미 숙지된 어떤 것이다. 교양이 있는 인간은 마찬가지로 특히 자신의 심상에 만족하고, 직접적 직관의 필요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같은 책) 그러나 예를 들어, 노년에 접어든 인간은 자신의 내성적인 명찰을 자랑하기보다도, 맹목적인 야만스러움으로 가득 찬 청년의 행동을 욕망하지 않을까? 미시마 유키오의 만년은 거의 전형적으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그리운 해에 보내는 편지』에는 기이 형의 언어로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젊은 시절에도 일종의 비탄의 감정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거칠었다. 이 관찰에는 전적으로 찬성. 나 역시, 또 자네의 경우에도 서로를 젊은 시절의 얼굴 생김새에 겹쳐 떠올릴 때가 있다네. 그 시절이라고 하면 막연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느낌은 전해지지? 그 시절 말이야, K. 자넨 이마가 좁다는 걸 신경쓰고 있었지. 올 봄에 텔레비전에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자네를 보며 이마 쪽으로 자꾸 눈이 가서 아련한 감회를 느꼈다네.
그리고 계속해서 자네가 말하는, 나이를 먹으면서 문득 깨닫고 보니 아주 고요한 비판이라고나 불러야 할 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는 그 생각에도 말하자면 단계나 과정에는 찬성이라구. 나 역시 얼마 전까지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자네보다 다섯 살 더 먹은 나로서는 다음의 한 구절에는 결코 찬성할 수가 없다네. 이제부터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주 고요한 비판이라고나 불러야 할) 이러한 감정은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네.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갑작스레 어떤 역행이 일어난다, 몹시도 거친 비탄이라는 것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K, 자네는 생각해 본 적이 없나? 언제까지나 제대로 단테를 읽기 시작할 낌새가 안 보이는 자네에게 이런 소리를 해봤자 소용없겠지만 그의 지옥에도, 연옥에도 거칠기 짝이 없는 늙은 비판자들은 널려 있다네. 자네가 쓴 글을 읽고 자극을 받아 내 근황을 보고하기도 할 겸 이것을 썼네. 어쨌든 자네와 오유 씨와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기이.
오에 겐자부로가 이 작품을 썼을 때 ‘노년’을 의식한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그때 미시마 유키오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도. 아마 오에는 어떤 선택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깊어만 가는 조용한 비판 속에서 ‘절대지’에 도달하는 것이 헤겔이고, 낭만파시인 워즈워드이다. 그들은 이렇게 하여 잃어버린 직접성이 내면적 상기에서 되찾아진다고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개별적인 것이 일반적인 것 속으로 우연적인 것이 필연적인 것 속으로 흡수된다. 헤겔철학은 이러한 ‘내면화’에 의한 승리를 고하고 있다. 코제브는 헤겔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가 하나의 원환을 편력하고, 그것을 기술하고 다시금 계속하려고 해도 원을 그리고 빙빙 돌 뿐이라는 것을 확증한다. 즉 그의 기술을 다시금 확대 연장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가능하다고 하면 그 기술은 이미 한반 행해진 그대로 다시 한 번 반복할 뿐이라는 것을 확증한다.
이것은 즉 헤겔의 언설이 사유의 모든 가능성을 완전히 길러내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미 그의 언설 일부를 이루고 있지 않는 언설을 전체의 계기(Moment)로서 체계의 일 절에 의해 재현되고 있지 않는 것 같은 언설을 그의 언설에 대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까닭으로, 헤겔의 언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コジェヴ, 『ヘ-ゲル讀解入門』, 上妻精·今野雅方 譯, 國文社, 1987)
확실히 헤겔의 체계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헤겔을 비판한 청년 헤겔파(초기 마르크스)는 문자 그대로 청년에 불과하고, 키에르케고르도 결국 객관성을 가질 수 없는 주관적 실존으로서 청년헤겔이다. ‘절대지’가 거기서 다다르는 전과정을 그대로 반복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니체의 ‘영원회귀’도 여기에 선취되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이런 원환성은 모든 우연성이나 직접성을 희생으로 삼은 ‘내면화’에서 가능하다는 것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헤겔의 체계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사유의 형식이기 때문에, 역으로 말하면 모든 것이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헤겔의 『정신현상학』에는 고유명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앞서 인용한 것처럼, 헤겔은 노인은 ‘개별적인 것 및 자의적인 것 - 예를 들어 이름 - 에 대한 기억을 잃는다’고 말했지만, 이런 의미에서 ‘절대지’는 ‘노년’인 것이다.
3
□ 가라타니 고진
노년의 ‘비탄’은 일반적인 것에 도달하면 할수록,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것이 상실되어 가는 것에 있으며, 명시적으로 도달하면 할수록 맹목적인 행동성이 상실되어 가는 것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일반성이나 필연성 속에 포섭되어버리지 않는 개별성이나 우연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기서 구로(クロ)라는 고양이가 있다. 이것은 ‘고양이’라는 유(類)에 속하는 개(個)이다. 우리는 ‘고양이’라는 개념 등은 본 적이 없다. 누구도 개개의 고양이를 보고, 그로부터 ‘고양이’라는 일반성에 이른다. 구로라는 고양이도 그와 같은 개체이다. 인식은 이런저런 개체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일반성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경우 헤겔적으로 말하면, 개개의 고양이 그 자체가 이미 유(類)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구로라는 고양이는 결코 고양이 일반으로 해소되지 않는 것처럼, 이 고양이다. 주인에게 이 고양이는 결코 다른 고양이로 교환될 수 없다. 고유명은 바로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이것이라는 사항과 결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이 고양이가 죽을 때 주인의 ‘비탄’은 어떻게 치유되는 것일까? ‘비탄’은 그것이 구로라는 이 고양이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헤겔에게 고유명을 잊고 일반적인 것으로 향하는 것이 ‘노년’이고, ‘절대지’인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개체는 단지 세계사적인 이념(개념)의 나타남이고, 또는 그 개체 그 자체에 이념이 포함되고 있는 것이 된다.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은 헤겔에게 단지 개별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 때문에 일반성 속으로 해소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이라는 고유명을 버린다면, 역사도 사라진다. 헤겔에게 역사가 종언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실은 그것은 진실로 개별적·우연적인 사건, 즉 역사를 역사답게 만들고 있는 것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탄’의 깊어짐에서 우리는 개별적인·우연적인 사건이 필연적인 것, 즉 이 이외의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승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헤겔의 ‘절대지’는 그와 같은 결단이다. 오에 겐자부로도 그와 같은 결단을 강요당한다. 예를 들어 기이 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은 아직 초고 단계인 모양이니 물론 최종판단과는 관계없이 하는 이야긴데……. K, 화자는 일인칭이고 히카리를 중심으로 가족에 대해 쓰고 있더군. 나는 그걸 읽고 의문을 느꼈어. 지금까지 K가 나(僕)라는 일인칭으로 소설을 끌어가는 방식은 그것이 전쟁 중에 어린아이로서 겪은 추억이라든가 익숙지 않은 대도시에서 불안을 맞보는 청년을 취급하는 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 나는 분명히 작가에 가깝지만 시대의 풍속을 체현하는 화자라는 것도 사실이고, 작품이 하나의 사회현상임과 동시에, 가정교사를 하면서 외식권 식당에 밥을 대놓고 먹는 작가라는 것 역시 일종의 사회현상이니까. 거긴 독립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지금 K가 실제 가족을 둘러싸고 역시 나(私)라는 일인칭으로 소설을 쓴다, 그렇게 해서 자네는 마흔을 넘긴 나는 이렇게 살아 왔다, 살고 있다, 라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 셈이지. 언젠가 자네가 강연에서 인용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 나오는 비참한 주인공의 대사대로 “기억해 주세요. 저는 이렇게 살아왔답니다”라고 하소연하고 있단 말이야. 하지만 그걸 하려면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정말이지 각오를 굳히고서 해야 하는 거 아닐까? K, 자네는 그 각오라는 것을 제대로 의식하고 있는 거야?(『그리운 해에 보내는 편지』)
‘K짱’은 옛날은 ‘나(僕)’가 개별임과 동시에 유(類)를 나타내는 것 같은 스타일로 써왔지만, 어느 시기부터 ‘나’가 바로 개별적인 것인 것과 같은 스타일로 변했다. 예를 들어 『개인적 체험』에서 ‘나’는 특수함과 동시에 일반적이다. 그러나 히카리군을 등장시킨 소설에서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이 계열의 작품에서는 따라서 고유명이 회복된다. 기이 형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런 고유명이란 사건의 세계 그 자체에 보편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없는지이다.
『그리운 해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만연원년의 풋볼』과 달리 구체적인 지명이나 연대가 나온다. 그것은 앞서도 말한 것처럼 거의 자전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기이 형의 이런 언어는 이 소설에 대해 말하고 있음과 동시에, 그것 자체가 이 작품 내부에 속하는 것이다. 기이 형은 ‘나’를 비평한다. 그러나 기이 형과의 대화는 ‘나’의 내성(자기대화)으로서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개인적 체험』이 해피엔드인 것에 관해 기이 형은 고쳐쓸 것을 제안해 온다. ‘나’는 그것을 숙고한 끝에 거부한다. 그러나 기이 형의 비평은 실은 ‘미시마 유키오의 서평’을 ‘내면화’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미시마 유키오’라는 이름은 이 작품을 ‘역사’로 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바로 그것은 기이 형의 언어로서, 바꿔말하면 ‘나’의 자기대화로서 내면화된다. 요컨대, 『그리운 해로 보내는 편지』는 사적(고유명적)인 것이 출현하면서, 그것이 ‘내면화’에 의해 일반적인 것으로 해소되는 헤겔적 구성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문학을 구하라! : 가라타니 고진과 황종연
[특집] 문학의 종언과 한국문학 ②
서강대 대학원 신문 학내기획팀 editor@kyosu.net
1.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유령
□ 가라타니 고진
현재 한국문학계에는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혹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작가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한국 상륙에 성공한 작가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이는 가라타니 고진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일본의 기라성 같은 비평가와 사상가들 중에 정작 한국 상륙에 성공한 이는 가라타니 고진 한 사람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가라타니 고진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일본문학계의 두 거두지만, 모두 한국 상륙(그리고 세계 상륙)에 훌륭히 성공했다는 점에서는 나란히 놓을 수 있다. 한국에서 이 두 사람의 저술이 평균적으로 한국소설이나 한국평론집보다 훨씬 더 많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는 외래적 문물에 대한 호기심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재 우리 문학계나 학술계에서 간절히 필요로 하는 감수성이나 사유의 퍼스펙티브를 그들의 저술들이 충족시켜주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지난 2006년 4월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 b)이라는 책이 출간되자, 많은 신문과 문예지에서 이 책을 서평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느 때와 같이 단발성 ‘서평’으로 소모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최근에 나온 문예지들(가을호)에도 비록 직접적인 언급은 적지만 『근대문학의 종언』이 부여한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
□ 황종연
은 것 같다. 그 예로 『문학동네』에 실린 김형중, 김영찬, 이광호, 류보선의 대담과, 황종연이 현대문학상 수상자 특집 평론으로 「문학의 묵시록 이후 -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읽고」를 『현대문학』 8월호에 쓰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올봄에 나온 일본비평가의 책 한권이 가을까지 계속해서 회자된다는 것은 예사롭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사실 『근대문학의 종언』의 핵심논문이라 할 수 있는 동명의 논문은 이미 2004년 겨울호 『문학동네』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그때도 역시 올해처럼은 아니지만,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었다. 그렇다면, 가라타니 고진이 던진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는 햇수로 무려 3년 동안이나 한국 문학판을 괴롭히고 있다는 말이 된다. 분명 가라타니의 주장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어쨌든 우리가 애써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완전히 까발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분명해진 것은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라타니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긍정하는 것도(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문학을 떠나야 한다!), 그렇다고 적당히 타협하는 것도(그렇지만, 위기가 기회다!) 아닌 제 3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 3의 길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우선 우리 스스로가 자족적 엄폐물에서 나와 맨몸으로 가라타니의 테제와 대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가라타니가 말하고 있지 않은 것까지를 우리 자신에게서 읽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점에서 황종연의 글은 주목을 요한다. 사실 황종연은 가라타니 스스로 한국 제자라고 소개하는 인물이자 단행본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가라타니와 함께 ‘문학의 위기’에 공감을 한 한국평론가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또 어떻게 보면 3년 전 『문학동네』에 「근대문학의 종말」이라는 글을 게재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제 가라타니의 테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발표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3년 동안 있었을 그의 심경의 변화를 들어볼 필요는 없다. 추측컨대 그에게 있어 3년이라는 시간은 변화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해 한국 평론가로서 일본비평가이자 스승인 가라타니 고진에 대한 비판을 준비한 시기라고 보는 편이 옳다. 그렇다고 했을 때 현대문학상 수상 기념평론으로 「문학의 묵시록 이후」를 발표한 것은 이후 그의 비평활동에 대한 출사표로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앞으로도 계속 문예평론가로서 남고자 한다면, 가라타니의 테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무엇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아버지 유령이 던져준 테제를 어떻게든 소화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2. 근대문학 이후의 문학
□『근대문학의 종언』
황종연은 일단 가라타니 고진의 테제에 대해 수긍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근대문학이 끝났다는 생각은 그렇게 언표되지 않았을 뿐이지 실은 지난 십 년여 동안 빈번하게 나온, 한국문학의 위기에 대한 발언 속에 잠복되어 있다.’(「문학의 묵시록 이후」, 194쪽)고 말하며, 그 예로 김우창의 「문학과 세계시장」이라는 글을 들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일정한 역사적 조건 하에서 형성된 근대문학이 시대의 변화에 의해 쇠락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문학의 쇠락’ 이후이다. “가라타니의 논의 중에서 나에게 흥미로운 것은 근대문학 종언의 경위와 증상들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근대문학이 그 역할을 다한 오늘날 문학은 오락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근대문학이 끝났다고 해서 문학적 글쓰기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모든 이유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미권의 포스트모던문학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근대문학 이후의 문학을 인정하는 것은 이론상으로 가능하다.” (196쪽, 강조는 인용자)
사실,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가 한국 문학자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문학이 끝났다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종언 이후의 문학(즉 오늘날의 문학)이 오락에 불과하다는 것, 다시 말해 문화생산양식에 있어 문학의 이념적 우월성이 사라졌다는데 있다. 따라서 황종연의 위와 같은 주장은 ‘문학의 종언’에 한국비평가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지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짚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가라타니가 말하는 ‘근대문학’을 ‘문학’의 역사적 하위개념으로 치환함으로써, ‘현대문학(오늘날의 문학)’을 구해내려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주시하다시피, ‘문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에 정립된 것인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라타니가 말하는 ‘근대문학’은 곧 ‘문학’인 것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래도 오늘날의 문학이 ‘오락 이상’이라는 것, 다시 말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은 정작 그가 처음에 ‘문학이 역사적 예술양식’이라고 한 제스처와 충돌한다. 이와 같은 모순은 황종연의 글에서 종종 나타나는 것인데, 긍정적으로 보면 사실 이것이 그의 글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런 비평적 곡예는, 계속 살펴보겠지만 이 글 전체에서 반복된다. 방금 말한 것처럼 그는 ‘근대문학 = 문학’이라는 등식을 부정한 후,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 문학은 하찮다는 그의 주장은 당대의 일본문학에 대한 그의 절망의 심오함을 느끼게 하는 한편으로 개인적·국지적 경험의 무리한 일반화가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197쪽)며 가라타니의 절망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내지 ‘개인적 경험’으로 격하시킨다.
그런데 그 후 다시 『문학동네』에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글이 처음이 실렸을 때, 한국비평가들의 공통된 반응을 ‘사회적 상상력을 떠맡는 근대문학은 한국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요약하며,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문학의 유행 중에 ‘종언의 증상’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문학은 아직 하찮은 짓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바람직한 것은 근대문학의 어떤 이상을 고집하여 문학집단들의 무능과 타락을 고발하거나 아니면 근대문학의 어떤 자질이 한국문학에 살아있다는 증거를 찾아내고 부심하는 일이 아니라 근대문학 이후에도 문학이 존재할 이유를 생각하는 일이다.’(197-198쪽, 강조는 인용자)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황종연은 근대문학은 끝났다고 보지만, (근대문학과는 다른) 문학적 의의와 가치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가 비평가로서 옹호할 문학적 의의와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수잔 손택과 김우창에 기대어 아직 문학의 의의는 유효하다고 주장하지만, 그 유효성이 지금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는 첫째 단락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문학의 시대가 끝난 이치를 냉철하게 인식하도록 요구하는 가라타니의 종언론은 문학의 존재이유를 좀 더 깊이 생각하라는 도전으로 받아드릴 필요가 있다.” (198쪽)
이런 문제 설정 자체는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그는 ‘문학의 존재이유’를 찾는 대신, 본격적으로 종언론을 문제삼는 쪽으로 접어든다. 물론, 이것은 그에게 열린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이런 태도가 가진 맹점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반복하자면, 그의 태도 저변에 깔린 전제는 ‘한국에서 문학은 아직 하찮은 짓거리가 아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스스로의 표현으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가정’에 불과하다. 이는 ‘문학적 글쓰기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모든 이유’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는 그가 처한 입장에서 오는 불리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즉 가라타니의 ‘종언’적 입장이란 어떤 여정이 종결되었다는 가정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근대문학이 어떤 역할을 해왔으며, 또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었는지 나름대로 명확히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려는 황종연은 과거를 되돌아보기보다는 미래의 입장에서 오늘날을 옹호하려고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주장은 ‘가정’내지 ‘믿음’에 기반할 수밖에 없게 되며, 따라서 가끔씩 종언이라는 입장이 가진 유리함에 슬쩍 기대기도 하는 것이다.
문학은 왜 오락 이상이어야 하는가? 왜 문학은 하찮은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아직 그것이 완결되지 않았다고 보는 한, 오늘날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황종연에게 ‘문학이 오락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 또 ‘문학이 하찮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험적으로 전제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전제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질문을 바꾸어 보자. 문학이 오락이 되고, 문학이 하찮은 것이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한 마디로 말해 비평가가 불필요하게 된다. 문학평론가는 오로지 ‘문학이 오락 이상이고,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다. 이는 ‘문학교육’도 마찬가지다. 문학이 오락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교육과정에서 당연 삭제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산물로서의 근대문학’은 끝났지만, ‘역시 역사적 산물인’ 문학평론가들은 그대로 남아있으며 교육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이 남게 되면, 형식은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서 상상적 내용이라도 생산해내기 마련이다. 역사적 산물인 문학비평가가 ‘근대 이후의 문학’을 내다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 셈이다. 바꿔 말해, ‘근대문학의 종언’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할지도 모르는 ‘근대 이후의 문학’의 가치와 의의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문학비평가’라는 근대에 와서야 비로소 성립된 분업적 직함과 내성을 먼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비평가 스스로가 근대적 풍경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3. 예술의 종언과 그 이중적 의미
황종연이 ‘종언론’에 집착하는 이유는 앞서 반복해서 말한 것처럼, 종언 자체라기보다는 종언 이후에 대한 폄하 때문이다. 다시 말해, 종언 이후는 동물적인 세계가 될 것이라는 헤겔적 발상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일단 그는 『일본근대문학의 기원』과 『근대문학의 종언』이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 저작임을 강조한다. 즉 전자가 푸코적인 담론분석을 수행한 책이라면, 후자는 헤겔적 ‘역사철학적인 인간학’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후자의 원조격인 헤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헤겔의 ‘예술종언론’에 주목하여 이끌어내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헤겔이 말하는 ‘예술의 종언’은 묵시론적 비전과 관련이 없다. 헤겔이 말하는 ‘예술의 종언’이란 ‘예술의 자기해방’이다.” 그가 이와 관련하여 인용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의 예술가는 더 이상 어떤 특정한 소재나 그 소재에만 적합한 표현방식에 매달리지 않는다. 따라서 예술은 예술가 자신의 주관적인 능숙한 기술에 따라 어떤 종류든 모든 소재와 관련해 다룰 수 있는 자유로운 도구가 되었다. 그리하여 예술가는 신성시된 특수형식이나 형상보다 상위에 서게 되었고, 전에는 성스러운 것과 영원한 것을 인간의식에 나타나게 해주던 소재와 구상방식에서 독립되어 마음대로 자유로이 움직이게 되었다.” (황종연의 글 203쪽에서 재인용, 강조는 인용자)
확실히 이 부분만 보면, 헤겔은 ‘예술의 종언’을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인용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문제의 위인용이 포함된 단락 앞뒤를 마저 살펴보기로 하자. “이제 우리는 예술가가 자기의 국민성이나 시대, 자기의 본질에 따라 어느 특정한 세계관이나 내용, 표현형식을 갖던 시대와는 전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을 지니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근대에 와서 그 발전이 완성됨에 따라 비로소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즉 우리 시대에 와서는 거의 어느 민족에게나 반성적인 교육과 비판이 지배하게 되었고, 우리 독일인에게는 사상의 자유가 예술가들도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술가들은 그들의 소재나 그들이 산출하는 형식과 관련해 볼 때 낭만적 예술형식에 필연적인 특수한 단계들을 지난 뒤에는 이른바 백지상태가 되었다. [ * 황종연이 인용한 부분 * ] 어떤 내용이나 형식도 이제는 더 이상 예술가의 내면성, 자연성, 무의식적인 본질과 동일한 것으로 머물지 못한다. 즉 만약 예술가가 일반적으로 미적 예술적으로 다룰 능력만 있다면 그에게는 어떤 소재라도 그 형식적인 법칙에 모순되지 않는 한 상관없는 것이 되었다.” (헤겔, 『미학강의』(2), 두행숙 옮김, 나남, 423쪽, 강조는 인용자)
이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헤겔이 말하는 ‘예술의 자기해방’이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역사적인 세계관과 완전히 유리되어 소재나 형식을 취하는데 있어 어떤 필요성도 없게 되며, 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내면과도 완전히 무관하게 개별 형식과 내용에 모순만 되지 않으면 어떤 작품이든지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나 내면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예술, 헤겔은 바로 이것을 ‘예술의 종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황종연은 바로 이것을 예술이 주권을 획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의 종언이란 예술의 자기해방이기도 하다. 실제로 19세기 이래 예술에 나타난 발전은 예술이 주권을 획득하지 못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대담하고 다채로운 탐구와 실험의 결과다. 예술이나 문학이 역사적으로 규정된 어떤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서 그것에 반드시 오락거리로서 초라한 여생만 남는 것은 아닌 것이다.”(203쪽)
‘예술의 종언’과 관련하여 헤겔에게 쏟아지는 가장 일반적인 비판은 그가 그런 명제를 내세운 후에도 예술은 계속해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분명 그는 자신의 시대에서 ‘예술의 종언’을 보았다. 황종연의 비판은 기본적으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다만, 그는 예술이 그런 시대적 세계관과 예술가의 내면이나 무의식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기에 비로소 19세기 이래의 발전이 가능하게 했다는 다소 도발적인 주장을 한다. 따라서 ‘종언 이후’의 예술이 반드시 오락거리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주장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 모순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차라리 그는 종언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어야 했다.
역시나 그는 다시 슬그머니 종언론에 등을 기댄다. 그는 예술의 주권획득이 가진 위험, 즉 ‘자율적인 예술의 아이러니’가 가진 위험성(예술과 키치의 구별불가능성, 예술과 상품미학의 혼재)에 대해 아서 단토의 논의와 더불어 설명한 후, 가라타니가 강조한 근대문학의 자신의 형식 속에 가졌던 ‘특별한 가치’(정치적 사상적 역할)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슬그머니 두 번째 단락을 끝낸다. 그런 후 헤겔 종언론의 현대적 변형인 코제브에 대한 논리로 넘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슬그머니 넘어가서는 안 된다.
4. 헤겔의 ‘예술의 종언’ vs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
□ 헤겔
언뜻 보면, 헤겔의 ‘예술의 종언’과 가라타니의 ‘근대문학의 종언’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헤겔은 자신의 시대를 통해 ‘예술의 종언’을 선언하고 있는 것만 봐도 20세말에 이루어진 가라타니의 ‘근대문학의 종언’ 사이에는 180년에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여느 비판가들과 마찬가지로 황종연도, 헤겔이 ‘예술의 종언’을 선언한 뒤로 예술은 끝나기는커녕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헤겔의 ‘종언론’은 그렇게 이해해도 좋을까?
헤겔은 예술형식을 크게 상징적(동양적) 예술, 고전적(그리스적) 예술, 낭만적(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예술로 나누고, 이를 역사적 발전 순서와 연결시킨다(『미학강의』 제 1, 2부). 그리고 이들 양식들에 가장 잘 부합되는 개별 예술장르로, 건축(상징적), 조각(고전적), 회화, 예술, 시문학(낭만적)을 들고 그것들의 전개과정을 논한다.(제 3부) 이런 관점 하에서 헤겔은 낭만적 예술의 최종형태로 ‘소설’을 드는데, 이는 사실 가라타니가 말하는 근대문학(소설)과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헤겔이 말하는 ‘예술의 종언’과 가라타니가 말하는 ‘근대문학의 종언’은 일치한다. 그렇다면 시간적 격차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페터 스촌디의 다음과 같은 말에 주의를 기울일 만 하다. “우리들이 헤겔의 ‘낭만적 예술 형식’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의 대담한 총괄적 체계를 답파한다면 이런 낭만적 예술 형식이 1830년대 경에 정점에 달해 끝나버린다는 생각은 허용될 수 없다. 이 말의 의미는 헤겔이 예견할 수 없었고, 사람들이 보통 근대예술이라고 불렀던 헤겔 시대 이후의 문학(예술)을 네 번째 예술형식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비록 완전히 질적인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 시대의 이런 과대평가는 실은 그 속성상 헤겔의 낭만적 예술개념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페터 스촌디, 『헤겔미학입문』, 여균동/윤미애 옮김, 종로서적, 215쪽)
황종연을 비롯하여 헤겔을 비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헤겔 이후의 예술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네 번째 예술형식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그러나 스촌디는 그것은 잘못이라고 단언하고 우리는 아직 낭만적 예술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만약 이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헤겔과 가라타니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가라타니는 ‘기원’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그것이 ‘완결’되었을 때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역도 어쩌면 참이다. ‘기원’이 보이면 어떻게 ‘완결’될지가 짐작가능하다. 물론 여기서 ‘기원이 보인다’는 것은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시작’ 자체를 의미하는 것보다, 출발을 구성하는 가능성들의 전반적인 드러남을 뜻한다. 바꿔 말해, 헤겔은 근대문학의 발전을 몸소 체험하지 못하고 죽는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낭만적 예술형식을 서술하면서 그것의 궁극적인 형태는 시문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결론에 이르게 되고, 그것을 ‘예술의 종언’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헤겔이 낭만적 예술의 최종형태인 ‘소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지금까지의 형식의 발전에 따라 위와 같이 낭만적인 것은 해체되어가며 그 다음에 이어 세 번째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이 문자 그대로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소설적인 것(das Romanhafte)이다. 시간적으로 이보다 앞선 것으로는 기사문학과 전원소설이 있었다. 이 소설적인 것 역시 기사문학이 다시 진지해지면서 현실적인 내용으로 변한 것이다. 외적인 존재에 깃들인 우연성이 확고하고 안전한 시민사회와 국가의 질서로 변하자 예전에 기사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던 황당한 목적들 대신에 이제는 경찰, 법, 군대, 국가의 통치가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그들은 사랑과 명예, 질투 같은 주관적인 목적이나 현실 속에 있는 기존질서와 범속한 세계를 더 낫게 만들려는 이상을 지닌 개인들로서, 모든 측면에서 그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현실과 대립한다. 이때 그들은 이 대립 속에서 자신들의 주관적인 소망과 요구를 헤아릴 수 없이 숭고한 것으로 고양시킨다. 이유인즉, 그들 각자 앞에는 마치 마술처럼 보이고 그들에게 전혀 속하지 않는, 그들 각자가 싸워 얻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 여기서 새로운 기사들은 주로 젊은이들로서 그들은 그들의 이상에 역행하여 실현되는 이런 세상의 흐름들 사이를 싸우고 지나가며, 일반적으로 가족이나 시민사회, 국가, 법, 직업 따위가 있다는 것조차 불행으로 간주한다. […]
[…] 그러나 이제 이러한 투쟁들은 근대세계에서는 기존의 현실 속에서 단지 개인을 교육시키는 수업연한에 그치고, 그럼으로써 그 진짜 의미를 획득한다. 왜냐하면 주체가 그의 수업연한을 마치는 것은 그가 뼈저리게 느끼고, 자기의 소망과 의견을 기존상황이 지닌 합리성에 맞게 형성하고, 세상의 고리 속에 발을 디뎌 그 속에서 자신의 적합한 입장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세상과 싸우고 그 속에서 이리저리 내팽개쳐져도 결국에 가서는 대개 자기가 원하는 여자와 지위를 얻고 결혼하여 다른 사람들처럼 고루한 시민이 되고 만다.” (『미학강의』, 강조는 인용자)
위 인용은 엄밀히 말해, 근대소설 전반에 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교양소설’에 적합한 설명이다. 그러나 바흐친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괴테의 교양소설이 엄밀한 의미에서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흔히 근대소설의 시초로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가 이야기되지만, 아직 그곳에는 ‘시간’이 제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괴테의 소설은 ‘자연공간이나 이 자연공간과의 본질적인 관련 속에서 인간에 의해 창조된 대상들의 총체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역사적 시간의 가시적 움직임을 탐색하고 발견한다.’(「교양소설과 리얼리즘 역사 속에서의 그 의미」, 김희숙/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길, 318쪽, 강조는 인용자) 헤겔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것들이 지닌 우연성 안에서 바로 우리가 앞서 다룬 낭만적 예술의 붕괴 현상이 일어난다. 다시 말하자면 한편 이상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범속한 객관성인 실제 현실이 들어선다. 이는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삶의 내용으로서, 윤리적이고 신성한 것을 내포하는 실체성 속에서가 아니라 단지 유한하게 변화하는 시간성 속에서만 파악된다.” (『미학강의』(2), 411쪽, 강조는 인용자)
하나하나 짚어보기로 하자. 우선, 근대소설을 가능하게 한 것은 윤리적이고 신성한 것을 내포하는 실체성에서가 아니라 우연성을 가능하게 하는 ‘유한하게 변화하는 시간성’을 통해서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고의 영역이나 진짜 중요한 관심사은 물론이고 아무 의미도 없는 부수적인 것들이 함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삶의 가장 위대한 것과 가장 하찮은 것이 함께 공존하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때 그런 시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주관적 내면으로 여기서의 ‘우연성’이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우연성을 말한다. 그럼 외부의(객관적인) 우연성은 어떠한가? 앞서 인용한 것처럼, 근대소설에서 외부의 우연성은 시민사회와 국가질서로 변하게 된다. 따라서 주관적인 내면은 그런 사회시스템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나중에 사르트르가 말하는 ‘영구혁명 중에 있는 사회의 주관성(주체성)’이다. 그러나 괴테의 소설에서 이 주관성은 ‘교육과정’을 통해 포기된다.
물론, 당시 ‘교육시스템’은 매우 불완전한 상태여서, 주관적인 내면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하지 않았다. 괴테 소설이 이상적으로(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당대적 현실에 기반한 작품이 아니라, 특정형식이 새롭게 열 때 가지게 되는 일종의 ‘종언적 환상’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다시 말해, 『빌헬름 마이스터』라는 소설은 근대소설의 시작과 동시에 완결(종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괴테 이후 전개될 근대소설에서 주관적 내면은 결코 쉽사리 사회시스템과 타협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말로, 교육제도가 개인적 내면(적어도 예술가의 내면)을 완전히 제압할 정도로 강력하지 않아서, 사회와의 대립을 통해 자신들의 주관적인 소망과 요구를 숭고한 것으로 고양시킬 수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 교육제도가 되어 완전히 정착되어 이를 통하지 않고서는 예술가가 될 수 없다면, 또는 교양과 비판이 일반화되고 무엇을 하더라도 사회가 묵인해 준다면(즉 사상의 자유가 주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이때 예술가는 어떤 억압이나 장애 없이 그야말로 ‘백지상태’에서 자유롭게 창작을 할 수 있다. 즉 예술다운 것(아름다운 것)이라고 하면, 예술가의 내면과는 무관하게 어떤 소재나 어떤 형식도 자유롭게 상대할 수 있게 된다.
5. 동물화하는 인간 (코제브의 ‘종언론’ 분석)
□『헤겔 독해 입문』| 코제브 | 1947
황종연이 헤겔을 살펴본 후 코제브로 이동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역사의 종언’ 이후에 올 ‘인간의 동물화’라는 테제 때문이다. 물론, 궁극적인 목적은 이를 통해 가라타니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황종연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리스먼이 말한 ‘타인지향형’ 인간은 코제브가 말하는 아메리카적 생활양식이라는 ‘인간의 동물화’와는 연결될 수 있지만, 일본의 스노비즘과는 연결될 수 없다. 코제브 스스로 그것을 명확히 구분 짓고 있는데, 가라타니는 이것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일본의 경제적 번영이 에도시대의 스노비즘을 부활시켰다고 말하는 중에 그것을 미국화한 세계의 동물적 상황의 한 결말처럼 취급해서 일본 대중사회의 몰주체적인 풍속과 같은 종류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코제브의 의도에 크게 어긋나는 해석이다.” (207쪽)
문제의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문제의 코제브가 『헤겔 독해 입문』 재판에 붙인 문제의 각주 전문을 인용해보자.
그런데 나는 (1948년에서 1958년 사이에) 합중국과 소련을 여러 번 여행하고 비교해 본 결과, 아메리카인에게서 풍요롭게 된 중국인이나 소비에트인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소비에트나 중국인이 아직은 가난하지만 급속히 풍요롭게 되어갈 아메리카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적 생활양식은 포스트역사 시대의 고유한 생활양식으로, 합중국이 현실로서 세계에 현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인류전체의 ‘영원히 현존하는’ 미래를 예시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인간이 동물로 되돌아가는 것은 더 앞으로 닥칠 장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현전하는 확실성으로서 나타났다.
내가 이에 대한 견해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최근 일본을 여행한(1959년) 후이다. 나는 거기서 유일무이한 사회를 볼 수 있었다. 왜 유일무이한가 하면, 일본이 (농민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봉건제’가 청산되고, 원래 무사였던 그의 후계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쇄국이 구상되어 현실화된 후) 거의 300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역사의 종말’이란 시기의 생활을, 즉 어떤 내전도 대외적인 전쟁도 없는 생활을 경험한 유일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무사의 현존재는 자기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결투에서조차) 그만두면서, 그렇다고 노동을 시작했던 것도 아니어서, 그 상태로 완전히 동물적이 되었다.
‘포스트역사의’ 일본문명은 ‘아메리카 생활양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아마 일본에는 더 이상 ‘유럽적’ 혹은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종교도 도덕도 정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는 생생한 스노비즘이 ‘자연적’ 또는 ‘동물적’인 소요를 부정하는 규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것은 그 효력에서 일본이나 다른 나라들에서 ‘역사적’ 행동을 통해 태어난 그것, 즉 전쟁과 혁명의 투쟁이나 강제노동에서 태어난 규율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과연 노가쿠能樂나 다도茶道나 꽃꽂이華道 등과 같은 일본 특유의 스노비즘의 정점(이에 필적할 것은 어디에도 없다)은 상층 부유계급의 전유물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집요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모두 예외없이 완전히 형식화된 가치에 기초하여, 즉 ‘역사적’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적’인 내용을 모두 상실한 가치에 기초하여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어떤 일본인도 원리적으로는 순수한 스노비즘에 의해 완전히 ‘무상無償한’ 자살을 행할 수 있다 (고전적인 무사의 힘은 비행기나 어뢰로 바뀔 수 있다). 이 자살은 사회적 정치적 내용을 가진 ‘역사적’ 가치에 기반하여 수행되는 투쟁 속에서 무릅쓰게 되는 생명의 위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최근 일본과 서양세계 사이에 시작된 상호교류는 결국 일본인을 다시 야만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인도 포함한) 서양인을 ‘일본화한다’는 것으로 귀착될 것이다.” (コジェヴ, 『ヘ- ゲル讀解入門』, 上妻精/今野雅方 譯, 國文社, 1987, 246-247頁. 강조는 인용자)
코제브는 확실히 아메리카적 생활양식과 일본적 스노비즘을 구분하고 있다. 아메리카적 생황양식을 ‘인간의 동물화’라고 부르는 반면, 일본은 정반대로 ‘동물적 소요를 부정하는 규율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서양이 일본화한다’는 것은 ‘자연적이고 동물적인 것’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이대로라면, 황종연의 비판은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도대체 누가 오독을 한 것일까? 헤겔은 『미학강의』에서 자연미를 부정하고 그것을 벗어난 예술미를 설명하기 위해 동물과 인간의 차이에 대해 길게 논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동물은 자연미의 정수를 잘 표현한 생동성을 아무리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즉자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빈약하고 추상적이며 내용이 없다.(특히 『미학강의』(1), 192-195쪽 참조)
그러나 가라타니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코제브가 ‘동물적’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동물적 상황과는 반대이다. 도리어 그것은 타인의 욕망밖에 없는 인간적 상황을 가리킨다.(『근대문학의 종언』, 도서출판b, 72쪽) 그렇다고 했을 때, 아메리카적 생활양식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첫 번째 단락의 ‘동물’과 일본의 스노비즘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세 번째 단락의 ‘동물’은 다른 것이다. 이는 두 번째 단락에 일본적 상황을 설명할 때 ‘완전히 동물적이 되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첫 번째 단락에서의 ‘동물’이란 가라타니의 말처럼 특정한 ‘인간적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고, 세 번째 단락에서의 ‘동물’이란 ‘자연적 상황’, 즉 순수한 의미에서의 ‘동물적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라타니처럼 일본의 스노비즘을 아메리카적 생활양식과 정반대되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적 생활양식’의 극단적인 형태로 보는 것이 보다 합당할 것이다.
이는 황종연과 각주에서 인용한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이제는 의무처럼 통하는 일본에 대한 참조는 우리(서양)의 과거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서양) 자신의 미래일지 모르는 대타자에 대한 집착의 표시이다.”(제임슨, 『시간의 종자』, 황종연의 글에서 재인용) 물론, 일본에 대한 이런 서구적 시각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황종연이 애써 헤겔이나 코제브의 논의를 문제삼는 것은 앞서도 말한 것처럼, 역사의 어떤 상황이 종료됨과 동시에 ‘퇴행’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욕망이 충족가능한 것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러한 인간실존과 문화에서의 동시적 퇴행은 성립하지 않는다.”(209쪽)고 말한다. 여기서 그가 기대는 것은 정신분석이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정신분석에서의 ‘욕망’과 헤겔의 ‘욕망’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황종연이 ‘욕망의 충족불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은 거기에 ‘부정성’이 있다고 보고, 부정성이 존재하는 한 문학은 여전히 오락 이상의 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 그는 자주 그랬던 것처럼 강경한 어조에서 한 걸음 후퇴하여(이런 극단적 어조의 급격한 변화는 황종연 글이 가진 특징인데, 이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의 글을 끝까지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코제브가 ‘욕망의 충족불가능’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는 가라타니 역시 마찬가지다. 더구나 그가 말하는 근대문학의 종언의 증거인 ‘타인지향형’이란 ‘인정욕망’이 강한 상태를 가리킨다.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에도 부정성은 이전보다 어쩌면 더 강력한 형태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결론적으로, 황종연은 타겟을 잘못 잡은 것이다). 다만 여기서 굳이 뭔가를 문제삼는다면, 그것은 ‘자의식’이 아니라 ‘내면(성)’이어야 한다. 예컨대, 가라타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거기에는 타자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오로지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타인을 조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강한 자의식은 있지만 내면성이 전혀 없는 타입의 사람이 많습니다. 최근 젊은 비평가들은 그런 사람뿐입니다.” (『근대문학의 종언』, 73쪽, 강조는 인용자)
다행스럽게도 황종연은 강한 자의식‘만’ 있는 비평가로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런 고통스러운 도정을 감행하는 대신 여느 비평가들처럼 살짝 고민하는 척 하다가(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시 이전의 자리를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무관하게 다음과 같은 그의 언명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인간의 동물화가 대세라고 해도 주어진 자연과 문화를 부정하려는, 그것들에 의해 규정된 자신을 부정하려는 충동은 인간에게 남아있다. 그 부정성이 비록 그 자체로 ‘역사적 행위’를 이루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활동은, 인간적 존엄성이라는 관념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발견되고 촉진되어야 한다. 이것은 문학을 포함한 문화형식이 정치적으로 쇠퇴하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징후를 드러내고 있더라도 그것에 대한 미련을 쉽사리 버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210쪽, 강조는 인용자)
코제브는 물론 심지어 헤겔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가라타니의 테제를 격파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또 어떤 부분에서는 격파한 것처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참담한 결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매우 솔직하게 자신의 이론적 한계를 승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문학적 가치’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 없어서, “인간적 존엄성이라는 관념을 포기할 수 없다면, 문학 역시 포기할 수 없지 않는가!”하고 말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런 ‘당위적 휴머니즘’에 대한 강조를 통해 ‘이후 문학은 오락일수밖에 없다’는 논리적인 명제로부터 ‘문학’을 구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그는 문학을 구원하길 포기했는가? 그렇지는 않다. 황종연에게 있어 ‘근대문학의 종언’에 해답은 이미 주어져 있다. 다만, 그 해답에 모든 게 순조롭게 들어맞지 않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그는 위치(비평가적 생명)를 걸고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6. 문학의 종언과 비평의 종언
마지막 단락은 「문학의 제도와 반제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여기서 황종연은 한국문학계에는 가라타니만큼 문학에 대해 회의나 절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때의 절망이나 회의는 주로 ‘좋았던 옛날’에 대한 기억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 누린 문학의 위세는 ‘문학 본래의 권능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라기보다 한국사회의 저발전이 가져다준 행운’(211쪽)이라고 주장한다. “대학학문과 교육의 전반적인 부실함, 대중매체의 문화적 저열성과 기술적 낙후성, 권위주의적 정권의 삼엄한 언론통제, 글에 능통한 사람들에게 엘리트의 특권을 부여한 유교문화의 낡은 유산, 학력귀족이 입신출세를 독점하는 사회체제-이런 요인들을 떠나서 과거 한국문학의 위세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게 저발전 사회의 풍토 속에 자라난 문학이 과연 그렇게 훌륭한 것이었는지도 의문이다. (…) 과거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숭상이 정치적이거나 도덕적인 이유에서 척결되지 않고 있는 시대착오일리 모른다는 생각은 해볼 만한 것이다.” (211쪽)
사실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황종연의 글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바로 여기다. 왜냐하면, 그는 동시대의 문학을 구원하기 위해, 과거의 문학에 대한 대학살을 감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표현상으로는 얼마 전 최원식이 주장한(그리고 백낙청도 수긍한) ‘한국문학의 빈곤’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황종연은 그보다 더 적극적이다 못해 과격한 느낌마저 든다. “시절이 궁색하고 험악한 중에도 기억할 만한 작품을 써서 남긴 작가들의 업적은 기려야 마땅하나 동시대의 문학을 마치 대파국을 앞둔 퇴폐의 준동처럼 여기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문학보다 긴박하게 중대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는다면 가라타니나 김종철처럼 문학을 그만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인용자) 묵시록의 픽션에서 벗어나 문학을 생각해야 한다. 문학이 워낙 시세가 없는 세상이니 자신을 정치적 무능과 사회적 고립으로 몰아가게 되더라도 말이다.” (211-212쪽,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황종연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문제를 믿음(신념)의 문제로 치환하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라고 외친다. 다시 말해, 가라타니나 김종철처럼 문학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문학을 떠나고, 그렇지 않으면 문학을 옹호하라는 말이다. 이런 비약은 그가 동시대 문학을 구하기 위해 논리를 무시하고 무리수를 두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화살을 ‘문학제도 비판’으로 돌린다. 그는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이 보여준 문학제도가 가진 우연성에 대한 폭로와 비판의 성과를 한편으로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근대 비판담론의 유행을 타며 널리 참조되고 응용되는 가운데 속류 이데올로기 비판을 유발한 책임이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212쪽)이라고 말한다. 즉 가라타니가 자주 사용하는 ‘제도’라는 개념이 결국 자유, 해방, 부정, 진리 등과 같은 용어에 집착하는 비평을 이론적으로 소박하고 정치적으로 우둔한 누습처럼 보이게 만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런 통속적인 이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가라타니 자신이다. 일본에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을 본격적으로 비판한 것도 그이며, ‘인간’과 같은 낡은 용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옹호한 것도 그이다(『언어와 비극』에 실린 「안고 가능성의 중심」 참조). 더구나 그는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 대한 세간의 몰이해 때문에, 전면개정의 형태로 『정본집』에 수록하기도 한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의 수용에 관한 저간의 사정에 대해서는 『근대문학의 종언』 제 3부에 실린 세키이 미쓰오와 대담을 보면 된다.)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았을 황종연이 굳이 ‘통속적 이해’의 책임을 저자 자신에게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문학이 가진 불확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황종연이 말하는 문학의 불확정성이란 쉽게 말하면, 문학은 제도의 규제를 받기 마련이지만 항상 그리고 전면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데리다의 한 대담을 인용하며, 문학은 역사적 제도이기도 하지만 그런 규칙성을 깨는 허구적 제도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분명 근대문학이 네이션 성립에 공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강화하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끝없이 부정해왔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소세키를 근대문학을 넘어서는 가능성으로 인식한 가라타니 역시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문학은 그 제도화에 저항하는 요소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통찰하고 있음에도 그는 그러한 요소들이 근대문학 속에서 어떻게 잔존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예고한 근대문학의 이후가 어떤 양상인지는 논제로 삼지 않는다.”(214-215쪽)
사실, 가라타니의 애매함은 여기에 있다. 그는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서 근대문학 전반을 비판하면서, 그런 근대문학의 자명성을 문제삼는 소세키의 소설을 진정한 근대문학으로 옹호한다. 즉 적어도 소세키는 일정 정도 제도 바깥에 발을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저항의 문학’은 그 이후 어떻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그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라타니가 이제까지 발표한 평문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대적 자명성에 대해 끝없이 고민한 문학은 계속 있어왔다. 예컨대, 모리 오가이, 하니야 유타카, 미시마 유키오, 사카구치 안고,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류 등이 그들이다. 그는 다만 그런 흐름을 ‘근대문학’을 비판할 때와 같이 ‘문학사적인 관점에서’ 상세하게 전개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따라서, 문학의 숨은 가능성을 무시하고 문학을 떠나는 가라타니를 그의 ‘종언론’ 탓(진정한 낙담과 보다 시급한 과제에 대한 믿음)으로 돌리고, “가라타니의 문학과의 결별은 일본문학을 위해서도, 그의 비평으로부터 자기인식과 자기비판의 새로운 모델을 얻은 한국문학을 위해서도 애석한 일이다.”(215쪽)라고 결론짓는 것에서, ‘냉소적인 자의식’은 발견할 수 있어도 ‘비평가의 내면성’은 찾기 힘들다. 만약 그의 말처럼, ‘문학의 종언’이라는 문제가 신념의 문제로 귀결된다면, 그는 결국 이 글을 통해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는 것이 된다.
가라타니는 오늘날 네이션 문제는 스테이트, 자본과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를 비평과 관련하여 이야기하면, 오늘날의 비평은 국문학(네이션), 대학교수(제도), 출판사(자본)라는 보로메오의 매듭에 갇혀있다. 이 보로메오의 매듭이 완성되기 전, 비평은 확실히 강한 내면성을 지니고 있었고, 어떤 책은 어지간한 소설만큼 팔렸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출판사측에서 보았을 때, 비평집을 내는 것은 곧 적자를 의미한다(대부분 증정본이나 납품본으로 소비될 뿐이다). 이는 대가급 비평가나 현재 가장 잘나가는 비평가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비평을 읽는 사람은 비평가들과 그들이 다룬 소설가들뿐이며, 비평가들 역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왜 출판사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비평집을 내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방금 살펴본, 보로메오의 매듭이 잘 설명해준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테제는 비평가들에게 이런 매듭을 끊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묻고 있다. 적어도 이에 대한 의문이나 저항없이 이루어지는 ‘문학의 종언론’ 비판은, 이제껏 황종연이 잘 보여준 것처럼 특정형식에 대한 ‘신념’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형식화된 가치’(코제브)에 대한 집착에 불과하며, 그것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스노비즘이다. 필자는 「문학의 종언과 약간의 망설임」에서 앞으로의 한국문학은 ‘문학동네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을 때, 황종연은 『문학동네』 편집위원 중 가장 ‘문학동네적’이지 않은 비평가였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가장 문학동네적이지 않은’ 바로 그로 인해 『문학동네』가 대외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실제 황종연을 제외한 나머지 편집위원들의 활동은 대부분 『문학동네』에 제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핵심개체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질적으로까지 보이는 부수적인 존재야말로, 정작 그 집단의 정체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면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제일선에 나서는 법이다. 이런 면에서 황종연이라는 존재는 『문학동네』의 중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다고 했을 때, 우리가 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행한 가라타니 비판 중 하나(근대문학의 이후가 어떤 양상인지는 논제로 삼아야 한다.)를 그 자신이 직접 수행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의 문학, 즉 오늘날의 한국 문학(『문학동네』의 문학)이 근대문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제도에 저항하고 ‘형식화된 가치’를 넘어선 가치를 표명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이를 주저하거나 혹 시도했다고 할지라도 스승 가라타니의 주장을 ‘노년의 실언’으로 치부할 만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면, 그의 글은 ‘비평의 종언’에 대한 훌륭한 증거물로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학내 기획팀
지금 이 세계를 마주한 내 가슴이 떨리는 까닭
[특집] 문학의 종언과 한국문학
2006년 10월 13일 (금) 02:09:04 김연수 | 소설가 editor@kyosu.net
새로운 문자 안에서 구세계는 저물고 신세계는 눈뜬다
■ 김연수 | 소설가
1896년 4월 7일,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은 정부의 자금을 받아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이 신문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문화적 실험, 즉 한국어로만 신문을 구성하는 일을 시도했다. 원래 한국에는 한글이라는 문자가 존재했으나, 이는 여성들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언어로 여겨졌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이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사용해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서재필은 왜 이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한국어를 이용해 신문을 구성했는지에 대해서 <독립신문> 첫 호에 다음과 같이 밝혀 놓았다.
“우리 신문이 한문은 아니 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상하 귀천이 다 보게 함이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한자는 표의문자이고 한글은 표음문자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글자 하나가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한글은 알파벳과 같이 자음과 모음이 결합돼 단어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을 들여 수천 개의 글자를 익혀야만 하는 한자와 달리 한글은 배우는 과정이 매우 간단하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신문을 읽게 하는데 한글만큼 좋은 수단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서재필의 이 실험은 실패하고 만다.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글자로 신문을 구성했는데, 한문을 중심으로 구성한 신문보다 오히려 덜 읽혔던 것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로 <독립신문>이 폐간한 뒤로는 대개 다른 신문의 구성 방식은 ‘한자 + 한글’로 이뤄진다. 말하자면 주요한 단어는 중국 문자로 표기하고 문법적인 기능을 하는 요소들은 한글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분명히 퇴보다. 일부만 보는 것보다는 모든 사람이 보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퇴보가 이뤄진 것일까?
그건 서재필이 한글로만 신문을 구성한 까닭에는 다른 이유도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립된 나라에는 독립된 문자가 있어야만 한다고 그는 믿었다. 그러므로 서재필은 한국어를 한자로 표기하는 일에 극도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식인들에게 그런 개념이 없었다. 지식인들에게는 세계를 한글로만 설명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는 항상 한문으로 설명됐기 때문이었다.
그 한문을 단순히 한글로 표기하는 것만으로도 세계는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그건 바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의 종말이었다. 19세기까지 조선 지식인들에게 세계는 중국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들이 한자를 선호한 까닭은 그것이 세계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구인들이 몰려들면서 세계의 형상 자체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었다. 중심이 없는 지구 안에서 각 민족국가가 저마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지도가 생성됐다. 한글로만 신문을 구성할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세계지도는 그런 모양이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한문에 집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문을 사용하지 않고 한글을 사용하는 일은 단순히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신문을 읽게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 일은 세계를 인식하는 틀 자체를 바꿔버린다. 이 때 한글이라는 문자는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에 해당한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게 어떤 세계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결국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눈치 채고 있었다. 비록 <독립신문>의 문자 실험은 실패했지만, 그 사이에 낡은 세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세계가 눈뜨고 있었다.
문학의 새로움이란 미래의 문장들이다
그러니까 <독립신문>이 한글로만 신문을 구성하기 전까지, 그리고 그 얼마 뒤까지도 한국에는 근대적 의미의 소설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이야기는 존재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동양적 방식의 우연적인 발라드에 불과했다. 거기에는 화법이나 플롯과 같은 근대적 소설 구성 방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20세기 초반의 한국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구세계, 즉 중국 중심의 세계에서 통하던 동양식 발라드에서 벗어나 서구식 소설을 창작하는 것이었다. 이 때 서구식 소설이란 <독립신문>의 한글 표기가 암시한 새로운 세계에 합당한 소설을 뜻한다.
새로운 세계와 서구식 소설은 상호보완적이다. 새로운 세계를 묘사하려면 서구식 소설이 필요했던 것이기도 하고 서구식 소설로 묘사되는 세계는 새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 초, 선구적인 한국 작가들이 최초의 서구식 소설을 창작하던 시기에 새로운 세계의 모습은 다소 흐릿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문장에는 19세기의 문장과 20세기의 문장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20세기의 문장을 간절하게 원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서구에서 발생한 자연주의, 리얼리즘, 모더니즘, 초현실주의 등의 도구를 도입해야만 했다.
그 결과는 대단히 놀라웠다. 문장을 20세기화시키기 위해 도입한 문예사조들은 소설에 새로운 관념들을 발명해냈다. 예컨대 가장 먼저 근대라는 것이 탄생했으며 이에 따라 근대적 인간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소설 속에 등장한 근대적 인간들은 낡은 세계의 사슬을 끊고 자신의 내면에 따라 자유롭게 인생을 선택하고자 투쟁했다. 말하자면 새로운 문장이 민주주의, 자유연애, 혁명 등의 근대적 관념들을 발명해낸 것이다. 소설의 문장이 19세기까지의 낡은 문투에서 벗어날수록 세계는 20세기의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구적인 한국 작가들은 <독립신문>과 마찬가지로 한국어로 소설을 쓰는데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한국어 표현법을 개발하고 한국의 상황을 묘사했다. 그들이 소설을 쓰던 20세기 초반,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이 일은 더욱 절박한 과제였다. 후에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어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일본어로만 창작하도록 강요했던 일에서 알 수 있다시피 20세기 초반 한국어로 소설을 쓰는 일은 민족을 유지시키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러므로 작가들은 가장 한국적인 표현으로 가장 한국적인 상황을 묘사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한국의 작가들은 이미 한국어로 상당한 수준의 소설 작품을 남기고 있었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뒤부터 한국어로 소설 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들의 노력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그들이 마침내 한국어로 만들어낸 20세기 소설의 문장은 식민지 상황에서 꿈꿀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생각, 즉 독립 국가를 호명한다. 한국적인 상황을 한국어로 쓴 소설이 한국인에게 읽힌다면 이를 두고 민족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문학은 궁극적으로 민족국가로 이어진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문학을 선보였다. 자연주의 소설이 리얼리즘 소설에 의해 패퇴되고 리얼리즘의 인간형이 모더니즘의 인간형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한국 문학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인간형은 더욱 더 복잡해졌다. 20세기 선구적인 한국 작가들의 이런 실험, 혹은 이러한 새로움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을 열었다. 그건 바로 자유로운 개인들로 구성되는 근대국가를 뜻했다. 말하자면 혁신된 소설의 세계가 다가올 미래를 담고 있었다는 뜻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시기에 일본 제국주의 강요에 못 이겨 일본어로 소설을 쓴 작가들이 있었다. 그들이 상상한 세계는 일본 제국주의가 확장되어가는 지평과 동일했다. 하지만 그들의 문장이 보여준 미래는 오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문학의 역사란 혁신들로만 채워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를 잘못 판단한 결과 한국문학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그들의 소설은 전혀 새롭지 않은 셈이었다. 그들의 소설은 왜 새롭지 않은 것일까? 그들의 소설이 상상한 새로운 세계는 전혀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는 것은 미래의 문장들
기본적으로 지금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때만이 소설은 새로워질 수 있다. 소설이 먼 미래를 상상할 수는 없다. 소설은 그 안에서 낡은 세계가 저물고 새로운 세계가 눈을 뜨는 공간이다. 소설은 기껏해야 지금 이 순간, 갈 수 있는 가장 먼 지평까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 지평에서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정확하게 다음 순간 찾아올 세계여야만 한다. 이 세계가 과연 어떤 곳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한에는 소설은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이 다음 순간만을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의 성공 유무는 금방 판가름난다. 내가 보기에 한 소설이 새로웠는가, 그렇지 않았는가는 10년 안에 판가름난다. 길어봐야 10년 뒤의 세계를 정확하게 보여준 모든 소설은 새롭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순간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가장 먼 곳까지 가보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문장들이다. 현실의 지평에서만 그 문장들을 얻을 수 있다. 그 문장들 속에는 이 다음 순간의 세계의 모습이 담길 것이다. 그 문장들 속에서 낡은 세계는 저물고 새로운 세계는 눈뜰 것이다. 모든 새로운 문학은 이 다음 순간을 간절히 원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대중들에게 버림받는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버림받은 그 새로운 문학이 재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까닭은 결국 이 다음 순간은 머지않아 찾아오기 때문이다.
금방 찾아오는 이 다음 순간은 내게 대단히 가깝게 있으나 분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나는 이 다음 순간의 문장들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다. <독립신문>을 한국어로만 구성하겠다는 서재필의 아이디어는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신문을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 신문의 한국어가 결국 민족국가를 만들어냈다. 좀 더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가지 문학적 실험을 거듭했던 식민지 시기의 작가들 역시 독립국가라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모두 흐릿한 여명 속의 작가들이었다. 그들이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는 이윽고 밝혀지게 돼 있었다.
나는 세계가 늘 변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내가 서 있는 곳의 풍경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흐릿하기 그지없다. 그 흐릿한 풍경 속에서 유럽은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고 이라크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있다. 과거는 명명백백하고 현재는 혼란스러우며 미래는 흐릿하다. 나의 소설이 서재필이나 식민지 시기의 작가들처럼 독립된 민족국가의 소설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의 소설은 무엇인가? 그 안에는 어떤 문장들이 들어가는가? 내가 어떤 문장을 쓰든간에 그 문장은 새롭거나 새롭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 다음 순간이 찾아오면, 그러니까 흐릿했던 미래가 얼마간의 혼란을 거쳐 명명백백해지면 금방 밝혀질 것이다. 지금 이 세계를 마주하며 가슴이 떨리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김연수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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