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삭녕최씨의 관향인 삭녕은 본디 고구려시대에 소읍두현(小邑豆縣)이라 하던 곳인데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서는 34대 경덕왕(AD 742~764)때 삭읍현으로 고쳐서 토산군에 소속되었었고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삭녕군으로 고쳐졌으며 1018년(8代 顯宗 9年)에는 동주(東州: 철원의 옛명칭)에 속하였다가 1106년(15 代 睿宗 1年)에 승령현(僧嶺縣)의 감무(監務)를 겸하게 하여 삭주군(朔州郡)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태종(太宗) 3년인 1403년에 승령(僧嶺)을 이곳에 예속시켰고 태종 14년인 1414 년에는 안협현을 합병하여 안삭군이라 하였다가 2년 뒤인 1416년에는 다시 삭녕군으로 환원시켜 양주(楊洲)의 속군(屬郡)이 되었다. 이와같이, 삭녕(朔寧)은 역사적으로 많은 변천을 겪어 왔으며 그 밖에도 빗물(非勿), 동량(?梁)등의 별호도 있었던바, 1914년에는 일제치하(日帝治下)에서 삭녕군을 폐하여 내문면, 인목면, 마장면은 강원 도 철원군에 편입시켰고 나머지는 경기도 연천군에 병합됨으로써 삭녕이라는 고을이름은 그 뒤 사라지고 경기도 연천군 북면 삭녕리로 남게 되었다. 우리 삭녕최씨 시조공과 중시조가 사시던 곳은 이곳 삭령리가 아니라 강원도 철원군 마장면 대전리 괴 음촌(槐陰村)이며 현재는 휴전선 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볼 수 없는 것이 못내 한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