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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복의 새벽편지==올림픽과 국민건강
2008/08/27 오전 12:37 | 새벽편지 | [세상에온기를]



이태복의 새벽편지

올림픽과 국민건강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 세계 7위. 이번 북경올림픽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박태환처험 귀에 익숙한 선수들뿐 아니라 최민호, 황경선, 장미란, 진종오, 이용대 등과 같은 올림픽 스타들과 야구의 김경문, 핸드볼의 임영철 감독 같은 스포츠지도자들도 널리 알게 됐다. 올림픽 기간 내내 승리에 온 국민이 환호하고 좌절에 탄식을 쏟아내며 7천만 겨레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참가선수들이 각자 나라를 대표하여 경쟁하고 승리했을 때 국가를 연주하여 축하하는 올림픽 제전은 그 성격상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고, 국민의 결속을 다지는 계기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 나라가 올리픽 정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정통성이 취약했던 전두환 군사정권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면서 고취된 국민적 자부심을 활용해 노태우 정권으로 연장시킬 수 있었다. 그 바람에 전 세계에 비로소 대한민국의 존재를 뚜렷이 각인시켰다.

 

그러면 이번 올림픽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는 주최국인 중국의 부상과 미국, 영국, 일본 등 기존 선진국들의 부진이라는 흐름이 뚜렷하다. 아직도 우리 국민을 비롯해 세계인들은 중국 파워의 실체를 실감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북경올림픽은 중국의 의도대로 세계최대 국가의 힘을 분명히 드러냈다. 중국과 가까운 이웃들이 긴장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둘째는 4년마다 개최되는 올림픽 경기의 결과가 말해주듯 선수 위주의 스포츠가 발전하는 경향이 개선되기보다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누구도 올림픽 정신을 말하지 않는다. 국민건강이 어찌되던 어릴 때부터 스포츠인재를 선발해 국력을 기울여 올림픽 경기에 출전시켜 금메달을 따면 그게 최고의 가치가 된다. 북경올림픽의 세계적 스타탄생인 자메이카의 볼트를 비롯한 육상선수들이 그 증거다. 그러나 이들의 눈부신 성과를 외면할 수도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엘리트스포츠의 문제점은 그 부작용이 너무 크다.

 

셋째, 북경올림픽에 출전한 한국선수들의 선전과 기대 이상의 분투,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응원하는 모습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은 좋은 지도자만 있다면 얼마든지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국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스포츠의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하면서 국민건강의 발전에 기여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실천가능한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 구체화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스포츠의 양대 축인 생활체육과 학교체육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한국양궁이 세계 최고이지만, 국민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지 않다. 수백 수십만 명이 생활하는 도시지역에 전시용 운동장만 있을 뿐, 국민들이 일상 속에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인프라가 절대 부족하다. 크고 작은 생활체육시설들을 만들고 넓혀서 국민건강을 증진시켜가야 한다. 올림픽 스타들의 이름을 붙인 체육공원과 스포츠센터를 전국 각지에 만들어 그 분야의 거점역할을 맡기는 방법도 좋다. 안동에 최민호 생활체육공원과 체육관을 세우자.

 

그리고 학교체육이 일부 선수들을 위한 체육으로 변질된 지 오래고, 운동장 없는 학교까지 등장한 현실은 소아비만과 당뇨, 전반적인 청소년 체력저하로 나타나고 있다. 동네공원과 학교운동장에서 청소년들이 뛰고 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체계적인 건강지표를 만들고 정기적인 조사를 통해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시켜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각 자치단체마다 당뇨, 고혈압 등과 같은 건강과 체력지표들을 관리한다면 한국의 스포츠는 국민건강의 증진에 핵심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건강과 체력지표의 목표와 구체적 방안을 현실화할 때 국민들은 스포츠의 구경꾼을 넘어서 스스로 주체로서 삶의 질을 높여갈 수 있을 것이다.

 

올림픽이 열릴 때만 금메달 몇 개 땄는지에 관심을 갖다가 바로 잊고 4년 뒤에 되풀이하는 우리의 잘못된 전통(?)을 이제 벗어났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제 무슨 낙(樂)으로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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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복의 새벽편지==이승만의 공(功)과 과(過)
2008/08/19 오후 10:40 | 새벽편지 | [세상에온기를]

이태복의 새벽편지


이승만의 공(功)과 과(過)

 

2008년의 8.15는 유감스럽게도 우리 내부의 분열상을 드러내는 날이 되고 말았다. 정부여권과 야당, 시민사회단체들이 각기 다른 곳에서 8.15광복절 기념식을 치른 것이다. 이 분열대립의 핵심에는 2개의 쟁점이 자리잡고 있다. 하나는 2008년의 8.15가 건국에 중점을 둘 것인지, 다른 하나는 이승만 초대대통령에 대한 평가문제이다. 이글에서는 이승만 초대대통령에 대해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승만은 독립협회시절의 애국운동과 일제시대의 항일운동, 그리고 8.15광복 후의 한국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서재필, 윤치호가 조직한 독립협회에서 소장 강경파의 리더였고, 박영효 내각을 추진하다 고종의 미움을 받아 반역죄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5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하와이와 위싱턴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과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활동을 한다. 3.1운동 이후 각지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상해의 임시정부가 국무총리로 이승만을 발표하자 외교활동상 대통령으로의 명칭변경을 요구하여 임시정부의 대통령이 된다. 이승만은 줄곧 위싱턴에서 미국과 각국 정부를 상대로 한 호소문 발송 등 소위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에 몰두한다. 일본이 패망하자 귀국하여 반탁운동을 통해 단독정부수립을 추진한다. 제헌의회에서 간선제로 초대대통령으로 선출됐으나 자유당 정권의 부패, 무능, 3.15부정선거를 통한 장기집권 획책으로 4.19혁명에 의해 하와이로 망명한다. 그곳에서 숨을 거췄다. 이런 간략한 이승만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한 마디로 재단하기는 쉽지 않다. 모든 역사적 인물이 그렇듯 공(功)이 있으면, 과(過)가 있는 법이다.

 

이승만의 첫째 공은 평생동안 친일파로 변절하지 않고 비록 외교에 의한 독립운동일망정 줄기차게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이승만과 친밀했고, 국내의 후원자였던 윤치호가 친일파로 전향했던 사실과 비교하면 그의 항일의지는 일관된 것이었다. 이런 그의 항일태도는 특히 기독교계통의 인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두 번째 공(功)은 8.15 이후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한 단독정부 수립이 바람직한 것이었지만, 북한정권이 수립된 조건에서 정부수립은 현실적 선택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승만이 앞장서 대한민국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잘못도 적지 않다. 우선, 독립협회 시절에 독립협회 해산령에 중요한 계기가 됐던 것이 이승만 등 강경파 그룹의 박영효 내각 추진이었다. 만약 고종이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면 독립협회가 추진한 의회설립운동은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랬다면 한말의 상황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다. 1900년 전후한 상황에서 수구파가 날뛸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등 강경파 그룹의 무모한 개혁파 내각수립요구였다.

 

두 번째 과오는 항일운동 내내 독립운동진영의 분열에는 이승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자리를 둘러싼 싸움도 그렇고, 독립노선에 관한 투쟁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은 배재학당 출신과 기독교, 기호세력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만들기 위해 임시정부 내에는 조소앙 같은 소장파를 내세워 자파세력을 부식하기 위해 애썼고, 국내에는 기독교계통의 YMCA 신흥우 등을 기반으로 안창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흑색선전을 서슴지 않았다. 이승만 문서로 볼 때 이승만의 이런 분열적 행동은 오로지 자신의 임시정부 내 대통령 자리 유지와 국내독립운동의 주도권 확보에 목적이 있었다.

 

셋째로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친일파 인사들을 청산하지 않고, 자신의 충실한 권력기반으로 삼아 독재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에 정의가 살아있지 못하고 지도층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은 것은 새로운 나라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들이 중심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족을 배신하고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사람들이 ‘새 나라’의 경찰, 군대 등 권력핵심이 됐으니 기본이 뒤집어지고 만 것이다.

 

넷째는 국정운영의 무능과 독재이다. 자유당 정권 10여년은 국정의 혼란과 무능이 극심했던 시기이고, 국민들이 절망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장기집권을 노려 부정선거를 획책했으니 독재자로 추방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승만의 이런 공과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채, 어느 한 면만을 과장해서 논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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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편지== 노인틀니, 보험료 인상 없이 보험적용 가능하다
2008/08/14 오후 10:06 | 새벽편지 | [세상에온기를]




 이태복 새벽편지
[새벽편지178] 노인틀니, 보험료 인상 없이 보험적용 가능하다 




노인틀니, 보험료인상 없이 보험적용 가능하다

 

 

그동안 노인틀니에 대한 건강보험적용 논의가 무성했다가 구체화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재정부담 때문이었다. 보건당국은 2조3천억에서 최대 4조 정도의 추가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해왔다.

 

사실 기존의 계산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건강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끼쳐 건강보험료를 늘리게 되고, 노인요양보험의 안정적 정착에 주력해야 할 당국으로서는 큰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관점과 계산방식을 바꾼다면 얼마든지 국민들의 추가부담이나 건강보험 재정의 적자 확대 없이 가능한 길이 있다. 노인틀니의 건강보험적용을 주장해 온 시민단체나 이를 반대해온 당국은 기실 같은 셈법에 서있었기 때문에 문제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1조원 정도면 노인틀니의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보험료의 추가부담 없이도 가능하다. 그 방법을 살펴보자.

 

2조에서 4조원의 추가부담론은 기존의 잘못된 치료체계를 그대로 온존시킨 채 틀니적용을 확대할 경우 증가될 재정소요액이었다. 하지만 현행 건강보험체계는 ‘돈 먹는 하마체계’다. 뚜렷한 질병증가나 획기적인 치료개선 효과도 없이 2007년에만 3조7천억 원이 증가했다. 총진료비가 32조2600억원이나 됐다. 놀라운 일이다. 그 주된 까닭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의료상업화 때문이다. 서울의 주요병원들의 1천병 상 이상의 대형화는 이제 화젯거리도 아니다. 보건당국이 ‘상업화의 광풍’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전문가의 칼자루’ 사용의 원칙과 기준이 정립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상하게도 이게 빠져 있다. 각종의 전문의료 관련학회가 많지만, 가장 효과적이며 인간생명을 존중할 수 있는 치료방법을 정하는 기준이 없거나 적용해야 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책임도 없다.

 

그 결과는 불필요한 수술남용과 과다한 약처방, 입원현상의 일상화다. 그 증거가 3조7천억의 2007년 진료비 폭증 아닌가. 이런 의료의 상업화 현상이 계속 확대된다면, 국민부담이 눈덩이처럼 늘어나 국민고통이 가중된다. 그렇다고 보건당국이 의료의 상업화 광풍에 전면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1조 정도를 억제하는 것은 당국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따라서 노년인생의 필수품인 틀니문제를 경제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각 가정이 알아서 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어려움이 있으므로 건강보험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전면적인 치료체계의 수술이 어렵다면 의료계도 동의할 수 있는 현행치료체계의 극히 부분적이지만 매우 잘못된 관행을 고쳐서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

예를 들면 건강보험에서 연간 감기로 인한 요양급여비가 1조4천억이나 되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질병이 감기인데, 이를 건강보험적용에서 뺄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국민들의 잘못된 치료습관을 이용해 과다처방을 일삼고 있는 현실은 양식있는 의사들도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기약 처방에 들어갈 이유가 적은 소화제만 빼도 수천억원이 줄어든다. 또 틀니의 재료비의 원가기준 등을 따져보면 불필요한 거품을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총진료비의 극히 적은 부분만 손질해도 노인층이 고통받고 있는 틀니의 보험 적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노인틀니의 보험적용 연령은 전 국민으로 하되 시행초기에는 65세 이상의 고령자를 우선하고, 50대로 확대해 나가면 된다. 보험적용 범위도 노인들의 잇몸질환을 전부 적용하려면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일단 틀니부터 시작해서 치석제거 등으로 넓혀나가면 국민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다.

 

최근 논의되는 노인틀니문제가 자칫 의료상업화를 확대하고 부추겨서 국민부담과 고통만 증가시키는 결과가 돼선 안된다. 대다수 국민대중의 소득이 감소하는 조건에서 국민부담으로 귀결되는 방안은 최악의 선택이다. 명분을 갖고 있었던 의약분업이 현재와 같은 ‘돈먹는 하마’로 변질된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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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산기행(4)
2008/08/11 오후 1:13 | 새벽편지 | [세상에온기를]




이태복 새벽편지               
[새벽편지177] 밀산기행(4)- 교훈 




밀산
기행(4) - 밀산실패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밀산유적지를 안내했던 김정득 선생 일행은 짧은 만남이었지만 십년지기라도 되는 듯 마음을 활짝 열고, 쉴새없이 갖가지 사실과 비화들을 전해주기에 애썼다. 며칠 더 묵고 갔으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점심 겸 이별의 회식을 끝내고 목단강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벌판의 벼와 야트막한 들판에 널린 옥수수 고랑과 감자밭 사이에 쌓여있는 석탄더미를 바라보면서 밀산 근거지 건설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사실에 생각이 멈추곤 했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고국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목숨을 걸어 독립전쟁의 근거지를 만들기 위해 이 먼 이역만리에 왔건만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여전한 망국노의 비애뿐이었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인가.

 

그들을 강력하게 묶어세울 힘도 중심역량도 없었기에 밖에서 오는 충격과 거친 파도를 이겨낼 수 없었다. 한말의 지사들과 의병, 독립군들이 공화국 건설의 정치노선, 독립전쟁노선으로 통일된 것은 1919년의 거족적 3.1운동이후였다.

 

하지만 그 험난한 노정에 모든 항일의 힘이 집결된 적은 지극히 적었다. 각자 싸우고 살아남기에 바빴다. 일제의 압살과 추격, 식민지시대의 정치역학이 만들어내는 내부분열상 때문에 독립의 길은 역설적으로 수십년이 지나서야 찾아왔다.

 

그렇게 먼 길이었다는 것을 이 밀산에 왔던 지사들은 알고 있었을까? 그 분들도 혹시 나처럼 20여년 몸을 던져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싸운다면 조국의 민주화도 분단된 나라의 통일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빠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이 가졌던  조국독립이 올 것이라는 소박한 꿈은 불풍한설에 꺾이거나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덜컹거리는 비좁은 버스에 시달리면서 필자는 그 고난의 행로에서 쓰려저간 많은 열사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목단강에서 동경성에 도착한 것은 저녁이 다 돼서였다. 원래 계획은 경박호 일대에 만들려했던 또다른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들러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근지리와 20~30년대 독립운동사를 잘 알고 계신 분을 찾을 수 없었다. 20년대 중반에 안창호 선생이 농민호조사를 만들어 경박호 일대에서 농민생활의 안정을 도모하면서 학교와 군사훈련을 겸하고 세금도 걷어 독립군을 먹여살릴 방도를 모색했었는데 현지의 조선족들은 잘 알지 못했다. 당시 소규모의 수력발전계획도 세웠다는 필자의 얘기를 듣고 ‘수력발전소가 현재도 가동된다’며 그곳은 가볼 수 있다는 거였다.

 

경박호 일대의 항일유적지는 현지의 역사를 잘 아는 분을 만나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발해의 수도였던 동경성에서 하룻밤을 묶기로 했다. 하지만 호텔시설이 낙후돼서 문도 잠기지 않았고, 선풍기도 시원치 않았다. 억지로 잠을 청했으나 몇 번이나 깼다가 다시 잠이 드는 일을 반복했다.  새벽녘에 시끄러운 소리에 일어나고 말았다. 창밖에 새벽장이 서서 동경성의 사람들이 내는 소리였다.  그곳에 오가는 사람들 속에 혹시 발해의 유민들이 섞여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두리번거려 보지만, 들려오는 것은 온통 요란한 중국말뿐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실소를 하고 방을 나와 그들 속에 섞여 돌아다니다가 동네식당에 들러 간단한 아침을 들었다. 동경성에서의 아침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못했다. 고성과 운치 있는 누각도 없고, 고풍스런 차집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기에는 너무 먼 천년의 세월이 훌쩍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동경성은 옛 발해의 도읍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 건설된 도시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그런 건물과 도읍지 분위기는 남아있지 않았다.  조선족들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너무 적어서 한글간판의 상점조차 가끔 보였다.

 

택시를 잡아타고 동경성터로 가보았다. 듣던대로 중국 당나라시대의 지방정권으로 말갈족이 중심세력이었다는 입간판이 입구에 세워져있었다. 왕궁터는 기단 부분만 발굴되고, 옥수수밭과 말들이 뛰어노는 폐허지로 남아있었다. 조금 쌓다만 궁궐터에 올라가 고구려 유민들이 수십년의 악전고투 끝에 당나라에 대적할 수 있는 해동성국을 건설한 역사를 기억하고 추념했다. 그 역사마저 사라지고 이제 남은 것은 그때의 숨결을 담은 동경성(東京城)이라는 지명뿐이니 우리의 역사는 어찌 이리 고난 속을 헤매야 했는지 울분이 차올랐다. 성터의 곳곳에 널려있는 깨어진 기왓조각을 몇 개 집어서 깨끗이 씻어 다시 가진런히 놓고 동경성터를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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