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인사동골목길에 보면 이런 곳이 있다니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곳이 하나 있다. 메니아들 사이에선 너무도 유명한 나이프갤러리이다. 동서고금의 유명한 칼이 모두 전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독특한 곳이다.
그곳에선 일본도의 제작방법은 물론이고 서양의 칼까지 두루두루 볼 수 있다.
일본도(日本刀)우리에겐 역사적 배경때문에 거북한 존재이지만 "칼"이라는 부분에서 일본도는 거의 독보적 존재인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그 일본도의 세계에 잠깐 들어가 보자. 바로 나이프 갤러리에 있는 일본도이다.
다마스커스 검의 특유의 줄무늬이다. 쇠를 수십번 접어서 단조를 하게 되면 저렇게 특유의 무뉘가 생기는 것이다. 쇠를 10번 접어서 단조하면 2의 10승에 해당하는 접층(摺層)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서 칼의 최고봉이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다마스커스 검의 원조는 10세기 경부터 17세기 경까지 중동 특히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만들어진 검을 말한다. 다마스커스에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유럽인들에게는 이슬람과의 십자군의 아랍침공을 통해 처음 알려졌기 때문에 생산지인 다마스커스의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다.
이 검이 우수한 특성을 갖는 것은 원재료인 철괴의 특별한 조성(組成)과 제강법(製鋼法)과 검의 단조(鍛造) 방식에 기인한다. 강철은 일반적으로 탄소의 함량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는데, 탄소 성분이 많을수록 강철의 강도(剛度)와 경도(硬度)는 높아지지만 탄력성이 없어 충격에 쉽게 부러지게 된다. 탄소 함량이 낮으면 강도가 약해 쉽게 구부러지고 예리한 날을 만들 수 없고 날이 쉽게 무뎌진다.
다마스커스 강철은 탄소량이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이 시루떡이나 나무결 같은 같은 미세한 층상구조(層狀構造)를 이루고 있고 매우 높은 경도의 철-탄소 카바이트(iron carbide Fe3C) 입자가 철 결정 배열 사이에 차별적로 편재(偏在)하여, 높은 강도와 경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높은 탄력성을 유지하고 있어 현대적 금속학과 합금법(合金法)이 발명되기 전에는 가장 우수한 강철을 만들 수 있었다.
일본도의 특징중 하나는 바로 강도가 다른 탄소강을 접쇠하여 단조제작하는 것으로유명하다.
일본도 제작과정을 한번 보자 (나이프갤러리)
이런 과정을 거쳐서 최종 완성되는 것이 일본도이다. 특히 일본도 특유의 휘어짐은 칼등부분과 칼날부분의 차별적 열처리와 단조과정에서 생기는 것인데 그 휘어짐의 정도를 소리(鎬里)라 한다.
그런데 실전에선 일본도의 활용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기록에 보면 왜병의 무기중 제일 무서웠던 것은 나기나타였다. 쉽게 말하면 창끝에 일본도를 꼽은 것이랄까. 일본 전국시대때는 주로 승려와 여자들이 사용하던 무기였는데 장창대신에 창과 칼의 효용성을 모두 가진 무기로 임진왜란 당시 사용한 무기이기도 하다.
원래 창은 찌르기가 주 목적이다. 그런데 나기나타의 경우 찌르기는 물론이고 베기까지 가능한 치명적 무기였다.
이 무기에 대해서 우리의 임진왜란 당시 기록은 이렇게 되어 있다.
왜군이 휘두르는 긴칼에 우리의 군사(조선군)은 창한번 못 휘두르고 죽었다. 왜군이 긴칼(나기나타)을 휘두르면 심지어는 허리가 끊겨 두동강나서 죽기도 하고 대부분 창자를 솓아내면서 죽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말단 병사인 이시가루의 주력병기는 긴창이었다.
일본전국시대 당시 창의 길이가 가장 길었던 진영은 오다노부나가 진영이었다.
그림으로 보면 그 길이가 어느정도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왜군을 상대로 한 조선군은 거의 무방비였다는 것이 임진왜란의 교훈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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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미터 끝의 금속부분의 무게가 500그램이고 창을 잡은 양 손의 간격이 40셑티미터이면 약 15배의 무게가 한쪽 손에 가해 지는데(약 7.5킬로그램) 이를 휘두려려면 어마어마하게 힘이 세거나 어린애도 피할수 있을만큼 느리게 움직이게 됨. 전술의 문제이거나 투지가 없어 진걸로 사료됨.
창길이가 차이나는 이유는 맨 앞열이 짧은창, 그다음열 중창 그다음열이 장창 이런식으로 쌓으면 앞에서 달려들경우에 겨누어지는 창날이 순식간에 4개에서 6개로 불어나기때문입니다. 제일 앞열의경우에는 창을 충분히 휘두를수 있고 나머지창은 보조용으로 계속 찌르는 용도죠 마지막에 가장 긴창은 대기병 견제용이라 생각됩니다.. 낮은자세로 바닥에 창을 받치고 차례로 쌓으면 순식간에 고슴도치 형태가 되죠.
그리고 고대전쟁에서 주로 쓰여진 무기가 창인이유는 금속의 조달이 어려웠기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마구 굴러다니는 고철이아니라 청동도 구하려면 재산꽤나 있어야 하는 정도였죠, 거기에 금속이 많이 들어가는 검이나 도를 만들어도 겨우 장수들이나 들수 있엇을테고 활촉도 급하면 뼈나 돌이라도 끼워야 했을겁니다.. 전투후에 전장정리를 하면 주로 하는일은 이러한 금속들의 수거였을겁니다. 전쟁시에는 당장 이동이나 자신들의 무기수선 등으로 바쁠테지만 잘 만들어진 쇠징박은투구나 쇠로만든 가슴가리개 같은경우는 대강 걸치고 다니다가 전쟁이 끝난후 처분한다면 충분히 제값을 받았을겁니다.. 당시에는 좋은철이 금이나 은과 그리 가격차이가 나지 않았을겁니다. 게다가 이미 잘 정련된 검이나 도라면 충분히 제값을 받았겠죠.
6m의 창. 휘어진다면.. 창 끝에 새끼줄을 묶어두고 사용하진 않았을까요? 번거로운강요? 확실히 겨창하고 후미를 바닥에 꽂아 사람이 지렛대가 되어 사용했을것 같네요. 선두열에 이런 긴창이 쓰일때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수전에서 많이 쓰였을것 같습니다. 어떻게 저런 허리가 끊어져 죽는다는 표현을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우리와는 달리 꽤 높은 수준의 전술을 사용하였겠지요
이켈라인 님의 말씀에 덧붙여, 6미터가 넘는 기다란 창의 전술적 활용도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돌격전시 공세를 취할때 창을 들고 달려간다거나 수세를 취할때 공격을 오는 적 기병을 향해 창뒷끝을
땅에 박고 창끝을 말을 향해 세우면 말의 점프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서운 방어진영이 형성되죠.
실제로 역사학적으로 창병은 기병에게 가장 강한 병과입니다.
또한 성내부에서 올라오는 적 상대로도 무서운 방어무기가 될 수 있겠죠.
아무튼 긴창과 함께 나기나타 란 무기의 무서운 사거리와 파괴력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만화나 소설의 영향을 받아서 일본 전국시대의 기마대는 과대포장 되었습니다. 일본 말은 서양말에비해 작고 외소해서( 서양말 높이 150-160-, 일본말 110-120) 다께다 기마대도 단 한번의 공격밖에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다께다 기록에도 말을 타고 싸운 기록이 별로 없습니다. 주로 이동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글구 대단위 기마대가 기동할 만한 장소도 일본엔 드물구요
^^ 위에 실전 전투중에 창병이 영화에서처럼 휘두르면 전투를 벌이면 주변에 있던 아군도 다 죽거나 다칩니다. 동서양 모두 주력 전투병들이 창, 혹은 창과 방패를 들고 나서는 이유는 이중삼중으로 이어진 집단병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창을 앞으로 쭈욱 내밀고 전진하거나 방어할경우 상당히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난전에서 창병의 효용은 그리 높지 않기때문에 진을 깰 수 있는 기마병에게 창병들이 쉽게 당합니다.... 물론 기마병은 근접하기까지 궁병이나 노병의 공격을 받고, 근접했는데 사방에서 극병이 달려들면 말이 쓰러지기때문에 문제가되지요... 그래도 역시 주력은 창병입니다. 위의 일본식 창도 그런점에서 굉장히 위력적인 무기입니다.... 영화같은 난전보다는 영화 트로이에서 보여주는 집단전이 더 흔한 경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서로가 방패와 창을 맞대고 쑤셔대면서 밀어 부치면서 상대의 진용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진이 무너지면 창병의 위력이 급격히 떨어지니까요...
실록에 나오는 왜군의 휘두르는 긴 칼이 나기나타라는 얘기는 처음 듣는군요.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일본도라고 얘기하는 것만 보다 보니 새롭습니다. 나기나타로 해석하시는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게 창보다 비싸고, 휘두르는 무기이다 보니 진영 내에서 쓰기가 좋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기본 용도는 대기병용이어서 임란 때 널리 사용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는데 혹 다른 설명이 있으면 감사히 듣겠습니다.
진영을 이룬후 창을 한방향으로 뻗고 진격을 할때 주로 쓰는 무기인데 저걸 누가 한손으로 들고 휘두르고 계속 들고가나? 대열을 잡고 앞사람어깨나 방패위에 창을 걸쳐서 지지해가면서 진격하는 기본도 모르면서 실험해보라니...머리가 안따라가면 그냥 조용히 쉿 하면 되는것임...12자 짜리 각목을 끝에서 혼자들면 엄청 무겁지만 앞에 누가 슬쩍 받혀주기만 하면 얼마나 가벼운줄 모르나...
모병과 창병은 병과가 같으면서도 다른 것입니다. 찌른다는 개념에서야 같겠지만 길이에서 차이가 많이납니다 창중에는 단창이 많은데 이는 돌격을위한 부대입니다. 달려들면서 찌르면 되는거죠 여기에 길다란 창대는 오히려 평지가아니면 사용할 필요가 없는겁니다. 반대로 방어전- 특히 평지나 개활지라면 길다란 창대를 지닌 모병이 필요합니다. 겨우 끝에 날도 아니고 찌르기만 할수있는 대강 달린 촉으로는 기병의 돌진을 제어하기 힘들죠 점령전이라면 돌격병들이 많이 죽어나갈때 무기회수(철기 회수)를 위해서도 돌격시에는 창(상대적으로 날도짧고 철이덜듦, 무게도 훨씬 가벼움, 활동용이, 창길이가 사람키정도가 적당)이 상당히 유용하겠지만 방어전이라면 전투가 끝나더라도 수리하고 재보충하고 하려면 창보다 모가 났죠.
무예도보통지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임란때...문득 왜적이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해 도면 아군을 비록 창을 잡고 칼을 잡고 있어도 칼을 칼집에서 뺄 틈도 없고 차은 서고 겨루어 보지도 못하고 할 수 없이 흉악한 왜적에 칼날에 꺽인다...
전란중 칼보다는 니기나타를 더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니기나타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일례로 일본의 검도를 하는 사람이 니기나타를 수련하는 여성과(현대에는 주로 여성이 수련함, 고대에도 마찬가지였고)대련을 했는데..
여성이 이기더군요..접근전을 하면 검도가 이기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게 쉽지가 않은가 봅니다.
저도 검도를 하는 입장이지만...
그리고 사실 일본에서는 전투시에 긴창을 일렬로 서서 그냥 위에서 아래로 내려 칩니다.
위에 그림에 나와있는게 맞고요. 그정도 힘은 가지고 있어야 겠지요.
단지 옆에서 공격하면 치명적이긴 하지만요. 옆으로 돌기도 힘들뿐더러 옆에 전우에 옆구리를 치기 때문에....
거리로 따지자면 활이 최고~~!! 10m거리에서도 쏠수 있는 소궁이 있지여...일본 넘들이 이긴 이유는 전투에 앞서 고쟁이하나 차고 원숭이 흉내 내는 바람에 양반인 조선군이 놀라서 전투를 못했습니다. 칼은 칼끝의 휘어진 부분(서슬)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사람을 벨때는 끝의 서슬 부분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도검의 사용 방법이 그렀습니다. 접쇄칼..물론 간약이 조화되어 좋습니다만 전투는 기 사움이지여......
당시 조선은 주력 무기가 활이었던걸로 아는데요....
일단 접근전이 시작되면 쌍방이 모두 불리해지기때문에 영악한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무식하게 전쟁했을리가 없죠.
접근전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주력을 접근전으로 하기보다는 멀리 떨어져서 활로 먼저 상대의 전력을 감쇠시키고,
다음에 접근전으로 갈지, 수성전으로 갈지 결정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주력은 활이었다는거죠.
그러다보니 조총을 앞세운 일본군에게 활이 대적하기 힘들었던 전쟁이 임란이었죠
강에 탄소를 첨가하면.. 경도는 올라가나 인성이 떨어진다 .. 흔히 이야기하는 강도는 인성이 아니라 경도를 이야기한다. 일본도는 베이스가 되는 저탄소강에 고탄소강을 단접이라는 공법을 통해서 만든다... 초기 일본도는 저탄소강-거의 순철에 가까운것으로 제련하였으며 수천번의 담금질과 두드림이 ( 뜨거운 숯불속의 탄소와 결합 ) 철을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이후에 고탄소강을 발견하여 칼을 제작해 보았으나 강도는 있고 인성이 떨어지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기존의 저탄소강에 고탄소강을 단접하는 공법을 써먹은거다.................................................................. 인성이라는 말을 그리 어렵게 하냐... 이 바보 공대생아.
일본도로 사람을 살상하려면 많은 고생을 해야 합니다. 만화처럼 단 칼에 안죽어요. 몇 사람을 베면 이빨이 나가서 쓰기 어렵고. 그래서 다떼도 보통 6자루의 칼을 가지고 전장에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주력은 장창부대였죠. 결국 마지막엔 찌르는 바업이 가장 효과적이지요. 그래서 실검 거합류(울나라에 2개파가 들어온걸루 알고 있습니다)에선 찌르기를 많이 시키구여. 아시가루의 대부분은 농민들이기에 눈치만 보이면 도망가고 숨고해서 이들의 전의를 만드는것이 힘들었다고 합니다.ㅋㅋ
껌을 여러번 씹는다고 씹은 자국 안나듯이 접쇠는 금속의 성질을 무르게 하거나 섞기위함이지 여러번 접힌다고 그 자국이 검위에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아라베스크의 복잡한 문양이나 일본도의 구불구불한 라인은 산을 부어 금속반응을 일으킨 표시랍니다. 일본도의 라인은 오줌과 썪은재를 발라 다시 구워 태워낸 모양입니다.
그리고 6미터짜리 장창은 혼자 들수 있는 것이 아니니 용법이 들고 내려친다 이런게 아닙니다. 두세명이 같이 들고 버티는 역활입니다. 보통 전위에 2미터 창 한사람. 그뒤 3미터창 그뒤 6미터창 사림이 창을 들고 버티는 형식으로 쓰였으리라 봅니다.
다마스커스강은 10세기경에 유행하던 방식이고 그뒤 재발견이 늦은 이유는 단지 돈이 안되서 늦을수 밖에 없었겠죠.
실제로 접쇠도검이 단조도검보다 우세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클락 하워드같은 유명한 스미스들의 카타나도 사용해보면 내구성의 차이가 있죠. 전통 제조방식을 고수하는부분과 예술성만을 따진다면 물론 접쇠도검을 따를 수 없겠지만 적은 유지비용이나 수련용으로 보면 단연 단조도검이 낫다고 봅니다.
저런 긴창을 주력으로 한 보병의 파해법은 유럽에선 이미 나왔습니다. 과거 알렉산더가 저런 긴 창을 쓴 단 3만의 홉라이트 팔랑크스로 10만이 넘는 페르시아군과 호각을 이룰 정도로 유명을 떨쳤는데 (열세인 보병이 호각을 이루면 우세한 기병으로 쳐부수는 전법) 저런 긴창을 쓰는 병력은 그 이후로 3백년가까이 유행하다 양날단검을 쓰는 레기온에의해 격파되 그 이후로 유럽에선 장창을 쓰지 않게 되었죠.
장창의 장점은 정면에서 대결하는 것은 무적이나 좌우 측면으로 이동하거나 방향을 바꾸는게 매우 어렵습니다. 이러한 약점을 로마군은 최대한 활용해 홉라이트와 대결할땐 소대단위로 계속 이동하면서 홉라이트의 측면을 공격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죠. 그리고 홉라이트는 단검을 든 병사가 대열 속으로 파고 들면 금세 먹이가 되버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왜냐면 제 1열은 자유롭게 긴 창을 휘두루지만 다음열 부터는 앞뒤로 늘어선 아군의 대열때문에 긴 창을 마음껏 휘두를 수 없고 때문에 그 열사이로 단검을 쥔 적군이 들어와 마구 찌르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결국 저렇게 긴 창을 쓰는 전술은 로마제국 이후론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유럽과 달리 동양에선 저런 긴 창을 쓰는 것은 전법은 생소했고 때문에 파해법을 금세 알아채기가 어렵죠. 그래서 일본군이 저런 긴창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전략의 부재였지.., 해군과 이순신은 이미 해전에서 창칼을 사용하고 있었고, 근접되어진 적함선이나 작은 배의 적들을 죽였다.
로마군인들의 검은 주로 단검이었다. 그리고 육지전에서 일본군의 장검과 조총 그리고 방패들은 전쟁보다도 전투에서 유리했다.
결국, 육군빙시들이 전쟁을 준비하지 못해 진 것이다. 특히 일본을 전혀 연구하지 않았고, 그들의 전투력과 전략, 그리고 무기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라... 그 당시에 먼 바다를 건너 배를 통해 그 수많은 군사를 한반도에 들이밀면서 공격하는 왜군의
전략과 힘 그것은 왜군이 얼마나 전쟁과 무기 그리고 수송 어떻게 보면, 옛날 일본놈들의 조선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이씨 조선은 놀다 당했고, 선조는 그렇게 무식한 놈이었다...
긴창은 대 기병전용입니다 임란당시 배에 말을싫고 날르기 힘드니까 조선에서 만약 기병을 사용하게되면(조총을 사용해도 기병이 달려들면 상대하기 힘들기때문에) 보병과 조총병으로서는 대략 난감한 상황에 들거라는 가정하에서 아마도 창병을 일부 배치했겟죠, 당시 일본이 유럽과 통상중이었으니까 군사적 의견을 들었을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달려드는 기병은 창으로 막고 옆에서 조총을 갈긴다 정도겠네요..
금산 칠백의총 전사자들의 적 방어전술을 보면 3만일본군이 충북영동을 거처 금산제원 용하리로 물밀듣이 처들어올때 문과급제한 조헌과 승려 영규 가 민초들 7백명과함께 금산군 금성면 의촉리에서 모두 전사하고 승장 영규는 칼을 맞고 8킬로 떨어진 보석사 절입구에서 스러저 전사했다 그들은 용맹했지만 지형전술과 게릴라전을 펼 마음이없었다는 것이다 적들을 당당하게 맞이했다는 점이다 적장도 이들에게 경의를 표했다한다
접철을 하계된 동기는 강철은 강하여 부딧혔을시 너무 잘부러지고 연철은 너무 잘 휘어져 무기로서의 활용이 부적합하여 강철과 연철을 맞대어 단조하여 붙여 반복하여 접으면서 단조하여 만들 제착 방법을 말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하여 강철의 강함을 유지하면서 부러지는것을 방지한겁니다
무늬역시 강철과연철의 성분 차이로 인해 자연적으로 만들어 진거죠
또한 이기술이 일본의 기술이라는것도 잘못된것입니다
오래전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방법중 하나인것입니다
우리조상의 기술인것이죠
다마스커스 강은 인도 어디의 철광석입니다. 그걸 단조해서 만든게 다마스커스 검이고 이 강괴가 주로 이슬람으로 팔려갔고 이슬람에서 그걸로 십자군 전쟁을 해서 유럽에도 알려짐. 사자왕 리차드 와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이 만난 적이 있는데 둘이 서로의 무기를 자랑했는데 이슬람 무기가 워낙 뛰어나니까 유럽놈들은 악마에게 기술을 받았다고 믿었음. 그러나 결국 그건 강재의 차이일뿐.
접철 방법은 결국 탄소함량이 높은 쇠와 그렇지 않은 쇠를 여러번 겹쳐 단조한 건데.. 그게 결국은 인공적인 다마스커스 강과 같은 거임.
그런 거보면 일본놈들의 칼만드는 실력은 인정해야 함. 예전에 보니 접철방식으로 만든 일본도에 캐리버 50을 솼는데 총알이 반쪽으로 갈라졌으니.. 헉... 무려 7발 까지 반쪽 총알을 만들다 나중에 날이 뭉개짐. 권총탄알은 아예 수박 자르듯 해버림...
물론 전국시대에 숱하게 칼이 생산될 때는 품질이 떨어져서 몇 장인들이 만든 명품 칼은 엄청난 가격이라죠.
뭐... 지금은 칼을 그리 견고하게 만든다 하여 쓸데 없심다.
당쟁과 명분을 너무나 사랑한 우리선조들은
조총은 쌍놈의 것이라고 구한말 민모 지금의 장관쯤 되는분이 말씀하시곤...그래서 배울 생각 없다 딱잘라 말하셨죠...음
임난당시 및 이후에 임난경험으로 얻은 이놈의 창을 우리도 만들자 했던 기록이 있습니다...만 재수없다는...명분때문에 깨갱 됐습니다.
현재 우리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때문에 이리도 못사는 것이고 그나마 이정도 사는것은 이후 대통령들 민주화 득분에
압제없이 산다고합니다....참 옳은것 같습니다...나원참...생각은 다름 만 있을뿐 진보나 퇴보란것이 없습니다 다만 기술에만 진보가 있을 뿐이지...요즘은 진보많이 진리인 세상이오만...하여튼 요즘 진보놈들도 평생을 지보의식으로 대모만 하였지 창한자루 못만듭니다.
경부고속도로 반대하고 평화의땜 반대하던 인간들 진보 맞습니다...민주화 맡습니다...뭐 생각의 차이...그러나 진정한 진보는 기술의 진보임...기술세계에만 진보란 용어를 붙이는 것임...나머지는 진보가 아니고 이념임
일본 말은 작고요 대규모 기병을 기동하기도 힘들었어요. 무장한 무사를 태우고 한번의 공격이 가능했다고 하고요 기병이 아닌 주로 이동 수단으로 사용했어요. 시코쿠의 조소가베가 본토로 상륙했을때 말을탄 기병대 다리가 지면에 닿았다는 기록을보면 어느정도 작은지를.....기병이 오면 총으로 제압하고 장창부대로 밀어부치는 전술을 많이 구사했구여. 많은 부상자가 하체부상이었다고 하네요. 주로 창으로 하체를 노려서.
일본 전국시대의 전술이나 운용에 관한 것들은 그림 첨부해서 자세히 설명한 책들 무지 많아요. 일본은 지형적으로 산이 많아서 대규모 기병전을 할수있는 곳이 거의 없어요.ㅡ 말도 조그만해서 기마부대로 유명한 다께다나 우에스키는 지금의 니카다, 이시가와쪽을 통해 한반도 말을 수입해요. 그래도 기록을 보면 말로 이동해서 내려서 싸우는 걸로 보아 대량 운용한거 같진 않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