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는 '더할 나위 없는'으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디자인의 실마리를 먹고, 마시고, 쉬고, 배우고, 즐기는 인간의 총체적 삶에서 실타래를 풀 듯 풀어나간다. ⓒ광주광역시
오는 9월 18일부터 11월4일까지 'The Clue-더할 나위 없는'을 주제로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광주시 일원에서 '2009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열린다.
'2009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디자인의 실마리를 먹고, 마시고, 쉬고, 배우고, 즐기는 인간의 총체적 삶에서 실타래를 풀 듯 풀어나간다.
전시에는 48개국에서 519명의 디자이너(국내159명, 해외360명)가 참여하며 376개 기업(국내92,해외284)이 참여해 1951개(국내666, 해외1285)의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디자인 작품들을 선보이게 된다.
■2009광주디자인비엔날레 주제전
옷 衣
일상복, 의례복 등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멋을 지닌 의생활 문화 속에 나타난 디자인적 가치를 조명한다. 한국의 김택상, 정종미, 프랑스의 장 폴 고티에 등의 디자이너와 리바이스진 등 패션기업이 참여한다.
맛 食
삶의 기초조건이자 친교와 품격, 문화적인 멋으로서 음식문화 속에 나타난 디자인적 가치를 탐구하고자 한다. 김치, 젓갈 등 발효식품, 웰빙음식, 밥문화, 떡, 다과, 식기 등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식생활 문화를 디자인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영국의 천재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굿푸드디자인), 한국의 나유미, 오정자, 설치미술작가 손봉채 등과 네덜란드의 로얄 코펜하겐, 이탈리아 에스프리사 등의 세계적 기업이 참여한다.
집 住
지역과 생활환경, 종교, 풍습에 따라 독특한 문화로 전승되어온 주거 문화 속에서의 디자인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다. 한옥과 서구 건축디자인, 온돌문화와 난방시스템, 부엌과 주방, 병풍과 가리개, 가구 등 세계 각국의 주거생활 디자인을 비교, 전시한다. 소설가 이외수, 시인 황지우, 황인용 아나운서 등이 참여한다.
글 學
배움과 가르침, 익히고 깨달음의 과정과 방법, 가치로서 학문과 그 매개수단인 문자문화의 디자인적 가치를 조명한다. 한글과 각국 언어의 서체디자인, 포스터, 도서디자인들을 비교·전시한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인 훈민정음 섹션에서는 한글 창제 원리를 영상으로 선보인다.
소리 樂
삶의 희노애락을 표현하고 흥과 예, 어울림을 매개하는 소리문화를 디자인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에디슨에서 아이팟까지'는 전통적인 것에서 최신 아이팟까지 음향기기들의 진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계마항 계마항 다정한 연인과 소중한 사람끼리 길게 나 있는 부두길을 걷는 멋과, 창이 넓은 횟집에 앉아 붉게 물들여진 노을을 보는 맛도, 이곳에선 특별하게 다가온다. 정면으로 보이는 작은 섬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가마미 해수욕장 가마미해수욕장 유난히 백사장이 넓은 이곳은 옛부터 호남3대 피서지의 하나로 병풍처럼 넓게 드리워진 솔숲사이 오수를 즐겨도 좋은곳으로 해수욕장개장 기간중 많은 인파속에 매년 국내 유명가수초청 해변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영광읍 서쪽 24km 거리에 위치한 해수욕장으로 본격적으로 개장된 것은 1925년의 일이다. 길이 1km, 폭 200m의 백사장이 반달 모양으로 드리워 져 있으며, 200여 그루의 울창한 소나무숲이 길게 펼쳐져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심은 1-2m에 불과하고 물이 깨끗해서 호남 3대 해 수욕장의 하나로 꼽힌다. 해수욕장의 앞쪽으로는 숱한 섬들이 올망졸망 떠 있고, 그 바다 위로 한가로이 항해하는 어선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 지 없다. 또한 칠산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이곳의 서해낙조는 동해일출과 는 사뭇 다른 운치를 안겨준다. 해수욕장 근처에는 뛰어난 해안 풍광을 자랑하는 백수 해안관광도로, 바다낚시터로 유명한 돔배섬, 크기와 모양 이 비슷한 섬 7개가 일자형으로 수평선 위에 떠 있는 칠산도가 있다. 입 장 료 - 없음 주차시설 - 자가용 500대 수용 개장기간 - 매년 7월10일 ~ 8월 20일 편의시설 - 공동화장실, 샤워장, 이동진료소, 야영장, 음수대 2개소, 벤치 30개, 오물처리장, 파고라, 관리 사무실, 토속음식점, 노래방, 민박시설, 축구장2개설치, 119구조대, 이동파출소 레저시설 - 모터보트, 바나나보트, 땅콩보트, 플라이피쉬, 수상스키등
법성항 >> 법성항 고려초엽에 개설된 부용창(현 법성항)은 영산창과 함께 전라도 2대 조창의 하나였다. 현재는 1종항으로 수로 준설 및 선착장 조성으로 옛 영화를 재현시킬 계획이다. >> 영광굴비 영광굴비는 옛부터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랐던 법성포 생산의 특산품이다. 고려 예종때 이자겸이 영광으로 귀향온 후 임금께 진상하면서 "귀양살이 신세이기는 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깊은 의미로 '굴비'라 이름하였다 한다
백수해안관광도로 백수해안관광도로 원불교 영산 성지를 지나 시원하게 보이는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19㎞의 해당화 길, 해수욕장과 바다낚시, 거북바위, 모자바위 등 기암괴석과 칠산도, 낙조(일몰)등을 볼 수 있다.
바다낚시 장바우는 도미,농어,숭어 등을 낚을 수 있는 천혜의 낚시터이다.
석구미 해수찜 탁트인 서해를 굽어보며 달리다 보면 해수탕을 찾을 수 있다. 신경통, 산후통, 피부미용, 중풍에 좋아 해수찜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이다.
모자바위 어머니가 아들을 안은 형상의 기암괴석이다.
거북바위 큰 거북이가 막 육지로 기어 올라 오려는 형상인 거북바위등의 기암괴석들이 펼쳐있다
▲ 1900년대 말~1910년대 초엽에 촬영된 것으로 짐작되는 광주천 사진. 무등산 아래 초가집과 기와집, 그 사이로 어울리지 않게 끼어든 일본식 `요정’ 건물 등에서 근대 초기 광주의 한 얼굴을 본다. <시립민속박물관 제공> ⓒ광주광역시
불현듯 60~70년대를 풍미했던 어느 프랑스 철학자가 쓴 자전적인 소설이 생각난다.
소설을 쓸 무렵 이미 중년에 접어들었던 그는 홀어머니와 외가 쪽 기억만을 안고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가 한 번도 부친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태어난 유복자였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아버지는 늘 묵은내가 펄펄 나는 옛 사진첩에 잠든 낯선 이였고, 더러 무정하게 집을 나간 젊은 아들처럼 섭섭함과 생채기로만 남은, 그런 존재였다.
광주의 옛 사진을 보고 있다보면 간혹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비록 우리가 뒤늦게 이곳에 얹혀사는 이방인이고 뜨내기이지만, 어느덧 익숙해진 광주의 지금 모습과 옛 사진이 너무 달라 현재의 우리는 마치 옛 광주가 버려두고 간 유복자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런 느낌을 주는 사진 중 하나가 이것이다. 사진은 광주천 건너편에서 시내 쪽을 향해 찍었다. 정확한 촬영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대략 20세기 초엽쯤으로 짐작된다.
운동장처럼 전면에 넓게 펼쳐진 곳은 이 때를 마지막으로 다시 볼 수 없게 된 옛 광주천 둔치의 모습이다. 여름철만 되면 늘 강물이 범람하는 곳이었던 지라 이렇다 할 논밭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뭇세월동안 이곳을 할퀴고 지나간 강물 때문에 ‘바리캉’으로 밀어버린 옛날 남학생들의 상고머리처럼 반들반들하기만 하다.
게다가 어느 겨울녘에 사진을 찍은 듯 강바닥은 바짝 말라 생기를 잃었고, 강변의 나무들도 이파리를 모두 털어낸 황량한 모습으로 서있어, 찬찬히 보고 있으면 괜히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그래도 사진 오른쪽으로 금동과 양림동을 잇는 당시의 금교가 보이고, 그 밑으로는 약간의 물이 고인 듯한 흔적이 느껴진다. 조탄보(棗灘洑)가 있었던 곳이라 여겨진다.
광주천은 예로부터 건천이라 했을 만큼 수량이 적었고 이 때문에 농사지을 물이라도 얻으려면 이처럼 보를 쌓아야 했다. 그리고 그 보를 일러 광주천의 또 다른 이름을 따 조탄보라 했다. 대추여울에 있는 보란 뜻이었다. 지금 불로동 녹십자병원 앞, 서석교가 걸려 있는 자리쯤이다.
한편, 조탄보 옆으로 무성한 느티나무들을 옆에 끼고 주변의 다른 건물보다 조금 높다란 건물 한 채가 강과 이웃하고 있는데, 이것은 1908년에 세워졌다는 일본인 요정, 하루노야(春乃屋)다.
대부분 초가집이고 간간이 기와집이 뒤섞인 광주 땅에 일본식 집은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찌됐건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풍경의 동거(同居)가 근대도시 광주의 시작이었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이 무렵만 해도 광주는 아직 전통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그런 냄새가 짙게 풍기는 곳이 장터였다.
사진에 강둑과 둔치의 경계를 따라 늘어선 집들 사이로 그보다 작은 집. 혹은 볏가리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장터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누문동에 따로 큰 장이 있었으므로 여기는 ‘작은 장터’라 불리던 곳이었다. 그리고 볏가리처럼 보이는 건물들도 사실은 여느 살림집이 아니라 장날이면 장꾼들이 몰려들어 장사판을 벌리던 장옥(場屋)이었다.
아무튼 이곳에서 광주 사람들과 장꾼들은 수백 년 동안 매월 4일과 9일이 든 날이면 어김없이 만나 물건을 사고팔고 질펀한 얘기들을 나누곤 했을 터다. 분명 이 무렵 사람들도 이런 잔재미 때문에 장터에 들러 허기진 궁금증을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 같은 얘기를 다음 장날 때까지 몇 순배씩 돌리곤 했을 것이다.
물론 장터가 아니더라도 이곳은 이런저런 얘기들이 굴비두름처럼 줄줄이 엮이던 곳이었다. 예로부터 남평 쪽에서 오는 사람들은 광주천을 건너 이곳 강변 둔치와 장터를 무질러 시내 쪽으로 들어왔다. 그때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광주읍성의 서쪽 관문인 광리문(光利門)이 사진 왼쪽의 작은 누각으로 서있다.
이 사진은 1900년대 말엽에서 1910년대 초엽 사이에 촬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 들어 비슷한 시기에 이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이 여럿 발견되는데 사진들에게서 발견되는 미묘한 차이는 근대초기 광주의 모습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러면서도 지금과는 엄청나게 달라진 도시경관의 변화에서 역사의 커다란 단절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더러는 잃어버린 부정(父情)을 찾아 헤매는 유복자의 아련한 아픔 같은 것도 되새기게 된다. 아니, 언젠가는 모두가 이 도시의 낯선 이들로 남아 이런저런 아린 얘기들조차 주고받을 수 없는 낯선 땅, 광주로 남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본 기사는 '광주드림'사의 제공에 의해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