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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의 커뮤니케이션 6가지 원리
인사관리(人事管理)편: 인사, 교육, 리더십, 관리 등 직원들을 섬기는 교훈입니다.
1. 커뮤니케이션은 지각(perception)이다.
2. 커뮤니케이션은 기대(expectation)이다.
3. 커뮤니케이션은, 달리 말하면, 언제나 무엇을 요구한다.
4. 커뮤니케이션과 정보는 다른 것이며, 사실상 거의 대립관계에 있다.
5. 상의 하달식 보다는 하의 상달식 커뮤니케이션이 효과적이다.
6. 목표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관리는 전제조건이다.
1. 커뮤니케이션은 지각(perception)이다.
커뮤니케이션행위를 하는 사람은 바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고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말을 할 때 듣는 사람의 경험에 맞추어 말해야만 한다. 듣는 사람의 언어로,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용어로 말할 때에만 대화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한 용어가 아니면 이를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그 말이 상대의 지각범위 안에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2. 커뮤니케이션은 기대(expectation)이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우리가 지각하기를 기대하는 것만 지각한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접한 자극을 기대의 틀 안에 맞추려고 시도한다. 인식하기로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식하는 것 또는 그 반대로 인식하기로 기대했던 것을 인식하지 않게 되는 것을 매우 꺼린다.
3. 커뮤니케이션은, 달리 말하면, 언제나 무엇을 요구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수신자의 야망, 가치관, 또는 그의 목적에 부합되면, 그것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전향을 노리는 커뮤니케이션은 굴복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대체로 말해 커뮤니케이션의 전달내용이 수신자의 가치관과 부합되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4. 커뮤니케이션과 정보는 다른 것이며, 사실상 거의 대립관계에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상호의존관계에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지각인 반면, 정보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정보는 완전히 공식적이고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과는 무관한 것이다. 정보는 인간적인 속성, 즉 정서, 가치관, 기대, 그리고 지각과 같은 것으로부터 해방되면 될수록, 정보로서의 타당성과 신뢰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러나 정보는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지각이다.
5. 상의 하달식 보다는 하의 상달식 커뮤니케이션이 효과적이다.
“상의 하달식”(downward) 커뮤니케이션이 효과를 볼 수 없는 첫째 이유는 그것은 “우리”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하는 것은 오직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배우고 난 후에만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듣는 것”도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경청은 커뮤니케이션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그것만으로는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다. 엘튼 메이요 및 인간관계학파 학자들이 주장했던 상향식 커뮤니케이션은 - 혹은 차라리 커뮤니케이션은 발신자로부터가 아니라 수신자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 즉 경청의 개념이 토대로 하고 있는 인식 - 은 절대적으로 건전한 것이고 또한 필수적이다. 더 많은, 더 좋은 정보는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못하고 또한 커뮤니케이션의 격차를 줄여주지도 못한다. 반대로,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커뮤니케이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므로 커뮤니케이션의 기능과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6. 목표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관리는 전제조건이다.
목표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는 기능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전제조건이다. 목표관리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부하는 자신이 조직, 또는 조직 내부의 소단위 부서에 대하여 어떤 중요한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해도 좋은지, 그리고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내린 결론을 상사에게 보고하도록 한다. 부하들이 제출하는 것이 상사들의 기대와 일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실상, 이렇게 하도록 하는 일차적인 목적은, 상사와 부하 사이의 지각상의 차이를 정확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양측 모두에게 현실적인 것에다 지각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목표관리는 커뮤니케이션의 의도적인 수신자, 이 경우에는 부하로 하여금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경험을 제공한다. 조직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은 조직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조직의 “존재 양식”(mode of organizati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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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장군들의 리더십
인류의 역사는 서로 다른 세력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한정된 땅 덩어리와 한정된 재화 앞에서 무한한 인간의 욕망은 피할 수 없는 대립을 불러오곤 했다. 그 전쟁터 속에는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장군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절대적 열세 속에서도 지혜와 용기로 전세를 뒤집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성취한 인물들이다. 역사 속 장군들의 리더십은 비단 전쟁만이 아니라 온갖 조직에서 필요한 요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러설 수 없는 곳으로 군대를 이끌라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사기다. 사기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나, 이것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마샬
5세기 후반 훈족의 통치자로 전 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아틸라. 훈족과 로마가 붙은 카탈라우눔 전투는 소강 상태에 빠져 있었다. 양측에서 최소한 15만 명이 죽은 첫날의 전투는 승부가 나지 않았다. 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그때 아틸라는 해가 뜨기도 전에 자신의 부하들에게 땅을 파라고 명령했다. 무덤 자리를 만든 것이다. 그는 여기에 장작을 높이 쌓고 자신의 안장을 올려놓았다. 훈족은 장사를 치를 때 활이나 안장과 같이 고인이 평소에 즐겨 쓰던 물건을 함께 묻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병사들을 모아놓고, 자신은 오늘 전력을 다해 싸울 것이고, 그 결과로 패배해서 적에게 잡히느니 차라리 죽을 것이며, 자신이 그렇게 죽으면 여기에서 화장을 시키라는 내용의 인상적인 연설을 했다. 이를 들은 부하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다시 용감하게 전쟁터에서 싸우게 된다.
역대 위대한 장군들은 부하의 사기를 북돋는 데에 위대한 면모를 과시했다.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부하들은 용기가 충천하여 전장으로 향하곤 했다. 특히 어려운 고비에서는 부하들의 마음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으로 이끌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한니발은 하밀카르 바르카스의 아들. 제1차 포에니전쟁에 패전한 후 아버지를 따라 카르타고(아프리카 북부)에서 에스파냐로 갔으며, 아버지와 매형 하스드루발의 뒤를 이어 BC 221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에스파냐 주둔군의 총지휘관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로마에 대한 복수심에 불탔으며, BC 219년 로마군 점령하의 에스파냐 도시 사군툼을 함락시키고, 이듬해 에브로강을 건너자, 로마로부터 선전포고를 받아 제2차 포에니전쟁 (한니발전쟁)의 전단(戰端)이 열렸다. 그는 육로로 이탈리아진공계획을 세우고 피레네산맥을 넘어 남프랑스를 석권하고, 다시 눈덮인 알프스를 넘어서 이탈리아로 침입, BC 217년 트라시메누스 호반(湖畔)의 전투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로마군을 격파하였다.
특히 BC 216년 칸나이전투에서는 교묘한 용병술(用兵術)을 발휘하여 로마군을 철저하게 격파하였으나 전선은 점차 교착상태에 빠졌다. 점차 전세를 회복하기 시작한 로마군에 의하여 에스파냐로부터의 원군(援軍)도 격멸당하였으며, 로마의 장군 대(大)스키피오가 에스파냐를 정복하고 카르타고로 육박하였다. 한니발은 고국에 소환되었으며, BC 202년 자마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대패함으로써 결국 제2차 포에니전쟁도 카르타고의 패배로 끝났다.
그후 카르타고의 집정관(執政官)이 되어 로마에 대한 보복기회를 노렸으나, 정적(政敵)에 의해 시리아와의 통모(通謀)를 획책하고 있다는 통고가 로마로 보내졌기 때문에, BC 196년 그는 시리아로 피신하였다.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와 함께 로마군과 싸웠으나, BC 190년 안티오코스군이 마그네시아에서 로마군에 패배하자, 그는 다시 소아시아의 비티니아로 피신하였으며, 로마가 그의 신병인도를 요구함에 이르자 자살하였다. 그는 알렉산드로스대왕, 피로스와 비견되는 고대 서구 사상 굴지의 전술가였다.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년)
한니발, 알프스를 넘다
기원전 8세기, 이탈리아 반도 중부를 흐르고 있는 티베르 강 언덕에 로마라는 작은 도시국가가 세워졌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를 세운 것은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쌍둥이 형제로 이들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 한다. 어쨌든 로마는 날로 발전하여 전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까지 세력을 뻗치게 되었다.
로마를 부흥케 한 것은 상업이었다. 이때 지중해 해상권을 쥐고 있던 나라는 카르타고였다. 자연 로마와 카르타고는 해상권을 둘러싸고 주도권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 전쟁이 바로 포에니 전쟁이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814년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에 세워진 도시로, 페니키아 인이 지중해 연안에 세운 여러 식민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 로마 인들은 페니키아인을 포에니 인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카르타고 역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무역으로 성장한도시였다.
포에니 전쟁은 근 120년간 세 차례에 걸쳐 발발했다. 최초의 전쟁은 기원전 264년에 시작되어 241년 로마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 무렵 로마는 아직 농업국이었기 때문에 경제력이나 해군력이 카르타고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그렇지만 강하게 결속된 시민군 덕택에 용병과 피정복민으로 편성된 카르타고 군을 무찌를 수 있었다. 이 전쟁에서의 승리로 로마는 막대한 배상금과 시칠리아 서을
수중에 넣었다.
제2차 전쟁은 기원전 218년에 일어났다. 복수의 칼을 갈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보병 7만, 기병 1만 2천, 코끼리 37마리, 군선 30척을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를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에스파냐를 걸쳐 피레네 산맥과 험준하기로 이름난 알프스를 넘는 대장정이었다. 피레네 산맥 기슭에 도달하는 데만도 4개월이 걸렸다. 험준한 산을 보고 기가 질린 병사들 중 상당수가 도망쳐버리고 남은 것은 보병 5만, 기병 9천뿐이었다.
악전고투 끝에 산맥을 넘은 한니발 군은 론 강을 단숨에 넘어 알프스로 향했다. 하얗게 눈 덮인 알프스를 넘는다는 것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니발은 과감하고 또 용의 주도했다.
추위에 떨면서, 코끼리와 기병을 위한 길을 만들어가며 20여 일을 강행군한 한니발 군은 마침내 롬바르디아 평야에 내려섰다. 그의 군대는 출발 당시의 절반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한니발도 눈병 때문에 한쪽 눈이 멀고 말았다.
그렇지만 로마와의 첫 싸움에서 한니발은 특유의 지략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병사들은 용기백배했다. 알프스를 천연의 요새로 여기고 방심했던 로마는 한니발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갔다. 로마군은 연전연패당했다.
이듬해 벌어진 칸네 전투에서 한니발 군은 또 한 번 대승을 거두었다. 한니발은 이때 전군을 초승달 모양으로 늘어서게 하고 양쪽 끝에 최정예부대를 배치, 이들로 하여금 적을 포위공격케 하는 전법을 썼다. 이 싸움에서 7만의 로마 군은 전멸하다시피했다. 하지만 한니발 쪽의 피해는 보병 5천, 기병 2백에 불과했다.
위기에 처한 로마는 장군 스키피오로 하여금 카르타고 본국을 공격하게 했다. 본국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급보를 들은 한니발은 군사를 되돌려 급히 귀국, 자마에서 스키피오 군과 일대 회전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니발의 작전이 먹혀들지 않았다. 게다가 숫적으로도 열세였다.
전쟁에 패한 카르타고는 로마에게 에스파냐를 비롯한 해외 식민지를 떼어주고 군함도 20척만 남기고 빼앗겼으며, 50년간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한니발은 로마군에 쫓기다가 기원전 183년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로마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망시켜 지중해 무역을 손안에 넣는 것이 로마의 목적이었다. 기원전 149년, 로마는 다시 카르타고 시민들은 성문을 닫아걸고 결사적인 항전을 벌였다. 이들의 농성전은 무려 4년간이나 지속되었다.
그러나 로마의 총공세 앞에서 마침내 성벽이 무너졌다. 로마 군은 시가지에 불을 질렀다. 이 불은 카르타고가 완전히 잿더미가 될 때까지 17일간이나 타올랐다.
살아남아 항복한 카르타고 인은 5만, 이는 전인구의 10분의 1에 불과한 숫자였다. 로마는 이들을 노예로 팔아버리고 카르타고를 속주로 편입시켰다. 로마가 지중해의 패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로마를 공략했던 한니발의 주력 부대는 전쟁 기간 내내 3만 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 나머지 모자라는 병력은 질이 떨어지는 용병들로 보충하면서도 그는 로마 병사들을 20만 명 이상 전사시켰다. 한니발이 로마로 진격하려고 알프스를 넘었을 때, 병사들은 지쳐 있었다. 그때 한니발은 포로로 잡고 있던 갈리아인들을 풀어 주며 말했다.
'원하는 자들은 결투를 해라. 이기는 자는 무기와 말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갈리아인들은 대부분 결투를 원했다. 한니발과 한니발의 정예들은 결투를 구경했다. 결투가 계속될수록 그들의 마음속에서 삶과 죽음으로 운명이 갈리는 갈리아인들과 일종의 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가서는 숙연한 분위기에서 모든 결투가 끝났고, 절반의 갈리아인들이 한니발 병사들의 환호 속에 석방되자 한니발이 입을 열었다.
'이것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의 양 옆에는 바다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배가 없다. 우리의 앞은 포 강이 가로막고 있다. 우리의 고향에 있는 론 강보다 깊고 넓으며 물살도 빠르다. 우리의 뒤에는 우리가 넘어온 알프스가 있다. 그곳에 다시 도전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로마군과 싸워 이기느냐, 아니면 패해서 죽느냐 하는 선택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말은 들은 한니발의 병사들은 용기 백배하여 앞으로 진격했고, 로마군을 연파하며 대승을 거두었다.
적이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진격할 것
'훌륭한 지휘관으로서 알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적을 놀라게 하는 새로운 작전을 수립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적의 다음 수단을 간파하여 그 효과를 없애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 마키아벨리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한 나폴레옹군은 로디에 이르렀다. 로디 전면에는 아다 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으며, 강 건너편 기슭에는 오스트리아군 1개 사단 병력이 전열을 정비한 후 수비하고 있었다. 이때 강을 건널 수 있는 길이라고는 폭 약 10미터, 길이 약 200미터의 다리 단 하나뿐이었다. 이 다리에는 적의 모든 화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나폴레옹군이 공격하기에는 대단히 어렵고 큰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이 다리로 진격하기로 했다. 그러자 용맹을 떨쳐 오던 병사들 사이에서 "곤란하다! 다리 위로 돌격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모든 포를 운용하여 적의 포병 화력을 제압하고 일부 병력을 멀리 상류로 우회시켜 배후를 치게 한 다음, 자신이 돌격 부대의 맨 앞에서 교량 통과를 시도했다. 총사령관이 위험을 무릅쓰고 돌격하는 것을 본 병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고,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용기 백배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교량을 돌파했고, 전투는 나폴레옹군의 승리로 끝났다.
한니발 군대가 로마로 들어간 방법은 전혀 허를 찌른 것이었다. 한니발이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로마의 집정관이 군사를 이끌고 한니발을 뒤에서 추격했는데, 어느 순간 한니발 군대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때 한니발의 군대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를 횡단한 다음,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가 있던 이탈리아로 진격했다. 로마군은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추격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알프스를 넘는다는 것은 상식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아무도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니발은 그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철저히 계산된 모험이었다. 그리하여 10만 명이 넘는 병력과 코끼리 수십 마리가 먼길을 떠났다. 이 동행에 불참한 군사를 빼더라도 무려 6만여 명이 알프스로 향했다. 겨울로 들어선 알프스 산은 추위가 심해 큰 고통을 야기했다. 온종일 내린 눈은 밤새 얼음으로 변했다. 발을 헛디뎌 골짜기 아래로 사라지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보름 만에 한니발 군대는 알프스를 넘었다. 그 동안 무려 2만 명의 병사들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출발한 지 넉 달 만에 마침내 이탈리아로 들어설 수 있었다.
위대한 장군들은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고, 길을 만들어 낸다. 왜냐 하면 그런 길에서는 적이 방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듯 보이면서도 거기에 따르는 위험은 철저히 계산하고 진군한다. 남들에게는 무모한 공격으로 보일지 몰라도, 자신은 된다는 확신을 분명히 갖고 있는 것이다.
승리는 정신에 달린 것이다
'장수가 병졸에게 은덕을 베풀며, 게으르거나 태만하지 않을 때는 병졸이 모두 감격하고 분발하여 한 사람의 병사가 적국 1만 사람을 취할 수 있다.' - <삼략>
이순신이 열 두 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맞아 싸운 명량 해전은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는 전투다. 그것은 불가능한 전투였으나 이순신은 그것을 가능으로 바꾸었다. 한번 해보겠다는 시도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조선이 불바다가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감행한 비장한 전투였다. 당시 10 대 1의 절대적 열세 상황에 놓여 있었고, 이순신 또한 모함을 받아 투옥되었다가 복귀된 터라 객관적으로 보면 상황이 썩 좋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선조에게 다음과 같이 고한다.
"이제 신에게도 아직 전선 열 두 척이 있으니, 죽을힘을 내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는 있는 일입니다. 비록 전선은 적지만, 제가 죽지 않는 한 적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당시 이순신이 명량을 결전 지역으로 결정한 것은, 그곳이 조수가 대단히 빠르고 밀물과 썰물이 여섯 시간마다 바뀌는 특수한 곳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잘 이용하면 공격을 효과적으로 따돌릴 수 있고, 거꾸로 이용하면 공격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특히 판옥선은 일본 배에 비하여 선회 능력이 뛰어나 공격에 유리했다. 실제로 왜적은 조수에 휩쓸리면서 큰 혼란에 빠졌고, 일부는 이순신이 미리 설치해 놓은 해안 장애물에 걸려 침몰했다. 결국 열 척이 도망쳤을 뿐 대부분은 파괴되고, 왜적들은 배를 버리고 익사하거나 달아났다.
이처럼 전쟁은 외형적인 군사력만으로 승리가 결정되지 않기에 묘미가 있다. 군사가 많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다면, 아예 싸울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싸워 보지 않고는 확인할 수 없는 승리에 대한 거센 열망이야말로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라 할 것이다.
적을 포용한 위대한 정복자들
"절제 있는 군이면 설사 무능한 지휘관이 지휘한다 하여도 패배시키기 어렵다. 절제 없는 군은 유능한 지휘관이 전투를 지휘한다 하여도 승리하기 힘들다."- 제갈량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는 통치자들은 적을 포용할 줄 알았다. 그래야 분열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 출신인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인과 페르시아인을 차별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후기 알렉산더군의 편성은 명백히 마케도니아-페르시아 연합군이었고, 알렉산더는 잦은 전투에 소모되는 병사들을 충원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마케도니아 출신이건 페르시아 출신이건 한 명의 병사는 언제나 한 명의 병사였을 뿐이었다.
페르시아로 돌아온 그는 그의 군대에서 중요한 지휘관 80명에게 페르시아의 귀족 여인들과 결혼할 것을 명했다. 그는 이미 록사네라는 부인이 있었는데도 다리우스 3세의 딸인 바르시네 공주와 결혼했고, 그의 분신과 같았던 어린 시절의 친구 헤파이스티온도 바르시네의 동생인 드리페티스 공주와 결혼시켰다. 그러고 나서 그의 제국은 마케도니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이 공유한다고 발표했다.
칭기즈칸은 종교에 대해 관대했다. 원래 몽골인의 종교는 천신 '탱그리' 를 섬기는 토착 종교로, 불교가 전파되기 이전 고대 한민족의 종교와 매우 흡사했다. 그러나 칭기즈칸이 점령한 지역이 점차 늘어나면서 몽골의 개념 자체가 확대되어 갔고, 그리하여 몽골인들 가운데에는 도교 신자나 불교 신자부터 네스토리우스파 가톨릭교도, 이슬람교도, 아르메니아 정교도까지, 당시 전 세계의 모든 종교를 총망라하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합류하게 되었다. 이런 각종 종교에 대해 칭기즈칸과 그 후계자들은 관대하게 포용하는 정책을 폈다. 한 종교의 편을 들었다가는 그들의 제국 전체가 갈가리 찢겨 분열될 상황이었던 것이다.
적을 치기 전에 부하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모름지기 장수는 병사들을 갓난아이처럼 아껴야 하며, 그럼으로써 그들과 함께 위험한 깊은 계곡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장수가 병사들을 사랑하는 자식처럼 대하면, 그들도 생사를 같이 할 것이다. 그러나 병사들은 너무 후대하면 부릴 수 없을 것이며, 사랑이 지나쳐 명령하지 못하면, 문란해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손자
알렉산더군이 인도의 남부 사막을 행군하게 되었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그들은 밤에만 행군해야 했다. 모두들 목이 타 죽을 지경이었다. 물자 수송용 가축들을 잡아먹고, 마차를 장작용으로 태워 버렸다. 낙오된 자들은 모두 죽었다. 이때 알렉산더는 말을 뿌리치고 걸어갔다. 한동안 행군하다 보니 그도 목이 말랐다. 그때 한 부하가 한 잔의 물을 구해 바쳤다. 그러나 그는 군사들이 물이 부족하여 고생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목마른 병사들을 두고 나 홀로 물을 마셔 갈증을 해소할 수는 없노라."
그는 물잔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마시지 않았다.
<삼략>의 '상략' 에 보면, 옛날에 양장(良將)이 군사를 부릴 때 더러 탁주를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장군은 이를 냇물에 부어 병졸들과 함께 그 냇물을 마셨다. 한 단지의 술이 비록 한 강물을 맛있게 하지는 못했지만, 모든 병졸이 장군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생각하는 것은, 그 술이 자신들에게까지 돌아왔기 때문이다.
시저는 언제나 제1선에 나서서 싸웠으며, 부하들을 몹시 사랑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따르면 이런 일이 있었다.
'싸움 중에 있던 어느 날 밤이었다. 심하게 폭풍우가 몰아쳤는데 간신히 빈 집 하나를 발견했다. 그 집은 몹시 좁았기 때문에 열댓 명밖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장병들을 한 번 둘러본 시저는 먼저 부상자들을 들여보내고, 다음에는 지친 듯한 병사를 들여보낸 뒤, 가득 차게 되자 자신은 집밖에서 잤다. 또 식사도 사령관이나 사병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모든 부하들은 입을 모아 "시저 장군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 며 감격하여 곧잘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는 전리품으로 얻은 재물을 자신이 차지하지 않고 군의 기금으로 쌓아 두었다가, 부하들의 보수를 주고 명예를 높이는 데에 아낌없이 썼다. 그러자 다른 장군 밑에서는 평범했던 자들이, 그의 부하가 되어서는 생명을 걸고 싸웠다.
나폴레옹은 연설로 부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 특별한 수완을 발휘했다. 전투에 나가기에 앞서 연설로 장병들을 위로하고, 전투 중에는 가장 위험한 곳에서 앞에 나가 지휘했으며, 싸움이 끝난 다음에는 과감한 포상을 실시했다.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에 새로 부임한 나폴레옹은 니스에 본부를 설치하고 병영을 시찰한 뒤,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알고는 다음과 같은 부임 연설로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운다.
"여러분! 여러분에 대한 지원은 말할 수 없이 나쁘다. 나는 여러분을 이 세상에서 가장 기름진 평원 지대로 이끌고 갈 것이다. 풍요로운 여러 고을과 광대한 여러 도시가 제군들의 권력 밑으로 들어올 것이고, 여러분은 그곳에서 명예와 영광, 그리고 재물과 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탈리아 원정군 병사들이여! 모름지기 여러분은 용기와 강하고 끈기 있는 정신을 잃지 않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2차 대전 때 "사막의 여우" 로 불린 롬멜은 사막에서 전투를 할 때, 물과 식량이 부족해지자 자신도 절식과 절수를 지켰다. 음료는 하루 두 컵의 차가운 홍차와 레몬으로 지냈고, 식사는 정어리 통조림 한 통과 빵 세 개를 먹고 지냈다. 그러나 결코 절제된 자기 생활을 부하들에게 강요하는 일은 없었다. 나름대로 그들의 생활을 인정해 주었고, 시찰을 하다가 느닷없이 젊은 병사들 속에 끼어들어 농담 섞인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전투가 벌어지면 가장 치열한 곳에서 앞에 나가 지휘했다. 이러한 솔선수범은 아프리카 군단 6만 독일 군사들의 사기를 드높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했다.
완전한 패배보다 한 번의 실패를 받아들여라
"지휘관의 진가가 평가되고 증명되는 것은 역경에 빠졌을 때다. 참된 지휘관은 역경에 놓여도 패배하지 않고, 불리한 처지를 만회하여 다시 도전해 마침내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맥아더
칭기즈칸은 일생 동안 위기에서 몇 번이나 도망쳤다. 메르키트 부족의 습격을 받고는 사랑하는 보르테를 적의 손아귀에 남겨둔 채 홀로 도망친 적도 있으며, 토오릴과 벌인 전투에서도 깊은 밤에 도주해 처가로 들어가 숨었다. 그렇지만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칭기즈칸이 보르테를 구하려고 메르키트인들에게 대항해 필사적으로 저항했다거나, 전사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게레이트군과 계속 전투를 벌이다 장렬하게 전사했다면, 몽골인들은 조만간 이룩될 위대한 대제국을 경험하지 못하고 중국 금 왕조의 압제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보르테 개인으로 생각해도,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을 것이다.
한신은 젊은 시절 시정 무뢰배들이 시비를 걸자 그들의 가랑이 밑을 태연히 기어가 목숨을 보존했다. 그 무뢰배들은 아마 그 당시 자신들의 가랑이 밑을 기어간 사나이가 한신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들은 한신의 행동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한신은 목숨을 보존했던 것이다.
장군이라 할지라도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것은 패배다. 전투에서는 질지언정 전쟁에서는 승리해야 한다. 전투의 승리에 집착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장군의 수치라 할 것이다.
역경은 강한 장군의 필수 요소
'골을 정복한 것은 로마의 군대가 아니라 시저였다. 로마를 전율케 한 것은 카르타고의 군대가 아니라 한니발이었다. 멀리 인도에 도착한 것은 마케도니아의 군대가 아니라 알렉산더였다.' - 나폴레옹
위대한 장군이며 정복자라 할 수 있는 알렉산더, 시저, 아틸라, 칭기즈칸, 티무르. 이들은 하나같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몽골 제국을 통일하기 전 소년 칭기즈칸은 그야말로 아무런 비빌 언덕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 나갔다. 예수게이의 동맹자였던 타르코타이 키릴토크 일파는 어릴 적부터 범상치 않았던 테무진을 제거하려고 그의 목에 나무 형틀을 씌우고 끌고 갔다. 테무진은 다행히 한 유목민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고, 동굴에서 토끼나 야생 들쥐를 먹으며 연명했다.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의 왕위 계승자였지만 부모의 불화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어머니 올림피아와 너무 친밀해서 당시 사람들에게 근친상간의 오해까지 받았다. 시저는 명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법무관이었던 아버지가 죽고 나서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 그리고 망명길에 올라 10년이 지난 뒤에야 로마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틸라와 티무르도 일찌감치 아버지를 잃었다. 아틸라는 어린 시절 그의 숙부 루가에 의해 볼모로 로마의 왕궁에 보내져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 역시 고귀한 핏줄을 타고나기는 했지만, 그의 자리는 고이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로마군 사령관 아이티우스와 함께 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반란을 일으킨 게르만인들을 평정해 군사 지도자의 실력을 보임으로써 쟁취한 것이었다.
이렇듯이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장군들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 가는 가운데 강인한 인간으로 성장했다.
정보 파이프 없이는 승리하기 어렵다
"뛰어난 지휘관이란 남보다 약간 앞을 내다보고 생각한다는 것뿐이다. 지휘관은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조용히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안건을 구상하는 습관을 반드시 길러야 한다. 잠이 부족해도 아침 일찍 일어나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라." - 롬멜
정복자들은 정보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알렉산더는 첩보 장교들을 가동하여 늘 정보를 수집했다. 측량관들은 수천 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지리를 파악하여 알렉산더에게 정확히 보고했다. 길을 찾을 때는 포로를 심문하여, 정보를 제대로 주면 후한 대가를 지불했고, 거짓되거나 틀린 정보를 주면 죽였다. 칭기즈칸의 주된 정보원은 중앙아시아와 중원을 오가며 무역에 종사하는 대상단이었다. 서하전, 콰레즘전에서도 대상들의 첩보 활동은 눈부셨다.
1941년 당시 독일의 패배 요인에는 정보전의 실패도 한몫 한다. 당시 독일 군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다. 특히 북대서양에서 독일의 잠수함 유보트는 한마디로 저승 사자와도 같았다. 북아프리카에는 롬멜이 버티고 있어서 독일군은 그야말로 천하 무적이었다. 이때 독일은 '에니그마' 라는 암호 장치를 사용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이 암호 장치를 써서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로써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아군과 교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연합군의 손에 이 에니그마 암호기가 들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연합군 정보 기관에 이 기계가 있다는 것은 극비에 부쳐졌다. 그리고 연합군에게는 엄청난 군사력을 앞세운 독일군을 제압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독일군 유보트는 롬멜군에게 군수 물자를 대 주지도 못한 채 속속 침몰해 갔고, 롬멜이 무너지자 아프리카 전선도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원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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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일 역사상 가장 큰 부자 : 존 록펠러
존 록펠러(John Rockfeller)의 인생은 거침이 없었다.30세에 1백만 달러를 모았고,43세에는 미국 최대의 정유회사를 세웠다.53세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대부호가 됐다.그때 그는 알로페시아(Alopecia)라는 병에 걸렸다.음식을 전혀 소화해내지 못했으며,눈썹과 머리카락이 빠져 몰골이 흉측했다.
*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글을 보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짧은 한 마디 문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렇게 병원 로비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들어보니 병원비 문제로 환자의 가족과 병원 측이 다투는 소리였다. 환자의 가족은 너무나 가난해서 병원비를 낼 수 있는 형편이 되질 않았고, 그런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다는 병원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환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병원 관계자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초라한 안색을 하고 있는 소녀가 한쪽에 앉아서 조용히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 그 환자의 병원비를 대신 지급하도록 지시하였다. 물론 누가 지불했는지에 대한 것은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얼마가 지난 뒤, 록펠러는 병원에 다시 찾아갔을 때 소녀의 회복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를 본 록펠러는 나중에 자신의 자서전에 이 순간을 그의 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후 록펠러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정말 뜻밖에도 암투병에 시달렸던 건강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98세까지 행복한 삶을 살며 록펠러 재단을 통해 나눔을 베푸는 삶을 살았다.
"살면서 이처럼 행복한 삶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내 인생의 55년은 항상 쫓기듯 살았지만, 나머지 43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존 록펠러는 아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나눔의 힘에 관한 짧은 글을 남겼다.
'나는 아주 오래 전, 돈을 남에게 나누주기 시작한 후부터 재산이 점점 늘어나는 선물을 받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5억 5천만 달러나 되는 돈을 남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남에게 돈을 나눠줄수록 더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이미지 관리를 위한 홍보 전략으로 몇푼 안 되는 돈을 나눠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록펠러의 PR 담당자 말에 의하면 그는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의지로 사람들에게 돈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는 끊임없이 회사를 확대하며 고속 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1911년 독점금지법 위반 판결을 받은 뒤 회사는 해체되었고 그는 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 뒤 그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는데, 특히 부유한 재산가이자 막대한 기부자인 그가 푼돈마저 아끼는 사생활에서는 무척 깐깐한 구두쇠로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미국인의 자부심이 높아졌다.
그는 자신의 자녀와 손자들에게 금전교육을 엄격히 시킨 것으로 유명했다. 맨해튼은행장이었던 데이비드는 할아버지인 록펠러가 어떻게 돈 쓰는 방법을 가르쳤는지 사람들에게 자주 들려주었다.
록펠러는 데이비드가 아이였을 때 일주일 용돈으로 25센트를 주었다. 그리고 평소 작은 지출도 빼놓지 않고 사용 용도를 노트에 기록하도록 했다. 그는 주말이 되면 할아버지 앞에 앉아 일주일 동안 기록한 노트를 보여 주었다. 그러면 록펠러는 손자의 노트를 보며 함께 일주일 용돈을 결산하곤 했다.
그는 데이비드가 돈을 바른 곳에 적절하게 썼으면 칭찬의 의미로 5센트를 얹어 주었다. 하지만 허튼 곳에 돈을 썼거나 노트를 기록하는 것에 소홀했으면 얼마 되지 않은 용돈에서 여지없이 5센트를 깎아 버렸다.
이렇게 결산이 끝나면 록펠러는 데이비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사용하는 용돈은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란다. 여러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작은 돈이지만 너에게 주어진 것이지. 그러니 늘 돈이 생기면 그 중에 일부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
록펠러는 이렇게 작은 돈도 제대로 바르게 쓰도록 했고 수입의 일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가르쳤다. 결국 오늘날 록펠러재단과 연구소는 이러한 록펠러 가문의 엄격한 금전교육 덕분에 사회를 위해 더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내면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주어라.
당신을 도와주고 치유해주며,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주어라.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그것이 나중에 다른 경로를 통해 더 크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남에게 베풀어라.
이들의 성공 요인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은 돈을 따라 기웃거리지 않고,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사업을 하기 전에는 직장에서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일했다. 록펠러는 첫 직장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밤 11시까지 일에 매진했고, 카네기는 철도 회사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해가며 인정을 받았다. 돈이나 인맥이 없을 때 그들은 현재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둘째, 한 분야를 파고들어 일인자가 되었다.
록펠러는 석유 사업을 하면서 오직 석유만 생각했다. 옷에서는 항상 석유 악취로 가득했으며, 집에 돌아와서도 사업 구상으로 밤을 꼬박 새우곤 했다. 카네기는 여러 곳의 철도 건설에 투자하고 있었으나 그 사업에서 차례차례 손을 떼어, ‘좋은 알을 하나의 광주리에 담아두고 그 광주리를 소중하게 지킨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셋째, 사람 관리에 뛰어난 자질이 있었다.
록펠러는 경쟁사에 대해서는 잔혹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대했지만, 자사 직원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는 스탠더드 오일 초기 시절만 해도 입사를 지원한 사람을 모두 면담했고, 이름을 기억했다. 그의 말이 법이나 다름없었던 임원 회의에서 그는 반드시 상석이 아니라 테이블 중간에 앉았다. 카네기는 자신이 남보다 재능이 뛰어나기보다는, 뛰어난 사람을 발굴하는 데 소질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나는 증기 기관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훨씬 복잡한 기계인 인간을 알려고 노력했다”라고 그는 말했다.
넷째,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있었다.
록펠러는 유전을 보면서, 원유를 생산하기보다는 그것을 정제하고 또 저렴하게 수송하면 큰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네기는 나무로 지어진 다리들을 보면서, 앞으로는 모든 다리가 철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떠오르는 산업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그들이 20세기 말에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인터넷으로 엄청난 돈을 긁어모았을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그저 가난한 시골 소년에 불과했고, 다른 소년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부자가 되는 길을 일러 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어코 큰 부자가 되고 말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당면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했다. 직장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사업의 기회가 왔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도전적으로 뛰어들었다.
‘부를 구축하고 말리라’는 가슴 깊이 타는 뜨거운 열망이야말로 그들이 부의 제국을 건설하는 든든한 초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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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일 잭 웰치의 리더십
본명 John Frances Welch Jr
별명 neutron Jack
출신학교 및 전공: 매사추세츠대학교 일리노이대학교 화공학 박사
제너럴일렉트릭 GE 플라스틱 비즈니스 담당 총책임자 : 1960~
GE 회장 및 CEO : 1981~2001년
NBC 방송국 인수: 1985년
* 1935년 매사추세츠주(州) 피바디에서 태어나 세일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1960년 일리노이대학교에서 화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같은 해 제너럴일렉트릭(GE)에 입사해 독특하면서도 뛰어난 경영 방식으로 승진을 거듭해, 1981년 최연소로 GE 회장(최고경영자)이 되었다.
이후 '고쳐라, 매각하라, 아니면 폐쇄하라'는 경영 전략을 통해 10만 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함으로써 언론으로부터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6시그마·e비즈니스·세계화' 등의 전략으로 GE를 혁신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01년 말 현재 GE의 회사가치는 4500억 달러로, 이는 1981년 회장으로 부임할 당시의 120억 달러보다 40배나 늘어난 것으로, 세계 1위이다. 이러한 경영 능력으로 그는 2001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인'에 선정되었고, GE 역시 2000년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2001년 9월 45세의 이멜트(Jeffrey R. Immelt)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할 때까지 총 1,700여 건에 달하는 기업의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경영의 달인', '세기의 경영인' 등 많은 별칭으로 불리며, 퇴임 직후 자서전 《가슴으로부터의 고백 Jack:Straight from the Gut》을 출간하였는데, 한국에서는 《잭 월치, 끝없는 도전과 용기》(청림, 2001)로 번역 출간되었다.
.................
잭 웰치는 미국에서 가장 무자비한 경영자로 불렸던 사람이다.
1981년 그가 GE의 CEO자리를 인계받았을때
GE의 시장 총가치는 130억 달러였다.
웰치 회장은 미국기업 역사상 최고의 CEO로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영자로, 전반기는 GM의 슬로언 회장, 후반기는 GE의 웰치 회장
- 포천誌는 웰치 회장을 「월스트리트의 마이클 조던」으로 칭송
웰치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이는 GE가 지난 20년간 탁월한 성과를 올렸기 때문
- 매출은 1981년 270억 달러에서 2000년 1,290억 달러(4.7배)로, 순이익은 15억 달러에서 127억 달러(8.4배)로 증가
·자본 수익률이 20% 수준을 기록하여 미국 평균 12%를 훨씬 초과
- GE를 시장가치 5,300억 달러(41배)의 기업으로 만들었고, 자신의 연봉 역시 9,400만 달러(스톡옵션 포함)로 업계 최고수준 유지
- 미국 포천誌와 파이낸셜 타임스는 3년 연속(98~2000) GE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
그가 20년간 GE의 CEO로 근무하면서 GE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낸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1. 만약 그 일을 전부터 하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 했겠는가?
언제나 현재를 판단할 때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잭 웰치,
그가 지난 20년간 가장 경계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만약, 그 일을 전부터 하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 했겠는가?'
그것은 곧,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혹은 업무가 전부터 해 왔던 일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비전은 생각지도 못한채 "그냥" 답습하는 상태는 아닌가 점검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혹시라도 진지한 고민없이 계속 일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지어 과거나 혹은 인정에 얽매여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2. 1등과 2등이 아니면 버려라
고쳐라! 매각하라! 폐쇄하라!
잭 웰치는 시장 점유율에서 1등이나 2등을 차지하지 못하면 그 사업을 가차없이 정리했다.
1등과 2등...누군가는 결과지상주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잭 웰치는 1등이나 2등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이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믿었다.
때문에 자신들의 주력분야에 힘을 쏟고, 주력분야가 아닌 것은
그 일을 1등으로 하는 전문회사에 아웃소싱을 맡겼다.
결국 1등을 하기 위해선 가능성 있는 것만을 골라내는 뼈아픈 선택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 선택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당신은 조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인가?
잭 웰치는 직원들을 상중하로 나누었다.
상위 20%와 중간의 70%, 그리고 하위 10%...
하위 10%로 분류되는 사람은 GE를 떠나야 했다.
모두들 잭 웰치의 이런 전략을 비난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하위 10%에 속하는 직원은 회사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해 이런 평가를 통해 끊임없이 하위 10%를 가려내, GE 직원들의 경쟁력을 높여 나갔다.
4. 차별하라!
하위 10%의 해고가 현실이었던 것처럼, 상위 20%에게 주어진 엄청난 혜택도 현실이었다. 상위 20%는 중위 70%에 비해, 두배, 심지어 세배 이상의 급료를 받았던 것이다. 또한 엄청난 스톡옵션과 승진기회 역시도 상위 20%만 받을 자격이 있었다. 차별화 전략은, GE직원들의 분발에 확실한 동기부여를 해주었고, GE를 일할맛 나는 회사로 만들어주었다. 누구나 상위 20%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발전의 집단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5. 열정없는 당신, 떠나라!
GE에서 하위 10%로 분류되었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 자체가 본인의 적성에 맞지도 않았고,
그래서 일을 즐기지도 못한 채 마지 못해 억지로 해왔다는 것이다.
지금 혹시 나의 업무가 재미있지 않다고, 일이니까 그냥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도 위험수위에 올라 있다.
잭 웰치는 그런 사람을 가차없이 해고해 왔다.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함께 갈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잭 웰치는 어떤 능력보다, 또 어떤 기술보다 우선하는 것은 열정이라고 말했다. 열정없는 존재는 필요치 않다는 것이 잭 웰치의 기준이었다.
6. 항상 점검하라! 항상 체크하라
잭 웰치는 직원들에게 항상 높은 목표치를 던져 주었고, 직원들은 그 목표치를 어김없이 해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항상 점검하고, 항상 체크하라!
잭 웰치는 직원들의 목표에 끊임없는 관심을 표명했고,
단지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속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끔
일일이 커뮤니케이션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왔다.
심지어 그는 틈이 날 때마다 직원들과 쪽지를 주고받으며
일의 진척사항에 대해 얘기를 나누곤 했던 것이다.
말단 사원 한 명에게 주어진 업무조차도 잭 웰치는 절대 방관하지 않았다.
7. 배워라! 10년을 5년으로 단축시키는 방법
GE를 다른 기업과 차별화시켜 주는 핵심가치는 바로 "배운다"이다.
"모토롤라가 10년 걸려 이룩한 것이라면 우리는 5년 이내에 이룩해야만 한다, 대신 우리는 다른 회사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배울 것이다"
GE의 방식은 늘 이렇다. 그들이 배워야 하는 대상과 목표가 정해지면,
아마추어 대학생이든, 창업을 한지 1년이 채 안되는 중소기업이든,
그것이 누구고, 어디든간에 달려가 배웠다.
바로 그런 점이 GE의 저력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배워야 할 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해도, 그들이 최강의 기업이 되기 위해 필요한 어떤 것도 사소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배우기 위해 GE는 많은 것을 버렸다.
그것은 절차와 형식, 그리고 관료주의이다.
8. 절차와 형식, 관료주의에 굴복하지 마라
잭 웰치가 처음 GE의 CEO로 부임했을 때, 그가 가장 답답했던 것이 있다. 그가 결재를 하기 위해선, 말단직원부터 회장인 잭 웰치한테 오기까지 총 12단계를 거쳐야 했다.
잭 웰치에겐 그것은 쓸데없는 낭비였다.
결재를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여러 단계의 인력들도 낭비였고,
여러번의 결재는 또한, 신속한 일의 진행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년 후, 지금 GE의 보고 과정은 12단계에서 6단계로 대폭 줄었다.
"쓸데없는 보고서가 아니라면 훨씬 더 창의적일 수 있다!"
잭 웰치는 누누이 강조했다.
절차와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의적인 아이디어!
형식적인 보고서로 시간을 보내고, 인력을 낭비하기보다는
차라리 낙서처럼 갈겨쓴 아이디어 쪽지가 더 효율적이라고...
그 자신 또한 보고서를 기다리기보다는,
틈이 날 때마다 임직원들과 노트 한켠을 찢은 작은 메모 한 장으로
의견을 나누었으며, 절차와 형식의 파괴를 몸소 실천했다.
9. 필요하면 될 때까지 했다!
"Boudaryless"
이 단어는 미국인들도 발음하기 힘들어 자주 틀리는 단어라고 한다.
잭 웰치는 GE의 직원들 앞에서 이 "Boundaryless"를 말하다 발음이 안돼 더듬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회장이 수많은 직원들 앞에서 발음을 틀려 가면서도 수십번, 수백번 이 말을 강조한 이유는
"Boundaryless" 벽없는 문화를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이렇듯 잭 웰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체면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될 때까지 반복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한번도 그 정도면 됐다고 대충 넘겨본 적이 없는 그의 열정 때문이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이 정도면 됐다! 혹은 대충대충 하자!"
잭 웰치가 우리의 이 말을 들었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10. 유리를 깨뜨려 줄 사람이 필요하다 (변화)
"우리는 유리를 깨뜨려 줄 사람이 필요하다... GE는 반드시 변화할 것이다"
잭 웰치는 기업의 발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변화'라고 했다.
그래서 항상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 바로 '유리를 깨뜨리는 사람'을 갈망해 왔던 것이다.
잭 웰치 또한 GE에서 그 자신도 유리를 깨뜨린 사람으로 기록되어 왔다. GE에 불어오는 변화의 새바람을 막지 않았고, 그것이 옳다면 언제든지 환영했던 잭 웰치,
그의 말대로 변화의 물결을 타지 못했다면 GE는 그저 과거의 거대한 기업으로 막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이제 변화는 21세기를 열어나가는 최대 화두 중 하나이다.
누가 먼저 변화의 흐름을 탈 것인가!
누군가의 시도에 그저 팔짱을 끼고 구경하거나,
해봤자 안된다는 패배의식으로 전체의 변화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내가 아니었나를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지도자들이 해야할 일
1. 축하하는 행사를 많이 만들어라.
=파티 너무 많이 하면 회사가 너무 노는 분위기로 가서 안좋을 거 같다고요? 아닙니다. 축하할 일 있거들랑 많이 많이 하십시오. 그거야말로 공을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이겼는데, 성공했는데, 그게 소소한 일이라고 무시하고 지나간다고요? 저런... 기뻐할 기회를 마구 갖다 버리시는군요. 리더가 이걸 안해주면 아무도 안합니다. 좋은 일 하고도, 축하할 일 두고도, 썰렁하게 지나가면 안되지요.
2. 부하직원들이 모험을 할 수 있게 하라.
너무나 많은 경영자들이 직원들에게 새로운 일을 하라고 부추기다가도, 막상 시도해서 실패하고 나면 '작살'을 냅니다.
혁신과 실험을 원하거든 모범을 보이세요. 지도자가 과감하게 뭘 해보려다 실수할 수도 있지요. 실수했다구요? 구구절절 이유 설명하고 설교하실 필요 없습니다. 유머 좀 섞어서 가볍게 지나가세요. 그러면 직원들이 실수 한번 했다고 인생 끝나는 거 아니구나 하는 거 눈으로 보고 배우지요. 그럼 되는 겁니다.
또 한 가지, 그 조직 내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거 명심하십시요.
3. 질문을 많이 하십시요.
리더란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회의시간에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인양 직원들에게 물어보세요. "만일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왜 안될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렇다고 묻기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리더란 자신이 제기한 의문들이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이슈를 만들고 나아가 행동으로 이어지는가를 확인해야지요.
4. 배짱과 감으로 밀고 나갈 줄 알아야지요.
지도자란 인기 테스트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끌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미 '리더'인데, 자꾸 그 자리에 출마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인기에 연연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보세요. 이미 뽑혔다구요.
5.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솔직하세요.
보통사람들이란 당연히 나쁜 소식을 전하는 악역을 맡기 싫어하지요. 다음달에 직원 반 자를 거야, 이런 말 하기 어렵지요.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비즈니스가 잘 안되면 안된다고, ... 지도자란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지고, 일이 잘되면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넘겨주는 사람들이랍니다.
6. 상사와 부하직원도 결국 유유상종이랍니다.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들 밑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다네요. 또 그 팀 전체가 그런 분위기가 되고요. 불행한 팀이 승리하기는 어렵답니다. 그렇겠지요. 지도자나 부하직원이나 맨날 심란한 얼굴로 징징 울고 다니면 뭐가 되겠습니까? 결국 지도자의 일이란 부정적 사고와 싸우는 것이 아닐까요?
7. '비전'은 그냥 보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먹는 거냐. 물론 그것도 아니지요. 숨쉬고 더불어 살아가는 거랍니다. 비전을 말할 때는 이상하고 애매한 표현 쓰지 말랍니다. 직원들 헷갈려요. 과녁이 흐릿하면 맞추기 어렵지요? 회사가 직원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줄 것인지 정확하게 밝히세요. 그걸 선명하게 알면 직원들이 변합니다.
8. 최고의 선수를 만들어내라.
운동경기에서 뛰어난 선수가 많은 팀이 이길 가능성이 높지요. 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는 '우수 선수' 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베스트 플레이어는 어떻게 만드느냐?
첫째 평가를 잘해야지요. 그 자리에 제대로 된 사람 데려다 일 시키고 있느냐.
둘째 유능한 코치여야 합니다. 지침을 제시하고 비판하고 도와서 선수가 실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셋째 지도자 자신이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감이 있어야 남을 인정하고 격려하고 신경쓰는 여유도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감있는 지도자와 함께 일할 때 직원들은 기꺼이 위험부담을 질 용기를 내고 꿈을 넘어서고, 별거 별거 다 하게 된다는 거 아닙니까. 여하간에, 이게 성공하는 팀의 '연료'와 같은 거랍니다.
"지도자가 되기 전에는, 당신에게 성공이란 오로지 당신 '자신의 성장'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된 당신에게 성공이란 '다른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잭 웰치
많은 수의 기업들이 리더십 개발에 실패하는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이다.
첫째, 의도만 있고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 경우이다. 실질적인 행동이 없으면 리더는 저절로 길러지지 않는다.
둘째, 말로만 리더십을 강조할 뿐, 실제로 새로운 발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처벌함으로써 좌절시키고 마는 경우이다. GM이나 DEC, 웨스팅 하우스 등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추진하던 리더가 기존 이사회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중도에 퇴진당하고 만 사례가 있다.
셋째, 막대한 자원과 시간을 투입하지만 컨설턴트나 학자에게서 배운, 말만 잘하는 관리자만 양성하는 경우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리더십 양성은 이론이나 포장에 의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고 현장에서의 실제 행동에 의해서만 달성된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두고 볼 때에,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재의 육성이며 그 중에서 리더십의 양성이라 할 수 있다. 크로톤빌에서는 매년 약 1만명의 GE 직원들이 리더십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데, 약 10억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잭 웰치는 직접 크로톤빌의 교육 현황을 보고 받고 연수 프로그램 개발에 관여하며 직접 강사로도 참여하고 있다. 리더 육성 프로그램에 최고 경영자가 이 정도까지 관심을 가지고 헌신하는 예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GE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잭 웰치는 GE의 전 구성원이 심득해야 할 GE의 Value 를 설정하고 이를 공유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고 전세계 GE 직원들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GE Value 라는 한 장의 카드를 통해 GE가 추구하는 이념을 살펴볼 수 있다. GE가치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GE의 리더들은 항상 정직하고 성실함을 추구한다.
둘째, 분명하고 단순하고 현실에 기반을 두며 고객 중심적인 비전을 창조하며 이 비전을 솔직하게 모든 사람들과 공유한다.
셋째,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고 과정을 분명히 인식하며 책임감과 열의를 가진다.
넷째, 우수함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글로벌리즘을 이해하며 다양한 구성원의 글로벌 팀을 구성한다.
다섯째, 스스로를 추동(推動)하는 에너지와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며 이끌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변화를 추구한다. 또한 변화를 위협이 아니라 항상 기회로 본다.
여섯째,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해 질과 비용, 스피드를 추구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GE는 리더들이 이런 GE가치를 철저히 숙지하고 실천하도록 훈련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이런 훈련이야말로 크로톤빌이 존재하는 목적이다. 또한 "GE가치들을 얼마나 잘 구현하는가" 가 전 직원의 승진을 결정하는 최고의 기준이 되고 있다. GE 인사부는 상사와의 면담과 부서, 사업부문별 토의를 통해 각 직원들을 평가하는데, 이 평가의 두 가지 기준은 업무 실적과 GE가치의 실천 정도이다. 잭 웰치는 '아무리 업무 성과가 좋아도 GE가치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도 없다'고 까지 말한다. 기업의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전 직원이 공유하는 가치가 있어야 하며 이 가치에 기반해 리더들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GE의 리더육성책에서 또 다른 특징은 외부의 우수한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데 적극적이란 점인데, GE는 사내 직원들이 차근차근 승진해 올라가는 것 못지 않게 외부의 우수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외부 인력을 적극적으로 발탁하는 개방성을 통해 조직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이 GE의 정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 인력들도 예외 없이 GE가치를 익혀야 하며 이 가치 공유를 통해 GE의 리더로서 자격이 되는 지를 평가받게 된다. 결국 GE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중의 하나는 우수한 리더들 육성에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점이며 이런 리더육성책의 중심에는 GE가치가 놓여있는 것이다.
잭웰치의 인재 고르기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어렵다.
위대한 직원을 고용하는 것은 훨씬 더 힘들다. 그러나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 그들이 성공하고 성취하고 앞으로 나가도록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우수한 직원을 확보하기 위해선 채용 시 다음 세가지 덕목을 체크해야 한다.
첫째, 정직 순수(Integrity)다. 순수한 사람은 진실을 말하고 자기가 한 말을 지킨다. 둘째 관문은 지적능력(Intelligence)이다. 복잡한 현실 세계에서 똑똑한 사람들과 같이, 또는 그들을 이끌어갈 만한 폭 넓은 지식과 풍부한 지적 호기심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스트레스나 일시적 부진을 잘 콘트롤하고 성공을 즐기면서도 겸손할줄 아는 성숙함(Maturity)이다.
그런 연후에 4-E 1-P를 적용한다.
첫번째 E는 긍정적 에너지(Energy)다. 어떤 역경과 난관도 돌파하고 마침내 변화와 성취를 이뤄내는 마그마같은 꿈틀거림이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나눠줘 더불어 에너제틱하게 만들고(Energize) 영감을 불어넣어주어 불가능도 가능케 해내는 능력이다.
세째는 예스냐 노냐 양자택일의 결단을 내릴 예리한(Edge) 용기, 네번째 E는 실행력(Execute), 즉 주어진 업무를 완성하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P, 열정(Passion), 가슴 속 깊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를 본다.
끊임없이 평가 지도하고 자신감을 쌓게 하라.
CEO의 비전을 부하들이 보고 체감하고 호흡하게 하라. 일선 직원들까지 비전을 공유하게 하라. 급여든 보너스든 보상책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리더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낙관적인 생각이 전 직원의 피부 속까지 침투하도록 해야 한다. 긍정적이고 쾌활한 리더의 조직엔 긍정적이고 쾌활한 사람들이 가득 차고, 침울한 사람은 비슷한 무리에 둘러 싸인다.
솔직함과 투명함, 신용을 통해 신뢰를 확립하라. 해고 통보등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할때도 얼버무려서는 안된다.
인기 없는 결정을 내리는 용기와 뱃심있는 결단력을 가지라. 리더는 인기 대회 출전자가 아니다.
리더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고 의문은 반드시 행동으로 답하게 하라. 만약..이라면, 왜, 어떻게를 끊임없이 던져라.
리스크 테이킹을 하고 학습도 먼저 실천, 모범이 되라.
월드시리즈에 우승하고도 샴페인 터트리지 않는 팀을 상상해보라.축하하라.축하는 긍정적인 에너지의 분위기를 만든다.
나는 종종 리더는 타고 나느냐 아니면 만들어지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답은 물론 둘다다. IQ나 에너지같은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자기확신같이 살아가면서....
웰치가 이런 말을 했군요.
"당신이 지도자가 되기 전에는,
성공이란 오로지 당신 자신의 성장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도자가 되었을 때,
이제 당신에게 성공이란
다른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www.service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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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servicestandard/trackback/1587093/456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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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림 2008.09.19 07:55 [125.132.22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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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셨어요.
답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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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 9일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
현장에서 보고 배우고, 현장에서 느끼고, 현장에서 해결한 뒤 확인까지 한다는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삼현주의(三現主義)’의 성과
현대자동차, 서유럽시장서 약진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전체적으로 2.9% 판매감소를 보인 서유럽시장에서 자동차 판매량 224,597대(+2.6%)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한해를 마감했다. 현대자동차는 서유럽시장의 1.6%를 점유하며 일본 Honda의 시장점유율을 앞섰다. 그러나 2005년 '점유율 3%'에는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현대자동차는 서유럽시장 확대를 위한 야심찬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지난해 구주지역본부와 개발연구소 개축 및 신축을 위해 약 5천만 유로를 투자했다.
프랑스시장에서만 현대자동차는 총 18,575대 판매량을 기록해 전년대비 37.5%의 눈부신 성장을 보였다.
현대자동차의 가장 대표적인 곳이 울산 선적부두와 생산차량 야적장. 선적부두는 자동차 공장안에 건설돼 공장에서 생산된 자동차를 곧바로 자동차 운반선에 실을 수 있도록 돼있는 곳으로, 세계 여느 자동차 공장에도 볼 수 없는 곳이다.
생산차량이 선적부두를 비롯, 수출차량 야적장에만 수만대가 한꺼번에 주차된 모습은 가히 진풍경을 연출한다. 사내 연수원 로비에는 그동안 생산돼온 차량의 실제 엔진 모형과 차량 내부 구조, 미래형 하이브리드 시스템 차량도 전시돼 있다.
또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폐수를 물고기가 살 수 있는 깨끗한 물로 정화해 이를 이용한 대형 분수대도 설치해 여름철 시원한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공장 곳곳에는 공작과 더불어 원앙새, 칠면조, 금계.은계 등 다양한 관상용 조류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새장이 자리잡고 있어 마치 동물원에 온 듯한 분위기도 전해주기도 한다.
사내 공장을 가로지르는 3㎞ 가량의 하천인 율동천도 있어 자연친화적인 공장으로 느껴진다. 특히 이 곳에는 왜가리, 청둥오리 등 야생 조류는 물론 집오리도 살고 있어 지나가는 직원들과 공장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한다.
또 현대차 문화회관내 홍보관은 지난 1975년 첫 국산 자동차인 포니를 비롯, 그동안 현대차가 생산해온 주요 자동차와 미래형 자동차 모형이 전시돼 한국 자동차 산업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공장 본관 앞 잔디밭 광장에 자리잡은 눈사람 형태의 연못은 한적한 시골에 있는 조용한 호수같고 직원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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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올 내수목표 63만대 "절반은 우리것"
[머니투데이 2006-01-06 09:13]
[머니투데이 김용관 기자]현대자동차가 올해 내수판매 목표를 전년보다 10.3% 증가한 63만대로 잡았다. 현대차는 또 국내 자동차산업 처음으로 3년 연속 시장점유율 50% 초과 달성에 도전한다.
현대자동차(대표 정몽구 회장)는 6일 계동 국내영업본부 사옥에서 김동진 부회장과 최재국 사장, 이광선 부사장, 전국 지점장 등 관계자 1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06년 상반기 판매촉진 대회'를 열고 올해 내수시장 판매목표 63만대와 시장점유율 50% 초과달성을 결의했다.
현대차는 내수 부문에서 지난 2004년 55만431대(시장점유율 50.6%), 지난해 57만814대(50.3%)를 판매, 2년 연속 50% 이상의 시장을 차지했다.
김동진 부회장은 이날 “지난해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도 성공적인 신차출시와 중대형 차종의 판대 확대 등으로 목표달성을 이뤄냈다”며 “올해도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뉴아반떼XD 후속 및 디젤 승용차 등 경쟁력 있는 신모델을 출시해 판매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고객과의 유대강화를 통한 신뢰관계 구축을 통해 올해도 판매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현대차는 이같은 판매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브랜드 정체성 확립 및 가치 제고 △고객특성별 차별화된 판촉활동 △고급차종 차종 판매 확대 등을 추진키로 결의했다.
이를 위해 △주말 차량점검 서비스 등 고객지원 프로그램 정착 △2006 독일 월드컵 공식 후원사로서 월드컵관련 고객 참여이벤트 활성화와 다양한 프로모션 활동을 통해 브랜드가치 제고 △여성고객과 젊은층 대상 다양한 마케팅활동과 지역별 특화된 판촉활동의 실시 △고급화 전시장 확충 및 고급차종 판촉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12조 시장 '꿈의 월드컵' 재계도 뛴다
“100억 유로 시장을 잡아라!”
재계가 2006 독일 월드컵 마케팅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월드컵이 창출할 최소 100억 유로의 부가가치를 잡기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이다. 2002 한ㆍ일 월드컵 때처럼 2006 독일 월드컵도 내수 경기 활성화와 브랜드 인지도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독일 월드컵이 우리 경제에 미칠 경제적 효과에 대해선 아직 전망치나 연구 등이 나와 있지 않다. 다만 독일 최대의 소매은행인 포스트뱅크는 월드컵이 독일 경제에 100억유로(12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4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2002 한ㆍ일 월드컵 개최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26조원으로 집계한 점으로 미루어 독일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는 100억 유로를 훨씬 넘을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월드컵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업체는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다. 현대차는 지난달 본선 조추첨이 확정되자마자 월드컵 공식 홈페이지(www.FIFAworldcup.com)에 ‘현대 팬 코너’를 개설, 월드컵 온라인 마케팅에 시동을 거는 등 다양한 월드컵 마케팅에 돌입했다. 특히 지름 4㎙의 대형 축구공을 제작, 본선 진출 32개국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며 승리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도록 한 ‘굿윌볼 로드쇼’가 주목된다. 현대차는 또 승리기원 표어도 모집해 당선작을 대표팀이 월드컵 기간 중 사용할 버스에 부착키로 했다. 월드컵 기간에 경기장을 방문하는 관람객 중 개성 있고 열정정인 1명을 선정, 전반전 종료 후 경기장 대형 스크린에 고지하는 ‘월드컵 최고의 팬’ 기획행사도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64개 경기에서 25명의 ‘오늘의 팬’을 뽑은 뒤 인터넷 투표를 실시, ‘월드컵 최고의 팬’도 선정한다. ‘현대차배 세계미니축구대회’는 전세계 아마추어 국가대표들이 대륙별 결선을 거친 후 월드컵 개최국에서 열리는 세계 결선에서 최강의 아마추어 팀을 선발하는 대회다. 현대차는 대규모 ‘길거리 응원’을 협찬하고 월드컵 기간 중 경기장 내에서 현대차의 대표적 모델을 전시, 세련된 디자인과 기술력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월드컵은 강력한 노출 효과를 가진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라며 “월드컵을 활용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세계 전지역에서 현대차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전 업체들도 월드컵 특수 기대감에 들떠 있긴 마찬가지이다. 업계에선 월드컵 경기 시청 수요로 디지털 TV가 큰 폭의 수출 증가세와 내수 판매량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카드업계에도 월드컵 바람이 불고 있다. 월드컵 기념 카드를 내거나 월드컵 참관 응모 사연을 보낸 회원들을 대상으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독일 관광 여행권, 선수용 축구 유니폼, 월드컵 공인구 ‘팀가이스트’ 등을 증정하는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또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에 이어 지상파 DMB가 실시됨에 따라 휴대폰 업계와 내비게이션 업체들도 월드컵 특수를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2006 독일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는 월드컵 마케팅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높인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가 지름 4㎙의 대형 축구공에 2006 독일 월드컵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도록 한 ‘굿윌볼 로드쇼’를 진행하고 있다.
2006 독일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는 월드컵 마케팅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높인다는 계획이다. 2006 독일월드컵 마스코트인 골레오가 현대차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실적이 나쁘면 리더십이고 뭐고 갖다 붙일 여지가 없어진다.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리더십과는 다른 대목이다. 그래서 ‘투명경영’이란 말은 있어도 ‘민주경영’이란 단어는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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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鄭夢九·67)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그렇듯 가부장적 경영을 해오면서 뛰어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집에 은둔해 있는 오너도 아니고, 회사 공장을 한두 번 순시하면서 현장 경영한다고 홍보하는 오너도 아니다. 실제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고 행동으로 다그친다.
요즘 중국 베이징에서는 ‘현대속도(現代速度)’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현대차가 막차로 중국시장에 진입했지만 금방 기존의 메이저 업체를 제치고 상위권으로 도약한 것을 빗대는 말이다.
현대차는 2004년에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에서 41만8615대를 판매해 점유율 2.5%의 벽을 넘어섰다. 기아차 판매분을 합치면 점유율은 4.1%에 이른다. 2005년 1분기 성과는 더 좋다. 현대차는 2004년 세계시장에서 228만대를 팔아 판매증가율 16%를 기록했다. 이는 도요타, 혼다의 10%나 GM의 4%를 크게 앞지르는 것이다.
기자는 1990년대 후반 당시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과 단둘이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롯데호텔 세면장에서, 금강산 관광선인 금강호 갑판 위에서, 신라호텔 미니룸에서. 그때 본 정 회장은 상당한 눌변(訥辯)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각종 국내외 행사를 많이 치러서인지 달변은 아니라 해도 분명하고 명쾌한 의사표시를 한다. 당초 정 회장의 눌변 때문에 그의 경영능력에 의심을 품는 사람도 있었고, 2000년 현대차로 홀로서기를 했을 때는 과연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그런 의심과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시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아버지 정주영 회장님은 벤치마킹 대상이자 라이벌
정몽구(MK) 회장을 지켜보면 그 내면에 아버지 정주영 회장님에 대한 벤치마킹과 함께, ‘아버지를 라이벌로 설정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주영 회장은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여러 동생과 자식에게 근검을 가르쳤다. 정몽구 회장은 수많은 삼촌과 형제 사이에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물불을 안가리고 뛰었다.
정몽구 회장은 1996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내 나이 예순을 앞둔 터여서 아버지가 옛날처럼 무섭지는 않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의 한 측근은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일념으로 사업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정 회장의 스타일은 그의 아버지와 흡사하다. 외모는 물론 선이 굵으면서도 세밀하고 의리와 인정을 중시하는 것도 닮았다. 솥뚜껑만한 손에다 ‘삼국지’를 애독하는 것도 비슷하다. 부하를 관리할 때 믿고 맡기긴 하지만 상호경쟁을 시키는 방법도 비슷하다.
하지만 아버지를 베끼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5년 전 벌어졌던 ‘왕자의 난’은 한편으로 아버지로부터 정통성을 받고 다른 한편으론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결국 2000년 9월 눈물을 머금고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독립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일반인에게 ‘뚝심 경영인’과 ‘보스형 경영인’으로 각인됐다. 회사 임직원들은 초기의 정 회장을 ‘보스형 오너’로 불렀다. 임직원에 대한 장악력과 통솔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년 전 미국에서 시작한 ‘10년, 10만마일 무상 보증수리’의 경우 회사 내부에서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초강수를 두었고 결국 오늘날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엔 일관제철소 사업 진출을 시도했으나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INI스틸을 통해 한보철강 당진공장 인수를 성공시키고, 이곳에 일관제철소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많은 곳을 다니고 더 깊은 생각을 하자고 그는 결심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외환위기 직후 적자였던 현대차를 맡은 지 1년 만에 4000억원대 흑자를 기록했고, 해마다 기록을 경신했다. 환차익(換差益)을 감안해도 대단한 수치다.
현대차는 2004년 국내외에 167만7818대를 팔아 1조7846억원에 이르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4년 연속 순이익 1조원을 넘어섰고 조만간 순이익 2조원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기아차도 2005년 3월 수출 500만대 기록을 달성하는 등 현대차에 못지않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그룹 안팎에서는 정 회장을 ‘전략가형 CEO’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부하를 몰아붙이는 데서 벗어나 장기 비전을 세우고 향후 이슈를 예측하여 이를 추진력있게 실행하는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차 측은 “품질경영, 현장경영, 뚝심경영 등 세 가지가 정몽구 회장의 경영철학 요체”라고 말한다. 정 회장은 이를 통해 ‘지옥의 카레이스보다도 더 치열하다’는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 톱5로의 진입 가능성을 노크하고 있다.
품질에 진짜 목숨을 걸었다
현대차는 1986년 4995달러짜리 엑셀 승용차를 가지고 최초로 미국에 진출했다. 미국 소비자는 싼 맛에 끌려 현대차를 많이 샀지만 금방 품질이 들통났다. 판매는 하향곡선을 그었고 현대차는 미국인의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 현대차는 미국에서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올 4월엔 미국 컨슈머리포트지(誌)가 쏘나타를 ‘가장 신뢰할 만한 차’로 선정했다. 타임(TIME)은 4월 25일자에서 “정몽구 회장이 철저한 품질경영을 통해 과거 영욕의 현대차를 글로벌 성공 메이커로 변신시킴으로써 세계 자동차업계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을 이루었다”고 칭찬했다.
올 1월 비즈니스위크도 정 회장을 자동차 부문 최고 CEO로 선정하면서 “정 회장은 1999년 현대차를 맡으면서 품질을 최우선에 두는 경영을 시작, 회사를 바꾸어 놓았다”고 보도했다.
모두 정 회장이 광적으로 품질경영에 집착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품질’이란 단어는 선대(先代) 때는 그렇게 강조하지 않던 단어였다.
정 회장은 과거 수년간 현대자동차써비스를 맡아보면서 품질 문제가 회사의 가장 큰 걸림돌임을 발견했다. 그는 5년 전 현대차 품질본부 서병기 사장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품질은 우리 생존의 핵심이다. 얼마의 비용이 들든 간에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정 회장의 지시는 단호했지만 현장 직원에게까지 전달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빨리, 값싸게 만드는 습관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 회장은 직접 공장의 세세한 부분까지 품질을 직접 체크했다.
2002년 8월에는 기아 오피러스 수출차량을 직접 시험주행하다가 전문가도 찾기 힘든 미세한 소음을 발견하여 선적을 40여일 미루며 즉각 저소음 엔진으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당시 남양연구소의 한 간부는 “그렇게 하면 손실이 매우 크다”고 보고했으나 정 회장은 “품질 때문이라면 상관없다”고 반박했다.
현재 정 회장의 지시에 따라 서울 양재동의 현대-기아차 사옥 1층은 3개의 품질 관련 공간(품질상황실, 품질회의실, 품질확보실)이 차지하고 있다. 정 회장은 “우리 차가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멈춰 서있는 것을 상상해봤느냐”면서 품질상황실의 설치 이유를 설명했다.
24시간 가동되는 품질상황실은 해외판매망으로부터 제기되는 하자(瑕疵)를 실시간으로 체크한 뒤 연구개발부서에 자료를 넘긴다. 관련 임원은 물론, 정 회장에게도 밤새 발생한 하자가 실시간으로 보고된다.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은 “직원 사이에 ‘정몽구 회장은 품질본부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수년 전 현대차에서는 해외시장 전략을 놓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그 중엔 ‘렉서스’ 같은 고급 브랜드를 만들어 회사 이미지를 한 단계 상승시키자는 안도 있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품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추진하면 도리어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다”면서 ‘선(先)품질향상’을 강조했다. 최고급 브랜드의 유혹을 물리친 정 회장의 결단은 현재까지 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진정한 현장경영은 발로 뛰는 것
기자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현장경영을 하는 재벌총수는 거의 없다. 정몽구 회장은 예외적인 사례 중 하나다. 현장에서 보고 배우고, 현장에서 느끼고, 현장에서 해결한 뒤 확인까지 한다는 ‘삼현주의(三現主義)’는 정 회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1998년 외환위기를 불러온 부실기업 기아를 빠르게 정상화시킨 것도 그의 현장경영 덕분이라고 한다.
기아차를 인수한 초기에 정 회장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화성을 비롯해 광주, 소하리에 있는 기아차 공장을 찾아가 직접 현장을 점검했다. 피(被)인수기업으로서 인수기업 총수의 방문이 힘이 됐을 것은 분명하다. 그는 엔진공장, 주물공장, 보일러 배관실 등 구석구석을 샅샅이 점검했다.
그의 현장경영 철학에는 배경이 있다.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건설과 현대자동차를 거친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지시로 현대자동차의 애프터서비스(AS) 전담회사인 현대자동차써비스를 맡는다.
당시 포드와 손을 잡은 현대차는 포드로부터 자재가 적기에 조달되지 않아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이를 타개하려고 임직원과 함께 자동차 부품을 싣고 전국 순회서비스를 직접 다녔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정비차량이 개천에 빠져 낭패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현장을 누비면서 고객 불만을 직접 접했던 경험이 지금의 ‘현장경영’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현장경영을 하려면 무엇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매일 오전 6시30분 이전에 출근해 관련 임원을 불러 밤새 고민한 주제를 일러주고 토론한다. 회장의 생각을 임원들이 따라가기가 벅찰 만하다.
그의 좌우명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다.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에게 써주었던 휘호이기도 하다.
그의 현장경영 습관 덕분에 해외 생산거점도 신속하게 구축됐다. 현대차는 5월 20일 준공식을 거행한 미국 앨라배마공장을 비롯, 슬로바키아공장, 중국공장 등 해외거점에 자동차 생산기지를 착착 구축시키고 있다.
정 회장은 인구 25만명의 앨라배마주 소도시 몽고메리를 가로지르는 65번 고속도로에 한글로 적힌 ‘현대자동차를 환영합니다’라는 안내판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수입 구두 신어본 적 없어
경복고 출신인 정몽구 회장은 운동을 좋아해서 학창시절 럭비부 주장을 맡았다. 그는 “럭비에서 팀워크 정신을 배웠다”고 사석에서 자주 말한다.
듬직하고 의협심이 강했던 정 회장 주변에는 항상 친구가 따랐으며, 지금까지도 그런 유대는 지속되고 있다. 정 회장은 당시 교내 깡패를 혼내주기도 했다. 그의 고교동기인 손병두 전(前) 전경련 부회장은 “몽구가 ‘공부 잘하는 병두 건드리지 마라’며 교내 불량배를 혼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하고 사람을 거느리고 부리는 데 익숙하다. 현대자동차써비스를 맡았을 때였다. 집이 멀었던 그는 회사 인근의 친구 아파트에서 잠을 자며 감색 점퍼와 군화 차림으로 늘 현장을 지켰다.
밤이면 공장 한편에 드럼통을 놓고 소주와 삼겹살을 수리공들과 나눠 먹으며 동고동락했다. 서울 원효로 3가 정비공장 앞 수퍼에서 작업을 마친 정비공들과 소주를 자주 마셨는데, 당시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을 지금도 기억하여 안부를 묻는다.
정 회장은 직원과의 팀워크를 잘 만들어나간 덕분에 1977년에는 현대정공을 설립, 국내 레저용 차량의 새 장을 연 갤로퍼라는 히트작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현대·기아차 신입사원 수련회에 2001년부터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재벌 오너 총수가 매년 신입사원을 직접 대하며 기업비전을 제시하고 격려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정 회장이 사람을 모으는 비결 중 하나는 소탈함과 검소함에 있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풍이다. 즐겨 신는 신발은 오래된 국산 금강제화다. 외제 브랜드는 신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음식도 설렁탕과 불고기, 삼계탕 등을 좋아한다.
자동차 내수부진·노사분규 등이 과제
정몽구 회장의 앞에는 해결해야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 우선 자동차 내수시장이 계속 부진하다. 세계시장에서는 이제부터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됐다.
점점 줄어드는 마진도 또다른 문제점이다. 환율 문제 등으로 2005년 1분기 영업이익은 30.1%나 줄었다.
단골로 터지는 노사분규, 오너 일가와 측근 핵심인력 중심의 의사결정,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이지 못한 이사회 운영 등에 대한 비판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새로 진출한 일관제철소 사업은 조만간 중국의 본격적인 철강공급으로 국내에서 심각한 공급과잉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삼성의 이재용 상무 케이스와는 달리, 정 회장은 아직 아들인 정의선(鄭義宣) 기아차 사장에 대한 지분승계를 순조롭게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계열사인 엠코와 글로비스 등을 활용하려고 하지만 감시의 눈길이 워낙 많다.
현대차의 성장은 그야말로 이제 시작이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은 세계 7위에 머무를 뿐이다. 2010년의 세계 5위 달성은 그리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과연 정 회장의 리더십은 이 모든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이 미래 인재경영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미래인재경영
정몽구 회장은 25일 제주 해비치 리조트에서 열린 '2004년 현대·기아차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에 참석, CEO 특강을 가진 자리에서 '글로벌 기업인의 자세'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정 회장은 특강에서 "현대·기아차 신입사원은 ▲투명하고 공정한 일처리로 신뢰받는 인재 ▲전문능력 배양과 상호간 협조 ▲도전과 개척의 벤처정신 ▲현대·기아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 ▲차세대 자동차 산업의 주역 역할 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바탕으로 선배직원들이 노력한 결과 현대·기아차는 획기적 품질향상, 비약적 수출확대, 해외시장에서의 성공경영 등을 이루어 낼 수 있었고 현재 세계7위의 자동차회사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이와 함께 "경기 침체 속에서도 현대·기아차는 정상적인 경영활동으로 고용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며 "향후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가 되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회장은 그러나 "그동안의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선진업체와의 기술격차, 아직은 약한 브랜드 이미지 등 분발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차세대 자동차산업 주역으로서 이러한 과제들을 극복해 세계 초일류 자동차회사를 만드는 주역이 되고, 그에 손색없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정몽구 회장의 경영스타일
의사결정이 매우 빠르다.
경쟁업체들 은 현대자동차의 빠른 의사결정을 높게 평가한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충 분한 검토 없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몽구 회장 개인의 경쟁력
매경이코노미는 ‘ CEO 경쟁력’ 평가를 위해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 김성수 경희대 교수, 김태현 연세대 교수, 이항구 산업연구원 팀장, 주우진 서울대
교수(가나다 순) 등 5명 이 참여하는 평가단을 구성했다.
평가위원들은 전략 및 비전수립능력, 업무추진능력, 이해관계자와의 조정능력, 윤리경영 및 투명경영, 경영권 안정 등 5가지 기준으로 ‘CEO’경쟁력을 평가 했다.
현대차 그룹현황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요즘 '엔도르핀'에 충만해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실천해 온 '월드 베스트 전략'을 열매맺는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은 올해 '중간 시장을 공략하는 그저그런 자동차 메이커'라는 딱지를 완전히 벗어던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실천 경영, 모범 경영을 몸소 실행하는 등 절치부심한 결과 현대차를 한차원 높은 경지로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정몽구 회장의 경영을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어눌하다', '2%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차 내부 평가는 사뭇 다르다. '총수'로서 정몽구 회장은 비전, 꿈을 전파하며 미래 경쟁력 확보를 채찍질하는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미래 비전은 곧 현대차 미래라는 점에 이견은 없다. 정 회장은 미래에 대한 비전과 확신을 약간은 툰탁하게 느껴지는 언행 속에 감출 줄 아는 진정한 '고수'라는 평가다.
정 회장은 그 자신의 '인생 로드맵'과 '현대차그룹의 발전'을 동일시하고 있다. 그는 '일이 곧 내 인생'이라는 구세대(?)에 속해 있지만 그와 현대차의 향후 업적은 새로운 경지를 펼치려 한다.
정 회장의 경영철학
정몽구 회장은 그룹 '총수'다. 과거 총수는 그 자리에 있는 것만을 대접받았다. 그가 하는 말 한마디는 모든 것을 매듭짓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변했다. 확실한 비전, 실현가능한 과제, 전체 그룹을 슬기롭게 이끄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정몽구 회장은 실천을 중시한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론과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현장 제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정 회장은 말로 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고 보여주는 '행동인'을 원하고 있고 스스로 그 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다. 2001년. '품질 지상주의'를 표방한 정몽구 회장의 실천력은 그룹 전반에 강력한 파장을 일으켰다.
정몽구 회장은 결단력에서도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10년 10만마일 보증제도'를 도입한 것이나 그룹 안팎의 우려를 잠재우며 과감히 중국 현지 투자에 나선 것은 정 회장의 '의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고 현대차 관계자는 말한다.
정 회장은 2001년 이후 국내 공장을 비롯해 미국 인도 중국 등 해외 생산거점을 직접 돌며 직원들을 두루 격려하고 있다. 일일히 사소한 문제까지 직접 챙기며 '애정어린'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현대차 직원들의 시선은 따사롭다. 다른 그룹 총수들로서는 부러울 법하다. "단순히 그룹 2세라는 지위로 평가할 수 없다. 정몽구 회장은 그룹 창업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직접적인 개입을 최소화하되 일단 개입하면 '신속, 과감, 결단'을 요구한다. 정몽구 회장이란 존재 자체가 그룹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현대차 고위 임원)
2004년=현대차, 환골탈태의 해
현대차는 이달 '쏘나타(프로젝트명 NF)' 출시를 시작으로 잇달아 세계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 차종을 쏟아낼 계획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유수 자동차 메이커들도 현대차와 정몽구 회장의 변신에 놀라워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01년 '품질 경영'을 최대 화두로 제시했다. 1999년 이후 옛 현대그룹을 휩쓸었던 '왕자의 난'을 겪은 뒤 정 회장이 제시한 화두는 '월드 베스트 카를 만들자'였다.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거듭나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자는 비전이었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정몽구 회장을 정점으로 한 현대자동차 과연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 팽배해 있다. 그러나 현대차 관계자가 던지고 있는 답변은 자긍심으로 충만해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휴대폰,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부문에서 세계 1위 업체로 우뚝 선 것도 몇 년 되지 않았다. 현대차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만년 하위 메이커가 될 것이라고 다른 업체들은 우리를 얕잡아 보지만, 이제 목격하게 될 것이다. 현대차는 새로운 미래를 써 나갈 것이다. 월드 베스트는 가까운 미래다."
정몽구 회장. 그와 현대차그룹의 행보가 한국 기업사에 새로운 장을 펼쳐 나갈 지 예의주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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