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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소재가 일본 무사 ‘사무라이’이지만, 이 영화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나 ‘카게무샤’같은 심각하게 각을 잡는 영화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죠. 오히려 일본만화을 연상시키는 코메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사무라이 픽션’의 메인 테마곡은 특히나 이영화의 성격을 분명히 해준다고 할 수 있죠.
"300년전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였다. 도쿠가와의 천하 통일로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대에 나는 사무라이의 아들로 태어났다..."라는 나레이션을 시작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1696년 나가시마 지역 사무라이 칸젠의 아들 헤이지로가 에도에서 검술 수업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즈음, 이 집안에는 일대 소동이 일어나죠. 장군가로부터 전수받은 검을 지키기위해 고용한 떠돌이 검술인 카자마츠리가 동료를 해치고 검을 빼앗아 사라져버린 겁니다.
보검의 도난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집안은 장군가와 절연하게 되는 위기에 처하자, 당황한 칸젠은 일단, 가짜 보검을 만들어 사건을 수습하죠. 이 사실을 전해들은 주인공 헤이지로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동네 친구 둘과 함께 악당 카자마츠리의 뒤를 쫓습니다. 카자마츠리의 현란한 검술을 익히 알고 있는 칸젠은 아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비밀리에 닌자를 고용해 그 뒤를 따르게 하죠.
드디어 카자마츠리를 발견한 헤이지로는 용기있게 나서지만 칼은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친구 쿠로사와를 잃고, 자신의 목숨도 위협받게 되죠. 그러나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한베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헤이지로는 그의 집에서 상처를 치료받습니다. 산 속에서 딸 코하루와 단둘이 살고 있는 한베이는 보통의 사무라이 답지 않은 엄청난 평화주의자죠.
한때 최고의 검객이었던 한베이는 "사람은 죽여서는 안된다"며 헤이지로에게 검 대신 돌팔매를 가르치죠.
그리고, 헤이지로는 그의 딸인 코하루와 사랑에 빠지지만, 여전히 카자마츠리에 대한 복수심에 이글거립니다.
뭐 대충 이렇게 스토리만 보자면, 젊은 사무라이의 정의의 복수극이라는 흔한 이야기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영화는 전혀 심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복수에 혈안이 되있는 헤이지로 뿐만 아니라, 헤이지로를 보호하겠다는 닌자들의 움직임까지 그야말로 어설프기 그지없습니다. 더욱이, 영화 속 그들의 과도한 진지함은 그저 관객을 끝없이 우낄 뿐이죠.
일본 내에선 이 영화가 ‘사무라이’ 정신을 희화화하고, 일본정신을 상업화한 영화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그러나, 전통 사무라이극에 바치는 MTV 세대의 오마쥬라는 평이 더 우세합니다.
이 즐거운 영화를 감독한 사람은 나카노 히로유키 입니다.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이 오늘 소개해드리고 있는 바로 ‘사무라이 픽션’이죠.
나카노 히로유키는 1993년 피스텔릭 스튜디오를 설립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들의 뮤직 비디오와 CF를 제작해왔습니다. 아울러, 1997년 제작한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데이 라이트> 뮤직비디오는 미국의 MTV 어워드 6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죠.
감각적인 뮤직비디오를 주로 만들어온 그가 내놓은 ‘사무라이 픽션’은 여러모로 구라자와 아끼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이 영화가 구로자와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고백할 정도로 말이죠. 시종일관 오래된 사무라이 영화의 분위기를 내는 흑백으로 처리된 화면과 영화 속 인물의 설정에서 이런 경향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흑백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피가 흐르는 장면은 붉은 색으로 처리하는 인상적인 화면을 선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빠른 편집과 현란한 카메라 웍의 이 영화는 긴 장편의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죠.
정말 이 영화는 여러모로 한편의 뮤직비디오 같습니다. 빠른 화면도 화면이지만, 그만큼 영상과 음악이 완벽한 일체를 보여주고 있죠.
무사들이 칼싸움을 벌이는 대목에선 절묘하게 음악의 리듬이 일치하고, 심지어 영화 속 캐릭터의 발걸음마저 음악과 같은 박자로 계산되어 있는 듯 하니, 정말 이 영화는 마치 음악에 맞추어 편집한 것처럼 보여질 정도입니다.
이 영화를 뮤직비디오로 비춰질 정도로 대단한 영화음악의 힘을 보여준 사람은 바로, ‘호테이 토모야스’ 라는 뮤지션입니다.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록스타이자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라고 하네요. 그는 일본의 유명한 록그룹 X-Japan이 크게 영향을 받은 그룹 BoΦwy의 기타리스트로 1979년부터 활동해왔고, 190cm에 이르는 큰 키와 폭발적인 무대 매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타 연주로 관객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데위빗 보위와의 합동 콘서트는 물론, <브라질>, <다이하드>, <로빈후드>의 영화음악을 만든 거장 마이클 케먼과의 합작으로 제작한 음반 "Guitar Concerto'는 미국에서도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고 하네요.
그런 호테이에게 있어서 이 <사무라이 픽션>은 배우로서, 그리고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최초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죠.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사무라이, 카리스마 넘치는 말없는 고독한 사무라이 악당 카자마츠리가 바로 영화음악을 담당한 호테이 토모야스입니다. 기억나시나요? 검을 맨 사무라이로 보이기 보다는 기타를 맨 사무라이처럼 보였던 그 인상적인 사무라이가 바로 호테이 토모야스입니다.
물론 호테이 토모야스는 이전에, 테리 길리암 감독의 <라스베가스에서의 공포와 권태>에서 <부에나 비스타 쇼셜 클럽>의 영화음악 작곡가, 라이 쿠더와 세 곡을 공동으로 작곡한 경력은 있지만, <사무라이 픽션>란 한 영화를 위해 그의 온 재능을 기꺼이 바친 듯 합니다. 심지어 감독의 말을 빌면, 이 컬트 사무라이 영화는 호테이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다라고까지 말하니까 말이죠.
감독은 그를 염두에 두고, 카자마츠리라는 풍운아 검객의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호테이는 생과 사를 초연한 듯한 의연함과 과묵함, 게다가 비정함으로 감독의 애정에 화답했습니다.
그리고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전기 기타 선율로 이 진귀한 사무라이극에 엄청난 힘을 불어넣어놓았죠. 게다가 테크노와 댄스, 록큰롤 등 다양한 장르를 솜씨좋게 규합해, 한편의 뮤직 비디오 같은 현란한 이미지 위에 음악을 입혀놓았죠. 그 결과,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절실히 느끼게 하죠.
일본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되기까지 참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았구요.
드디어, 98년도 1차 개방 이후 들어온 영화, 98년 ‘카게무샤’, '하나비', 99년 '우나기', '러브레터', 2000년 '철도원', '감각의 제국' 등의 소문난 영화들이 우리 극장에 걸렸고, 사람들은 일본 영화에 대한 한국관객들의 반응에 촉각을 세웠죠.
그러나, 이 중 뚜렷한 성공을 거둔 작품은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뿐이었죠. 영화 '러브레터'는 당시 전국 170만 관객을 동원하며, ‘오깽끼 떼쓰까?’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했죠. 그러나, 이 작품 이외에는 두드러진 성공을 보인 작품은 거의 드물었죠. 2000년 5월 13일 개봉된 '쉘 위 댄스'는 서울 32만면(전국 48만명)을 기록했고, 이후 '철도원'과 오늘 소개해드린 '사무라이 픽션' 정도가 간신히 그 뒤를 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흥행성적만 놓고 본다면, 일본 영화는 예상과는 달리 고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 감수성이 우리와 많은 부분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헐리웃 영화보다도 파괴력 있을 것이라 예상했고, 이것이 일본 문화의 무차별한 수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조바심 냈던 것에 비해 결과는 정반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단계적 개방 때문에 초창기에 들어왔던 일본 영화들이 국제적인 명성을 쌓은 검증된 영화들인 탓에 대중성 보다는 예술성이 돗보이는 영화들이 많았고, 그래서 일본 영화 하면 따분하고 지루한 영화라는 인식이 쌓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해드린 ‘사무라이 픽션’처럼 유쾌하고 즐거운 영화 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들이 포진해있는 것이 바로 일본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죠. 그래서 지금 일본 영화를 ‘재미없는 영화’, ‘우리의 감성에는 잘 맞지 않는 영화’들이라고 폄하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보여집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한국영화의 선전이 눈부신 때도 드물겁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하는 헐리웃 영화들도 한국영화에 밀려 상영기간을 조정해야 할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지금의 부흥을 지속시키려면 좀더 다양한 영화가 필요하고, 그 속에 일본 영화가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라 봅니다.
느와르 일색의 홍콩영화가 걸었던 흥망성쇄, 그 선례를 따라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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