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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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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장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몰타(Malta)
이탈리아와 리비아 사이 지중해에 위치한 섬으로 이루어진 공화국. 정식명칭은 몰타공화국(Repubblika Ta'Malta). 중심섬 몰타를 비롯하여 고초·코미노·코미노토·필플라의 5개 섬으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코미노토와 필플라는 무인도이다. 몰타섬의 면적은 246㎢, 5개 섬의 총면적은 316㎢. 인구 40만 420명(2003). 수도는 발레타인데 4번째로 큰 도시이며, 최대도시는 슬리에마로 모두 몰타섬에 있다.

몰타의 자연
침강에 따라 형성된 평탄한 지형으로, 몰타섬의 최고점은 해발고도 240m 정도이다. 몰타섬은 남동부가 높고, 서쪽을 향해 완만하게 경사져 있으며 북부와 남동부 고지대 사이에 명료한 단층선을 볼 수 있다. 지질은 주로 고지대가 산호성의 석회암, 저지대가 글로비게리나(부유성 유공충의 1종)성 석회암으로 되어 있으며, 토지의 생산성은 좋지 않다. 동부 해안선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육지의 돌출부를 사이에 둔 그랜드항(港)과 말삼세트항은 발레타 시가가 발달해 있는 천혜의 좋은 항구이다. 기후는 따뜻하고 비가 적으며 연평균기온은 18℃이다. 대체로 바람이 강하고 습도가 높다. 토양이 메마르고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야생식물은 많지 않다.

몰타의 역사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몰타는 역사시대에 들어서 페니키아·카르타고·그리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BC 218년 로마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 뒤 16세기에 이르기까지 몰타의 역사는 시칠리아와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9세기 후반부터 11세기 말까지 계속된 이슬람세력의 지배로 인구가 적은 몰타는 시칠리아보다 더욱 큰 영향을 받아 아라비아어계의 몰타어가 형성되었다. 1530년 신성로마황제 카를 5세가 로도스섬을 쫓겨난 요한기사단의 본거지로 이 섬을 제공하고 나서부터 역사상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몰타는 가톨릭측의 대(對)투르크 이슬람의 최전선이 되어 유럽에서 모여든 기사의 군사활동 거점이 되었다.

투르크측의 공격도 세 차례나 시도되었는데 특히 1565년 술레이만 2세의 무장(武將) 무스타파 파샤에 의한 4개월에 걸친 공격은 유명하다. 몰타기사단의 지배는 2세기에 걸쳐 계속되었으며, 1798년 이집트 원정길에 오른 나폴레옹이 이 섬을 점령하자 기사단은 로마로 달아났다. 몰타의 전략적 중요성에 눈을 돌린 영국은 1800년 H. 넬슨을 보내어 섬을 점령하고 1814년 파리조약에 의해 영토로 삼았다. 1921년 부분적 자치가 인정되었으며 1961년 신헌법을 채택하여 1964년 독립하였다. 1971년 영국과의 상호방위원조협정을 파기하고 1974년에는 대통령제를 채택하였다.

몰타의 정치
1814년 파리조약 뒤 지중해의 요충지로서 영국 통치 아래에 있었으나, 제2차세계대전 뒤에는 차츰 자치체제로 옮겨가 1964년 9월 21일 영국연방 가맹국으로 독립해 1979년 3월 영국군이 완전히 철수했다. 독립 뒤의 정세는 불안정하여 노동당과 국민당 두 정당 간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두 당의 세력은 거의 팽팽했으나, 1971년 이후 반영(反英)·반나토(NATO)의 노동당이 정권을 잡아 특히 리비아와의 우호증진을 꾀하면서 경제원조를 받았다. 중국·러시아·동유럽 여러 나라와도 국교를 추진하여 비동맹 중립 입장에 섰다. 이에 반해 국민당은 친(親)서유럽 노선을 취해 두 당의 지지자 사이에 격렬한 대립상태를 보였다.

1987년 5월 총선거에서는 1916년 만에 국민당 정권이 부활했으나 1996년 11월 총선거에서 승리한 노동당 신정권은 NATO와의 협정에 조인한 <평화를 위한 파트너십>을 탈퇴하고 유럽연합(EU) 가맹 신청 동결을 표방했다. 1998년 9월 총선거에서 야당인 국민당이 승리, EU에 가입했다.

대통령(5년 임기)을 국가원수로 하고, 행정부의 장(長)은 총리로서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한다. 의회는 단원제이며 정원은 65석, 의원은 비례대표제의 보통선거에 따라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다. 지방행정체는 없다. 영국연방 외에도 유럽의회·국제연합·국제통화기금(IMF) 가맹국이다. 2002년 12월 유럽연합 가입을 승인받아 2004년 회원국 지위를 얻게 되었다.

몰타의 경제
영국군이 철수하자 군사기지 의존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용 트럭의 용도전환을 비롯하여 경공업·관광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였다. 1984년에 준공된 새로운 독(dock)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부다비의 자금원조 및 중국의 기술원조로 이루어졌다. 몰타는 인구과잉인데다가 자원이 부족하고 공업입지 조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조선·선박수리업이 발달되어 있는 것 외에는 뚜렷한 산업이 없다. 외화수입원은 주로 관광업이다. 섬유·식품가공업 진흥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농업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농산물은 토마토 등 일부 가공식품을 수출하나, 곡류·육류는 수입에 의존한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이탈리아·독일·영국·미국·프랑스 등이다.

몰타의 주민
인구는 몰타계가 96%, 영국계 2%, 이탈리아계가 2% 미만을 차지한다. 공용어는 몰타어와 영어, 이탈리아어도 통용된다. 주민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이며, 학교교육을 맡는 교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도량형은 오랫동안 영국식이었으나 현재는 미터법으로 바뀌었다.

몰타와 한국과의 관계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 한국은 1965년, 북한과는 1971년 수교했다. 2001년 대한수입액은 5104만 달러, 대한수출액은 3억 1197만 달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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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사의 사탑 (斜搭)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는 한때 제노바 베네치아와 어깨를 견줄 만한

       국제적인 해운도시였다고 한다.
       입구 부터 고풍스런 모습으로 다가온 피사사탑
       37도의 무더위도 아랑곳 않고 관광객들로 붐빈다.


 




        13세기 말부터 제노바와 베네치아에 눌려 지내다가 
        16세기 들어 토스카나공국의 대학도시로 부활했는데, 
        당시 피사대학 의학부에는 갈릴레이가 재학 중이었다.
        지금은 해안선을 볼 수 없어 해운도시로서의 옛 자취는 찾을 길 없고
        대신 대성당과 사탑을 중심으로 한 광장에서 옛 영화를 더듬어 볼 수 있다.



         피사의 두오모광장은 대성당을 중심으로 기적의 광장이라 부른다.
         두오모(Duomo)를 독일어로는 Dom, 영어로는 Dome이라 하는데,
         중세 때 대성당을 뜻하는 말이다.



         그 유명한 사탑과 두오모 피사의 사탑(Torre di Pisa)은
         1174년에 건축을 시작, 1350년에 완성되었으며 건축하는데 무려 176년이나 걸렸다.
         지금은 피사의 사탑으로 더 유명하지만

         원래는 대성당의 종탑으로 건축된, 207개의 흰 대리석 기둥을 세운 8층 탑이다.
         공사 중에 지반이 침하하여 탑이 기울자 잠시 공사를 중단한 적도 있다.



         갈릴레이가 ‘낙하의 법칙’을 실험한 이 탑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5년에 1명 꼴로 사람들이 투신 자살한다고 한다.


 

         테라스까지 293개의 계단이 나 있는데, 안내원을 동반하면 오를 수 있다.
         1시간 마다 30명씩 오를수 있는데,
         미리 예약해야 하는걸 잊어 멀리서 바라보는것 만으로 만족해야 되었다.

         갈릴레이의 자유낙하실험이 행해진 곳으로도 유명하지만,
         실제 그 실험을 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시몬 스테판인가 하는 사람이고
         갈릴레이가 직접 그 실험을 했다는 건 속설에 불과하다.



        건물이 똑바로 서있지 않고 약간 비뚤어져 있다는 것,
        그 이유 하나만으로 피사의 사탑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중 하나가 되었다.
        덕분에 고작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고향 정도였을 
        이탈리아의 피사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해마다 1mm씩 기울고 있다,
         아니다 이제는 더이상 기울어지지는 않는다.
         1990년부터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실시,
         44cm가량 기울기를 줄인 뒤 2001년부터 관광객을 다시 맞이 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 현재 상태만으로도 중심축에서 10도 가량 기울어있고,
         건물 꼭대기를 중심으로 보면 4m 가량 중심축에서 벗어나있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8층 건물로, 높이는 약 55m이고 지름은 약 16m인 원통형 건물이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294개의 나선형계단을 걸어올라가야 한다.
         재미있게도 종루에 있는 종이 모두 7개인데 제각기 다른 음을 낸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두오모 성당(Duomo)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068년에 착공하여
         50년동안 공사한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068년에 착공하여
         50년동안 공사한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1063년 피사가 팔레르모 해전에서 사라센의 함대를 격파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건축가 G.부스케토의 설계로 착공하여 1118년에 봉헌되었으나

        그 후 건축가 라이날도에 의해 신랑부가 서쪽으로 연장되고 돔이 얹혀 졌으며
        정면이 착공되어 13세기에 완성되었다.


 




        이 건물은 이태리의 로마네스크 양식 중에서도 특히
        피사 양식이라 불리는 대표적 양식으로
        라틴 십자가의 직사각형 설계에 교차부에는 돔을 얹었다.
        외벽의 토스카나-로마네스크 양식의 수평 무늬가 건물 전체를 감싸는 느낌을 주며
        정면 2층 이상의 롬바르도-로마네스크 양식의 열주랑이 다른 성당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함을 준다.









 

 

        세례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2층 건물로 1153년 지어졌으며 내부지름은 35m로 이루어져 있다.


 



 



 



 



 



 



 



 



 


 



 






 




tgsong35@hanmail.net" target="_blank"> 

아프리카 최 남단 케이프 타운

2009.04.27 11:13 | 여 행 지 탐 방 | 우당

http://kr.blog.yahoo.com/seojh0606/990684 주소복사

아프리카 남아공 케이프타운을 아시나요

 

 

케이프 타운은 케이프주의 주도()이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의회가 있는 입법부 도시이다.
행정부가 있는 프리토리아와 더불어 도시의 지위를 나누어

분담하고 있다.




2010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세계의 해안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케이프 반도




1652년 얀 반 리벡(Jan Van Rie beeck)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보급 기지를 건설한 것그 후 영국계

식민활동의 기점이 되었다
이 케이프 타운의 시초가 되었다.




케이프 타운 뒤에는 테이블 마운틴(1,087m)과 라이온즈헤드가 있으며

앞에는 천연의 항(港)이 자리하고 있다 
지중해성 기후로 1월 평균기온 20.3℃, 7월 평균기온 11.6℃이며,

연 강우량 526mm로 겨울인 5~8월에 비가 많다.
주민의 약 35%가 백인이며 유럽풍의 대도시 경관을 이룬다.




아프리카 속의 지중해 유럽
남아프리카공화국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케이프 타운에 어둠이 내리고,

거리의 조명들이 더욱 빛을 발할 쯤,
테이블마운틴에 조명이 쏘아지면 황홀함이 극치를 이룬다.




아침이 되면 산책하기 좋은 온화한 유럽의 한 도시로 변한다.




개척시대 부터 세워진 유럽풍의 건물들과 잘 정리된 거리,
그리고  현대화 된 고층빌딩들 속에 사람들의 활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아담한 단층 건물들이 푸른 녹음과

어울려 지중해 유럽의 한 곳에 온 듯한 인상을 준다.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으로 세계적인 관광 도시이며,

유럽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곳 중 하나다.




연간 강우량은 산 정상이 1,525㎜, 산기슭이 526㎜로 아래쪽보다

정상쪽에서 식물의 성장이 활발하다
난(蘭) 실버트리 등의 식물이 많이 분포하며 데이지는 250여

종에 이른다. 야생 번식한 히말라야타르가 서식한다.




케이프 타운의 유명한 명소인 테이블 마운틴 ,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연결 되어있다
그 외에도 산을 오르는 여러코스와 방법이 있다
1503년 안토니오 데살다냐가 최초의 등정에 성공하였으며, 등정하기

좋은 시기는 10월∼3월이다.




많은 여행객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는 이곳 케이프 타운도 한때는

각축장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17세기 이후 유럽열강들이

자신들의 영토확장을 위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그로인해 소외된 원주민들이 생기고, 흑백갈등의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평화와 안정으로 정착되었다.




지중해 기후와 비슷하고 하얀색 집들이 많은 케이프 타운은
각국의 부호들이 이곳에 별장을 마련하고 여유로운 휴가를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2010월드컵이 열리는 남아공, 케이프 타운도 그 10곳의 구장(球場)

한곳이다 케이프 타운은 유럽인이 정착을 해서 건물과 주변도로 등이

서구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어 아프리카 보다는 유럽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기도 하며 국제도시의 분위기를 한층 업 시킨다.




상.하 모두가 케이프 타운의 아름다운 도시이며,
주변의 빼어난 자연 경관과 더불어, 다양한 해양 생태계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곳이 바로 케이프 타운이다.

 

 

~중국의 비경 천자산 !!
  














































 

     조금만 걸어 나가도 바다가 보이는 베네치아

  자칫 걸음을 가누지 못하면 길가다가 바다에 빠질 수도 있는 물의 도시..

 

이른 아침에 본토에서 베네치아를 연결하는 방파제로 만들어진 다리

'리베르타교'를건너 산타루치아 역을 향해 철교를 건너고 있는 경전철,

 


 

멀리 베네치아를 연결하는 방파제로 만들어진 다리 '리베르타교'와 수상택시 



 

이른 아침의 스는 도깨비시장 하나 '저건 뭐에요?'하고 물어보고 싶은 생선이 있었는데

마음만 굴뚝 같은데 뭘해,,, 입이 짧아서



 

우리네 아귀같이 생겼는데



 

시가지로 들어서면 베네치아는 또 다른 얼굴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차도가 없어 비좁은 길은 굽이굽이 미로처럼 펼쳐진다.







 

바포레토라고 하는 수상버스를 탔다.
산 마르코광장이 있는 주도(主島)로 가는 수상버스로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노선버스 1번인 셈이다.



 

노선번호를 달고 운항하는 이 배는, 특히 출근 시간에 타면 아주 활기찬 항구 도시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수상버스로 산 마르코 광장 근처 선착장에 도착하기까지는 마치 동화속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착각의 연속이다.



 

활기가 넘치는 리알토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산마르코스 정류장이 도착



 

두칼레 궁전이 보인다.





 

대 종 루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이 뒤섞인 기념품상점은 활기가 넘친다..





 

산 마르코 광장, 북쪽, 로지아 건물의 일부,시계탑이다
14세기에 M, 콘두치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꼭대기에는 무어인 상이 있어서 커다란 종을 쳐 시간을 알린다.



 

베니스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화려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전성기를 말해주는 우아한 두칼레 궁전,

이 건물은 정교하고도 기하학적인 무늬 모양의 흰색과 분홍색 대리석으로 장식된 

베네치아 제일의 고딕건축물로 유명하다.



 

궁전은 일층과 이층 화랑까지 수 십 개의 기둥과
 아치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두운 실내 안에 들어서면 총독의 관저를 비롯하여
 의원들의 회의실이었던 각 방에 틴토레토와 베레노제, 카파치노 등
베니스의 유명한 화가와 조각자들의 작품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산 마르코 대사원 내려다본 두칼레 궁전

 




 

대종탑과 산 마르코 대사원 ,두칼레 궁전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유럽최고의 건축물, 산 마르코 성당(Basilica San Marco)



 

베네치아의 상징인 산 마르코 대사원은 마르코 폴로가 베니스를 출항하여
중국을 다녀온 후 동방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의
 복합적인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건물로 바깥과 내부까지 세밀한 모자이크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둥근 천장과 정면 꼭대기에 세워진 네 구의 금빛 찬란한
청동 마상이 있어서 사람들은 이곳을 황금의 바실리카 라고도 부른다.



 

둥글고 작은 돔과 종탑, 금빛으로 빛나는 모자이크로 치장된 산 마르코 대성당



 

약 천년전 성 마르코의 시신을 보관하기 위해 세워진 산 마르코 사원.





 

베네치아의 수호신 산 마르코의 상징, 날개 달린 사자 상




 

탄성을 자아내는 화려한 부조들은 물론이고,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 모자이크와 이국적인 느낌의 돔까지 정말 볼수록 장관이다.



 

정면의 섬세한 조각들이 내부의 모자이크화와 더불어 성서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면위의 모자이크화에는 사원의 창건 유래가 표현되어 있다.





 

둥근천장의 모자이크화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소재로 한것이다.
 팔라 도로 Pala d'Oro 는 성당을 대표하는 보물이다.

976년에 조성되어 그 후 복원공사를 거쳤다 보석이 박혀 있어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



 

내부에는 금박과 보석으로 치장된 “황금의 제단”은 압권이며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제단의 십자가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나폴레옹의 전리품으로 파리에 가 있는 것을 되찾아 더욱 유명해진 입구의 4두 청동마상,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것으로 기원전 400~200년경의 작품이라도 한다.

2000년넘게 버텨온 청동마상



 

입구 윗쪽에 있는 네 마리의 청동 말(복제품)









 

옛 베네치아릐 행정의 중심, 산 마르코 성당을 향해 불규칙하게 광장을 둘러싼 것이 정부 청사 건물이다.
성당을 등지고 오른쪽이 구청사, 왼쪽이 신청사다.



 

비둘기가 날고 음악이 흐르는 대광장
베네치아의 중심 산 마르코 성당 앞에 펼쳐진 광장은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산 마르코 성당에 올라, 내려다 본 산 마르코 소광장.

소광장 양쪽에는 바다를 향해 두 개의 기둥이 서 있고 기둥 위에는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사자 상이 올려져있다.

이 두 기둥은 마치 그림틀처럼 아드리아 해 위로 끝없이 펼쳐지는 시야를 절묘하게 조율시켜 준다.


 

날개 달린 사자 상은 베네치아의 수호신 산 마르코의 상징이다. 오른쪽이 "성테오도르상"이다.

다음은 베네치아를  조망할수 있는 대종루를 올라갈 예정이다. -가람-


BillyVaughn_Mexican_Pear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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