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이나라 어진 백성들 에게 평안의 축복 누리게 하소서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우당 (seojh0606)
프로필     
 인기도 :
 이 블로그 점수주기
전체 글보기(8281)
인 사 / 소 개
又 堂 작품방2
동양화 갤러리
서양화 갤러리
수채화 / 기 타
서예 / 사군자
아름다운 풍경
내가 찍은사진
동영상 스크린
지구촌 이야기
골 프 / 스포츠
꽃 과 란 향 기
여 행 지 탐 방
비 가 오 네 요!
눈내리는 풍경
분 위 기 찻 집
좋 은 글 모 음
우 당 일 기
님들의사랑방
건강/동의보감
손 맛 과 입 맛
전통/역사/인물
주변과 이웃들
익 살 쉼 터
각 종 자 료 방
설문
오늘 전체
방문자 273 1317571
구독자 0 555
댓글 0 15212
참조글 2 297
최근 댓글 전체보기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
감사히 모셔갑니다..
예쁘게 담아 갑니다..
오대산 단풍이...절정..
잘 보고갑니다^^ ..
최근 참조글 전체보기
명품벼루.먹방벼루(화석..
만추의 자연을 노래하며
fioricet
잘못된 태극기의 역사.
헬부른 궁전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
2009 12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다녀간 블로거 더보기
- ┗ㅇ│힛┓
- chp2000usa
- Angelo
- 나나
- chhee0127
 즐겨찾기
 즐겨찾기 글모음
개설일 : 2004/04/04
 

 

여러장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몰타(Malta)
이탈리아와 리비아 사이 지중해에 위치한 섬으로 이루어진 공화국. 정식명칭은 몰타공화국(Repubblika Ta'Malta). 중심섬 몰타를 비롯하여 고초·코미노·코미노토·필플라의 5개 섬으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코미노토와 필플라는 무인도이다. 몰타섬의 면적은 246㎢, 5개 섬의 총면적은 316㎢. 인구 40만 420명(2003). 수도는 발레타인데 4번째로 큰 도시이며, 최대도시는 슬리에마로 모두 몰타섬에 있다.

몰타의 자연
침강에 따라 형성된 평탄한 지형으로, 몰타섬의 최고점은 해발고도 240m 정도이다. 몰타섬은 남동부가 높고, 서쪽을 향해 완만하게 경사져 있으며 북부와 남동부 고지대 사이에 명료한 단층선을 볼 수 있다. 지질은 주로 고지대가 산호성의 석회암, 저지대가 글로비게리나(부유성 유공충의 1종)성 석회암으로 되어 있으며, 토지의 생산성은 좋지 않다. 동부 해안선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육지의 돌출부를 사이에 둔 그랜드항(港)과 말삼세트항은 발레타 시가가 발달해 있는 천혜의 좋은 항구이다. 기후는 따뜻하고 비가 적으며 연평균기온은 18℃이다. 대체로 바람이 강하고 습도가 높다. 토양이 메마르고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야생식물은 많지 않다.

몰타의 역사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몰타는 역사시대에 들어서 페니키아·카르타고·그리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BC 218년 로마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 뒤 16세기에 이르기까지 몰타의 역사는 시칠리아와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9세기 후반부터 11세기 말까지 계속된 이슬람세력의 지배로 인구가 적은 몰타는 시칠리아보다 더욱 큰 영향을 받아 아라비아어계의 몰타어가 형성되었다. 1530년 신성로마황제 카를 5세가 로도스섬을 쫓겨난 요한기사단의 본거지로 이 섬을 제공하고 나서부터 역사상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몰타는 가톨릭측의 대(對)투르크 이슬람의 최전선이 되어 유럽에서 모여든 기사의 군사활동 거점이 되었다.

투르크측의 공격도 세 차례나 시도되었는데 특히 1565년 술레이만 2세의 무장(武將) 무스타파 파샤에 의한 4개월에 걸친 공격은 유명하다. 몰타기사단의 지배는 2세기에 걸쳐 계속되었으며, 1798년 이집트 원정길에 오른 나폴레옹이 이 섬을 점령하자 기사단은 로마로 달아났다. 몰타의 전략적 중요성에 눈을 돌린 영국은 1800년 H. 넬슨을 보내어 섬을 점령하고 1814년 파리조약에 의해 영토로 삼았다. 1921년 부분적 자치가 인정되었으며 1961년 신헌법을 채택하여 1964년 독립하였다. 1971년 영국과의 상호방위원조협정을 파기하고 1974년에는 대통령제를 채택하였다.

몰타의 정치
1814년 파리조약 뒤 지중해의 요충지로서 영국 통치 아래에 있었으나, 제2차세계대전 뒤에는 차츰 자치체제로 옮겨가 1964년 9월 21일 영국연방 가맹국으로 독립해 1979년 3월 영국군이 완전히 철수했다. 독립 뒤의 정세는 불안정하여 노동당과 국민당 두 정당 간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두 당의 세력은 거의 팽팽했으나, 1971년 이후 반영(反英)·반나토(NATO)의 노동당이 정권을 잡아 특히 리비아와의 우호증진을 꾀하면서 경제원조를 받았다. 중국·러시아·동유럽 여러 나라와도 국교를 추진하여 비동맹 중립 입장에 섰다. 이에 반해 국민당은 친(親)서유럽 노선을 취해 두 당의 지지자 사이에 격렬한 대립상태를 보였다.

1987년 5월 총선거에서는 1916년 만에 국민당 정권이 부활했으나 1996년 11월 총선거에서 승리한 노동당 신정권은 NATO와의 협정에 조인한 <평화를 위한 파트너십>을 탈퇴하고 유럽연합(EU) 가맹 신청 동결을 표방했다. 1998년 9월 총선거에서 야당인 국민당이 승리, EU에 가입했다.

대통령(5년 임기)을 국가원수로 하고, 행정부의 장(長)은 총리로서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한다. 의회는 단원제이며 정원은 65석, 의원은 비례대표제의 보통선거에 따라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다. 지방행정체는 없다. 영국연방 외에도 유럽의회·국제연합·국제통화기금(IMF) 가맹국이다. 2002년 12월 유럽연합 가입을 승인받아 2004년 회원국 지위를 얻게 되었다.

몰타의 경제
영국군이 철수하자 군사기지 의존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용 트럭의 용도전환을 비롯하여 경공업·관광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였다. 1984년에 준공된 새로운 독(dock)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부다비의 자금원조 및 중국의 기술원조로 이루어졌다. 몰타는 인구과잉인데다가 자원이 부족하고 공업입지 조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조선·선박수리업이 발달되어 있는 것 외에는 뚜렷한 산업이 없다. 외화수입원은 주로 관광업이다. 섬유·식품가공업 진흥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농업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농산물은 토마토 등 일부 가공식품을 수출하나, 곡류·육류는 수입에 의존한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이탈리아·독일·영국·미국·프랑스 등이다.

몰타의 주민
인구는 몰타계가 96%, 영국계 2%, 이탈리아계가 2% 미만을 차지한다. 공용어는 몰타어와 영어, 이탈리아어도 통용된다. 주민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이며, 학교교육을 맡는 교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도량형은 오랫동안 영국식이었으나 현재는 미터법으로 바뀌었다.

몰타와 한국과의 관계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 한국은 1965년, 북한과는 1971년 수교했다. 2001년 대한수입액은 5104만 달러, 대한수출액은 3억 1197만 달러이다.

댓글쓰기

댓글쓰기 입력폼

포스트 목록 닫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