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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3/30
 

ChichenItza











Pyramid at chichenitza














Chichenitza Playball











A Walking Tour of Chichen Itza: Chichen Itza, one of best known archaeological sites of the Maya civilization, has a split personality. The site is located in the northern Yucatan peninsula of Mexico, about 90 miles from the coast. The south half of the site, called Old Chichen, was constructed beginning about 700 AD, by Puuc Maya emigres from the southern Yucatan. The Puuc built temples and palaces at Chichen Itza including the Red House (Casa Colorada) and the Nunnery (Casa de las Monejas). The Toltec component of Chichen Itza arrived from Tula about 950 AD and their influence can be seen in the the Osario (the High Priest's Grave), and the Eagle and Jaguar Platforms. Most interestingly, a cosmopolitan blending of the two created the Observatory (the Caracol) and the Temple of the Warriors.

The Wall of Skulls is called the Tzompantli, which is actually an Aztec name for this kind of structure, because the first one seen by the horrified Spanish was at the Aztec capital city of Tenochtitlan.

The Tzompantli structure at Chichen Itza is a Toltec structure, where the heads of sacrificial victims were placed; although it was one of three platforms in the Great Plaza, it was according to Bishop Landa, the only one for this purpose--the others were for farces and comedies, showing the Itza's were all about fun. The platform walls of the Tzompantli have carved reliefs of four different subjects. The primary subject is the skull rack itself; others show a scene with a human sacrifice; eagles eating human hearts; and skeletonized warriors with shields and arrows.

Photo taken in February 1986 on Kodachrome 64 film with a Minolta SLR camera and Vivitar 70-150 zoom. Scanned 2005. Photo by: Jim Gateley. Text Copyright 2006: K. Kris Hirst, About.com used with permission. A list of references used for this project is available for further reading on Chichen Itza. 







★ 참고하세요 " 마야 탐행기 ...  http://kr.blog.yahoo.com/schuschu208/5867

Map : http://www.worldmapfinder.com/Map_Earth.php?ID=/Kr


■시대에 맞지 않는 이방인?



여러분들은 '오파츠'를 아시는가? 아마 대부분은 처음 접해 보는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오파츠(OOPATTS)란 Out of Place Artifacts의 약자로서, 그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인공적인 가공 출토물을 뜻하는 오컬트 학계의 전문용어다.



이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유명한 동물학자인 아이반 샌더슨(Ivan Sanderson; 1911~1973)으로서 그의 1967년도 저서인 "초청받지 않은 방문자-한 생물학자가 본 UFO"에서 공식 언급이 되었다. 후에 '노아의 방주'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레니 노바겐' 등에 의해 인간이 살지 않았던 또는 원시문명이었을 때의 지층이나 물건에서 발견된 인공구조물의 총칭으로 널리 쓰이게 된다. 아직 이해가 안되는 분들을 위해 더 부언 설명을 하자면, 공룡시대 때의 지층에서 밥그릇이 나오거나, 선사시대 때 현재의 기술로도 만들 수 없는 물건이 출토되는 현상을 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진귀한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오파츠들은 그 생성 시기에 따라 제1종 오파츠와 제2종 오파츠로 구분짓는데, 제1종은 약 10만년 전 이상의 것을 지칭하고, 제2종은 10만년 이하에서 몇 천년 전까지의 것을 말한다.



■설명할 수 없는 출토물



중국에서는 매우 순도 높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허리띠 장식물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을 조사한 과학자들은 그것이 거의 2천년 이상 된 것이라 발표했으며, 19세기에 와서야 개발된 전기 도금이 4천년전 이집트와 이라크의 장식품에 쓰여졌던 것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사진설명: 삼엽충을 밟은 인간 발자국 화석)



오파츠 중 의외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람의 발자국 화석이다. 1959년 고비 사막에서의 발자국 화석 발견을 필두로 1968년에는 삼엽충을 밟아 찌그러뜨린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어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으며, 그 뒤에도 영국의 원더미아 호수와 미국의 네바다주 광산에서도 잇달아 발견이 되었다. 특히 68년도 발견은 캄브리아 시대부터 생존해온 대표적인 고생물 삼엽충과 같이 출토되었기에 오파츠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공룡과 같이 발견된 것도 있다. 텍사스의 파럭시 강의 강바닥에서 디노사우르스 공룡의 발자국과 함께 찍힌 인간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발자국이 발견될 때부터 큰 논쟁거리를 제공하였다. 3개의 발가락이 있는 디노사우루스 공룡의 발자국과 인간의 발자국이 한곳에 있다는 것은 전통적인 지질학자들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자...그렇다면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묻어두고 무시할 것인가?



늘 말했듯이 이건 과학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니다. 내가 해결 못하면 후세 사람들이라도 해결 할 수 있게 그 기틀이라도 세우려고 노력하며 자료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지금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요 과학적인 사고 방식이란 소리다.



■사라지는 오파츠들



이런 오파츠와 관련하여 최근 흥미있으면서도 가슴 아픈 기사가 외신을 타고 날아 들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 세계 언론은, 그 나라의 유물까지 파괴하는 미국의 무식함을 질타하면서, 매우 우려스러운 소식 하나를 전한 적이 있는데, BC2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배터리 전지가 공습으로 소실될 우려가 있다는 뉴스였다. (문화일보 2003-02-28, 고대 인류최초 배터리 사라지나, 윤성혜기자)



(사진설명: 이라크 항아리 전지 내부도와 실제 모습)



그 전지는 오파츠 분류상 제2종 오파츠로서, 18세기의 '갈바니'나 '볼타'가 만든 전지와 구조가 완전히 똑같은 항아리 전지인데, 1937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의 남서쪽 교외 언덕에서 약 2000년전의 고대 바르티아 유적으로부터 점토로 만들어진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당시 발굴책임자였던 독일 학자 빌헤름 퀘니히 박사는 함께 발굴된 동으로 된 원통과 철봉 등을 관찰한 결과, 이것은 전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항아리 안에는 구리로 만든 실린더와 철사가 들어 있었고, 그 입구는 역청으로 봉해져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산성 물질의 한 종류를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퀘니히 박사는 그것을 전기라고 생각하여 산성 용액에서 실험을 해 본 결과 1.5~2V의 전류를 띄고 있다는 것을 밝혀 냈다.



발견된 후에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건 정말 놀라운 발견이다. 이렇게 귀한 인류의 보물이 이기심에 가득찬 석유 전쟁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으니 세계 각국의 문화계 인사와 의식있는 사람들로서는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진설명: 직접 전압 측정 실험을 하고 있는 일본 TV 화면)



그 뒤로 이 전지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접할 수 없었으며, 추측컨데 이라크 국립박물관이 약탈되었을 때 사라졌거나 파괴되었을 공산이 매우 클 것이다.



하지만 더 문제되는 것은, 오파츠의 중요성을 모르는 인류의 무지에 있다. 오파츠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가 더 심해진다면 제2, 제3의 바그다드 전지 같은 또 다른 희생양이 속출할 것이며, 우리 인류는 선조들이 남겨놓은 비밀 창고의 열쇠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실수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후세에게 있어 우리의 행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씻을 수 없는 범죄 행위로 낙인찍히게 된다는 것. 바로 이 점을 우리는 두려워 해야 한다.





[오파츠2] 고대인의 전투기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오파츠(OOPATTS)란 무엇이며, 어떤 것들이 있는지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번회에선 학자들에 의해 지금까지 정리된 오파츠 분류?그 실례를 보며 하나 하나씩 실체에 접근해 보기로 하자.





(사진: 비행선으로 추정되는 고대인의 황금 세공품)



남미 콜롬비아에 있는 기원전500-800년경 시누문명의 유적으로부터, 길이 약 6㎝, 폭 약 5㎝, 높이 약 1.5㎝의 새와 같은 모양을 한 황금 비행선이 여러개 발견되었다. 동물학자인 '아이반 샌더슨' 박사는 이 황금 세공물에서 기계적인 속성을 처음 언급하였는데, 이 기이한 물건은 한눈에 봐도 날개라 생각되는 삼각 주날개와 수평 꼬리날개, 수직 꼬리날개가 있고, 풍향계, 조종석, 엔진의 공기흡입구까지 보이고 있다. 왜 이런 금속 가공물을 동물학자가 감놔라 배놔라 했냐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부언 설명을 드리자면, 이 황금 세공물은 콜럼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황금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것으로서, 황금 기념물로 치면 세계 제1의 박물관이지만 연구가 미진한 관계로 각 진열품에 설명이 붙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황금 세공물 역시 간단하게 "동물 형태물"이라고만 되어 있을뿐 아무런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았기에, 동물학자인 샌더슨 박사가 연구를 하게 됐던 것이다.



세계 최초의 로켓 비행사로 유명한 '잭.A.울리치'는 이 황금 셔틀을 처음 본 순간 "비행사의 직감으로 이것은 그냥 비행기가 아니라 초음속기를 연상케 하며, 그것도 전투기 종류일 것"이라 지적했다.



그 후 뉴욕 항공연구소 '아서 포이슬리' 박사를 비롯한 연구원들이 더 조사를 한 후 "이 모형은 항공역학의 이론대로 만들어진, 델타 날개의 제트 전투기이거나, 미국의 콜럼비아호 같은 로켓식 스페이스 셔틀의 모형이다"라고 발표를 했다.



인류가 동력식 비행기를 처음 발명한 건 초등학생도 다 아는 '라이트 형제'에 의해 1903년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그보다 수천수만년전에 만들어진 이 황금 비행선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 옛날에도 인류는 비행기로 하늘을 날았다는 이야기인가?



하늘을 나는 물건은 이것만 발견된 것이 아니다. 1898년 이집트의 '사카라' 교외의 분묘에서 새를 닮은 목제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당시 '새'로 분류되어 이집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약 8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1969년 '칼리르 메시하'라는 학자에 의해 새롭게 주목받게 되었는데, 이것은 새를 본딴 단순 모형이 아니라 무화과 나무로 만들어진 글라이더였다는 것이 비행 실험결과 밝혀졌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다음에 소개하는 이 사진이다.



사진: 아비도스 신전 내부의 벽화)



나일강 서안에 있는 고대 이집트 유적인 아비도스(Abydos)의 신전에서 발견된 이 벽화들은 역사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들이 보아도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일별할 수 있을 정도로 현대의 운송수단과 꼭 닮아 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정말 그들은 하늘을 날기라도 했단 말인가?



(사진: 신전에 새겨진 각 운송수단과 현대의 비슷한 기종 비교)





[오파츠3] 만5천년전 항공지도



몇천년 전에 이미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몇억년 전 공룡들이 사람하고 나란히 산책했다는 지금까지의 얘기만으로도 글쓰는 필자나 보시는 독자분들이나 안 그래도 해골이 복잡한데, 여기 색다른 해골 사진 하나 보여 드리도록하겠다.





사진: 1935년 벨리즈의 마야유적지에서 발견된 수정해골)



■고대인들의 놀라운 세공 기술



이깟 수정으로 만든 해골이 뭐가 대단해서 소개하냐고 하겠지만, 수정의 경도는 모스 경도로 7도다. 다이아몬드가 10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보통의 칼로는 표면에 상처 하나 낼 수 없는 대단한 경도가 아닐 수 없다. 즉, 요새의 첨단 기술로도 수정을 이렇게 완벽하게 해골 모양으로 깎을 수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이런 해골들이 현재 발견된 것만 30여개 정도나 되며, 그 기원은 최소한 마야 문명 이전이니 고고학자나 과학자들로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제2종 오파츠 되겠다.



1927년 미첼 헤지스 박사에 의해 마야 고대도시 루바안탄 유적에서 첫 발굴 된 후 지금까지 몇몇 해골들을 과학적인 분석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수정 해골들은 단 한 개의 수정으로 만들어졌으며 더 기가막힌 사실은 수정의 결, 즉 자연으로 생성된 축을 무시하고 가공됐다는 것이다. 현대의 기술로도 자연축을 무시하고 수정을 가공하면 균열이 생기거나 쪼개지기 마련인데, 마야 문명 또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미지의 인간들은 그들만의 숨겨진 기술로 이 수정해골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고대인들의 놀라운 '깎기' 기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1930년 중미 코스타리카의 디키스 지방에서 벌채중이던 미국의 과일회사 인부들은 바나나농장을 개간하러 갔다가 놀라운 물건들과 조우하게 된다. 100여개가 훨씬 넘는, 돌로 깎은 원구를 발견했던 것이다



사진: 중미 코스타리카에서 발견된 거대한 석구 중 하나. 재질은 대부분 화강암으로서 완전 진구(眞救)에 가깝다)



석구들은 크기도 각양각색으로 작은 것은 테니스 공만한 것에서부터 큰 것은 약 2.4m에 무게만도 20톤이 넘는 어마어마한 것도 있었다. 1940년에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 박물관 연구팀이 직접 가서 조사를 했는데, 이 석구들은 현대의 기술로도 불가능에 가까운 완전 진구(眞救)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배치 또한 어떤 것인지 모를 기하학적인 표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석구들의 소재인 화강암은 그 근처에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고, 화강암 산지가 가까워 봤자 거기에서 약 50km정도 떨어진 디카스 강 하구에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강가에서 돌을 운반한다쳐도, 크레인으로 트럭에 싣는 것도 불가능할 뿐 더러 그 먼 거리의 밀림을 헤치고 가져온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된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었다. 대체 이 원구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던 것일까? '미개한' 우리 현대인들은 무엇하나 알아내지 못한 채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신기한 원구를 그저 넋놓고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아직 넋을 놓지 마시라. 더 입 벌어지는 오파츠가 기다리고 있으니, 밑에 있는 지도 한 장이 바로 그것이다.



■수수께끼의 고대 지도



한 시대와 문명의 발달을 알아보는 척도 중 하나는 지도 제작술이다. 지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여타 주변 과학이 어느 정도 발달 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종합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는 측량술, 항공술, 교통의 발달, 운송수단의 첨단화 등이 총체적으로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예술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원래 지도의 기원을 알 수 없는 필리 레이스 지도)



제1차 세계 대전 후인 1929년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불의 궁전에서 양피지에 그려져 있는 지도 두 장이 발견되었다. 1513년 작성이라고 기록된 한 장에는 스페인, 서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의 동해안이 그려져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1528년 제작된 것으로서 그린랜드, 캐나다 일부, 북아메리카 동해안이 그려져 있었다. 이 지도의 제작자는 16세기 터키 해군의 제독인 필리 레이스(레이스는 선장이라는 뜻)였다. 이 지도는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 사람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경위도선도 없고 몇 개의 작은 원형과 거기에 방사선이 무수하게 그어져 있을 뿐 육지 그 자체의 모양이 비뚤어진 곳들이 많아서 지도로서의 기능을 과연 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부정확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한채 그렇게 잊혀져 갔다.



그런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이 고지도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내었다. 미국의 고지도 학자 '앨링턴 맬러리'는 터키 국립박물관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채 잠자고 있던 이 희한한 지도를 꺼내어 다시 연구를 하기 시작했는데, 지형이 비뚤어져 있는 바로 그 이유는 놀랍게도 '정거방위도법'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정거방위도법'이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공군에 의해 개발된 군용 항공 지도 제작법으로서, 이 작도법에 의해 만들어진 지도는 지구의 둥근 구면 위를 날아가는 항공기에서 알아보기 쉽도록 제작된 것이 특징이었다. 즉 지형이 공중에서 볼때처럼 눈에 비친 그대로 비뚤어지게 그려 넣은 지도인 것이다.



해안선의 조그마한 돌출부, 강입구, 섬, 내륙의 고원, 산맥 등의 소재나 지형을 옛날 사람들이 실제 그대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난관을 거쳐야 한다. 첫째는 18세기 '오일러 방정식'으로 유명한 오일러에 의해 완성된 '구면삼각법(球面三角法)'이라는 기하학적 지식을 알아야 하고 또 한가지 난제는 항공기나 인공 위성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지도에는 지도의 작성년도인 16세기에서 300년이나 지난 후에 확인된 남극대륙이 그려져 있으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지도에 구현된 남극대륙의 해안선이 현재와는 전혀 다르다는데에 있다. 이 지도에서 남극의 빙설이 덮혀있지 않은 부분의 넓이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지도에 나타난 지구의 나이는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1만 5천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얘기다. 필리 레이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X라는 고지도(古地圖)들을 보고 이 지도를 작성했으며, 그 지도의 한쪽에 자신이 참고했던 X라는 고지도들, 즉 20여장의 고지도와 콜럼부스가 항해할 당시 사용했다는 한 장의 지도를 언급해 놓았다.



과연 이 지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작성될 수 있었던 이 지도는 대체 어떻게 그 오랜 옛날에 제작 되었던 것일까? 필리레이스와 콜럼부스가 참고해서 만들었을 그 원래의 X라는 고지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러한 오파츠들의 궁금증을 풀길은 정녕 없는 것인가?



■풀리지 않은 오파츠의 신비



(사진: 이집트 하트홀 신전의 조명기구 그림.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는 지하1층 G실27, 29 벽면에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우리는 지금껏 고대와 선사시대 이전부터 내려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이한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소개못한 오파츠들은 무궁무진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선가는 발견되거나 잠들어 있을 것이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피라밋 안에서 어떻게 작업을 했을까하는 궁금증을 풀어주는 하트홀 신전의 조명기구 그림, 기원전 1세기경 침몰한 그리스 선박에서 발견된 고대의 컴퓨터 안티키테라의 기계, 현대의 기술로도 제작이 불가능한 인도 뉴델리 시내 한복판의 녹슬지 않는 철기둥, 고대 앗시리아에서 제작된 광학 수정렌즈, 기원전 2500년전에 만들어진 멕시코의 공룡 토우 등 현대의 과학으로 설명할 길 없는 수많은 오파츠들이 한맺힌 원혼처럼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뉴델리의 철기둥, 그리스 침몰선의 안티키테라 기계, 멕시코의 공룡 토우. 특히 맨 우측의 공룡토우에는 사람이 타고 있어 공룡과 사람이 한 시대에 살았다는 최근의 학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문화를 너무 얕잡아 보고 있거나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의 문명이 일직선상으로 계속 발전된다는 그릇된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인해 우리의 사고방식이 경직되어 가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천년전의 고려청자를 아직도 구현해 낼 수 없는 우리가 아닌가?



우리가 알고 있던 고대문명과는 전혀 기원을 달리하는 또 다른 계통의 문명이 지구상의 어딘가에서 오래전에 번성하여 우리들보다 먼저 지구를 탐험하고 하늘을 날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여유로운 사고방식....그것은 각박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또 다른 지혜일 것이다.

 

[스크랩] 인류역사에 대한 도전-바다에 잠겨있는 고대 유적

2006.06.26 19:55 | 고대문명. | 바람

http://kr.blog.yahoo.com/sd961219/8002 주소복사

인류역사에 대한 도전-바다에 잠겨있는 고대 유적
해저 유물의 주인공들은 문자를 알고 있었고, 피라미드를 건설 한 발달한 문명 소유

 

과학부 기자 science_all@epochtimes.co.kr

 

▲ 이집트 고대문자

지구는 46억 년 전에 생겨났다고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인간 이전의 영장류는 신생대 4기의 빙하기에 비로소 출현했는데 그 때가 대략 180만 년 전 일이다.

몇몇 과학자들은 화석을 연구하여 인류의 사회활동과 문화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야 나타났는데 그때가 약 1만 2천년 전이라고 본다.그러나 처음 7천년 동안, 즉 석기시대에는 이들의 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한다.

문자와 상징체계의 기록이 5천년 전에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이 시대 이전 즉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 시대를 사람들은 선사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해저에서 건져 올린 점점 더 많은 선사시대 유적들이 위와 같은 견해에 도전하고 있어서 과학자들은 당황하고 있다.

해저 유적 중 건축물들은 정교한 건축 기술과 예술적 기교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발달된 문명의 흔적을 보여준다.게다가 그 문명의 주인공들은 문자를 알고 있었으며 피라미드를 건설하기도 했다.

현대의 과학기술로 보면 그곳이 1만년 혹은 그 이전에는 육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석기시대 훨씬 이전의 선사시대에 발달된 문명이 존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문명들은 사라졌고 바다 속에는 그 유적만 남았다. 아래에서 이들 문명이 존재했다는 몇 가지 증거들을 살펴보자.



지중해 연안에서 발견한 해저도시

이집트 해안 근처 해저에서 고고학자들이 거의 완전히 폐허로 변한 고대도시의 유적들을 찾아냈다. 2,000년 6월에 프랑스와 이집트 연합팀은 1,000여 년 전에 가라앉은 메누티프와 헤라클레이온이라는 도시를 알렉산드리아에서 6km정도 떨어진 지중해 해저에서 발견했다.

가발라 이집트유물최고회의 의장인 가발라 알리 씨는 "무덤이나 교회 또는 이슬람 사원을 발굴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지만 이번에 우리가 발굴한 것은 옛날 그리스-로마시대 문헌에서나 들었던 완전한 도시들이었기에 우리는 대단히 흥분하였다."라고 말했다.

파리에 본부를 둔 유럽 해양고고학연구소 소장인 프랭크 고디오 씨는 "아마 그것들은 지진 때문에 사라졌던 것 같다. 지진으로 지중해의 해수면의 갑자기 상승했다가 가라앉았거나 아니면 기후의 변화가 그 도시들의 멸망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 도시에는 세라피스, 이시스, 오시리스 신들에게 바쳤던 수많은 사원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부와 예술이라는 면에서도 고대의 전설이었다. 해저에서 건져 올린 정교하게 조각된 키 1.5m의 검은 이시스 여신상을 매스컴에 공개하면서 고디오씨는 "나에게는 그녀가 17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마 1,200 살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2년에 걸친 해저탐사에서 파라오(고대 이집트 왕) 동상의 머리, 수염을 기른 세라피스 신상, 스핑크스 상, 전체 길이가 90m나 되는 고대 로마풍의 기둥, 화강암 석상, 비잔틴 제국 시대나 이슬람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금화와 그 밖에 가옥이나 사원, 이시스 여신을 모신 신전의 흔적도 발견하였다.

고고학자들은 이 도시들이 가라앉기 수백 년 전부터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발굴한 금화로 볼 때 이 지역들은 적어도 8세기까지는 물속에 가라앉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지역에서 카노푸스와 토니스라는 수몰된 다른 두 도시를 확인하였다.

이렇게 해저로 가라앉은 고대도시들을 전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하였다. 이집트의 이 도시들은 약 1,200년 전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보다 훨씬 오래된 해저도시들도 발견하였다.



버뮤다 삼각지대의 수중피라미드와 바하마제도의 해저 건축물

1958년에 몇몇 미국의 과학자들이 바하마제도 주위의 바다 속을 탐사하던 중 이상한 건축물들을 발견했다. 이 건축물들은 특이한 기하학적 양식이었는데 수 마일이나 곧바로 뻗어 있었다. 10년 후에 길이가 120m에서 150m에 이르는 거대한 돌 벽들을 그 근처에서 발견하였다.

이 벽들은 주요 벽과 함께 직각을 이루었으며 주요 벽은 한 면이 1평방피트 이상인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이후에 복잡한 연단, 도로, 항구, 다리 등과 같은 것들을 발견하였다. 이 전체 유적들이 마치 항구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유럽과학자들은 버뮤다 삼각지대를 조사하던 중 예전에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수중 피라미드를 발견했다. 그 피라미드는 한 변이 300m, 높이는 200m였다. 피라미드에는 사람이 만든 것이 분명한 거대한 구멍이 두 개 있었다.

바닷물이 이 구멍으로 밀려 들어와서 회오리치며 밀려나와 피라미드 근처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그 소용돌이가 해수면을 구름모양으로 만들었다. 육지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것은 수 만년 이전 일이기 때문에 이 피라미드를 언제 만들었는지 추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본 요나구니 섬 해저에서 발견한 상형문자

약 50년 전에 몇몇 잠수부들이 류큐 군도에 있는 요나구니 섬 남단의 바다 속에서 인간이 만든 건축물 유적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산호로 뒤덮인 사각형 모양 건축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거대한 연단이었다. 모퉁이, 통로, 계단, 아치형 부속 건축물을 갖춘 연단이었다. 그 유물은 고대도시의 제단과 비슷하게 생겼다. 길이는 동서로 약 200m, 남북으로 약 140m에 이르렀다.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약 26m 정도였다.

1986년에 그 지역 잠수부들은 이 해저 도시를 “해저유적 잠수지역”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곳은 여러 언론 매체들이 보도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그 유적을 발견한 직후에 류큐 대학에서는 “해저고고학탐사대”를 결성하여 8년간에 걸친 연구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 결과 시후나 섬 남쪽과 인근 지역 바다 속에서 더 많은 유물을 발견하였다.

그 유물들로는 돌로 만든 건축물, 기둥에 둘러싸인 동굴 같은 건축물, 사람의 머리상, 아치형 문, 기하학적 도형의 거북이 상 등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발견은 “상형문자”였다. 그 상형문자들은 돌 벽에 새겼는데 고도로 발달한 어느 고대인류문명이 후세에 남긴 것으로 보인다.

위 유적지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를 살펴보면 거리와 농경지가 있다. 가장 큰 유적은 길이가 100m에 이르고 높이는 25m나 되는 거대한 바위 구조물이다. 류큐 대학에서 컴퓨터로 합성한 모형에 의하면 그곳은 아마 고대인들이 모여 종교의식을 거행한 사원의 제단인 것 같다고 한다. 그 사원 북쪽에는 반원형 지주가 있는 두 동굴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그곳이 의식을 거행하기 전에 목욕을 한 장소라고 보고 있다. 그 사원 동쪽에는 거대한 바위 두 개가 겹쳐있는 아치형 문이 있다. 그 바위 상단에는 사람이 만든 직사각형 구멍이 있다. 그 바위는 기계로 깎았으리라고 추정할 정도로 정교했으며 그 도시의 주춧돌로 사용했던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요나구니 섬 남쪽의 유명한 리센얀 주위의 바다 속에서 사람의 머리상을 발견하였는데 안면 특징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 후에 그 거대한 인간의 머리상 근처에서 상형문자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그 해저 유적을 건설한 사람들이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마사키 기무라 씨는 류큐 대학 지질학 교수이다. 그는 1999년 9월 어느 인터뷰에서 “그 유적들이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통로와 직각계단이 있고 이 직각계단에는 돌기둥을 세우기 위하여 디자인한 듯 둥근 구멍이 있는 바위가 있다. 인간의 머리상과 상형문자를 발견하였다는 것은 요나구니 섬 남쪽의 해저 유적이 바다 속으로 침몰되기 전에는 지상에 존재했던 선사문명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하겠다.



일본에서도 발견한 해저 피라미드(1만 년 전)

요나구니 섬 남쪽은 물론 서쪽에서도 중요한 유적을 발견하였다. 1990년에 잠수부들이 바위로 만든 거대한 피라미드를 발견했다. 이 피라미드는 폭이 183m, 높이가 27.43m였는데 직사각형 바위로 만들었고 5층으로 되어 있었다. 근처에는 이 거대한 피라미드와 비슷한 작은 건축물들도 몇 개 있었는데 소형 피라미드라고 할 만했다. 그런 소형 피라미드들은 폭이 대략 10m, 높이는 약 2m인 돌 층으로 되어 있었다.

이 탐사에 참여한 류큐 대학의 지질학자들은 이 유적이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인조 건축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자연적으로 생겼다면 부식으로 인한 돌 더미가 있어야 하는데 주위에서는 돌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피라미드를 에워싸고 있는 거리라고 추측할 만한 흔적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자연적인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미국 보스톤 대학교의 지질학자 잠수팀은 1m 높이 바위 층으로 된 거대한 계단들이 계단식 피라미드와 흡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 구조물이 수중부식으로 깨진 바위들로 형성되었다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그렇게 예리한 계단은 이제까지 발견한 적이 없다. 런던대학교의 고고학자들은 그 피라미드를 만든 사람들은 적어도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인더스 문명과 같은 고대문명 수준이라고 믿었다.

도쿄 대학의 한 지질학 교수는 그 지역이 약 1만 년 전 즉 마지막 빙하시대에 바다 속으로 침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과학지식으로 이해한다면, 그 시기 인류는 아직 동물을 사냥하며 생활하던 원시인이었다. 그런 원시인들이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물들을 축조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알려지지 않은 어떤 문화의 유산이라고 본다. 혹자는 그런 진보된, 번창한 문명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는지 궁금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해저 유물들이 일본에만 존재할까? 그렇지 않다.



대만 펑후에 있는 고대 해저도시 벽

펑후 현의 고대 사료보관소 기록을 보면 “후징 지역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바다 속에 길게 뻗어있는 도시의 벽을 볼 수 있다.”라고 나와 있다. 예전에 사람들은 그곳을 “후징의 깊은 물웅덩이”라고 불렀다. 1982년에 전문 잠수부들이 후징의 침몰된 도시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

이 고대의 도시 벽은 십자 모양이었다. 나침반으로 측정한 결과 그 벽은 정확하게 동서남북 방향을 향하여 직각을 이루었다. 그 벽은 주로 현무암으로 만들어졌고 표면은 해초로 덮여 있었다. 길이는 동서 약 160m, 남북 약 180m에 이르렀다. 두께는 상단부가 약 1.5m, 바닥이 약 2.5m이다. 어떤 부위는 부식하여 평평하지 못했으나 돌 사이의 연결 부분은 대단히 견고했다. 북쪽에 둥근 판 모양 건축물이 있었다. 바깥쪽 벽의 직경은 약 20m이고 안쪽 벽은 약 15m였다.

그 당시에 몇몇 사람들은 그 가라앉은 도시는 후징 지역이 바다 속으로 뻗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질학자들이 연구한 바로는 만약 그 벽이 천연 바위로 형성된 것이라면 깨지지 않은 하나의 바위로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사람이 만든 벽이라면 분리된 부분들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벽이 길고 일직선이라면 사람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하였다.

특히 돌들이 거의 같은 크기이고 직각을 이루었으며 연결한 돌들 사이에는 틈을 메운 흔적들이 보였다. 또한 벽 상단의 우묵한 부분은 십자 모양이었고 평평하고 매끄러운 연결부가 있었다. 이런 것들은 오늘날의 건축표준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영국인 작가 그레이엄 헨콕은 “신들의 지문” 등과 같은 저서를 통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8월 그는 이 지역을 탐사하는 중국과 일본의 조사대에 아내와 함께 합류했다. 그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도시에서 건져 올린 돌 건축물들은 천연 석조물들과는 확실히 달라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 건축물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그런 구조물들이 세부적인 곳까지 엄청난 주의를 기울여 만든 것으로 보아 그것들은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분명하게도 후징의 해저도시에 있는 돌 벽은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이 돌들은 표면이 매우 평평하고 매끄러웠다. 그 돌들을 매우 밀접하게 일직선으로 연결해 놓아서 연결부위는 아주 얇은 나이프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헨콕의 견해로는 이 해저 돌 벽은 자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말하기를 “현재 인간사회에는 이미 확립된 학설이 있다. 그러나 이 학설로는 최근에 발견한 고고학적 유물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늘날과 선사시대의 건축물들이 서로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까? 사실 현재의 역사는 사라진 고대문명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건축물들이야말로 사라진 고대문명을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단서들이다. 다시 말하면 후징의 해저도시나 유사한 유물들이 과거 인간문명에 대한 숨은 증거를 담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전설적인 무 대륙의 문명

19세기 말에 영국의 제임스 처치워드 대령이 인도에서 수비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어느 힌두교 사원의 수도원장에게서 나칼비문(주: 인도의 무 대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점토판 비문)을 입수하였다.

그 비문은 매우 난해한 언어로 되어 있었다. 많은 노력 끝에 처치워드와 한 유명한 수도승이 전설로만 존재하던 위대한 무 문명의 역사를 밝혀내었다. 1926년에 처치워드는 무 문명에 대해 기술한 <잃어버린 대륙(The Lost Continent)>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 비문을 보면 무 대륙은 태평양에 위치해 있었다. 무 문명은 매우 번성하여 높은 수준의 문학, 예술, 공예기술, 기계류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놀라운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거대한 건물, 피라미드, 석조 기념비, 성, 도로 등을 건설할 수 있었다. 무 대륙의 수도와 다른 큰 도시에서 단정하고 깨끗한 돌로 만든 도로를 발견하였다. 모든 벽은 금으로 장식하였다. 사람들은 호화스럽게 생활했다.

무 대륙에 살던 사람들은 항해술이 아주 뛰어났다. 그들은 모든 대양을 항해했다고 했다. 그들은 강력한 식민지 제국을 건설하기까지 했다. 그 당시에 무 제국을 “세계문화의 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번창했던 무 대륙은 일시에 사라졌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지각변동으로 무 대륙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 엄청난 비극은 격렬한 화산 용암분출에 이은 강진, 태풍과 함께 시작하였고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발생했다. 육지는 파도처럼 소용돌이쳤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모든 것이 장난감처럼 무너졌고 즉시 용암과 바다 물이 이를 덮어버렸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무 대륙은 태평양속으로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전설로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보면 인간문명이 존재했다는 가능성을 알 수 있다.

해저 유적은 선사문명이 존재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교과서에서는 아직 그런 것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현대의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현존하는 역사적 지식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도전은 현재의 이론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과 지구의 역사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이런 명백한 역사적 증거들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더 깊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권오봉、정훈 기자

가드너의 지구 공동설(空洞說)


지구의 속이 비어있다는 지구 공동(空洞)설은 중세 철학자 브루노(Bruno 1548 - 1600)가 처음 주장하였으며, 그 후 핼리 혜성을 발견한 핼리(1692년), 스위스의 고등수학자 오일러, 1906년 미국의 윌리암 리이드(William Reed)에 의해서도 주장되었다. 마샬 가드너(Marshall B. Gardner)는 보다 신빙성있는 자료로 1920년 그의 저서 「지구 내부로의 여행」에서 지구는 내부가 꽉 찬 구체가 아니고 텅 비어있으며, 또한 지구내부에 한 개의 중심태양이 있고, 그 안에 고도의 문명을 가진 세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가드너 등이 주장하는 지구공동설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지구 또는 별은 대폭발후 시뻘건 불덩이가 소용돌이 회전운동을 하여 탄생한 것이다. 이때 회전 원심력에 의해 무거운 물질들은 지구의 바깥 쪽으로 쏠려 두껍고 딱딱한 지각을 형성하며, 속은 텅빈 형태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태풍이 회전할 때 가운데가 비는 것, 도자기를 빚을 때 회전틀에서 도자기 속이 비게 되는 것, 수세식 양변기에서 물이 소용돌이 치며 내려갈 때 중앙에 동공이 생기는 것 등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지구의 자전속도는 매시간 1600㎞, 초당 27㎞가 넘는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으므로, 만약 지구 속이 암반과 지층으로 가득차 있다면 지구는 자전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야 한다. 더욱이 반 알렌(Van Allen)이 발견한 지구를 둘러싼 방사능 복사띠 즉
반 알렌대가 북극과 남극이 뻥 뚫린 도넛형이라는 사실도 지구 공동설을 뒷받침한다(반 알렌대는 지구모습이 투영된 그림자와 같다).

그리고 1950년 5월 칠레 대지진, 1964년 5월 앵커리지 대지진등 당시 대지진의 충격으로 지구라는 행성자체가 거대한 종이 울리듯 울리는 현상이 관측된 것도 지구 속이 비었다는 증거다.

<참고> 반알란대

사람 하나하나는 각자가 고유한 전자기의 몸체를 갖고 있으며, 다른 개체인 전자장과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지구 또한 자기적 에너지 체이다.

지구의 자전은 지구에 대한 태양의 자기에너지의 상호 작용 때문이다. 태양 흑점의 변화나 달의 조수의 변화가 인간의 의식과 생물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이와 같이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이 모두 전자기장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구자기장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지구자기장은 막대자석 처럼 남극과 북극을 가지고 있는데(반알렌대), 이 양극이 서로 뒤바뀌는 현상이 자기장의 역전이다.

 

많은 학자들은 실제로 지구 뿐 아니라 달, 화성, 금성 등 모든 행성이 속이 비어있다고 말한다. 아폴로 12, 14호는 이미 운석이 충돌할 때마다 달이 거대한 종처럼 울려서 속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밝혀 내었다. 그리고 최근 허블 천체망원경으로 촬영된 화성의 극지(極地)부분에 구멍이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의 저명한 UFO 접촉자인 프랭크 스트랜지스 박사는 이러한 정보들(지구, 달, 화성의 속이 비어있고 지하문명이 존재한다는 정보)을 NASA와 미정부의 수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으나 은폐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구 내부의 중심에는 하늘 한가운데에 내부 태양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원시지구의 불덩어리 일부와 빛을 내는 물질 일부가 남아 텅빈 지구 내부의 중심태양이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대과학으로 풀지 못하고 있는 남.북극의 오로라 또는 극광(極光 : 극지 부위가 밝게 보이는 현상) 현상은 지구 내부태양의 반사현상이며, 각 혹성에서 관측되는 극광현상도 바로 이 중심태양의 빛이 새어나온 결과이다.

지구를 포함한 모든 혹성의 양극 부위에는 행성 형성당시의 자전운동의 결과로 생겨난 공동(空洞)으로 통하는 구멍이 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지구의 중력은 지구 가운데 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외각 또는 표피 내부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설명: 인공위성이 촬영한 구멍이 뚤려있는 북극)

실제로 1968.11.23 인공위성 ESSA 7호가 찍은 북극사진에는 이상하게도 구멍이 뻥 뚫려있는 북극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그런데 지하세계로 통하는 입구가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은 특수한 에너지로 된 4차원 방호막에 의해 가리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장막은 1년에 몇 번씩 열린다고 하며, 지하세계로의 통로는 극구멍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대륙과 해중(海中)에 약 8개가 있다고 한다.

지구 공동설의 보다 구체적인 증거로는 새나 동물들이 겨울철에 오히려 북쪽을 향해 이동하는 사실, 북극의 어느 한계를 지나면 날씨가 도리어 점차 따뜻해지는 사실, 북쪽에서 흘러오는 일련의 난류와 따뜻한 바람, 열대 식물의 종자나 싱싱한 봉우리가 달린 나뭇가지가 북쪽에서 밀려와 바다에 떠있는 현상, 북극 바다에 뜬 담수 빙산, 북극으로 갈수록 코끼리, 거북, 악어 등을 비롯한 열대동물이나 파충류가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는 사실, 북극 하늘에 해면이나 육지가 비치는 현상, 북위 82도 이북에선 콤파스의 지침이 정상상태를 잃고 계속 이동하는 현상 등을 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남극과 북극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어 지표와 지구 속을 연결한다는 것이다.

97.1.16 국내 각 일간지에는 AP연합통신발 기사로 미국과 러시아가 지난 40여년간 군사목적으로 130만회에 걸쳐 수집한 북극바다에 관한 비밀정보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미국과 러시아가 공개한 이 비밀정보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북극해의 물이 그린랜드와 노르웨이 북단사이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통로인 이른 바 ‘굴뚝’이 있다. 이 ‘굴뚝’은 폭이 수㎞ 밖에 안되고 지속시간도 짧아 열려져 있는 순간을 포착하기 어려우나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벌어졌다 오므라졌다 하는 개폐운동을 한다.」

이 기사는 북극바다 밑에 지구 속과 지구 밖이 통하는 입구인 ‘물굴뚝’이 실제 개방되어 있으며, 북극해의 조수가 이 구멍을 통해 일정한 주기를 갖고 지구 속과 지구 밖으로 뒤바뀐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공식 확인해 준 것이다. 지구공동설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지표밑 수백 ㎞의 지구 중심부에서 94.10월부터 간헐적으로 미 우주항공국으로 복잡한 수학적 암호로 된 전파(송신문)를 보내오고 있다는 사실이 NASA 소식통을 인용, 외신과 국내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95.12.17 스포츠 서울). 이것은 지하세계의 고지능 생명체가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하며, 과학자들이 이 암호를 푸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문제는 지구과학으로는 지하세계로 전파(회신)를 보낼 수 있는 기술이 없는 반면에, 지하세계에서 수백 ㎞의 지반과 암반을 통과하여 지표로 전파를 보낸 문명세계는 지구보다 훨씬 기술이 발달한 수준에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전파를 보낸 주체는 우리를 잘 알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그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도 당혹해하고 있다.

이상의 설명을 통해 여러분은 지구 속 문명세계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이제는 어느 정도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부터다. 실제 과거 우리 인류중에 이 지구 속으로 여행하거나 지구 속에서 살다가 나온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몇천년 전에 이미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몇억년 전 공룡들이 사람하고 나란히 산책했다는 지금까지의 얘기만으로도 글쓰는 필자나 보시는 독자분들이나 안 그래도 해골이 복잡한데, 여기 색다른 해골 사진 하나 보여 드리도록하겠다.



(사진: 1935년 벨리즈의 마야유적지에서 발견된 수정해골)

■고대인들의 놀라운 세공 기술

이깟 수정으로 만든 해골이 뭐가 대단해서 소개하냐고 하겠지만, 수정의 경도는 모스 경도로 7도다. 다이아몬드가 10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보통의 칼로는 표면에 상처 하나 낼 수 없는 대단한 경도가 아닐 수 없다. 즉, 요새의 첨단 기술로도 수정을 이렇게 완벽하게 해골 모양으로 깎을 수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이런 해골들이 현재 발견된 것만 30여개 정도나 되며, 그 기원은 최소한 마야 문명 이전이니 고고학자나 과학자들로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제2종 오파츠 되겠다.

1927년 미첼 헤지스 박사에 의해 마야 고대도시 루바안탄 유적에서 첫 발굴 된 후 지금까지 몇몇 해골들을 과학적인 분석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수정 해골들은 단 한 개의 수정으로 만들어졌으며 더 기가막힌 사실은 수정의 결, 즉 자연으로 생성된 축을 무시하고 가공됐다는 것이다. 현대의 기술로도 자연축을 무시하고 수정을 가공하면 균열이 생기거나 쪼개지기 마련인데, 마야 문명 또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미지의 인간들은 그들만의 숨겨진 기술로 이 수정해골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고대인들의 놀라운 '깎기' 기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1930년 중미 코스타리카의 디키스 지방에서 벌채중이던 미국의 과일회사 인부들은 바나나농장을 개간하러 갔다가 놀라운 물건들과 조우하게 된다. 100여개가 훨씬 넘는, 돌로 깎은 원구를 발견했던 것이다.



(사진: 중미 코스타리카에서 발견된 거대한 석구 중 하나. 재질은 대부분 화강암으로서 완전 진구(眞救)에 가깝다)

석구들은 크기도 각양각색으로 작은 것은 테니스 공만한 것에서부터 큰 것은 약 2.4m에 무게만도 20톤이 넘는 어마어마한 것도 있었다. 1940년에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 박물관 연구팀이 직접 가서 조사를 했는데, 이 석구들은 현대의 기술로도 불가능에 가까운 완전 진구(眞救)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배치 또한 어떤 것인지 모를 기하학적인 표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석구들의 소재인 화강암은 그 근처에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고, 화강암 산지가 가까워 봤자 거기에서 약 50km정도 떨어진 디카스 강 하구에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강가에서 돌을 운반한다쳐도, 크레인으로 트럭에 싣는 것도 불가능할 뿐 더러 그 먼 거리의 밀림을 헤치고 가져온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된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었다. 대체 이 원구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던 것일까? '미개한' 우리 현대인들은 무엇하나 알아내지 못한 채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신기한 원구를 그저 넋놓고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아직 넋을 놓지 마시라. 더 입 벌어지는 오파츠가 기다리고 있으니, 밑에 있는 지도 한 장이 바로 그것이다.

■수수께끼의 고대 지도

한 시대와 문명의 발달을 알아보는 척도 중 하나는 지도 제작술이다. 지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여타 주변 과학이 어느 정도 발달 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종합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는 측량술, 항공술, 교통의 발달, 운송수단의 첨단화 등이 총체적으로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예술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원래 지도의 기원을 알 수 없는 필리 레이스 지도)

제1차 세계 대전 후인 1929년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불의 궁전에서 양피지에 그려져 있는 지도 두 장이 발견되었다. 1513년 작성이라고 기록된 한 장에는 스페인, 서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의 동해안이 그려져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1528년 제작된 것으로서 그린랜드, 캐나다 일부, 북아메리카 동해안이 그려져 있었다. 이 지도의 제작자는 16세기 터키 해군의 제독인 필리 레이스(레이스는 선장이라는 뜻)였다. 이 지도는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 사람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경위도선도 없고 몇 개의 작은 원형과 거기에 방사선이 무수하게 그어져 있을 뿐 육지 그 자체의 모양이 비뚤어진 곳들이 많아서 지도로서의 기능을 과연 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부정확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한채 그렇게 잊혀져 갔다.

그런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이 고지도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내었다. 미국의 고지도 학자 '앨링턴 맬러리'는 터키 국립박물관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채 잠자고 있던 이 희한한 지도를 꺼내어 다시 연구를 하기 시작했는데, 지형이 비뚤어져 있는 바로 그 이유는 놀랍게도 '정거방위도법'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정거방위도법'이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공군에 의해 개발된 군용 항공 지도 제작법으로서, 이 작도법에 의해 만들어진 지도는 지구의 둥근 구면 위를 날아가는 항공기에서 알아보기 쉽도록 제작된 것이 특징이었다. 즉 지형이 공중에서 볼때처럼 눈에 비친 그대로 비뚤어지게 그려 넣은 지도인 것이다.

해안선의 조그마한 돌출부, 강입구, 섬, 내륙의 고원, 산맥 등의 소재나 지형을 옛날 사람들이 실제 그대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난관을 거쳐야 한다. 첫째는 18세기 '오일러 방정식'으로 유명한 오일러에 의해 완성된 '구면삼각법(球面三角法)'이라는 기하학적 지식을 알아야 하고 또 한가지 난제는 항공기나 인공 위성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지도에는 지도의 작성년도인 16세기에서 300년이나 지난 후에 확인된 남극대륙이 그려져 있으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지도에 구현된 남극대륙의 해안선이 현재와는 전혀 다르다는데에 있다. 이 지도에서 남극의 빙설이 덮혀있지 않은 부분의 넓이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지도에 나타난 지구의 나이는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1만 5천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얘기다. 필리 레이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X라는 고지도(古地圖)들을 보고 이 지도를 작성했으며, 그 지도의 한쪽에 자신이 참고했던 X라는 고지도들, 즉 20여장의 고지도와 콜럼부스가 항해할 당시 사용했다는 한 장의 지도를 언급해 놓았다.

과연 이 지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작성될 수 있었던 이 지도는 대체 어떻게 그 오랜 옛날에 제작 되었던 것일까? 필리레이스와 콜럼부스가 참고해서 만들었을 그 원래의 X라는 고지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러한 오파츠들의 궁금증을 풀길은 정녕 없는 것인가?

■풀리지 않은 오파츠의 신비



(사진: 이집트 하트홀 신전의 조명기구 그림.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는 지하1층 G실27, 29 벽면에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우리는 지금껏 고대와 선사시대 이전부터 내려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이한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소개못한 오파츠들은 무궁무진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선가는 발견되거나 잠들어 있을 것이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피라밋 안에서 어떻게 작업을 했을까하는 궁금증을 풀어주는 하트홀 신전의 조명기구 그림, 기원전 1세기경 침몰한 그리스 선박에서 발견된 고대의 컴퓨터 안티키테라의 기계, 현대의 기술로도 제작이 불가능한 인도 뉴델리 시내 한복판의 녹슬지 않는 철기둥, 고대 앗시리아에서 제작된 광학 수정렌즈, 기원전 2500년전에 만들어진 멕시코의 공룡 토우 등 현대의 과학으로 설명할 길 없는 수많은 오파츠들이 한맺힌 원혼처럼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뉴델리의 철기둥, 그리스 침몰선의 안티키테라 기계, 멕시코의 공룡 토우. 특히 맨 우측의 공룡토우에는 사람이 타고 있어 공룡과 사람이 한 시대에 살았다는 최근의 학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문화를 너무 얕잡아 보고 있거나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의 문명이 일직선상으로 계속 발전된다는 그릇된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인해 우리의 사고방식이 경직되어 가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천년전의 고려청자를 아직도 구현해 낼 수 없는 우리가 아닌가?

우리가 알고 있던 고대문명과는 전혀 기원을 달리하는 또 다른 계통의 문명이 지구상의 어딘가에서 오래전에 번성하여 우리들보다 먼저 지구를 탐험하고 하늘을 날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여유로운 사고방식....그것은 각박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또 다른 지혜일 것이다.




[참고문헌]
시간이 없는 지구, 피터 콜로시모, 도서출판 조선, 1993
초고대여행, 박우인, 예예원, 1994
충격의 고대문명, 찰스 셀리어, 한뜻, 1997
2500년간의 수수께끼, 발터 외르크 랑바인, 글담, 1997
세계의 불가사의, 나이절 분델, 지학사, 1986
고대유적, 모리노 다쿠미, 들녘,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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