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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3/30
 

[스크랩] 화엄사 동오층석탑,서오층석탑

2006.08.10 00:48 | 국보, 보물 | 바람

http://kr.blog.yahoo.com/sd961219/8726 주소복사

원본 원본 : 운현이네집



화엄사 경내에 두개의 탑이 마당에 있는데 사진에서 좌측에 보이는 탑이 서오층석탑이고
우측이 동오층석탑이다.(각황전 위에서 찍은 사진)




각황전 위에서 내려다 본 서오층석탑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마산면(馬山面) 황전리(黃田里) 화엄사 대웅전 앞 쌍탑 가운데 서쪽의 통일신라시대 석탑. 높이 6.4m. 2중기단 위에 5층의 정사각형 탑신을 올리고, 기단과 초층 옥신을 조각으로 장식하였다. 지대석 위에 하대석과 중대석을 1석으로 만들고 방위에 따라 각 면에 3구씩 십이지신상을 새겼다. 갑석은 윗면에 각형(角形)과 호형(弧形)을 몰딩, 위층기단을 받쳤고 위층기단 중석은 각 면을 탱주(撑柱)로 2분하여 각각에 8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조각하였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가 각각 1석이며, 옥신에는 우주(隅柱)를 모각하였고, 특히 1층 옥신에는 사천왕상이 조식되어 있다. 옥개석은 층층에 5단의 받침이 있고 전각(轉角)이 경쾌한 반전을 보인다. 상륜부는 위에 2층의 단이 있는 노반(露盤)과 그 위의 보주로 구성된다. 석탑의 형태는 고준하면서도 상하의 체감비율이 잘 조화되어 우아한 기품을 지닌다. 뛰어난 솜씨의 조식과, 전체 조형에서 보이는 다소의 연약함 등으로 9세기 무렵 작품으로 짐작된다. 보물 제133호. 

  내용출처:야후백과    photo by :운현



 


photo by :운현

화엄사 의 탑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국보 제12호
화엄사 4사자 3층석탑 (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
화엄사 동 5층석탑 (華嚴寺東五層石塔) 보물 제132호
화엄사 서 5층석탑 (華嚴寺西五層石塔) 보물 제133호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 (華嚴寺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300호
화엄사 구층암 석등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화엄사 마당에서 각황전을 바로본 모습..석등과 사자삼층석탑이 보인다..
석등은 중앙에 원통전전사자답은 우측에 있고 계단 좌측 아래 서 오층석탑이 배치 되어 있다

대웅전에서 시작된 석축이 직각으로 꺾여 이어진 곳에, 현존하는 우리 나라 불전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각황전이 서 있다.
거대한 규모이면서도 안정된 비례에 엄격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위엄과 기품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빼어난 건축이다. 본디 이름이 장륙전(丈六殿)이었던 건물로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인 숙종 25년(1699) 공사를 시작하여 4년만에 완공되었으며, 공사의 마무리와 더불어 숙종으로부터 '각황전'(覺皇殿)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고, 사격 또한 더욱 높아져 선교 양종 대가람이 되었다. 현재 국보 제67호로 지정돼 있다.




계단을 오르면서 돌에서 느껴지는 세월...



계단을 다 오르면 원통전 전사자탑과 석등이 보인다..




화엄사 원통전전사자탑(보물300호)




이 탑은 절 안의 원통전 앞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독특한 석탑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절에서는 보통 노주(露柱)라고 부르는데,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며, 불사리를 모셔놓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 불가의 공양대(拱養臺)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基壇)은 2단으로, 아래층 기단은 무늬없는 석재로 구성된 소박한 모습이다. 이 탑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인 위층 기단은 각 모서리에 사자상을 놓은 모습이다. 사자들은 연꽃받침 위에 앉아 연꽃이 조각된 돌을 머리에 이고 있다. 탑신(塔身)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몸돌이 있다. 몸돌의 각 면에는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으며, 그 안에 신장상(神將像)을 조각하였다. 몸돌 위에는 1장의 판돌이 있는데, 밑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반구형의 돌이 솟아 있다.

위층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를 이용하여 만든 것은 이곳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것이나, 조각수법은 이에 못미처 이보다 훨씬 뒤인 9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국보 제12호)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마산면(馬山面) 황전리(黃田里) 화엄사 각황전 앞에 있는 석등. 높이 6.4m.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화강암석등으로 현존하는 석등 가운데 가장 크며, 부분적으로 균열이 있으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기본형은 8각(八角)이며 하대석 각면에 안상(眼象)이 조각되고 그 위에 귀꽃이 장식된 복련8엽(複蓮八葉)이 새겨졌으며, 윗면 얕은 굄위에 구름무늬[雲文]가 조각된 하단과 8각 소루형(小累形)인 상단에 2단의 간석(竿石) 굄이 있다. 간석은 고복석(鼓腹石) 형식으로 편구형(扁球形)이며 중심에 가로줄 2줄이 돌려지고 4개의 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간석 위에 단판(單瓣) 8엽의 연화(蓮華)가 수평으로 조각된 앙련석(仰蓮石)을 올렸고, 그 위에 소로형의 8각 화사석(火舍石) 굄이 있다. 화사석은 8각 1석으로 4면에 화창(火窓)이 뚫려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모서리마다 꼿꼿이 서고 큼직한 귀꽃이 달린 8각형으로 꼭대기에 8각제형(八角梯形)·8각주형(八角柱形)·8각앙련(八角仰蓮)·구름무늬복발형[雲文覆鉢形] 등이 층층이 놓이고 옥개석과 같은 형식의 작은 보개(寶蓋)가 놓였으며, 다시 높직한 보륜(寶輪) 위에 보주(寶珠)가 얹혔다. 간석 밑과 위의 비례가 맞지 않아 위쪽이 아래쪽에 비해 무거워 보여 둔중한 느낌을 준다. 국보 제12호.


화엄사 4사자삼층석탑 

(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






이사진은 검색으로 찾은 사진입니다.



이 탑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보고 서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주목되는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삼아 세워 놓은 구조로,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통일 신라 시대 화엄사 창건자인 연기 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고 하며, 각황전 옆에 위치한다 )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본떠 새기고, 양 옆으로 인왕상(仁王像), 사천왕상(四天王像),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평평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화엄사 구층암 석등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앞에 보이는 탑이 구층암 석등, 이사진은 검색으로 찾은 사진입니다.



탑의 높이는 2.43m이며 하대석과 간석, 상대석, 화사석, 옥개석 및 상륜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하대는 팔각으로 되어 있으며 각 면에 안상을 조각하고 복련대까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상대석에는 8장의 꽃잎으로 된 연꽃 장식이 있고 아랫면에는 일 단의 받침이 있다. 팔각형의 화사석은 네 면에 화창이 있다. 옥개석은 기와를 쌓아 올린 듯한 모양의 동마루와 귀끝 부분이 거꾸로 되어 있으며, 아랫면에 두 줄의 홈을 둘렀다. 안상과 연화무늬 등 각부 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PHOTO BY 운현/ 내용출처 :야후검색

화엄사 의 탑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국보 제12호
화엄사 4사자 3층석탑 (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
화엄사 동 5층석탑 (華嚴寺東五層石塔) 보물 제132호
화엄사 서 5층석탑 (華嚴寺西五層石塔) 보물 제133호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 (華嚴寺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300호
화엄사 구층암 석등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화엄사 마당에서 각황전을 바로본 모습..석등과 사자삼층석탑이 보인다..
석등은 중앙에 원통전전사자답은 우측에 있고 계단 좌측 아래 서 오층석탑이 배치 되어 있다

대웅전에서 시작된 석축이 직각으로 꺾여 이어진 곳에, 현존하는 우리 나라 불전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각황전이 서 있다.
거대한 규모이면서도 안정된 비례에 엄격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위엄과 기품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빼어난 건축이다. 본디 이름이 장륙전(丈六殿)이었던 건물로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인 숙종 25년(1699) 공사를 시작하여 4년만에 완공되었으며, 공사의 마무리와 더불어 숙종으로부터 '각황전'(覺皇殿)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고, 사격 또한 더욱 높아져 선교 양종 대가람이 되었다. 현재 국보 제67호로 지정돼 있다.




계단을 오르면서 돌에서 느껴지는 세월...



계단을 다 오르면 원통전 전사자탑과 석등이 보인다..




화엄사 원통전전사자탑(보물300호)




이 탑은 절 안의 원통전 앞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독특한 석탑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절에서는 보통 노주(露柱)라고 부르는데,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며, 불사리를 모셔놓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 불가의 공양대(拱養臺)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基壇)은 2단으로, 아래층 기단은 무늬없는 석재로 구성된 소박한 모습이다. 이 탑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인 위층 기단은 각 모서리에 사자상을 놓은 모습이다. 사자들은 연꽃받침 위에 앉아 연꽃이 조각된 돌을 머리에 이고 있다. 탑신(塔身)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몸돌이 있다. 몸돌의 각 면에는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으며, 그 안에 신장상(神將像)을 조각하였다. 몸돌 위에는 1장의 판돌이 있는데, 밑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반구형의 돌이 솟아 있다.

위층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를 이용하여 만든 것은 이곳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것이나, 조각수법은 이에 못미처 이보다 훨씬 뒤인 9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국보 제12호)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마산면(馬山面) 황전리(黃田里) 화엄사 각황전 앞에 있는 석등. 높이 6.4m.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화강암석등으로 현존하는 석등 가운데 가장 크며, 부분적으로 균열이 있으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기본형은 8각(八角)이며 하대석 각면에 안상(眼象)이 조각되고 그 위에 귀꽃이 장식된 복련8엽(複蓮八葉)이 새겨졌으며, 윗면 얕은 굄위에 구름무늬[雲文]가 조각된 하단과 8각 소루형(小累形)인 상단에 2단의 간석(竿石) 굄이 있다. 간석은 고복석(鼓腹石) 형식으로 편구형(扁球形)이며 중심에 가로줄 2줄이 돌려지고 4개의 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간석 위에 단판(單瓣) 8엽의 연화(蓮華)가 수평으로 조각된 앙련석(仰蓮石)을 올렸고, 그 위에 소로형의 8각 화사석(火舍石) 굄이 있다. 화사석은 8각 1석으로 4면에 화창(火窓)이 뚫려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모서리마다 꼿꼿이 서고 큼직한 귀꽃이 달린 8각형으로 꼭대기에 8각제형(八角梯形)·8각주형(八角柱形)·8각앙련(八角仰蓮)·구름무늬복발형[雲文覆鉢形] 등이 층층이 놓이고 옥개석과 같은 형식의 작은 보개(寶蓋)가 놓였으며, 다시 높직한 보륜(寶輪) 위에 보주(寶珠)가 얹혔다. 간석 밑과 위의 비례가 맞지 않아 위쪽이 아래쪽에 비해 무거워 보여 둔중한 느낌을 준다. 국보 제12호.


화엄사 4사자삼층석탑 

(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






이사진은 검색으로 찾은 사진입니다.



이 탑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보고 서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주목되는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삼아 세워 놓은 구조로,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통일 신라 시대 화엄사 창건자인 연기 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고 하며, 각황전 옆에 위치한다 )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본떠 새기고, 양 옆으로 인왕상(仁王像), 사천왕상(四天王像),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평평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화엄사 구층암 석등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앞에 보이는 탑이 구층암 석등, 이사진은 검색으로 찾은 사진입니다.



탑의 높이는 2.43m이며 하대석과 간석, 상대석, 화사석, 옥개석 및 상륜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하대는 팔각으로 되어 있으며 각 면에 안상을 조각하고 복련대까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상대석에는 8장의 꽃잎으로 된 연꽃 장식이 있고 아랫면에는 일 단의 받침이 있다. 팔각형의 화사석은 네 면에 화창이 있다. 옥개석은 기와를 쌓아 올린 듯한 모양의 동마루와 귀끝 부분이 거꾸로 되어 있으며, 아랫면에 두 줄의 홈을 둘렀다. 안상과 연화무늬 등 각부 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PHOTO BY 운현/ 내용출처 :야후검색

[스크랩] [제62호]금산사미륵전 (金山寺彌勒殿)

2005.10.26 19:28 | 국보, 보물 | 바람

http://kr.blog.yahoo.com/sd961219/6386 주소복사




종 목 국보 62호
명 칭 금산사미륵전 (金山寺彌勒殿)
분 류 사찰건축
수 량 1동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 금산사
시 대 조선 인조
소유자 금산사
관리자 금산사


※ 본문설명

모악산에 자리한 금산사는 백제 법왕 2년(600)에 지은 절로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가 다시 지었다.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지은 뒤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대한 미륵존불을 모신 법당으로 용화전·산호전·장륙전이라고도 한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1층과 2층은 앞면 5칸·옆면 4칸이고, 3층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지붕 네 모서리 끝에는 층마다 모두 얇은 기둥(활주)이 지붕 무게를 받치고 있다.

건물 안쪽은 3층 전체가 하나로 터진 통층이며, 제일 높은 기둥을 하나의 통나무가 아닌 몇 개를 이어서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웅대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며, 우리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3층 목조 건물로 잘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보충설명

금산사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창건된 대사찰로 신라 해공왕 2년(766)에 중창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현 건물은 조선 인조 13년 수문대사가 재건한 우리나라 유일의 3층 불전으로 용화전, 산호전, 장륜전이라고도 불리워진다.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팔작지붕 다포(多包)집으로 내부는 통층(通層)으로 되어 있다. 제일 높은 기둥이 하나로 된 통나무가 아니고 몇 토막을 이어서 만든 것이 특이하다.

이 특수한 가구방식(架構方式)은 목조탑파(木造塔婆)의 양식에서 번안(飜案)된 구조로 규모가 웅대하고 상부의 체감이 안정된 느낌을 준다.




보물 [寶物]

개요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서 국가가 법적으로 지정한 유형문화재.




본문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서 국가가 법적으로 지정한 유형문화재. 지정 대상은 목조건축·석조물·전적(典籍)·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고고자료·무구(武具) 등이다. 지정의 법적 근거는 문화재보호법에 명시하고 있으며, 지정 기준은 문화재보호법시행규칙에 의거한다. 지정 절차는 문화재보호법시행령에 의거하여 시장이나 도지사가 1차 조사를 실시하고 지정할 가치가 있으면 문화관광부장관에게 지정신청자료와 지정신청서를 제출한다. 지정조사는 문화재전문위원이나 관계전문가가 지정조사보고서를 작성하여 문화재위원회에 부의하여 심의 의결을 받아야 한다. 지정이 심의완결되면 문화관광부장관은 지정된 문화재를 관보에 고시하고 당해문화재의 소유자·관리자·점유자에게 통지하고 지정서를 교부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존에 필요한 경비를 보조할 수 있고, 지정된 문화재는 학자나 일반국민에게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소유자·관리자·점유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여야 하고 현상을 변경·이동·매매할 때는 문화관광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정 연혁을 보면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에 의하여 보물이 지정되었고, 8·15 뒤에도 이 법령의 효력을 계속 유지시켰다. 1955년 정부가 일제강점기에 보물로 지정된 419건을 일괄 국보로 승격시켰으며, 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 공포되고 이 법에 따라 국보와 보물로 분류, 지정하게 되어 63년 386건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국보와 보물의 차이점은 보물의 가치가 있는 것 중에서 시대를 대표하거나 가치가 으뜸인 것은 국보로 지정하였고, 보물은 보물지정기준에 의해 지정한 것으로 지정수도 국보보다 많다. 보물의 지정과 함께 그것을 보호하는 시설물을 보호물로, 주위의 일정구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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