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의 울프 독 -제 3 편-
나는 여름에 앞 시내에서 여러 종류의 민물 생선을
잡아서 겨울철 개들 식량용으로 말렸다. 그러나 생선 건조대에 곰이 자주 와서 다 털어 먹는 것을
여러 번 되풀이 하였다.
나는 참다 못해 이 곰을 잡기로 했다.
잠복 며칠만인 아침에 나타난 곰을 사격했지만 빗맞았다.
곰은 깊은 덤불로 도주하고 말았다.
나는 오두막으로 돌아와서 퀴니를 풀어서 곰을 쏜
현장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퀴니를 부상당한 곰이 들어간 덤불 속으로 투입했다.
곰 발자국 냄새를 쫓아 용감하게 덤불속으로 들어간 퀴니는
곧 곰을 발견하고 짖어댔다.
곰도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상당한 곰이 퀴니에게서 이탈하려고 덤불 속에서
원을 그리는 것이 느껴졌다.
곰은 귀찮게 쫓는 퀴니에게 위협적인 노성을 자주 질러댔지만
퀴니는 집요하였다.
곰이 만만치 않자 퀴니는 개처럼 짖던 소리를 이리처럼
길게 우는 소리로 바꾸었다. 삼십분 정도 쫓기던 곰은 퀴니가
계속 이리처럼 울며 위협하는 소리에 질려서 드디어 덤불 밖으로
몸을 들어냈다.
나는 한 발에 급소를 명중시켜 곰을 절명시켰다.
퀴니는 뒤 쫓아 나와 곰의 뒷발을 물고 흔들었다.
그리고 잡아 다니고 털을 물어 뜯어내고 꼬리를 흔들어대며
마치 자기가 곰을 잡은 것같이 과시했다.

퀴니가 쫓은 회색곰
----------------------------
퀴니에게 썰매개의 역할만 기대했던 나는 퀴니가 조상인 이리의
피를 받아서 사냥의 기술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그 뒤에 가끔 곰 같은 맹수를 사냥할 때 울프 독들을
사냥개로 동원했었고 그들은 나를 실망시킨 일이 없었다.
퀴니의 사냥 본능은 다른 개나 울프독들과도 출중하게 다른 것이었다.
퀴니는 특히 눈 토끼를 사냥하기를 좋아 했다.
다른 울프 독들은 그저 죽어라고 빠른 눈 토끼를 쫓다가
지치면 포기하곤 했지만 퀴니는 토끼의 달리는 방향을 눈 여겨 보다가
미리 숲을 가로질러가 목을 지켰다가 잡는 신기한 기술을 발휘했었다.

알래스카의 눈토끼
-----------------------------------------------
퀴니가 리더로서 썰매를 끌 때면 나는 어떤 눈보라나
야간의 극한 상황에서도 길을 잃을 염려를 하지 않았었다.
[썰매 여행자들이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는 조난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퀴니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고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위치 감각이 뛰어났다.
나의 새비지 강 오두막에서 가장 가까운 힐리 읍까지는
18마일이나 되었다.
내가 나에게 배달된 편지도 받고 필요한 물건도 쇼핑해 올 때면
힐리로 가는 1,200미터가 넘는 산맥의 고개를 넘어야 했다.
숲은 단지 600미터 선에서 끝나기 때문에 이 넒은 고개는
사방이 허허 벌판이었다
나의 울프 독들은 이 고개를 넘는 힐리에의 여행을
단 서너 시간 만에 해치우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였다.
때로 나의 썰매가 이 고개를 넘을 때는 기상이 갑자기 나빠져서
80-100 킬로의 속도로 눈 폭풍이 몰아칠 때가 있었다.
눈보라가 시야를 가려 썰매 개들의 선두에 선 퀴니의 모습조차
보이지가 않을 정도 있었다.
사방은 사납게 몰아치는 굉음뿐이었다.
바람에 썰매가 심하게 흔들렸고 때로는 바람에 썰매가
뒤집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과 시계 제로의 상황에서도
퀴니는 절대로 길을 잃는 법이 없었다.
이럴 때 개들이 갑자기 설 때도 있었다.
이것은 심한 눈 폭풍에 울프 독들 눈썹에 달라붙은
눈이 얼어 붙어서 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개들은 눈보라 속에서 정지하고 엎드려서
앞발로 눈을 문질러 얼어붙은 얼음을 떼어내려고 하였다.
나는 장갑을 벗고 선두 자리의 퀴니부터 다가가
눈썹에서 얼어붙은 얼음을 떼어내고 나머지 뒤의 개들도
얼음을 제거 해주고 눈을 뜨게 만들어 주곤 했다.
그리고 또 계속 달렸다.
그리고 한치의 틀림없는 제 길을 달려서 목적지로 우리를
이끌었다.

눈보라 속을 달리는 썰매개들- 알래스카 혹한속 1,150마일의
빙원을 달리는 이디타로드 경주, 1985년 경주 사진
퀴니는 시속 100킬로의 시계 제로 눈보라를 뚫고 틀림없이
길을 찾아 주인을 안전하게 목적지로 안내했다.
-------------------------------------------------
이 고개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눈 폭풍에 자주 혼났기 때문에
나는 어느 가을철에 수 십 개의 막대기를 준비하여 그곳에 가서
일정한 간격으로 그 막대기들을 박아놓았다.
시계 제로의 상황에서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이다.
지형이 아주 안 좋은 악조건에서도 퀴니는 달리는 최선의
루트를 찾아내는 절묘한 재주가 있었다.
풀이나 덤불들이 눈앞을 가리면 상체를 들고 뒷발로만
몇 걸음 걸으면서 전방을 관찰했다.
퀴니는 방향을 잡을 때까지 몇 번이고 이런 뒷발서기로 높아진
상체로 시야로 전방을 살폈다.
퀴니는 썰매 개를 리드할 때 이리와 같이 한 지점과 다른 지점을
잇는 것은 직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구부러진 강위 얼음 위를 달릴 때 다른 썰매 개들은 말로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그대로 강위를 따라만 달려서 먼 길을
우회해서 가곤 했다.
그러나 퀴니는 강위를 달리다가 강위를 달리는 것이 돌아가거나 앞에
얼어붙은 작은 폭포가 있는 것을 보면 명령을 내리기 전에 강 밖으로
나가서 달려 거리를 단축했다.
힐리 동네를 벗어나서 몇 마일 가면 호수가 있다.
건너는데 4-5백 미터가 되는 긴 호수였다.
어느 이른 봄날 나는 긴 호수를 따라서 호안에서 수 백 피트
떨어진 지점을 달리다가 나의 썰매가 지나가는 족족 얼음에
금이 가는 위험한 지역을 만났다.
그 곳은 썰매로 달리기에 얼음이 너무 얇은 곳이었다.
나는 몸무게를 분산시키기 위에서 썰매위에 급히 몸을 엎드렸다.
정말 위기의 순간이었다.
퀴니에게 방향 전환을 해서 땅으로 가라고 지시를 할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지 않았던 돌발 동작을 본 퀴니가 위기는
먼저 알아 차렸다.
그는 나의 지시가 있기도 전에 방향을 구십 도로 틀고 전속력으로
호숫가 땅으로 돌진해서 큰 위험에서 동료 울프독과 나를
큰 위험에서 구해냈다.

퀴니와 같은 회색이리+마라뮤트 울프 독
---------------------------------------
보통의 썰매 개들처럼 울프 독들은 귀와 꼬리, 그리고 몸의
바디 랭귀이지로 서로 감정 소통을 한다.
나는 그들의 바디 랭귀지만으로 어떤 녀석의 기분이
안 좋은지를 발견해 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몸에 매어진 하네스가 잘못 되었다던가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것 등이다.
역시 개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음성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나는 그들이 짖는 소리로 어떤 짐승이 그것이 순록인지 곰인지를
금방 나의 오두막 주변에 나타났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들이 감지하는 동물마다 독특한 바디 랭귀지나 짖는 표현이
따로 있었다.
드물지만 특히 인간들이 나의 집을 찾아 올 때 울프 독의
짖는 소리는 두드러지게 달랐다.
한 때 두 명의 덫 사냥꾼이 내 오두막에서 약 3마일 떨어진
멕킨리 자연 공원 지역에 임시 사냥막을 짓고 산일이 있었다.
울프 독들은 그 먼 거리에서 바람에 실려 오는 인간들의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짖어댔다.
그리고 낯선 인간들이 나의 오두막에 찾아 올 때와
꼭 같은 메로디[?]로 짖어 대서 나는 손님을 영접하게
할 수 있게 알 수 있게 했다.
순록이 집 근처를 지나가면 울프 독들은 평소 순록을 봤을 때의
음조로 짖어댔다.
고기가 필요할 때면 나는 순록을 보기도 전에 울프 독들의 짖는
소리만 듣고 총을 들고 달려가서 순록을 찾아서 잡아왔다.

순록 [카리부]
----------------------------
이리가 접근하면 이들의 짖는 소리는 다른 동물과 판이하게
다른 패턴을 보였다.
이리의 접근을 감지하면 울프 독들은 나를 돌아 보면서
꼬리를 흔들면서 짖었다.
그리고 개가 짖는 소리가 아니라 이리의 짧은 울음을 울었다.
핏줄이 당기는 제스츄어였다.
언제인가는 울프 독들이 자기들 개집 위에 올라가서
잔뜩 긴장한 자세로 오두막 옆을 흐르는 새비지 강의
상류를 보며 코를 들고 바람에 실려 오는 냄새를 탐색하고 있었다.
모두 불안한 자세며 표정이었다.
뭔가 맹수가 나타났다고 추측을 한 나는 나는 집 뒤 200미터 뒤에 있는
언덕에 올라가 보고서야 먼 5 킬로 밖에서 회색 곰이 있는 것을 보았다.
울프 독들은 그 먼 거리에서도 위협의 냄새를 맡을 만큼
후각이 뛰어났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개들의 표정과 짖는 소리로 무슨 동물이
오두막 근처로 오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이리 소리를 정확히 낼 줄 알던 이들 울프 독들은 이리들과
화답할 줄도 알았다.
이 것은 짝을 찾는 교미 철에 자주 있었다.
1930년대 초반 내가 살던 새비지 강과 토부락 강의 유역에 이리들이
우글우글하게 이상 증식을 했었다.

알래스카 새비지 강
-----------------------------------
이리들은 순록과 뿔 사슴들을
무더기로 작살을 내서 지역 짐승들은 물론이고 사냥을 해서
먹고 사는 주민들의 생계까지도 위협했다.
정부는 이리 마리당 15불씩의 현상금을 걸고
사냥을 장려했다.
또 잡은 이리 가죽은 한 장당 18불에 팔 수 있었다.
하루 일당이 10불 때의 이야기니 이리를 잡으면 벌이가
나쁘지 않았다.

이리 가죽들 - 방한용으로 최고의 성능을 가져서 인기가 있었다.
알래스카 주둔 미군들도 이 이리 코트카 지급되었었다.
---------------------------------------------------
어느 3월 - 이 때는 이리들의 교미 철이 시작되는 때이다.
멀리서 이리들이 짝을 찾는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는 퀴니가 신분상 집개지만 부계, 즉 이리의 본능은
다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나는 먼 여기저기서 짝을 찾아 지르는 이리 소리를
듣다가 퀴니에게 지시했다.
"저 놈들 좀 불러봐라!"

회색 이리떼
-----------------------------------
퀴니는 나의 말과 제스츄어로 지시하는 내뜻을 알아차렸다.
퀴니는 완벽한 이리 울음으로 이리들을 초빙했다.
퀴니가 몇 번 길게 울자 멀리서 이리들의 응답이 있었다.
그날 오후 멀리서 우는 이리들과 퀴니의 대화가
여러 번 교환되어 가면서 이리떼의 울음은 점점
나의 오두막에 가까워왔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이리들의 울음소리가 정말 가까이서 들렸다.
퀴니는 자기의 유인 작전이 먹혀 들어가자 굉장히 흥분한듯했다.
꼬리를 흔들며 나를 계속 쳐다보면서 이리 쪽을 보며
‘우-! ’하는 이리 소리를 되풀이 하였다.
나는 망원경과 라이플을 들고 실탄을 한주먹 마련 한 뒤
개집 근처에 엎드려 쏴 자세로 잠복했다.
드디어 300미터 떨어진 곳에 첨병 이리가 나타났다.
나는 나의 망원 조준경을 통해서 그 이리를 지켜보았다.
조금 뒤 그 뒤를 따라서 다른 이리가 따라 나타났다.
이리들이 시야에 나타나자 퀴니 동료인 여덟 마리의
울프 독들도 흥분하여 각기 자기 개집으로 올라가서
다가오는 이리떼를 향하여 합창으로 울어댔다.
울프 독의 울음소리만 들으면 마치 나의 오두막이
이리 떼에 포위 된 것 같았다.
드디어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앞의 강을 따라서 길디긴 이리떼의 일열 종대가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리들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정지하여 이쪽을 응시하다가
울프 독의 울음을 들으면 다시 달리고 하며 점점 다가왔다.
나는 그 많은 수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다수였다.
나는 그 긴 일열 종대에서 총 27마리의 이리들을
헤아릴 수가 있었다.
이리의 우는 소리
-------------------------
드디어 선두 이리가 50미터까지 다가와서
일단 정지하고 울프 독들을 살폈다.
나는 일열 종대의 마지막 끝 검은 이리를 조준경에
얹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을 맞은 이리는 얼음 위에 나가떨어졌다.
동시에 그 후미 두 번 째의 이리를 사격해서 처치했다.
한 줄로 달려오던 이리들은 총소리에 놀라 일대 공황을 일으켰다.
방향 전환하는 놈, 계속 오는 놈 등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서
서로 부딪히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그 이리떼의 덩어리에 속사를 해서 두 마리를 더 죽였다.
그제야 이리들은 회오리 바람에 가랑잎 흩어지듯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 중 일부가 놀랍게도 울프 독들 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리들이 꼬리를 수평으로 들고 귀를 착 붙인 채 정신없이 울프 독들
쪽으로 달려오자 퀴니를 비롯한 울프 독들은 어서 오라는 듯이
더욱 더 길게 울어 그들을 유인했다.
이리들은 여전히 울프 독들이 자기들 동족이고 이들이 있는 곳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울프 독들은 총소리에 면역이 되어 놀라지를 않지만 이리들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할 정도의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가장 가까이 들어오는 놈을 몇 미터 앞에서 쏘아서 죽였다.
그러자 나머지들은 또 사방으로 흩어져서 근처 덤불로 뛰어들었다.
나는 급히 연사했지만 전부 불 명중으로 끝났다.
나는 시야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이리가 아직도 150 미터 밖에
있는 것을 보고 사격을 해서 이것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이리는 일어나 숲속으로 도주했다.
나는 이 이리를 숲속 6미터 안에서 발견했다.
그날 나는 퀴니와 다른 울프 독의 도움으로
이리를 일곱 마리 잡았다.
나는 이리의 교미철이 되면 퀴니를 이용해서 이리들을 유인하여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나는 이리 피를 받았으면서 자기 사촌들을 교묘히 내앞으로 유인해
내는 퀴니를 보고 가끔 “ 요 유다 같은 놈아!” 하고 놀렸지만
집개인 퀴니에게 물론 그런 의식따위는 있을 리가 없다.
1937년 나는 야생동물들을 조사하는 미국 정부의 한 연구 단체에서
일자리를 구해서 새비지 강가의 오두막을 떠나서 페어뱅크스
시내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야생에서 살기에 다소 체력이 부치는 마흔 여덟 살의
늦은 나이에 얻은 안정된 직장에 전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새비지 강가의 오두막 살이를 청산하고 페어뱅크스로
이사하기로 했다.

오늘날의 페어뱅크스 시 - 알래스카 내륙의 최대도시
----------------------------------------------
도시로 가는 한 데리고 있던 울프독도 더 이상 필요도 없을뿐더러
유지하기도 힘에 부쳤다.
그래서 울프 독들도 남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퀴니와 남매 버스터만은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냥 페어뱅크스로 데려가서 그냥 데리고 있기로 하였다.
두 남매 울프 독들은 항상 붙어 다녀서 갈라놓을 수가 없었다.
겨울에 썰매를 타고 원야를 다닐 험한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두 녀석을 데리고 야생의 자연으로 출장을
다닐 일은 자주 있었다.
그때 이미 열 살이 넘어 연로해진 두 울프 독은 인간으로 따지면
인간의 60세를 넘는 늙은 나이였다.
그러나 첫해인 1937년 나를 따라 원야로 나갔던 퀴니는 덫 사냥꾼이
놓은 독약 미끼를 잘못 먹고 중태에 빠졌다.
나는 그 자리에 야영 자리를 준비하고 며칠간
퀴니가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강인한 퀴니는 죽지 않고 이 중독을 이겨냈다.
중독의 후유증은 퀴니가 앞 다리를 제대로 쓸 수가 없게 만들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더해서 다른 근육 체계를 마비시켜 혹한에
몸을 둥글게 말고 꼬리로 얼굴을 가리도 자는 방한 자세를
만들 수가 없게 만들었다.
춥디추운 알래스카의 혹한은 방한의 자세로 잘 수없는
퀴니의 삶의 마감을 재촉했다.
퀴니는 시름시름하다가 1939년 1월, 내가 야외로 출장을
나간사이 저 세상으로 갔다.
평생 붙어 다니던 누이를 잃은 버스터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얼마 뒤 퀴니의 뒤를 따랐다.
내가 다시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알래스카 최고의 울프 독은
10년 넘는 봉사를 하고 내 곁을 떠났다.
나는 그 후 울프 독을 가져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힐리 역의 수하물 담당 그린씨의 부인이 나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그녀는 내가 울프 독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힐리를 자주 보았었고
인근에 자자했던 내 울프 독의 명성을 잘 알았었다.
“아저씨, 나는 내 쥔 양반에게 아저씨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오.
덫사냥 길에 다리나 어디가 다쳐도 그저 썰매에 앉아 있기만 해도
울프 독들이 안전하게 아저씨를 데리고 돌아 올테니까요.“
그 말대로 울프독과 같이 기르고 일하고 10여년의 기간 나는
이리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았으며 명성도 얻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지금도 울프 독들의 정든 체취와
그들의 강인하고 멋있었던 활약과 사랑을 느끼고 있다.
----------------------------------------------
삶과 투쟁하기 위해서 만들어져 그 주어진 책임을 다했던 울프 독들은
지금도 가정견이나 경비견으로 사랑받는 존재로 우리곁에 있다.
울프 독들은 지금은 한 독립된 견종으로서 전 세계
애견가의 사랑을 받는다.
10여년의 기록에 의하면 세계의 울프 독들이
50여만 마리가 있었고 이중 미국에만 30만 마리가 있었다하니
울프독들은 이미 독립된 견종으로 상당한 세력을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주로 팀버 울프나 회색 이리등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아시아나 유럽등에서는 지역의 고유 이리를 사용해서 여러 종류의
울프독을 개발하고 있다.
대상 개도 북방견만 아니라 세파드도 많이 사용된다.

유럽 야생 울프 독 - 유럽 이리와 야생 세파드의 결합으로 태어남.
독일에서 포획됨.세파트를 거의 닮은 외모다.
------------------------------------------
우리나라에도 상당수가 들어와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윗글은 한 사실을 알려준다.
울프 독은 기존 견종보다 더한 사랑과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무턱대고 만들어낸 울프 독들이 가끔 예측불허의
행동을 해서 말썽을 일으키기도 한다.
원인중의 상당 부분이 이리 혈통의 문제라기 보다 각별한
사랑과 관심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1편으로 돌아 갑니다.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