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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3/30
 

[스크랩] 여우같은 일본 까마귀

2009.07.02 17:32 | 동물 |

http://kr.blog.yahoo.com/sd961219/13563 주소복사

원본 원본 : -울프 독-

여우같은 일본 까마귀 


일본에 사는 까마귀는  호두같이  단단한 식품을 확보하면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에 떨어뜨리고 지켜본다
차가 호두를 치어서 부셔 놓으면 그때 내려가서 냠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고가는 차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부숴진  호두를 맛볼 틈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을 경험한 까마귀는 횡단보도에 호두를 떨어뜨린다.
붉은 신호등이 켜지면 점잖게 걸어가서 부숴진 호두를 여유있게
먹어주는  것이다.

BBC에서 방송된  프로다.
해설자는  데이빗 아텐보로.





[스크랩] 호랑이에게 물려 가다가 살아난 사람

2009.07.02 17:29 | 사냥 |

http://kr.blog.yahoo.com/sd961219/13562 주소복사

원본 원본 : -울프 독-

 

호랑이에게 물려 가다가 살아남은 사람


327 took liking to wild food immediatly_MG_5760

호랑이에게 물려가다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물론

“옛날 옛적의 한 옛날에 ------”로 시작되는 할머니의 이야기꺼리로나

나올 소재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 전설 속에나 나올 실제 주인공을 중국 연길의 한

식당에서 만났었다.


배고픈 호랑이가 만찬의 첫 손질로 오른쪽 턱에서 목에 걸쳐 붙여준

끔찍한 흉터가 생생히 보이는 중국 동포 조종원 씨는 50이 훨씬 넘은

전직 공무원 은퇴 생활자로 부인은 서울로 돈 벌이 나갔고 외지로 자녀들은

출가한 빈집에서 홀아비로  혼자 외롭게 사는 처지였다.


처음에는 자기는 남들에게 내세우기 싫은 호랑이에게 죽다 살은 이야기를 한마디 듣자고
서울서 날아온 나에게 당혹과 의심에 가득 찬 눈초리로

경계를 하면서 좀체 입을 열지 않았었다.

그러나 불고기 한판에 중국 술이 한두 잔 들어가자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말문을 열고 보니 상당한 친화력도 있고 재미있는 분이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도 가을,

연길에 가까운 광진 촌[지금은 신광 촌으로 개명]에서 가을걷이가 시작

되었지만 날씨는 아직 별로 춥지가 않아 동네한의 어린이들은 빈터에 모여

밤늦게까지 놀이를 하곤 했었다


해가 거의 다 내려앉은 시간이었다.

마을 산자락에 가까운 공터에서 여자 어린이들이 “제기 뿌리기”

놀이를 벌리고 있었다.

두 어린이가 콩이나 쌀을 넣은 주머니를 서로 주고받으며 가운데 네모 칸의 안에서
이리저리 피하는 여러 명의 어린이들을 맞추는 놀이였다.

옛날에 한국에서도 많이 하던 놀이로서 오자미 놀이라고 불렀었다.

어린이들은 그 작은 오자미에 맞으면 맞는 대로 피하면 피하는 대로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여자 어린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본 여섯 살짜리 종원은 심술이 났다. 

종원이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개구쟁이였다.

그는 다짜고짜 놀이판에 뛰어들어서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화가 난 어린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종원을 나가라고 하면서도 즐거운

놀이는 계속했다.

소리는 더욱 요란해졌다.


그리고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서였다.

공터 옆 민가 모서리를 누런 구름 같은 것이 소리 없이 돌아 나타나서

어린이들을 덮쳤다.

처음 그것을 본 어린이는 공포로 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 누런 구름은 공터 언저리의 어린이들을 손도 안대고 앞으로 5,6미터를

더 전진해서 놀이판 중앙에 있는 종원을 덥석 물고서 또 다시 바람처럼

마을 밖으로 사라졌다.


공포로 얼어붙었던 어린이들은 그제야 째지는 비명을 지르고 각자

집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놀랜 어른들이 뛰쳐나와서 살펴볼 때는 그 누런 뭉치는 유유히

논둑을 타고 산으로 향하고 있는 참이었다.


호랑이였다.


호랑이가 그 인근에서 사람을 물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연변 지방에서 거의 보이지 않던 호랑이들이 한국 전쟁이 격화되자

두만강 이북 그 쪽 땅에도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이 호랑이들은 북한에서 건너온 호랑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호랑이가 영물(靈物)이라서 자신들이 사는 땅이 전쟁터가

됐음을 알고 두만강을 건너 피난을 왔다는 이야기였다. 


사람에 대한 공격도 가끔 일어났었다.

사흘 전에도 10리 떨어진 마을에서 남순이라는 여자 아이가 호랑이에게

물려가서 행방불명이 된 뒤 시체를 찾지 못한 터였다.


호랑이가 중국으로 대거 몰려 온 이유에 대한 연변 어른들 말씀은

일리가 있다.

북한의 호랑이들을 대거 중국으로 피난가게 만든 가해자들은 미국 공군과 해군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일 것이다.

남쪽에 사는 우리들은 잘 모르지만 침략자를 수령으로 둔 덕택에 북한 주민들이 전쟁
삼 년간 폭격으로 당한 피해는 상상을 못할 정도였다.


어지간한 건물이나 다리 등은 온전한 것이 남아있지 않았었고 죄 없이 죽은 주민들은
수십만 명이었다.

심할 때는 전 마을 주민이 멀쩡한 집들을 놔두고 산속의 솔밭에서 한 달여씩
숨어 지내기도 했었다.


북한 전역 하늘에는 항상 미군기 들이 끊임없이 날아 다녔고 전투지역에서는 전투기들의
숫자가 마치 가을날의 고추잠자리 떼를 연상하리만치 많았다고 한다.


낮에는 제트 전투기가 폭음을 내며 하늘을 갈고 다니고 밤에는 B 26같은 폭격기가
야간 폭격을 하러 요란하게 돌아다니니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호랑이가 불안해서
그런 소리가 없는 두만강 건너로 대거 이주한 것이 맞는 사실이리라.


종원이가 호랑이에게 물려 간 뒤 아이들의 비명소리에 마을 어른들도

뛰어나와 즉시 구조에 착수했다.

민병대를 소집해서 무장하기 시작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대담한
마을
주민 서너 명은 즉시 논길로 달려가 호랑이를 쫓기 시작했다.


한편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훼방 놓던 종원은 뭔가 엄청난 힘이 자신을

덮치고 머리를 뭐로 맞은 것같이 심한 통증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지만

다시 짧은 동안 의식이 돌아왔다.

무슨 짐승이 자기의 머리를 물고 마을을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종원이 그 짐승이 호랑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고 건너 마을
황 씨라는 중국 사람의 집에서 키우는 커다란 개가 자신을
물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원은 울면서 외쳤다

“ 놔! 이 황가 놈의 개야 ! 빨리 놔!” 그렇게 울면서 악을 몇 번
써보았지만
금새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다시 정신이 들었다.

보니 호랑이가 논길 중간에 서서 꼬리로 논고랑의
물을 찍어 종원의 얼굴과 목에 끼얹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라고 그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종원은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때 용감하게 뒤쫓아 온 동네 어른들이 따라 붙었다.


논 뜰을 다 벗어난 산자락에서 이었다.

어른들은 마구 고함을 치고 호랑이에게 겁을 주었다.

한 사람은 성냥으로 여기저기서 급히 긁어모은 낙엽과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위협적으로 흔들어 댔다.

사람들이 불까지 흔들며 겁을 주자 호랑이도 긴장을 한 것 같았다.

호랑이는 종원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몇 보 뒤로 물러나서 사람들을

쏘아 봤다.


사람들은 더욱 소리를 크게 지르며 몇 보 접근하니까 호랑이도

몇 보 후퇴했지만 힘들게 마련한 저녁꺼리를  쉽게 포기할 의사가

없는 듯했다.


그때 일행 중 담력이 센 남씨라는 분이 주먹만한 돌 두 개를 양손으로

마주치며 땅에 쓰러진 종원에게 접근했다.

“ 딱! 딱!”

조용한 산자락에 돌의 파열음이 날카롭게 퍼져나갔다.

호랑이는 돌 부딪히는 소리에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 틈을 노려서 남씨는 얼른 종원을 들쳐 엎고 산 아래로 내리 뛰었다.

남은 사람들이 계속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휘두르고 돌을 마주치며
겁을
주는 데에다가 마을에서 수십 명의 민병대가 달려오는 것을 본
호랑이는
단념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종원은 급히 연길의 큰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다음날 아침에야

정신이 들었지만 혼이 나가서 그저 멍한 상태에 있었다.


다른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가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온 아버지는

종원을 껴안고 “ 하느님이 도와서 네가 살았구나.” 라고 목이 메어

이야기 할 때야 종원은 자기가 살아난 것이 큰 기적이었다는 사실에

실감이 나서 눈물을 터뜨렸다.


잠깐 여기서 이야기의 흐름을 멈추고 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이 호랑이가 사람을 습격한 사건에서 우리나라에서 그저 구전 동화처럼

오랫동안 호랑이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들이 놀랄 만큼 정확한 호랑이의

생태학적 정보를 전해 주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

옛날에 아기들이 울면 엄마는 “울지 마! 밖에 호랑이 왔다!”하며

달래던 것이 자장가처럼 거의 관습화 되어 온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아기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호랑이를 들먹인 것이 아니다.

아기가 울면 진짜로 호랑이가 찾아 왔었다.

그것이 사실인 것을 이 사건이 보여준다.


호랑이는 야행성이라 대개 어두워진 밤에 출동 하는데 이번에는 초저녁도

되기 전에 종원의 마을을 습격 하는 무리수를 두었었다.


이유는?

바로 여자 어린이들이 놀이를 하면서 소프라노로 질러댔던 즐거운

비명들이 근처 산에서 휴식을 취하던 호랑이의 식욕을 한없이

간질여 댔기 때문이다.


육식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이 지르는 비명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비명을 지른다는 것은 곤란한 지경에 처해서 도주를 하기가 힘든 상태의

먹잇감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소리가 들리면 작게는 들 고양이에서 크게는 호랑이나 사자 같은

야수들은 즉시 소리의 진원지로 달려든다.


그래서 야수들은 어지간한 고통에도 비명을 잘 지르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서 예를 들어보자.

집에서 기르는 개는 어쩌다가 주인에게 발길로 채 이기라도 한다면
죽을 듯이 요란한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개의 사촌격인 이리들은 총에 맞아서 내장이 밖으로 노출이
되어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옛날 한반도에 호랑이들이 시글시글했을 때 산촌의 야간에 아기의
울음소리는 멀리까지 들렸었고 이 울음소리는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들으면 짐승들의 비명 소리로 오해하기 좋다.

그러니 아기 울음소리는 호랑이들에게 여기에 잡아먹기 좋은
먹잇감이 있다고 알려주는 음성 메시지와 다를 바 없었다.


호랑이는 당연히 마을로 내려가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는 집 근처를
어슬렁 거렸을 것이고 아기 엄마는 이를 눈치 챈 엄마는 식은땀을
흘리며 아기를 달래느라고 애를 썼을 것이다.


또 하나의 옛 전설을 이 사건이 진실임을 증명해준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호랑이에게 기묘한 습성이 있었다.

호랑이들이 가끔 주막집을 습격하는 일이 있었다.

주막집이란 밥과 숙소를 제공하는 곳이라서 큰 방에 사람들이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같이 어울려 잤었다.


더운 여름날 사람들은 더위를 참지 못해 문을 열어놓고 자면 호랑이는

슬그머니 들어와서 사람을 물고 도망쳤는데 이때 이상한 습성을 보였다.

사람을 물어가되 방문 맨 앞의 한두 사람은 그냥 건너뛰고 꼭 방 중앙의

사람을 물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에게 물려갈 팔자가 따로 있다고 했었다.

호랑이가 그런 사람만 귀신같이 알고 찍어서 잡아 갔다는 것이다.

옛 사주 책에 자주 나타나는 호환(虎患)이라는 운세는 이와 같이
그럴만한
배경이 있었다.[요새는 그 운세가 교통사고로 바뀌었다.]


종원을 습격한 호랑이도 주변의 여자 아이들은 그냥 건너뛰고

중앙에 있었던 종원을 물어갔었다.

조종원 씨는 나에게 자신의 수난을 들려주면서 그것이 참 이상했다고

강조해서 말했었다.

그의 경험은 위의 속설이 정확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다른 하나,

호랑이가 꼬리로 물을 적셔서 중원에게 뿌렸다는 것,

이것도 증명해주는 사실이 있다.

호랑이는 아마 죽은 것보다 산 것을 좋아 하는 듯하다.

옛날이야기에 술을 마시고 가다가 너무 취해서 길가에 쓰러져 자던

농부를 호랑이가 꼬리에 물을 적셔서 위와 같이 깨웠다는 동화속의 이야기 같은 기록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조원의 일화가 사실일수 있다고 증명해준다.


그리고 더 하나.

종원을 구한 남씨라는 주민이 돌을 맞부딪히며 호랑이를
견제했다는데 이분은 뭔가 아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호랑이들은 물론 동물들은 이런 파열음을 아주 싫어한다.

앞글에서 고구려 명적의 효과를 소개한바있다.

옛날 깊은 산속을 오고가는 스님들은 긴 지팡이 위 끝에 너덧 개의
쇠고리를 달아서 걸을 때마다 철커덕 철커덕하는 쇳소리가 나게
했었는데 이는 호랑이가 이런 금속성 소리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여튼 종원 소년은 문자 그대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소학교에 다닐 때는 반의 친구들이 그를 ‘범 밑바시’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별로 흉터에 구애 받지 않고 씩씩하게 자랐다.

[밑바시란 함경도 방언으로 음식 찌꺼기를 가리킨다.]


그는 성장해서 공무원직에 투신하여 향장(鄕長-우리나라의 면장)으로 정년  퇴직 할 때까지
삼십년의 세월을 국가에 봉사했다. 


조종원씨는 거나하게 취하자 첫 번의 경계하던 모습을 다 버리고
자기가
당했던 호환(虎患)의 경험을 구수하게 이야기 했다.

이야기는 호랑이를 뛰어 넘어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여러 이야기들로
옮겨갔다. 


그는 자기가 가진 흉터가 앞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머리를 숙여 뒤쪽에 길게 난 상처를 보여주었다.

10센티 이상 길게 찢어진 상처였다.


무슨 긴 몽둥이로 맞은 상처 같았다.

앞쪽의 흉터는 호랑이가 선사 한 것이었지만 뒤쪽 흉터는 다른 맹수가

선사한 것이었다.  


60년대에  그는 호랑이보다 더 고약하고 지독한 동물들을 만나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모택동이 잘못 만들어 낸 소위 홍위병이라고 하는 붉은 동물들이었다.

이름이야 그럴듯했지만 그들이 해댄 행적을 보니 홍위병들은 국가가

공인해준 조직 폭력배들이었다.


그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이들에게 끌려가서 심하게 구타당하고
고깔 모자를 쓰고 군중들 앞에서 조리 돌림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중국에서는 이런 봉변을 ‘투쟁 당했다’고 한다.]


조종원씨는 호랑이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담담하게 말하면서 한 마디도 호랑이를 원망하는 소리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홍위병의 이야기가 나오자 분노와 증오에 찬 목소리로
여러 번이나 홍위병들의 행패를 성토했다.

“그 것들, 짐승보다도 못한 것들이었소.”


나는 흥분한 조종원씨를 보다가 또 다시 문득 느꼈다.

호랑이에 관한 옛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머리에 떠오른 관련 이야기는 성인 공자님의 일화였다.

그 일화를 아예 야후에서 퍼다가 여기 옮긴다.


공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태산의 한적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한 여인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음소리가 하도 슬퍼서 공자는 수레 앞에 몸을 기대고 듣다가,

자로에게 여인에게 가서 사연을 알아보라고 했다.

「부인의 울음소릴 들어보니, 마치 슬픈 일을 몇 번이나 당한듯한데,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부인이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이 일대는 아주 무서운 곳이죠.

옛날 저의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잡혀 먹혔는데,

얼마 전에는 제 남편이 호랑이에게 죽었고,

이번에는 제 자식이 또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아니, 그럼 이 무서운 곳에서 왜 떠나지 않습니까?」

「여기서 살면 무거운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말을 들은 공자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도 가슴에 잘 새겨두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유명한 공자님의 가르침인 -苛政猛於虎-의 일화이다.


종원을 물어 가다가 흉터만 남겨 주고 실패했던 호랑이는
또한
공자님의 가르침이 백번 옳다는 가르침도  남겨
놓았던 것이다.











     


[스크랩] 코요테 유인 사냥

2009.07.02 17:18 | 사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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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원본 : -울프 독-


코요테 유인 사냥 

미국 코요테[카요디] 사냥은 '다친 토끼'의 비명을

낼 수있는 피리로 유인해서 쏘는 방법을 택한다.

짐승들은 비명을 지르는 동물들은  도주가 쉽지 않아 

손쉽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달려온다. 

이 동영상에는 드물게도 두 마리가 속아서

달려오다가 사냥되었다.

사용 된 라이플은 강력하고 명중율도 우수한 270 구경이다. 
 

내가 재작년에 썼던 글과 관련된 동영상이라서

포스팅한다.

옛날 우리나라 산촌에서 애기가 울면  호랑이가 찾아오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다  살아남은 사람'을 보시고 싶은 분은 click!

[스크랩] 따오기의 관찰

2009.07.02 17:14 | 조류 |

http://kr.blog.yahoo.com/sd961219/13560 주소복사

원본 원본 : -울프 독-


따오기의 관찰


오늘 TV에서 중국에서 들여온 따오기 부화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일본에서도 따오기가 멸종 상태까지 갔다가 인공부화에  
성공하여 일부는 야생 방사하기도 했다.

아래 따오기 동영상은 한국을 찾아왔던  따오기와 동일한 종류이다.

일본 나가노의 논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따오기를 촬영한 것이다
.








 


[스크랩] 세계의 가장 먼 곳에 사는 네발짐승

2009.07.02 17:12 | 동물 |

http://kr.blog.yahoo.com/sd961219/13559 주소복사

원본 원본 : -울프 독-

 

세계의 가장 먼 곳에 
           사는 네발짐승

        --- 남극 사우스 조지아 섬의 순록 떼---

나에게는 일종의 관음증(觀陰症)같은 한 악습이 있다.

관음증은 별로 좋은 뜻은 아니다.


사춘기 때 호기심으로 옆집 처녀의 방을 슬쩍슬쩍 스쳐 보며 매력 있는 그녀의 다른 볼 것이 없나 하는 심리가 병적으로 발달하여 남의 은밀한 모습이나 행위를 엿보는 심리적 병이다.( Peeping Tom 이라 한다.)


나의 관음증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다.

한번 호기심의 대상이 되면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그 동물의 정체를
알아야 했고 또 사진으로나마 그 모습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이
나에게 있다.


이 울프 독의 글에서 특히 중국 흥안령의 미스테리 사슴도 스토킹 하듯이 그 아리송한 정체를 추적했던 한 사례를 기록한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동물 중에 이 종족이 도저히 가서 살 것 같지 않은 지구의 끝이라고 여겨지는 남극권에 가까운 얼음 덩어리의 섬, 사우스 조지아 섬에 사는 순록 떼가 있었다.


view from shackleton cross

섬의 전경

사우스 조지아 섬이라는 이름은 많은 독자들에게 생소 할 것이다. 

사우스 조지아 섬은 1982년도에 아르헨티나가 침공해서 영국과 일전을 벌리고 다시 빼앗긴 전쟁으로 유명한 포크랜드 섬에서 가까이 있다.


사우스 조지아 섬과 포크랜드,남극,그리고 남아메리카

이 섬의 존재를 세계 지리에 비교적 밝다고 했던 전쟁 전까지 나도 전혀

몰랐었다.

사우스 조지아섬에 정박한 아르헨티나 잠수함을 영국 해군이 공격해서 좌초시키고 섬에 상륙한 아르헨티나 군에게서 항복을 받아낸 전투 때문에 이 섬을 알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90년대 초에 어느 큰 수산 회사에서 일하는 후배가

포크랜드에 다녀와 나에게 준 책에서 사우스 조지아의 섬에 대한 자세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포크랜드 섬에는 주변 해역에 국내에서 포크 오징어라고 불리 우는
오징어 어장이 있어서 국내 오징어 잡이 배들이 많이 출어 해있었다.


나는 그 와의 이야기에서 사우스 조지아 섬이 얼마나 먼 곳인 줄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오징어잡이 배가 부산항에서 출어해서 포크랜드까지 가는

항해 기간이 무려 두 달이나 된다고 했다.

그는 런던에서 포크랜드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고 무려 24시간을

비행해서 포크랜드에 도착했다고 했다.


사우스 조지아 섬은 그렇게 먼 포크랜드에서 또 배를 타고 무려 사흘을

가야 한다고 했다.

포크랜드로 부터의 거리를 알아보니 무려 1400키로나 되었다.


나는 지도를 보고 이 섬이 남극에 거의 다가가서 남극 대륙 문간에
자리 잡고 있슴을
발견했다.


그가 전해준 포크랜드와 사우스 조지아 섬에 관해 쓰여진 책을 받아서

며칠간 잘 읽어 보았다.

사우스 조지아 섬은 사람들이 살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포크랜드 전쟁이 터졌을 때 섬에서 사는 사람은 단 두 명의 영국인
기상 관측원이었을 뿐이었다.

 

오늘의 그리트비켄
 

섬의 크기는 마치 해삼 같은 모양인데 빙하에 의한 해안 침식이 심해서

섬의 언저리는 마치 톱니바퀴 같은 선이었다.

섬의 길이는 170킬로, 넓이는 4-29키로로서 한국인에게는 그런대로

크게 보이는 섬이다.


이 섬에 믿기 힘들게 높은 산이있다.

파젯 산이라 불리 우는 산인데 높이가 무려 2,934미터이다.

이 작은 섬에서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산이 다섯 개나 된다.

대단히 묘한 지형을 가진 섬이다.


이 섬은 일찌감치 1675년 발견되었지만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남극해에 고래 떼가 발견되고 포경선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19세기 말 부터였다.


19세기 포경선

수 없는 포경선들을 위한 후방기지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고

그때의 영국령이던 사우스 조지아 섬이 적지라는 의견이 우세해서

남극해에 최대의 포경선단을 보낸 노르웨이가 나서서 영국의 동의하에

포경의 후방기지가 되는 작은 도시를 건설했다.

그리트비켄이라는 작은 항구로서 잡아온 고래를 해체해서 처리하는
공장도 있었고 교회도 학교도 있었다.

한창 전성기에는 이 공장에서 300명이 일하기도 했었다.

사우스 조지아 섬은 남극해에서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하던 선원들이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라서 남극의 오아시스라는 별명을
얻었었다.


고래잡이가 번창 할 때는 인구가 2,00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그리트비켄은 포경업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따라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고래 처리 공장은 1957년도에 일본인 포경 업자에게 팔려서 몇 년 운영되다가 포경 산업이 완전히 쇠퇴한 1965년 문을 닫았다.

그 뒤 그리트비켄은 유령같은 고스트 타운이 되고 말았다.


이 섬에는 유명한 영국의 남극 탐험가 색클턴의 유해가 묻혀있다.

색클턴은 1916년 남극 탐험에 나섰다가 그의 탐험선 엔듀런스호가 얼음에 끼어서 침몰하고 말았다.

그는 불굴의 투지를 발휘하여 배의 작은 구명정을 타고 세계에서 가장

험한 남극의 바다를 15일 동안이나 건너 사우스 조지아 섬까지 와서
구조를
요청했다. 


그의 전설적 노력으로 탐험대는 한명도 사망하지 않고 구조 되었다.

그는 다시 남극 탐험에 나섰다가 남극에 도착하기 전 탐험선속에서

지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미망인의 요청에 따라 이 사우스 조지아 섬에
묻힌다.


후배에게서 얻어본 책에 이 섬에 순록(REINDEER)이 산다고 쓰여 있다.


나는 놀랐다.

그 때만 해도 순록에 대한 지식이 짧은 나는 이해를 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순록으로 통일해서 살고 있지만 REINDEER는 북미에
사는CARIBOU와다르다.
REINDEER는 알라스카나 캐나다에 사는  CARIBOU보다 키가 작고
몸집도 작다.


이 순록은 유라시아의 넒은 지역에 산다.

몽골에서부터 북쪽의 시베리아와 서쪽으로 핀랜드의
라프랜드까지가
이 순록의 서식지이다.

핀랜드의 사미족 (라프족)이 기르는 순록들은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를
끄는 크리스마스 스타로 유명하다.


그런 유라시아의 순록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런 지구의 맨 끝의

외딴 섬에 살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호기심이 일었고 그 호기심은 예의 동물 관음증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나는 궁리와 궁리 끝에 교보 문고에 가서 포크랜드에 대한 책을
주문했다.

그 무렵의 인터넷이란 나 같이 무지한 보통사람에게는
그저 감히 넘겨다 볼 수없는 최첨단 기술 같이 보일 때이니
아나로그 방식으로 관련 도서를 주문하는 것이 내가 할 수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몇 달이 지나 도착한 책에는 유감스럽게도 사우스 조지아의 순록에
대한
글이 없었다.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 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었다.


포크랜드는 원래 섬에 네발로 움직이는 포유류가 없었다.

단지 자기 발로 바다를 건너 섬에 찾아오는 물개나 물범정도만

살고 있었을 따름이다.

백인들이 도착할 때까지 이 섬은 무인도였으니 그럴 만도 한 것같다.

그러다가 인간들이 들락거리고 점차 이주민들도 늘어나자 쥐가
들어오고
고양이고 들어오고 개도 들어오고 여우도 들어왔다.


여기서 추정을 해보니 일종의 본섬이라고 하는 포크랜드가 이럴 지경이라면 마찬가지로 더 멀고 작은 사우스 조지아 섬 순록도 섬의 원종이
아니라
사람들을 따라서 이주한 동물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 곳에 항구를 만든 사람들의 고향인 노르웨이는 순록이 사는
핀랜드와 멀지가 않은 곳이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이 순록들이 노르웨이 인들에 의하여 이 섬에
이식되었을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았지만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그 순록을 사진으로나마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나는 행여 포크랜드 당국에 부탁해보면 사우스 조지아 섬의 순록에
대한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섬의 소유국가 영국 대사관에
쓸데없는 전화를 해보기도 했다.

세월이 가자 인터넷은 엄청나게 발달했고 이런 조류에서 미국의
언 라인 북 스토어 아마존을 알게 되었다.


이 사이트를 서핑하다가 “ antartica oasis" 라는 책을 발견했다.
남극의 오아시스라는 말이다.

책의 제목으로 봐서 이 책은 사우스 조지아 섬에 관한 책으로
추측되었다.

보급 기지며 선원들의 휴식지인 사우스 조지아 섬이 그런 별명으로
불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궁리 끝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주문했다.

 

책은 몇 주만에 도착했고 나는 그 커다란 화보 형태의 책을 펼쳐 들었다.

과연 그 책은 기대한대로 그리고 요행스럽게도 사우스 조지아 섬의
자연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나는 속으로 환호하며 책장을 넘겼다.


드디어 책 중간쯤에서 오랫동안 찾던 사우스 조지아 섬의

순록 사진을 발견했다!

유럽에 살고 있는 순록 즉 레인디어와 조금도 다름없이 잘 생긴

순록의 사진이 두 장이나 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만난 사우스 조지아 섬의 순록!

책은 사우스 조지아 섬의 순록에 관한 정보도 담고 있었다.

나는 걸신들린 듯이 읽어 내려갔다.


사우스 조지아 섬의 순록은 그리트비켄이 건설되고 얼마 안 된
1911년
노르웨이에서 들여온 것이 원조들이었다.


처음 들여온 순록들은 그 뒤 관리가 느슨하게 되었던 듯하다.

순록들은 전부 야생으로 들어가서 번식하기 시작했다.

사우스 조지아 섬의 추운 기후는 포크랜드보다도 더 가혹한 것이어서

인간들을 따라 들어온 동물들로서 야생에서 생존한 것들은 단지

쥐 종류가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북구의 추위에서 잘 단련된 순록들은 이 악조건을

잘 버티어 냈다.


이들 순록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생리까지 바꾸는 기적적인

자기 변화를 했다.


동물들은 대개 춥지 않은 봄철에 새끼를 낳아서

면역력 없는 새끼가 어느 정도 온난한 기후에서 성장한 다음

겨울을 맞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사우스 조지아 섬의 순록들이 고향의 습관대로 임신하고 출산하면

북반구와 기후가 전혀 반대인 남반구의 혹독한 겨울철이

시작되는 때 새끼를 낳게 된다.

정말 자연의 조화일까 -- 사우스 조지아의 순록들은 기적같이
교미 철을 조절해서
출산 시기를 앞당기는 재주를 부려 새끼들의
생존력을 높였다.

   

인간들도 못 살고 떠난 이 황량한 섬에서 순록들은 단지 열 명으로 시작한 가족 수를 100년이 못되어 지금 무려 100배인 1,000마리로 늘렸다.

순록들은 사우스 조지아 섬 해안을 따라 살만한 지역이면 작은 떼로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지금도 활발하게 살고 있다.


살펴보니 사우스 조지아 섬은 아직도 단지 다섯 명의 정부 관리들인

영국인들이 파견되어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세계의 크루즈 산업이 발달 되면서 비경의 사우스 조지아 섬은

신비한 곳을 찾아 다니는 크루저 유람선의 정기 기항지가 되었다.

일 년에 30척 정도의 유람선이 방문하고 요트 항해자들도 수시로
들린다.


사우즈 조지아 섬은 비록 상주인구는 적을지라도 더 이상
외로운 섬은
아니다.

이 섬에는 늘어나는 크루저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로 1992년에 개관한

포경 박물관도 있다.


사우스 조지아 포경 박물관

나는 이 책의 순록 사진으로 대 만족하여 인터넷 검색을 하지 않았었다.

이 글을 쓰기 전 독자들을 위해서 사우스 조지아 섬에 관한

하나의 정보라도 더 얻을까 해서 뒤늦은 웹 서핑을 하였다.


그때서야 내가 자주 들리는 미국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사우스 조지아 섬의 순록 동영상이 업로드 한 것을 발견했다.


여기에 옮겨 본다.

순록들이 털갈이 하는 시기에 촬영하여 순록들이 볼품은 없다.



이렇게 동영상으로 사우스 조지아 섬 순록의 모든 것을 보니

왠지 나의 동물 관음증이 만족 되는 것 보다 다른 느낌이 든다.


마치 호기심과 신비함의 감정으로 옆집 여학생의 숨은 모습을 훔쳐
보려고
노력하던 사춘기 소년이 갑자기 환락가의 클럽에 가서
감추는 것 없이
다 보여 주는 여자를 보고 느낄 수 있는 허망한
느낌이 바로 그 것이다.


사우스 조지아 섬에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관심도 늘어나자  포크랜드
당국에서는 엉뚱한 소리들이
나오는 모양이다.


사우스 조지아 섬의 순록들에 의한 환경파괴가 심하니 숫자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고개를 든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 순록을 일부 생포해서 포크랜드 군도의 한 작은 섬인
스타츠섬에 이식 실험을 했다고 한다.


스타츠 섬에는 현재 순록뿐만 아니라 1937년 남미 본토에서 가져다
풀어준 과나코와 여우들이 잘 살고 있다.
(과나코는 혹 없는 낙타를 줄여 놓은 것 같은 남미 특산 라마의
 식구이다.)


사우스 조지아 섬의 순록들이 입이 있다면 지난 100년 동안 악전고투하여 살아 남고 번식했는데 뭐 하나 보태준 것 없던  느닷없이 자기들 인생에 끼어들어 간섭하는 인간들의 짓에 볼멘 소리로 크게 항의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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