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사가이자 고종이 출생하여 12세까지 성장한 곳이다. 흥선대원군이 섭정하던 당시(1863~1873년)에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 아재당(我在堂). 안채인 노락당(老樂堂). 이로당(二老堂)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조상인 은신군과 남연군의 사당 등을 새로이 지었다. 또한 솟을대문 외에 창덕궁과 가깝게 왕래할 수 있는 국왕 전용의 경근문과 흥선대원군 전용의 공근문도 따로 두었다. 이 건물은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대원군 집권 10년간의 개혁정책 대부분이 이 곳에서 구상되고 실천되었다. 흥선대원군은 10여년간의 집정기간 동안 세도정치하에서의 폐단을 제거하고 인사, 제정 등에 대폭적인 개혁을 단행하였으며 경복궁을 중건하기도 하였다. 1882년 일어난 임오군란(壬午軍亂) 때는 청군에게 납치당하여 청나라로 갔다가 1885년 귀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