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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3/30
 

[스크랩] 한국 호랑이 포수의 총 - 윈체스터 95, 제 1 편

2009.07.29 22:27 | 사냥 | 바람

http://kr.blog.yahoo.com/sd961219/13767 주소복사

원본 원본 : -울프 독-


한국 호랑이 포수의 총 - 윈체스터 95

                                 
                                -제 1 편-

오래간만에 한국 근세 총기사의 글을 쓰게 되었다.

이번 글은 150여년의 한국 총기사의 유일한 민간인
총기를 소개하는 것이다.


구한말 국내 유수한 호랑이 포수들이 쓰던 윈체스터
95 레버 액션[lever action] 라이플이다.


윈체스터 1895년 식 405구경 레버 액션 라이플
[줄여서 윈체스터 95라 칭함]
-----------------------------------------------------


호랑이 포수들이 애용하던 이 총을 찾아내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구한말에 궁궐 직속 어용(御用) 포수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정보다.


야후에서 소개했던 구 한말 포수.
이때에도 화승총이 광범위 하게 쓰였었다.
일제는 이런 구식총마저도 모두 압수해서
포수들의 밥줄을 끊어 버렸다.
홍범도 장군의 거사에 총기 압수에 항거한
포수들이 대거 참여 했었다.
 
----------------------------------

1959년에 발간된 이 상오 씨의 ‘한국 야생 동물기’는
어용포수에 관하여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대한 제국의 궁내부라는 부서에 소속되어 궁궐이 발주하는
녹용을 구해오거나 서양에서 찾아오는 호랑이 사냥꾼들을 가이드
하는 업무를 맡았었다.


궁내부라는 일본 냄새가 나는 이름은 갑오경장을 하면서
구명을 버리고 새로 채택한 부서 명으로서 궁중 관계 일을
총괄하는
부처이다.

이들 사냥꾼들은 일반인들은 사냥을 할 수없는
어용 엽장으로 지정한
남해안의 완도나 제주도의 비양도 등으로
출렵(出獵)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강원도나 한반도 북부에
출렵하여 사슴을
잡았던 듯하다.


전세기 말에는 이미 남해안에도 사슴들이 많이 감소해서
이들이 특명을 받고 강원도나 한반도 북부에 출렵하여
야생의 사슴을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궁중에서 필요한 녹용은 상감마마뿐만 아니라 여러 후궁들,
그리고 대신들에게도 공급되었으므로 한 두 마리의 사슴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으리라고 보여 진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무렵에도 가짜 녹용이 범람했을 것이니까
신뢰성 가는 이들 전용 엽사(專用 獵師))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 상오 씨는 이들 사냥꾼들이 강 용근, 이 윤회,
최 학풍씨, 세 명이라고 했다.


말사슴보다 녹용의 효과가 좋은 꽃사슴의 녹용이
진상되었을 것같다.
-------------------------------------------

한반도 전역은 물론 만주까지 출렵[出獵]하여
호랑이들을
잡았다.


앞에서 소개했던 H. 바이코프 씨가 쓴
‘북만주의 호랑이 사냥’-click-
에서 이들 전문 엽사들이 존재했음을 암시하는 언급이 있다.


사냥 기술도 국내 일류였지만 사격 솜씨 역시 국내 최고였다.


이들은 외국인 엽사들을 안내 했던 것인 만큼
엽총등의 사냥 장비도 최고의 것을 썼다.


초고가의 쌍대 라이플도 쓴 분도 있었고 만주로 출렵할 때는
서 너 정의 총기류를 소지하고 떠나기도 하였다.

세 분의 어용 엽사(獵師)중 최 학풍 씨는 표범을 사냥하다가
일찍 돌아 가셨고 나머지 두 분은 30년대까지 생존하였었다..


두 분 중에 이 윤회 옹은 이 상오 씨의 사냥 스승이었다.

한국 야생 동물기‘에 보면 이 분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이 윤회 옹은 이 상오 씨와 같이 사냥을 나갔다가 산중에서
뇌출혈로
별세해서 더욱 이 상오 씨의 추억에 남아 있었던 듯하다.

야생 동물에 대한 전문성이 지금으로서는 믿기 힘들게 광대하였던
분이었던 것을 느끼게 한다.


나는 나의 바이블 같은 한국 야생 동물기에 모세처럼
자주 등장 하던
이 윤회옹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었는데
몇 년 전 어느 TV에서
이 분의 사진을 잠깐 볼 수 있었다.

호랑이에 대한 그 프로에서 1920년대에 일본인이 조직한
호랑이 사냥대가
조선에 와서 호랑이 사냥을 하고 기록으로 남긴
정호대[征虎隊]라는 책에
원정대 사진이 몇 초간 소개 되었었다.


작고 다부진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분이었던 것으로 
그  강한 인상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이 윤회 옹이 지금 생존해 있다면 한국 호랑이를 비롯한
야생 동물에 대한
커다란 지식을 제공 했을 텐데 유감스럽다.

나는 이 상오 씨가 상기 저서에 여러 번 그 분의 일화를
언급한 것중에서
아래의 호랑이 사냥이 특히 이채롭다.


1915년경.

고(故) 이 윤회 옹이 강원도 회양군에 출렵하였을 때였다.


때는 11월 초순이라 아직 눈이 그다지 많이 쌓이지 않았으나
그 산길의 대부분이 석벽(石壁)에 붙어서만 겨우 한사람이
통행할 수 있는 암층(岩層)사이의 길이었다.


때문에 추적하기가 매우 곤란하였다.
석벽에 붙어 가는 길은 꼬불꼬불하여 전방(前方)의 전망이
아주 불리하였다.


약 5 리쯤을 추격하여 한 고비를 돌아가니 갑자기 전방의
골짜기가
넓게 전개되어 있었고 깊고 급한 골짜기를 끼고
건너 산의
사면(斜面)이 보였다.


그 사면은 마른 풀이 무성하였으며 햇볕이 잘 쪼이는 곳이었다.

그 사면의 중간 허리에 묵묘[古墓]가 하나 있었는데 그 묘 앞에
커다란 호랑이가 한 마리 앉아서 고양이가 하듯이 앞 발바닥을
핥아서 얼굴을 쓰다듬고 가끔 하늘을 쳐다보고 입을 벌려
하품을 하곤했다.


이 옹과 호랑이와의 거리는 약 200미터 쯤이었으며
이 옹이 총기는 윈체스터 5연발 실탄 총이었다.


그 자리에서 이옹은 옆에 있던 바위 뒤에 기대어 호랑이의
목과 가슴의 접속부를 조준하여 발사하였다.

탄알이 명중하자 호랑이는 입으로 코로 피를 흘리면서
딩 굴고
산천이 떠나가는 듯 소리를 지른다.


호랑이의 태도를 보아 치명상(致命傷)이 틀림없었다.


다시 쏠 필요도 없었으므로 이옹은 자세를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그는 혹시나 그 호랑이의 동류가 복수하러 올는지 모르므로
되도록
자신의 위치를 숨기려는 것이었다.


주위를 극히 조심스레 살펴보아도 가까이에 동류가 있는 것
같지 않았으며
부상한 호랑이의 단말마적인 울부짖음만이 
산중을 뒤흔들 뿐이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총을 짚고 막 일어서려는 판에 돌연 오른편
60미터
전방까지 몰래 포복하여 접근해온 한 마리의 호랑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나는 듯이 도약하여 오는 것이 보였다.


당황한 이옹은 호랑이가 공중으로 뛰어 올랐을 때 사격하였다.

그러나 호랑이는 명중했는지 않아서 여전히 제2의 도약을 하였다.
또 2발을 쏘았다.

역시 호랑이는 잇달아 다음의 도약을 했다.
그리하여 마지막 남은 1발의 총탄이 탄창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호랑이도 최후의 도약을 시작하였는데 그거리가 불과 20간
안쪽이니
이제야 말로 이옹의 머리위로 호랑이가 뛰어
내릴 지경이었다.

평소의 이옹의 솜씨와는 달리 이날은 이상하게도
세 발을 실중하였던 것이다.


운명을 건 최후의 1발을 신중히 가늠하였다.


천만 뜻밖에도 호랑이의 네발은 땅을 떠나 공중에 있었는데
불구하고
그도 겁이 났는지 방향을 바꾸어 골짜기 구렁텅이
나딩구러져
떨어져 버렸다.


전에 소개했던 사진을 다시 수록한다.


한국 호랑이다.

아래 우수리 범보다 더 작았지만
성격이 더 포악하고 당돌해서 사람도 잘 잡아 먹었고
가축도 더 잘 해쳤다. 우수리범과 경쟁하며
만주 중부까지 석권했었다.

이 윤회 옹이 호랑이 사냥할 무렵에
바이코프 씨가 슨 글에 소개된다.
------------------------------

물론 다음날 이옹이 다시 추격하여 잡았지만 항상 이옹이
말하길 이러한 일은 평생의 사냥 중에서도 처음 당한 일이었으며
비조(飛鳥)같이 날쌘 호랑이의 행동에 탄복하였다는 것이다.




바이코프씨가 그린 동북호다[ 우수리 범]
------------------------------------------


나는 앞에서 백두산에서 중국 동포 최 석도 포수가 호랑이를
사냥한 이야기를 포스팅했었다.


이 이야기에서도 총을 맞고 일단 도망쳤던 호랑이가
다시 총 맞은 자리로 돌아오는 기행(奇行)을 보였는데
위의 일화에서도
호랑이가 동료가 총을 맞고 죽자 기막힌
포복 술로 반격해 왔던 것은
호랑이의 여러 이상한 습성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윗 글에 나오는 윈체스터 소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윈체스터의 총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무슨 총을 쐈기에
그 무서운
한국 호랑이가 한방에 죽는가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윈체스터는 미국 최대의 라이플 회사였고 서부를 정복한
총이라는
별명을 붙일 만큼 서부개척사에서 주역을 했었다.


이 총을 생산한 회사의 사장 올리버 윈체스터는 본래 셔츠 장사로
돈을 벌어서 그가 주주로서 관여하던 볼케닉 총기회사를 인수하여
총기 디자이너 벤자민 타이러 헨리가 개발한 연발 라이플 총으로 
서부 개척의 붐을 타고
 대박을 터뜨려 회사를 키웠다.


올리버 윈체스터--
'총이란 쇳조각[ball]를 던지는 도구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


그가 히트를 친 총은 그 무렵 라이플 총 들에게 
드물었던 연발 기능을 가진 것이었다.

방아쇠 뒤에 손가락 네 개를 넣는 가위 손잡이 같은 레버를
움직이면
총신 밑의 파이프 형의 탄창에 일렬로 들어있는
실탄이 약실에
장탄되는 총이다.

윈체스터는 이 총을 짧고 가벼운 카빈으로 만들어서
시장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방식의 연발총의 구조를 가진 총을 레버 액션이라 부른다.

레버 액션은 미국에서 탄생했고 미국인이 사랑했기 때문에
미국형 라이플이라 할만하다.


옛 한국 포수들은 이 총을 가위 다리 총이라 불렀다.


이 레버 액션은 많은 포수들의 사랑을 받아서 아직도
여러 총기 메이커에서 생산 되고 있다.

윈체스터는 서부 개척의 시운을 타고 돈을 벌어 총의 종류를
다양화했었다.

소구경 22구경 대구경 맹수용 소총 그리고 산탄총이나 단발 총,
쌍발 총을 생산하면서 미국의 최고 총기 메이커로 굳건한
자리를 잡았다.

이차 세계 대전 때는 여러 군용 총기, 특히 엄청나게 생산된
칼빈 소총을
생산해서 아직도 칼빈 세대에 군 생활을
한 분들 중에 칼빈 소총에
새겨진 이 윈체스터의 이름을
기억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윈체스터는 1930년대에 내놓은 윈체스터 70이라는 맹수용 라이플이
‘라이플중의 라이플’이라는 별명을 얻는 대 히트를 치는 덕분에
성업을 구가했으나 1964년 생산가 절감을 위해서 내놓은 신 모델
윈체스터 70이 실패를 하는 바람에 타격을 입은데다가 이어서
경영상의 여러 어려움을 겪고 미국 라이플 시장의 톱 자리를
레밍턴에 내주고 주인도 여러 번 바뀌면서 지금은 사세가
시들한 편이다.


윈체스터 70 [PRE 64년 모델]
라이플 중의 라이플
----------------------

나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생산 된 윈체스터 총들중에서
어떤 총이 한국의 호랑이 포수들에게 사용되었는지 궁금해서
이것을 탐색해보았다.

희미하나마 이 총의 정체를 짐작할 단서가 역시 위의 호랑이
사냥을
소개한 한국 야생 동물기의 다른 부분에 언급되어 있다.

----------

구 한말에 조선의 사냥꾼들이 사용했던 실탄총[라이플]은
윈체스터
44-40구경의 구식총이 대부분이었다.


탄속[彈速],탄력[彈力]모두가 약하므로 150미터의 거리가 되면
현저하게 멧돼지 사냥에 이 총을 사용하여 본 경험으로는
도저히
맹수 사냥용으로는 부적당한 것이었다.


지금도 서부영화에서 보는 카우보이들이 사용하는
레버 액션[LEVER ACTION]의 총이 그것이다.

그 후에 수입 애용 된 것이 윈체스터 5연발이었으니 탄두는
약간 작으나
탄속, 탄력이 상당히 강하였다.

이 총에 사용하는 탄환으로서 작열탄[ 灼熱彈] 이라 하여 탄환이
적중하는 동시에 탄환의 두부가 파열하여 명중 효과를 더욱
크게 하는 것이 있다.

윈체스터 자동[自動]5연발은 그 때의 최신 최 강력의 유일한
맹수용 총이었다.


그러나 최근 2,30년간 각국의 실탄총은 놀랄만큼 발달하였기
때문에 현대의 맹수용 실탄 총에 비하면 탄속 탄력 모두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시대에 모젤[1호] 라는 8미리 실탄 총이 상당히 수입되었으나
사냥꾼들은 그다지 애용하지 않았다.


구 한국시대에도 몇몇 사냥꾼들은 외국의 귀현[貴顯-귀한 손님]들이
우리나라에 사냥하러 왔을 때 정부의 지시로써 혹은 각기 영사관을
통하여서의 초청에 의하여 안내를 하였으므로 호랑이 사냥에는
실탄 2연발을 사용하였다고 하였다.

그 총은 필자는 보지 못하였으므로 어떤 종류였던지 알 수 없으나
추측컨대 영국제 유연화약 사용의 고급 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909년 우리나라 경찰권이 일본 통감부에 넘어갔으므로
극소수의 사냥꾼 이외에는 극도로 제한을 당하였다.


싵탄총에 대한 제한은 그 후 일정 36년 동안을 통하여 갈수록
심하였으므로 우리나라 사람은 실탄 총기에 대한 지식이
아주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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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나온 총기 관련 단어들이 너무 생소한 분들을 위해서

약간의 설명을 한 뒤에 글을 계속하기로 한다.

제 2 편으로 갑니다.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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