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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열 여섯 번의 글을 통해서 우리집의 뼈대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거의 다 이야기 한 것 같다. 이제부터는 집의 살을 어떻게 붙여나가는지 그 과정을 다루 차례가 되었다.
사실 집짓기에서 뼈대세우기는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척 신경을 쓴다. 하지만 뼈대를 세운 것은 집짓기의 50% 정도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일손을 빌리지 않고 손수 집을 지을 경우는 앞으로의 과정이 더 힘들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목수일은 시간이 걸려도 쉽게 해낼 수 있었는데...구들놓기, 황토벽쌓기 등을 하면서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대청마루와 다락마루가 깔리고 찬바람이 부는 2004년 9월에 들어서자 본격적인 난방작업이 시작되었다. 난방에 대해서 말이 나왔으니 집고 넘어가야 할 생각들이 떠오른다. 집을 짓는 과정 중에 읍내 고등학교 선생님이 수시로 우리 집을 다녀갔다. 그분은 읍내의 옛 한옥을 리모델링해서 사시면서 한옥에 푹빠져 사신다. 하루는 자신이 한옥을 1년 넘게 손수 개조하면서 격은 일화를 소개해 주셨다. 여름에 일을 하면 집을 시원하게 하려고 창문을 많이 내게 되고, 겨울에 일을 하다보면 난방에 신경 쓰다 보니 창문을 적게 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집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우리 집의 외관은 낮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기둥의 높이가 8자(2m 40cm)에서 3cm 빠지고 여느 전통한옥의 처마선 처럼 들려있도록 하는 부연이 없기 때문이다. 집을 짓는 중에도 오가는 사람들이 집을 낮게 지었다고 지적하곤 한다. 집이 이미 세워졌는데 그런 말을 들어도 다시 고칠 수도 없을뿐더러 일부러 집을 낮게 지은 내 생각은 이렇다.
집은 집주인을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평균키보다 작다. 내 아들은 키가 커질지는 몰라도 (엄마와 아빠가 모두 작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지금 여기서(now & here) 집을 짓는 사람에 따라 집이 결정되는 것이다. 한옥은 그 특성상 서양주택 처럼 획일화될 수 없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단점은 건축비가 맞춤식이기 때문에 자연히 늘어난다는 것이고 장점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집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아파트 실내의 천정높이가 2m 40cm이다. 80년대만 해도 좀 낮았었는데 최근에는 일반주택이나 아파트 할 것 없이 모두 천편일률적이다. 왜 그럴까? 서양식 주택문화 때문이다. 실내 인테리어용 합판이나 석고보드가 모두 4x8 feet(약 120cm x 240cm)으로 제작되어 수입된다. 건축하는데 이런 제품을 사용해야 하니까 실내의 층고가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 집의 방의 높이는 2m 25cm가 미처 못된다. 대신 대청마루 높이는 3m 50cm이다. 그래서 집 밖에서 집이 낮다고 지적하던 사람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단 번에 생각이 달라진다. 방은 낮고 부엌과 대청은 높다. 그것은 한옥의 공기순환 더 나아가서는 기(氣)순환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래서 실내 층고가 똑같은 집 특히 아파트는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 시원하다는 것은 춥다는 것이나 따뜻한 것하고는 질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대청마루와 부엌이 높은 우리 집은 보기에도 시원하고 실제로 공기가 상쾌하다. 
** 사진은 대청건너방 다락과 천정의 모습. 다락마루까지는 2미터 20센티인데 천정까지는 3미터 50센티이다.
또 하나 우리 집을 낮게 지은 이유는 해발 550미터인 산중이고 바람이 평지보다 세기 때문이다. 집이 높으면 추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절이나 재실같이 건물 자체를 드러내야 하는 집은 높은 곳에 높게 지어야 될지 모르지만 가정집은 사람이 깃들어 살며 아늑한 기분을 느껴야 한다. 때문에 집이 완성되고 난 지금 집을 높게 짓지 않은 것만큼은 참 잘했다고 자평하고 싶다.
9월이 접어들자 시작된 구들공사는 거의 한달 열흘이 걸렸다. 뒷일 하는 사람 한 명만 있었어도 열흘도 안 걸릴 일이 그만큼 더뎌진 것이다. 혼자 일하는 것과 두 사람이 일하는 것은 서너 배의 차이가 난다. 일꾼을 구할 수도 없고 그 사람 뒤치다꺼리 하는 것이 더 귀찮고 힘들다. 오전 오후에 참 챙겨줘야 되고 시간 맞추어 점심 먹어야 되는 둥 내가 오히려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어 집을 늦게 짓는다고 잔소리하는 아내의 핀잔도 모른 체 하고 혼자 구들을 놓았더니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 몰랐다.  ** 안방 윗목의 구들을 홀로 놓고 있는 모습. 윗목의 고래부분을 깔 때는 구들돌이 모자라 근처 석재공장에서 판석을 얻어다 깔았다. 판석은 불에 다면 터지지만 불길이 잘 닿지 않는 윗목에는 괜찮다. 뒤 안방 화장실 부분에 직접 시공한 설비배관들이 보인다.
구들 놓기는 사전 준비작업에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가장 먼저 인방 밑 부분 그러니까 주춧돌 사이인 고막이를 세면 벽돌로 막았다. 그 높이가 두 자(60cm) 정도 되니까 거의 6,000장 정도 들었다. 벽돌쌓기 역시 해 본 일이 없지만 직접 하나 하나 쌓아가다 보니 처음보다 끝날 때쯤에는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다. 벽돌일은 세멘트와 모래를 섞고 벽돌을 나르는 일이 힘들지 쌓는 일은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졌다. 어쩌면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의 심정으로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집을 짓는 내내 갖게 되었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하나 완성해 놓았을 때의 그 보람 때문에 거의 3년 동안 손수 집을 지을 수 있었다. 벽돌쌓기 중간에 잠시 중단하고 설비공사도 해야 했다. 일의 순서상 설비(수도관, 오폐수관)가 미리 되어 있어야 한다. 한옥이기 때문에 이때쯤 설비공사를 해도 그만이지만 서양주택의 경우(기초를 콘크리트로 하는 집들)는 기초공사에서 이미 설치되었어야 하는 일이다. 평소 수도배관 등 자질구레한 것들을 해본 일이 있지만 집 전체 설비공사는 처음이어서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 엉성한 것 같은 배관시공장면. 이렇게 배관했다가 뭔가가 잘 못 되어 다시 시공하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한 번 고쳐서인지 지금 사용해 보면 배관은 거의 만점수준이다.
나도 처음에는 설비업자에게 맡기려고 청부를 했었다. 그런데 그이는 무조건 평당 7만원을 달란다. 우리 집에는 설비가 20평도 채 깔리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도 포기하고 직접 설비를 하기 시작했다. 수도관을 16 mm XL파이프로 한 것은 여느 집과 같지만 배수관은 넓은 것을 일부러 사용했다. 판매업자가 50mm 사용해도 된다는 세면대 배수관은 65mm를, 65mm를 사용해도 된다는 싱크대 배수관은 100mm를 설치했다. 막히면 다시 뚫어야 하니 처음에 큰 것으로 설치한 것이다. 이렇게 업자와 집주인이 일하는 방식자체가 다르다. 모든 자재에 있어서 업자는 작고 싼 것으로 지향하지만 집주인은 크고 좋은 것으로 지향한다.
내 집을 짓는 동안에도 나는 기회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을 직접 방문하거나 최신호 주택잡지 등을 읽었다. 한옥은 골조가 완성된 후에 이루어지는 작업과정이 변화무쌍하게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잡지(특히 "행복이 가득한 집", 심지어 KTX 잡지에서도)를 읽어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전통한옥과 관련된 기사들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 집을 마무리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서울 북촌한옥의 열풍을 타고 새로운 주택문화의 물꼬가 트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자동차로 십오분만 가면 우리집과 거의 유사한 형태의 집이 몇년 전에 지어졌다. 일(ㅡ)자 맞배집이 기역(ㄱ)자 맞배집인 우리집과 다를 뿐 외모는 같다. 어쩌면 우리 집보다 더 멋지다. 시멘트 기와를 올렸기 때문에 지붕선이 아름답게 드러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내부를 어떻게 꾸몄는지 궁금해서 아들 내외는 출타하고 할머니만 계시는 집에 실례를 무릎쓰고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대뜸 "우리 집 나무는 왜 이렇게 시퍼렇게 곰팡이가 피었어요?"하신다. 무심코 지나친 대들보와 기둥에 청테와 함께 물기가 만져졌다. 알고 보니 이 집은 장마철에 지으면서 비를 많이 맞기고 했지만 난방에 문제점이 있었다. 기름 보일러 난방도 아니고 전기온돌 판넬이 깔린 것이다. 바닥은 따끈따끈한지 모르지만 집이 건조될 기회가 없다. 난방비 때문에 최대한 절약하는 우리 서민들로서는 전기판넬로 집안을 따뜻하게 할 수는 없을 수 밖에 없지만 집 안에 난방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여름 장마철에는 습한 공기 때문에 한 번 피기 시작한 청테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전국 각처에서 열대야로 고생하는 오늘도 나는 집 전체 구들에 불을 땠다. 찻상을 만들면서 생긴 대패밥이나 토막 등을 태우려고도 한 것이지만 여름 내내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불을 땐다.
이렇게 구들난방에서 살아보니 구들은 나무로 지어진 한옥은 실과 바늘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방을 위해서 불을 때면 그 불기운은 방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 안의 습기를 제거해 준다. 또 어쩔 수 없이 스며나오는 나무 연기는 집 안에 서식하는 해충들을 죽이는 살충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 가서 연기는 나무에 코팅효과를 주어서 목재집의 수명을 연장해 준다. 옛날 한옥집을 해체하다 보면 가장 썩지 않고 생생한 나무는 아이러니칼하게도 시커멓게 연기에 그을린 정지간(부엌) 목재들이다. 끊임없이 아궁이 연기를 쬐면서 나무가 자연스럽게 코팅이 된 것이다. 그래서 불을 때면서어떤 때는 일부터 연기를 집 안으로 들여보기도 한다. 아내는 옷에서 영감 냄새난다고 잔소리가 시작되지만... 단 한 가지 우리는 절대로 구들 아궁이에는 나무 나 종이 이외에는 절대로 다른 화학물질 등은 태우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좋은 구들난방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처음 설계 할 때는 방 세 개중 두 개만 구들을 놓으려고 계획했다. 그리고는 나무를 구입하기도 전에 돌구들장이 눈에 보이기만 하면 구하기 시작했다. 길을 지나다 동네 앞 길에 새 집을 지으려고 뜯어 놓은 것이 보이면 돈을 주고 샀다. 요즘도 대부분의 시골 사람들이 구들난방을 귀찮다고 생각해서 새 집을 지으면서 다시 설치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은 반사이익을 얻는 셈이다. 이렇게 알음알이로 구들장을 구하기 시작했지만 방 두 개(9평)도 설치할 양도 안되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이 맞는지 모르지만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던 구들장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결국 구하다 구하다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방의 4분의 3정도는 깔고 나머지는 가까운 석재공장에서 화강석 판재를 공짜로 갖다 쓰기로 햇다. 이놈들은 불에 직접 닿으면 안되지만 웃목에는 불길이 잘 닿지 않기 때문에 괜찮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춧돌을 구입했던 석재공장 사장(돌에 대해선 전문가다)이 조언을 해었기에 큰 도움을 받았다.
 ** 방 웃목에는 화강석 판재도 섞어서 깔았다. 구들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보는 구들 방식은 허튼구들이다. 구들의 굄돌은 적벽돌을 흙으로 붙여서 세우고 그 위에 구들을 얹었다. 틈새는 황토로 메꾸고...
구들놓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도 많은 연구를 해야했다. 예전에 아버지가 구들놓던 것을 도와드린 일과 목수일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 밖에는 이론으로 알고 있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한 번은 직접 해보면 물리를 터득할 수 있는데 내게는 구들을 놓을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동네 어르신 들께도 수시로 물어보기도 하고 기회만 되면 구들놓는 것에 대해서 배우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하도 골치가 아파서 구들을 잘 놓는다는 기능인에게 맡겨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 값이 만만치 않았다. 인건비가 방 하나에 백만원 이상은 든다는 말에 이것도 포기하고 직접 시공하기 시작했다. 구들놓은 방식은 줄 구들과 허튼 구들이 있는데 나는 허튼 구들을 택했다. 방도 골고루 따뜻하고 혼자 시공하기에 쉬운 방법이었다. 아궁이는 함실아궁이를 채택했다. 아궁이에 무쇠솥을 걸어서 물도 데워쓰기도하고 두부도 만들어 먹으면 좋기도 하겠지만 어짜피 난방이 주목적이니까 열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함실아궁이(구들에 직접 불을 때는 방법)를 택한 것이다. 문제는 함실 아궁이를 덮는 구들장과 이맛돌 이 고온에 의해서 쉽게 부서져 주저 않는다. 실제로 구들을 시공하고 불을 많이 때니까 몇 개월만에 아랫목이 주저앉은 집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함실 아궁이에 불을 직접 때면 이런 단점이 있고지만 열효율이 좋아서 방이 아주 따뜻하다.
 *** 사진 아래부분이 함실이다. 이곳에 직접 불을 때는 것이 함실 아궁이다. 고래바닥은 평편하게 다졌고, 가장 자리에는 개자리를 팠다.
이렇게 문제점이 많은 함실 아궁이 구들장과 이맛돌(아궁이의 윗부분 돌)을 누군가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함실 아궁이 구들장은 두께 10mm이상의 철판을 먼저 깔고 그 위에 흙과 얇은 돌구들장을 놓고 이맛돌은 두께 H빔(20cm x 20cm)을 가로로 놓는 방법이다. 고래의 바닥은 는 평편하게 만들고 그 위에 마사를 깔았고, 고래 개자리는 한 자(30cm) 이상 방 둘레를 팠다. 굴뚝 개자리는 4 -50cm 이상 깊게 파서 연기가 머물다 나갈 수 있도록 했다. 굄돌은 일정한 돌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불에 제일 강하게 구워진 붉은 벽돌을 사다가 썼다. 방 바닥에서 고래바닥까지는 거의 5-6장의 벽돌을 황토로 붙여놓으며 쌓았는데 이 때 아내가 가래떡처럼 흙을 반죽해 주어서 그것으로 붙여나갔다.
모든 구들은 황토를 반죽해서 붙이고 메꾸어나갔고 구들장이 다 덮여지고 난 다음에는 황토를 주먹덩어리로 뭉쳐서 마구 쳐댔다. 틈새를 단단히 막기 위해서다. 구들 위의 흙은 아무리 단단히 다져도 마르기만 하면 쩍쩍 갈라져 연기가 새어나오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 세 번 이상은 메꾸는 작업을 해야한다. 그런데 나는 겨울이 오기 전에 흙벽작업을 마쳐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이 과정을 좀 소홀히 해서 지금까지도 집 안으로 연기가 새어 들어온다. 나무만 때니까 (밤나무는 안된다. 가스에 중독될 수 있으니까 절대 금지!) 나는 냄새가 구수하니 좋은데 아내가 질색이다. 서울에서만 살아서인지 아니면 연기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구들을 잘 못 놨다고 지금까지 잔소리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 인방 아래 이맛돌은 H빔으로 설치했다. 나머지는 흙을 메꾸었고...
구들을 놓는 기간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걸린 이유가 있다. 처음보다 구들을 설치할 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방 두개만 하고 말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집 기초는 모두 흙이다. 돌과 흙이 반반이기 때문에 따로 기초를 하지 않고 주춧돌 밑에만 기초작업을 했다. 주초가 놓인 바닥에서 인방까지의 높이는 거의 한자 반(45cm)이다. 그러니까 방바닥까지는 40cm이상이 된다. 방 두개는 구들로 이 높이를 해결했지만 구들을 놓지 않고 보일러선만 깔려는 안방(5평)은 흙을 대신 채워야 된다. 그런데 흙의 양이 덤프트럭 한 대가 넘는다. 그리고 인방 때문에 사람이 손으로 퍼넣어야 한다. 그것을 돈으로 계산해 보니까 거의 100여만원 이상이 들게 생겼다. 아내와 고민을 나누다가 결국 구들을 놓기로 결정했다. 새로 구들을 구입해야 하는데 수소문해보니 가까운 남원의 골동품상에서 전주의 한옥에서 뜯어놓은 구들을 판다는 것이다. 부리나케 달려가서 평당 10만원씩을 주고 구입해 왔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구들을 깔아놓으니 우리 집의 하부는 40cm 이상 떠있는 집이 된 것이다. 주춧돌에만 의지에서 서있으면서 집의 습기와 냉기 문제는 완벽히 해결되었다.
*** 구들을 놓자 마자 불을 때서 건조시키고 있다. 건조되면 재차 삼차 갈라진 부분을 메꾸어야 한다. 구들놓기를 끝내고 나니 새벽이면 서리가 내리는 2004년 10월 중순이 되었고 이 때부터 본격적인 겨울이 접어들기 전인 11월 20일까지 흙벽작업에 들어갔다.
다음 이야기는 황토벽쌓기다. 이 방법을 잘 알아두면 누구나 황토집을 쉽게 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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