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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3/05
 

<애신각라(愛新覺羅)의 비밀 - 금(金), 청(淸)나라 시조는 신라인

2005.03.08 11:07 | 역사의발견 | 슬기비

http://kr.blog.yahoo.com/say5335kibi/29 주소복사

우리가 그 동안 받아왔던 역사 교육과 기존에 출판되어 있는 많은 역사 서적을 보면 만주에서 발흥해 중원을 장악했던 강력한 두 나라인 '금나라' 와 '청나라' 는 강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초창기에는 우리에게 복속에 의한 속국으로의 굴종이 아닌 단지 '형제의 예'를 취하라는 요구만을 해 왔다. 그 내용은 자신의 나라를 장자적 개념인 형으로, 고려나 조선을 아우의 개념으로 삼아, 아우가 형님에게 예의를 다 하듯 '형과 아우'의 관계처럼 각 나라 간의 관계상을 정립하자는 이야기였다. 물론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 역시 그러한 관계 정립을 요구해 왔지만, 오늘 이야기의 중심은 만주에서 발흥했던 두 나라와의 관계 이기에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처럼 '금나라'와 '청나라'는 한족이 아닌 이민족으로, 중원을 장악했던 강대한 정복왕조였다. 특히 '청나라'는 오늘날의 중국 지도를 완성시킨 장본인으로 강력한 국가를 건설했던 왕조였다. 그런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작고 힘이 약해 보이던 우리에게 군신간의 관계가 아닌 '형제의 예'를 요구한 것은 필연적인 곡절이 있어 보인다. 그들이 초창기 한족들에게 행했던 통치방식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 이기에 몇몇 참고 자료들을 통해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 청 태조 천명제 '누르하치' >




조용한 재판장 안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젊은이를 주목하고 있다. 판사가 젊은이에게 묻는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젊은이는 대답한다. "아이신지료 푸이(愛新覺羅 傅儀)." 판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한다. "참 이상한 성이구나."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중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가 모택동에게 재판을 받는 장면이다. 아이신지료, 아이신지료... 한족(漢族)인 판사가 듣기에는 이상하기만 했던 청나라 황제의 성인 '애신각라(愛新覺羅)'. 만약 '애신각라'에 '(고국인)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면...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세를 떨쳤던 나라를 묻는 질문에 4위를 차지한 국가가 ‘청나라’이다. 그 대단했던 청나라-엄격히 말하면 ‘후금(後金)’(후금은 ‘청나라’의 전신이다)-를 세운 사람은 누루하치. 그런데 그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이 신기한 조합의 한자를 분석해보기로 하자.



애신각라(愛新覺羅)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고국인)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청나라를 세운 만주인들의 '근원'을 살펴 보면 신라와 관련된 성이라는 해석은 상당히 신빙성을 가진다.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지료'인데,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뜻한다. '(신라 왕실의 성인) 김씨의 겨레' 혹은 '금, 밝음을 숭상하는 겨레'라는 말이다. 청나라라면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는 오랑캐의 나라로 불리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나라이다. 그런데 왜 청나라 왕조의 성에 '신라'와, 신라 왕족의 성 인 '금(金)'이 포함되어있는 것일까?



"청나라는 우리나라를 어버이의 나라로 섬겼습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때 청 태조 ‘누르하치’가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었지요. 또 유명한 '삼전도 항복' 때는 ‘친명배금(親明排金)’을 외치는 조선에 와서 '원래 우리는 고려인의 후손으로 그대들과 같은 나라였다'는 취지로 '그대는 왜 동족을 따르지 않고 명나라를 돕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청은 조선에 번번이 형제의 도리를 강조했습니다. 조선은 명분론에 매여 끝까지 청을 형제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죠."



역사연구단체 ‘한배달’의 오정윤 연구원은 먼저 청나라가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섬긴 예를 들었다. 그는 누르하치가 백두산 지역에서 태어난 것을 지적하며, 당시 백두산 지역에는 만주계 조선인이 많았고 그들 중 상당수가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고려인 또는 조선인으로 귀화했다고 설명했다. 한때, 누르하치도 평안도 지방관현에 벼슬을 수차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나서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왜 청나라가 끝까지 조선에 호의적이었을까요? 바로 청나라가 ‘금나라’로부터 나왔고 금나라는 ‘신라’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이덕일 씨도 오 연구원과 의견을 같이 했다.



"중원을 복속하고 한족을 지배했던 곳이 청나라입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 때 조선은 몹시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청은 충분히 조선을 복속하고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들의 조상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우리 시조는 신라인"



역사학자들의 말처럼 여진족 추장 누르하치는 금나라를 기리며 나라 이름을 '후금'이라 지었다. 그리고 누르하치가 금나라 태조와 정확히 어떤 혈연관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누르하치가 계승한 금나라의 태조 아골타가 신라인이라는 문헌들은 많이 존재한다. 먼저 금나라의 역사서인 [금사(金史)]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金之始祖諱函普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 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兄阿古好佛,留高麗不肯從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

금나라의 시조인 함보가 60세가 넘은 나이에 고려에서 왔는데, 그의 형제는 고려에 남고 혼자만 금나라로 왔다는 이야기다.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도 금나라의 태조에 대해 "신라왕의 성을 따라 국호를 금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송나라 때의 역사서 [송막기문(松漠紀聞)]은 "금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여진족이 부족의 형태일 때, 그 추장은 신라인이었다"고 전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비단 중국의 사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부안 김씨’들은 그들의 '족보'를 내세워 [금사], [만주원류고], [송막기문] 등의 내용을 이렇게 뒷받침한다.

"함보는 법명이고 그의 본명은 김행 (혹은 김준)으로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이자 경순왕 김부의 손자이다.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다른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금나라의 역사서 [금사]와 거의 대부분 일치하는 주장이다. 다만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가 김준의 직계 아들인지 몇 대를 거친 손자인지는 의견이 다양하다. 어느 것이 옳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인데,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의 유민이라는 점만은 어느 이야기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예를 더 보자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안정복 역시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김준은 삼형제인데 김준이 여진으로 망명할 때 두 형제를 두고 혼자서 갔다.'고 밝히고 있어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인 김함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의 왕족'이라는 주장을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블로그통신 2009.04.08  12:01

애신각라(愛新覺羅) 송나라 시대 실크로드의 고향 절강성 항주 인민식당 만두집 문패의 애신각라를 찾아 주인과 그 역사를 물어 보았지. 모른다고 했는데 답이 여기 있네.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라는 해석을 내린 사람이 나니 아는 친구 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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