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동의하고 싶지는 않은데 - 나 역시 감정에 이끌리는 인간이므로 -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 가장 처음 본 얼굴이 있다. 어떻게 생각할까? 때리고 욕하고 굶기고 괴롭혀도 가장 처음 본 얼굴이고 가장 가까이 있는 모습이라면 어느새 부모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그건 본능에 관련된 것이다.
태어났다. 아니 겨우 사물을 인지하고 인식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다. 어딘가 임시정부라는 게 있지만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학교에 가도, 관공서에 가도 보이는 것은 일본제국과 조선총독부 뿐. 현실을 지배하는 힘도 그것이 전부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우고.
묻는다. 과연 저 아이는 자신의 조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망해버린 조선을 조국이라 생각할까? 아니면 생전 보도듣도 못한 - 일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임시정부를 자기 정부라 인식할까? 그도 아니면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일본제국을, 조선총독부를 자신의 조국, 자신의 정부로 인식할까?
흔히 프랑스의 예를 든다. 프랑스가 나치독일에 점령되었던 기간은 기껏 3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선은 그 무려 열 배의 시간을 일제의 식민지로 있었다. 한 아이가 태어나 자라 심지어 자식이 결혼해 아이를 갖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일본의 지배 아래, 일본을 자기 나라라, 자기 정부라 배우며 자랐다. 3년이라는 시간과 36년이라는 시간, 과연 같을까?
친일이라 하지만 그 안에서도 차등을 두어야 하는 것이 그런 부분이다. 있지도 않은 나라, 가져 본 적 없는 조국을 위해 과연 현재를 포기해야 할까? 그럴 수 있다면 참 멋지기는 하겠지만 그런 피비린내나는 선택을 하기엔 인간의 일상은 너무 가볍고 연약하다. 그것도 이미 열강의 대열에 들어가 있는 일본에 대해.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하는 사람도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능성도 희박한 독립보다는 일본의 지배 아래, 일본의 지배를 인정하면서 식민지의 현실을 보다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세기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자들이 그랬었다. 그들이 처음 바랬던 것은 아일랜드의 독립이 아니었다. 자치였고, 아일랜드의 인민들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었다. 아마 영국정부가 아일랜드에 대한 지배에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취했다면 스코틀랜드나 웨일즈와 마찬가지로 영연방의 한 부분으로 지금도 남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아일랜드의 독립을 부추긴 것은 영국의 가혹한 식민지 정책 때문이었다는 것인데,
조선의 상황은 더 열악했다. 근대화 어쩌고 하지만 학교도 부족했고, 그나마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은 전무했다. 겨우 경성제국대학이 하나 세워졌는데 그조차 조선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일본제국에 협력하는 조선인을 위한 것이었다. 태평양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아예 조선에는 공장이랄만한 것도 없었고,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약탈까지 더해지며 조선의 인민들은 더욱 굶주리게 되었다. 딸을 유곽에 팔아야 하고, 지식인들은 하릴없이 룸펜이 되어 인생을 허비해야 하고, 그렇다고 현실을 개선시키려 해도 조선인에게는 조금의 참정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과연 일본과의 투쟁에 모든 것을 걸어야겠는가?
그래서 조선의 지식인 가운데는 그같은 일본의 지배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지배에 협력하되 일본으로부터 자치를 얻어내고, 조선의 인민들의 삶을 개선시키자...
보통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조선은 망해 사라졌고, 현실은 일본의 지배다. 그렇다면 그 현실을 택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 모두가 투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열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분들이야 훌륭하다는 걸 알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다면 굳이 그런 분들을 떠받들거나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니 대단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까지 모두 뭉뚱그려 친일파라 해야 할까?
선을 그어야 한다. 물론 프랑스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선이다. 일본의 지배 아래 태어나서 살아갔던 사람들. 아니면 최소한 철이 들 무렵 이미 일본의 지배 아래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나치독일의 지배 아래 놓였을 때 역시나 레지스탕스에 참가하지 않았던 수많은 프랑스인들처럼 방관자로 있었던 사람들. 과연 그들까지 친일파라 해야 할까?
즉 친일이라는 것은 단순히 구일본제국의 지배에 순응할 것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구일본제국이 조선을 지배하고 약탈하는 데 동조했던 이들을 뜻하는 것일 게다.
솔직한 말로 나는 고아론을 처음 내놓았던 이광수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인정하고 있다. 어차피 조선은 없고, 일본의 지배 아래 살아갈 것이라면, 아예 뿌리까지 일본인이 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들에 대해 한국의 문화를 인정하라, 한국만의 관습을 받아들이라, 한국인이 되라 강요하는 많은 한국인들처럼. 외국인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남아 한국을 바라볼 때 그렇게 싫어하는 게 한국인 아니던가? 그대로. 그것도 어쩌면 당시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 그나마 조선의 인민들의 처지를 보다 낫게 할 수 있는 한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광수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주장과는 달리 철저히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조선과 조선의 인민에 대한 약탈에 철저히 방관자였다는 점일 것이다. 아니 나아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조선의 인민과 물자를 동원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었고, 그의 선동에 실제 넘어가 전장으로 나가 죽거나 다치거나 실종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책임은 어찌하는가?
그런 것이 친일인 것이다. 다른 것이 아니라 조선의 인민과 물자를 약탈하고, 그로 인해 조선의 인민들의 삶이 더욱 피폐해지게 만든 심지어 주범이거나 최소한 공범이었다는 것이. 식민지 백성의 입장에서가 아닌 철저히 침략자의 입장에서 그들에 동조하여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것이. 제국주의 침략이 비난받듯 그 협력자들도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다. 단지 그 시절에 순응했다는 이유로 엉뚱한 사람들까지 뭉뚱그릴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랬다. 나치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도 많은 프랑스인들이 그렇게 현실에 순응해 살아갔다. 레지스탕스에 동참한 것은 프랑스인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였다. 36년이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어느새 부모가 되고, 또 손주를 볼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살아가는 것이 죄가 되는가?
나는 박정희를 싫어한다. 아주 끔찍히도 싫어한다. 그러나 그의 친일전력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던 시대에, 충성해야 할 조국은 사라지고 일본제국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한 상황에, 아마 박정희 같은 성격이라면 차라리 일본인이 되어서라도 새로운 조국에 충성하려 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가 활동하던 곳도 조선인과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만주국이었고. 아니 오히려 당시 만주국은 조선인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통하고 있었다. 과연 비난해야 할까?
비난하자면 오히려 당시 조선총독부에 협력하여 조선의 인민들을 약탈하던 지주, 자본가들이어야 할 것이다. 언론인이거나, 지식인이거나, 실제 조선총독부의 지배와 약탈에 영향을 주고 기여를 했던 이들. 그들보다 박정희가 더 비난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이라서? 전직대통령이어서? 아니면 독재를 해서?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이건 이거, 그건 그거다. 독재를 했다는 것과 과거 친일을 했다는 것은 별개다. 친일의 크기나 책임도 그와는 별개다. 세상에 없을 독립운동을 했어도 독재를 했다면 비난을 들어야 하는 것이고, 친일을 했어도 과거를 반성하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면 칭찬을 들어 마땅한 것이다. 고작해야 만주군 소좌따위.
말하자면 박정희는 친일파 가운데서도 피라미다. 과연 그것을 친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지엽말단에 불과하다. 대체 왜 그것이 지금에 이리 문제가 되어야 할까? 더 큰 친일도 있는데. 식민지 치하에서 굳이 한 자리 하지 않고서도 지주로서, 자본가로서, 조선의 인민들을 착취하며 일본의 지배에 협력한 이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그들이 더 큰데.
내가 박정희 친일논란에 냉소적인 이유다. 최소한 친일문제에 있어 박정희는 꺼리도 못되는 사소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가지고 이리 떠들어댄다는 것이... 아직도 우리가 유신체제의 영향 아래에 있음을 알겠다. 애써 박정희를 까대려는 인간들이나, 그 박정희를 감싸려 발악하는 무리들이나... 언제쯤에나 우리는 유신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은 원래 나약하다. 나약하기에 항상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가장 악독한 전제왕조의 지배 아래서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 잘못도 저지르고 죄도 짓곤 한다. 인간인 때문이다. 먼저 그것을 인정하고... 모두가 애국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투사가 될 수도 없고, 모두가 열사가 될 수도 없고. 친일에 대한 평가도 그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냥 무작정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에 저항하지 않았으니, 순응했으니 친일파가 아니라.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당시 친일파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 "창씨개명했으면 다 친일파지!"
물이 너무 맑으면 어떤 고기도 살 수 없다. 사람은 더욱 살지 못한다. 세상은 그리 맑지 않다.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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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찬호를 좋아한다. 야구를 잘해서도 그가 메이저리거여서도 아니다. 한결같이 자신의 목표에 도전하는 오롯한 그 의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애국심도 한 몫 한다.
올 초였을 것이다. 불안한 현재의 입지로 인해 더 이상 WBC 국가대표 소집에 응할 수 없다고 기자회견을 할 때 그가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보면서 한 구석이 먹먹해 져 온 사람은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다. 그 전에도 아직 팀에서의 입지가 불안하고, 장차 불이익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박찬호는 솔선해 국가대표 소집에 응했고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대표팀을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애국심이란 국가라고 하는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해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것이다. 바라고 위한다는 것이다. 내가 속한 집단인데, 그것은 또한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한데 어찌 기분이 나쁠 수 있을까?
박찬호만이 아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나라의 이름을 알리고, 나라의 명예를 드높이고, 나라에 실제 도움이 되고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의 희생을. 노력을.
그러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누군가 나더러,
"너는 애국심이 부족해!" "애국심을 가져!" "애국해!"
이따위 소리를 늘어놓는다면 꽤나 기분이 싸해질 것이다. 그보다 먼저 고개가 틀어지고 입에서 막말이 나온다.
"그래서?"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를 떠나서 만일 그러한 요구에 내가 응하지 않겠다면 어쩌겠는가? 때리겠는가? 아니면 내쫓겠는가? 설마 죽일까?
하긴 설마도 아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애국심을 이유로 그런 것들이 수도 없이 저질러지고 있었으니. 나라를 위해 죽이고, 나라를 위해 고문하고, 나라를 위해 강간하고, 나라를 위해 폭행하고, 나라를 위해 내쫓고...
불과 몇 달 전에도 있었다. 한 아이돌그룹의 리더가 무려 4년 전 생소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겪은 위화감이나 부대끼던 어려움들을 조금 거칠게 표현했다는 이유로 아예 연예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몰아세워 쫓아내고 있었다. 4년도 더 전에 남긴 몇 마디가 한 연예인으로 하여금 더 이상 연예인으로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내가 애국심을 갖지 않으면 때릴 거야?"
여기서 갈린다.
"때릴 거야!"
이게 애국주의,
"아니면 할 수 없고..."
이게 그냥 애국심.
사실 탈민족주의 운운하는 인사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다.
애국심과 애국주의는 다르다. 애국심은 오롯한 자기 자신의 양심에 기준한 자기 선택이며 실천이다. 반면 애국주의는 자기 양심에 기준하는 것은 같은데 타인에게 그 선택과 실천을 강요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에잇! 이대로 간다면 일본은 저들에게 유린될 것이다. 이 한 몸 바쳐서!"
이것은 그래도 정상적인 애국심이다.
"일본을 위해서, 천황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라! 살아서 돌아오지 마라!"
같은 카미카제더라도 초반 파일럿이 자기 판단에 의해 몸통공격 - 다이아다리를 가한 것은 순전한 개인의 애국심에 의한 것이었다.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그리고 본토에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해 이 한 몸 기꺼이 희생한다...
그러나 후자는 다르다. 겉으로야 자원의 성격을 띄웠지만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라...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라... 그것이 진정한 남자의 길이다. 군인의 길이다. 그래서 자원하지 않으면 은연중 따돌리고, 무시하고, 그래서 떠밀리듯 전투기에 몸을 싣고 자살공격에 나서게 만들고...
물론 군인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의 성격상, 승리를 위해서라도 명령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분명 있다. 예를 들어 퇴각을 해야하는데 추격해 오는 적군의 기세가 심상치 않을 경우 일부는 남아 주력이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도록 지연전을 펼치는 것과 같은 경우들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한 가지 원칙은 있는데,
"아군이 여기까지 퇴각하는 동안, 즉 앞으로 24시간 동안 현 진지를 고수하며 지연전을 수행하고 이후는 자유판단에 맡긴다. 퇴각하거나 아니면 항복하거나. 무운을 빈다."
퇴각하는 아군의 후미를 확보한다고 거기서 죽으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요한 시간 만큼만 적을 저지하고 만일 가능하다면 역시 같이 퇴각하고,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그 자리에서 항복할 수 있다. 임무는 아군이 퇴각할 수 있도록 적을 저지함으로써 시간을 버는 것이지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이 아니니까.
같은 맥락이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전체 아군을 위해 희생하는 것... 그 역시 군인의 임무다. 그러나 그 임무란 그 전략적 전술적 필요성에 한정한다. 그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임무를 완성하고 나면 그 다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마찬가지로 상식인 것이다.
그런데도 임무와는 상관없이 상황이 그러하니 죽으라? 살아돌아오지 마라? 그게 애국주의라는 것이다. 실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미국이야 실종자 하나하나에 대해서까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추적해 유해라도 찾으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국군 포로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은 지가 수십년이다. 한국전쟁에서도 그랬고 베트남 전쟁에서도 그랬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한국군 포로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나?
항복하는 것이 수치스럽고. 그러니까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어야 하고. 항복했다는 사실만으로 배신자 취급을 하고. 그래서 떠밀리듯 죽어야 함을 알면서도 그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
그러나 왜 죽어야 하는가? 왜 그런 무의미한 죽음으로 내몰려야 하는가?
물론 그럼에도 스스로 죽음을 각오하며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 존경스럽다. 그러나 그것을 강요당하는 입장은 어떨까?
민간인의 경우는 더 그렇다. 앞서 박찬호 선수의 예를 들었지만, 박찬호 선수의 경우처럼 팀내 자기 입지도 불안하고, 대표소집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불이익이 큰 경우, 사실 국가대표소집에 불응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자기 선수생활을 위해서, 그리고 당연한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 먼저 자신의 현실과 입장을 최우선으로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여러 사정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소집에 응해 최선을 다한다면 아름답겠지만. 비난받아야 하는가?
아니 비단 애국심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선은 어떨까? 누군가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를 위해 헌납한다. 평생 모은 재산의 일부를 - 하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을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기부한다. 아름답다. 그러나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러라 강요하는 것은?
개인재산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것이다. 자기가 모은 것이고 자기가 쓰려는 것이다. 그것을 과연 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까닭이 있을까? 그래서 않겠다면? 홍길동이나 로빈훗이 되어 그것을 털자고? 아니 그렇게 욕하고 비난하고 강요해서 억지로 기부를 이끌어낸다면 그것이 도적질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자선이란 말 그대로 자기가 내켜서 하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누가 하란다고 해서가 아니다. 누가 하란다고 한다면 그건 자선이라기보다는 강탈이다. 내 돈인데 남이 내놓으라 한다고 내놓으니 그게 강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구나 그렇게 하란다고 아예 외면하고 듣지 않으면 또 어쩌려는가? 굳이 자선을 위해 재산을 내놓지 않겠다고 한다면? 때리겠는가?
내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이 그래서다. 사회주의 국가라면 모를까, 아니면 전제군주에게 모든 권리가 있던 왕조국가라면 모를까,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재산은 오롯한 개인의 것이다. 누가 뭐랄 수도 없고, 누가 뭐랄 것도 없다. 그것을 어떻게 쓰든 개인의 자유다. 사회에 도움이 되라고 내놓든, 아니면 개인 하렘을 만들기 위해 쓰든, 딱히 사회적으로 해가 되지 않는 이상에는 무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차라리 세금을 더 걷던가. 국가가 개입해 돈이 더 많은 만큼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그것으로 합법적, 공식적으로 사회적인 평등을 위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옳다. 딱 이 만큼의 재산을 가진 사람은 그 재산에 대한 사회의 기여도 - 곧 비용이 얼마이므로 그 만큼을 세금으로 거두어 사회유지를 위해 쓴다, 개인에 강요할 수 있는 강제란 여기까지이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어쩌든 아예 신경 쓸 것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노블리스 오블리제 운운하며 당연한 권리에 대해서까지 강요하고 나서니.
이게 주의라는 것이다. 물론 주의가 반드시 그런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지향해야 할 바, 혹은 집단이, 사회가 지향해야 할 어떤 가치로써 주의는 한 개인, 혹은 한 사회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혹은 무정부주의이거나 사회민주주의이거나 전제주의이거나... 결국은 개인이 나아갈 바, 사회가 나아갈 바, 그로써 어떠한 일관성을 갖고 그로부터 앞으로 해야 할 바를 그려보고...
그러나 그런 것을 넘어 그것이 한 개인에 대한 강요가 될 때, 혹은 집단 속의 무수한 개인에 대해 강제가 될 때,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럴 생각이 없다는데 그러라는 것은? 전혀 동의할 생각이 없는데 억지로 그러라는 것은? 그에 따른 불이익이 가해지고. 심지어 죽고, 다치고, 빼앗기고, 너무나 당연한 권리에 대해서까지도 침해당하는 것은?
주의가 오늘에 와서 비판받는 이유도 그래서다. 너무 많았으니까. 그런 예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미국인에 의해 자행된 원주민 학살이라든가,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 당장 우리나라에서만도 보도연맹 사건이나 거창학살, 제주학살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자행되었다. 심지어 그 희생자의 유가족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모이자 아예 그 무덤을 파헤쳐 유해마저 흩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래도 당당했다.
"빨갱이는 때려잡아야 하니까!"
나라를 위해서, 자유주의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본주의를 위해서, 그래서 죽는 것도 당연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다. 단지 몰라서 그에 분노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직접 보았었다. 광주의 참상을 보고서도, 제주도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해 알게 되어서도, 숱한 학살과 그로 인한 희생자들에 대해 알려주어도 그리 말하는 사람들을.
"나라를 위해서!"
그게 문제라는 거다. 굳이 나라를 위한다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 그렇다면 지금 당장도 내가 애국심이 없고, 나라를 위할 생각이 없다면, 나라를 위해 나를 죽일 텐가?
이것은 중요하다. 과연 내가 애국심을 갖는 것은 이 나라가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어서인가? 아니면 죽기 싫어서인가? 내가 애국심을 갖고 하는 것이 이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해서인가 아니면 애국심이라는 빌미로 죽는 것이 두려워서인가? 재외동포들도 박재범처럼 내쫓기기 싫으니 억지로라도 애국심을 갖는 시늉을 보여야 할까? 그것이 애국심인가?
애국심이란 말했듯 자발적인 의지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고 스스로 그것이 옳다 추구하는 것이다. 누구로부터도 강요받지 않는. 누구로부터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그래서 애국심 아니겠는가?
그런데 애국심이 없다면? 애국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또한 개인의 선택이다. 생각해 보니 굳이 애국할 이유가 없다는데 누가 뭐라겠는가? 구일본제국의 제국주의적인 정책이 싫어서 구일본제국 정부를 비판하고, 천황을 비판하고, 도리어 조선의 독립운동가들과 연대하려 했던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을 우리가 애국심을 이유로 비판할 수 없듯 말이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에서 보통의 인민들이 애국하지 않고 애족하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비난한다. 애국애족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에 항거하지 않고 독립투사가 되지 않았다고. 그러니 다 같은 친일이라고.
애국주의의 또다른 폐해가 이것이다. 모두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변별이 사라지는 것이다.
어떻게 제국주의의 침략에 앞잡이가 되어 식민지의 인민을 약탈하는데 앞장서고 협력한 것이 단순히 지배에 순응한 것과 같이 취급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식민지의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여 소모하도록 협력한 것들에 대해서까지 단순히 애국심이라는 이유로 같은 것으로 치부한다. 하긴 애국심을 이유로 사람도 죽이는데. 아니 이제는 당시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협력한 것조차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는가?
모두가 애국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굳이 애국심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다. 애국심을 강요받을 이유도, 애국심을 이유로 비난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양심, 즉 애국심 또한 개인의 양심에 의한 것일 터다. 그래야 하니까. 그래야 한다고 믿으니까. 따라서 그에 대한 판단도 양심에 의해 내려져야 할 것이다. 과거 나치 독일의 군인과 관료들이 애국과 애족을 이유로 저질렀던 많은 행위들이 범죄로써 지금에 이르러까지 단죄되고 있는 것처럼.
양심이라는 것이다. 애국심 이전에 양심이며, 애국심 또한 양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심이란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며,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평가 또한 양심에 비추어 이루어져야 한다. 애국심이어서가 아니라. 애국심이어야 해서가 아니라.
분명 애국심은 존경받을만한 가치다. 그러나 애국심이라고 모두 옳은가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더불어 애국심이란 타인에 강요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혼자서 애국하는 것이야 상관없겠지만 남더러 애국하라 강요하며 위해를 끼칠 것은 더욱 아니다. 내가 애국심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면서 애국주의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다.
민족주의도 마찬가지다. 민족이야 얼마나 훌륭한 가치인가? 우리고, 우리다. 우리이기에 우리다. 단, 그러나 애국주의가 그러하듯 민족 역시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을 수만 있다면. 민족 역시 양심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모두가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거다. 자기가 옳다고 모두에게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옳다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타인이 옳기를 바랄 때 자신은 어긋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항상. 주의를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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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은 자를 홍성이라 하며, 원래 하북성 창현 맹촌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용력과 지혜가 출중하여 사람들 가운데 두드러졌었는데, 마침내 뜻한 바 있어 책을 버리고 무술을 배우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단련하기를 여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밤을 낮삼아 용맹정진하니 그 기세가 자못 놀라운 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들일을 마치고 밤늦게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데 난데 없이 도사 하나가 나타나 그에게 무술을 겨루어 볼 것을 청해오는 것이었다.(일설에는 승려라고도 한다.)
마침 오종 역시 나름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던 터였다. 그래서 떠돌이 도사쯤이야 우습게 보고 겨루기에 응했는데, 웬걸? 그의 눈앞에는 놀라운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겨루기를 마치고 그의 앞에서 다시 시연해 보여주는 도사의 권법은 그가 이제까지 보도 듣도 못한,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세계였다.
오종은 더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도사에게 예를 올리며 가르침을 청했다.
"불초한 오종이 도사님께 감히 배움을 청합니다."
다행히 마침 도사도 달리 할 일이 없었는지 오종의 청을 받아들여 무려 10년을 그의 집에 머물며 그에게 권법을 가르쳐주게 되었다. 파자권 - 즉 지금의 팔극권이었다.
그렇게 10년이 하루같이 흐르고 어느날 도사는 오종을 불러 말했다.
"이제 내가 아는 바를 모두 전했으니 나는 이만 떠나도록 하겠다."
그것은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10년을 하루같이 무술을 배운 스승인데 이제 떠나야 한다니.
그러나 10년은 긴 시간이었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라 마침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안 오종은 탄식으로 도사를 배웅했다.
"10년 공부로 제가 배운 것은 너무나 크고 훌륭한 것들이었습니다. 이제 떠나시면 언제 다시 뵈올 지 모르니 다만 스승님의 함자를 모르는 것이 한입니다."
그러나 도사는 오종에게 이같이 대답했다.
"무릇 라癩자를 아는 자는 모두 나의 무리이리라."
그렇게 도사가 떠나고 2년 뒤, 도사의 소식도 끊긴 지도 한참을 지나 다시 한 사내가 오종을 찾아와 무술을 거룰 것을 청해왔다. 겨루기에 응해 그 수법을 살펴보니 바로 스승 라癩의 기법들이었다.
오종은 반가움에 사내에게 누구인가 물었다.
"나는 벽癖자이니라."
그러나 사내의 대답은 이 짧은 한 마디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러기 위해 그를 찾은 양 오종에게 팔극비결 한 권을 전하고는 라가 미처 전하지 못했던 대창술의 기술을 가르쳤다.
오종이 대창술까지 다 익히자 벽이라는 이름의 사내는 이번에는 오종을 이끌고 강호를 떠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운하를 타고 강남으로 내려갔다. 강남의 여러 지방을 돌며 무술가를 만나 겨루기를 여러 차례, 항주의 어느 절에서는 소림무술의 달인이라는 주지를 꺾고 그로부터 금표를 선물로 받기도 했었는데, 그리고 다시 절북에서 북경으로 나아가 거기서 명성을 떨칠 큰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바로 강희제의 11자이자 당대의 고수로 이름높았던 윤제와 겨루게 된 것이었다.
처음 윤제는 오종의 추레한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시골의 이름없는 무술가라 업수이 여기며 적선하듯 시합을 받아주게 되었다.
아마 이랬겠지?
"대인께 배움을 청합니다." "허허... 나의 창은 무겁고 둔하네." "저의 목숨은 깃털처럼 가벼워 바람에 날려 사라져도 그 뿐입니다." "후회하지 않겠나?" "대인의 높으신 실력을 견식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읍할 따름입니다." "사람이 되었구만. 좋네. 내 잠시 가르침을 내림세." "감사합니다!"
물론 상상이다. 내가 그 시대 살았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자세히 기록에 남은 것도 없다.
아무튼 당시라고 무술시합하다가 사람 죽고 죽이고 하는 일이 허용될 리 만무하니 둘이 시합을 벌인 것은 수라고 부르는 대나무 끝에 천을 감아 만든 연습용 창이었다. 그 끝에 횟가루를 묻히고 서로의 몸에 남은 횟가루의 흔적으로 승패를 가늠하는 것이었는데, 수호전을 보면 청면수 양지가 유배지에서 관리인 양중서에게 발탁되는 과정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사술이다!"
그러나 시합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끝나고 말았다. 어어 하는 사이, 심지어 눈썹에 흰 횟가루가 묻어 있는 상태에서도 윤제는 그같은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속임수라 여기고 다시 겨루고 몇 번을 다시 겨루어도, 나중에는 아예 횟가루를 밀가루풀로 바꾸어 겨루었음에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윤제는 눈썹에 묻은 밀가루풀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윤제는 눈앞의 이 추레한 촌뜨기가 자기와는 비교도 안되는 고수임을 알았다.
"제가 눈이 어두워 태산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윤제는 자세를 가다금고 얼른 오종을 윗자리로 모셨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언제 거만했느냐 싶게 공손히 배움을 청했다.
"부디 이 불초한 제자의 눈을 틔워 주십시오."
이로부터 오종에게 한 가지 별호가 붙었으니 신창神槍. 북경무술계의 새로운 바람 신창 오종의 등장이었다.
이후 오종은 북경에 머물며 많은 제자를 거두어 가르쳤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머니가 늙자 봉양하고자 낙향하게 되었으니 고향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이들이 백 리 밖에서까지 몰려들어 그 가운데 입신한 이만 15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북성 창현 맹촌의 팔극권의 시작이었다. 오종의 기법은 딸인 오영이 물려받아 다시 이대종, 장극명 등에게로 이어졌다.
참고로 오종이 윤제와 시합한 시점을 오종이 30대를 넘긴 시점이라고 보았을 때(라에게서 배운 것이 10년, 라로부터 벽이 찾아오기까지가 2년,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시점을 10대 후반으로 잡아도 강남을 여행한 시간까지 계산하면 최소로 잡아 30대 중반이 된다.) 오종의 출생년도는 순치말에서 강희초 사이인 1660년 전후해서일 텐데, 이미 명 가정연간에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에 파자권곤이라는 팔극권의 옛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윤제와 시합한 시점이 1700년 언저리라고 보았을 때 거의 200년의 시간차이가 나는 셈이다.
더구나 벽이 찾아와 건낸 책의 제목이 팔극비결이라는 것도 그렇다. 전에도 말한 바 있듯 팔극권의 원래 이름은 파자권으로 팔극권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에 들어서다. 즉 당시까지는 팔극권이 아닌 파자권이었고, 따라서 팔극비결이라는 책음 있을 수도 없고, 있더라도 다른 제목이었어야 했다. 이 역시 문제.
다만 이야기가 사실이라 가정했을 때 팔극권의 원류는 아마도 백련교나 홍문 등의 비밀결사가 아니었던가 싶다. 일단 파자권이라는 권법이 이전부터 있었고, 하북성 창현 맹촌에서는 오종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때, 아마도 라라는 도사나 벽이라는 사내는 백련교나 홍문 같은 비밀결사의 일원이 아니었을까. 라癩와 같은 불길한 이름을 암호처럼 말하는 것도 그렇고, 무술을 전하면서도 신분을 철저히 숨기는 점, 그리고 무려 10년을 은거하듯 오종의 집에 머물며 무술을 전한 것도 그렇다. 무언가로부터 몸을 숨길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원래 무술가 가운데는 비밀결사에 몸담는 경우가 많았으니.
아니 그보다는 오종 자신이 그같은 비밀결사의 일원이었을수도 있겠다. 오종이 굳이 강남을 여행한 것이나, 북경으로 가 유력자들과 교류한 것이나, 라나 벽과 같은 이름들은 그와 관계된 것이 아니었을까? 라가 오종의 집에 머물며 무술을 가르친 것도, 벽이 그를 데리고 강남이며 하북을 여행한 것도. 아닐까?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아닐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지만... 워낙 중국무술이라는 게 처음 무뢰한들 사이에서 전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문인들에게까지 전해지면서 그들에 의해 포장된 부분이 많으니. 팔극권도 그런 게 아닐까... 물론 추측이다. 정확한 사실은 당사자들만이 알겠지. 그냥 이런 게 있다는 것 뿐. 일단은 그렇다.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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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복사를 안되게 했는지 모르겄다. 글씨도 작고 . 사실 하얀 바탕에 작은 검정 글씨로 쓴 글을 읽는 것은 정말 눈을 피곤하게 한다. 내용은 읽은만 하지만 눈을 피곤하게 까지 하면서 읽어야만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난 웬만하면 복사해서 한글로 글자크기를 키워 일다보면 잘보여 뭔 내용인자도 잘알게 되고 좋은 글귀이면 고이 간직하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까페운영자에게 복사를 못하게 할려면 글씨크기를 10정도가 아닌 13정도로 아니 12정도로만 크게하여도 훨씬 읽기 쉬우니 글자 크기를 키우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한마다 요약하지요 당신이 쓰면 진실이고 다른사람 이야가는 소설이니 딴나라식으로 이야기 하면 욕먹어야 하는건 당연한건 아닌가요 다른 글을 쓰더라도 잡기록은 분명 그시대에 살지않아 참조하여 썼을것이어늘 다른 사람 비방하기를 밥먹듯이 하면서 본인은 온전하시기를 바라시나이까? 실제 경험하지 않은것은 픽션에 가깝거늘 님은 앞으로 글쓰지 마세요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불륜인네 삐딱이 사람 잡습니다..
팔극권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그리고 좀더 재미있게 알려면... 만화책을 보심이 좋을듯... '쿵후 소년' 또는 '쿵후 보이'라는 제목으로 상당히 오래전에 나왔던 만화책인데... 작가분이 상당히 자세하게 그리고 역사 고증에 의해서 만든 만화책입니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허구이지만.. 만화책에서 나오는 단체명과 '팔극권'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제가 봤던 무술 만화중에서는 가장 현실적이고 역사고증을 기반으로 해서 '팔극권'에 대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재미도 있어서 시간가는줄 도 모르고 빠져들 때가 많습니다.. 특히 '신창 이서문'에 대한부분은 참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인지라... 추천 해 드리고 싶습니다.
채우는 것은 비우는 것부터 시작한다. 술자리에서 술을 받으려면 먼저 잔을 비워야 하듯 말이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그러면 모른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는가?
잘못 알고 있다면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면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 아는가?
부족함을 알면 그것을 채우면 된다. 그러면 부족함은 또 어찌 알 수 있는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면 그대로 모르고 지나가고 마는 거다.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면 평생 그대로 잘못 알고 지낼 뿐이다. 부족함을 모르는데 어찌 채울 수 있을까? 채우려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나빠질 수 있으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도 그런 의미다. 나빠지면 더 좋아지려 할 테니까. 나빠지면 뭐가 문제인지 알려 할 것이고, 그것을 바로잡을 것이고, 장차 더 나아질 수 있을 테니까.
그조차도 없다면? 단지 언제고 닥칠 실패를 나중으로 - 어쩌면 더 큰 실패로 미뤄두었을 뿐이다.
어린아이가 빨리 배우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이 수다스럽기 때문이다. 뭐가 그리 궁금한 건 많고, 알고 싶은 건 많은지... 모른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족함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고 솔직하게 듣는다. 그것이 아이들이 빨리 배우고 빨리 자란다는 이유다.
조금 더 수다스러울 수 있기를. 조금 더 무모할 수 있기를.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내딛을 수 있기를.
그러나 또 이 사회의 현실을 알기에 아이들에게 그리 말하지는 못하겠다. 패자에게 잔혹한 사회. 실패자에게 더 가혹한 사회. 한 번 쓰러지면 짓밟고 짓밟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실패를 두려워해야 하는 사회다. 무지를, 오류를, 부족함을 두려워하고 감추어야 하는 사회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넌 그런 것도 모르니?"
아이들은 그 순간부터 침묵을 배우게 된다. 마치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부끄러움을 알고 몸을 가리기 시작했듯 아이들도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와 부족함을 부끄러워하며 그것을 감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가 아니게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침묵을 배우고 자신을 감추는 것을 배운다. 감추다 감추다 그것을 지키려 난폭해지고 잔인해지고...
"넌 그런 것도 모르니?"
어느새 그 말을 배워 써먹기 시작하고...
바다 위에 보트를 띄워놓고 가만히 있으면 어느 샌가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이 흘러가듯 시간은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중간은 간다는 말은 그 시간 속에 어느샌가 멀리 떠밀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게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중간이기 위해서는 항상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오리가 물에 떠 있기 위해 쉴 새 없이 발을 젓듯 그렇게 떠들고 부딪히고 좌절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게 아니다. 당장은 중간이더라도 그것은 멈추어 선 중간이다. 세상에 멈추어 있는 것은 없다. 모두가 움직이는데 홀로 멈추어 중간이라는 것은 곧 도태를 뜻한다.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란...
중요한 것은 먼저 부족함을 아는 것이다. 모자름을 아는 것이다. 어리석음을 아는 것이다. 무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것들을 채우고 메꾸어 일어서 나아가는 것이다. 침묵이 아니라.
"모르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하긴 그 또한 꿈일까? 가만히 있어도 현상은 유지되는.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도 인간의 특권일 테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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