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시인의 시 "절정"의 마지막 귀절이다. 당연히 앞부분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 시를 마지막 읽은 게 언제인데...
그럼에도 내가 유독 이 마지막 귀절만은 외우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 시린 절망을 느껴버린 때문이다.
무지개란 희망이다. 그러나 강철은 겨울 만큼이나 차고 음습하다. 더구나 깨뜨릴 수 없이 단단하기까지 하다. 겨울만큼이나 차고 음습하며 깨뜨릴 수 없이 단단한 희망이란...?
그것은 아마 나락과도 같은 희망과 같은 뜻일 것이다. 저주스런 꿈과도 같은 뜻일 것이다.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절망. 도저히 어찌할 수 없기에 오히려 더 절망스러운 희망.
당시가 그랬다. 1930년대,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구일본제국과 그 구일본제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 그랬다.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독립을 꿈꾸어 보지만 어느새 열강의 대열에 들어 국제질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구일본제국이라는 현실 앞에 희망이란 어쩌면 절망보다도 더 절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독립에의 꿈을 버리고 돌아섰다. 어떤 이는 차라리 일본의 식민지로라도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고 대우받고 잘 살 수 있도록, 어떤 이는 차라리 독립을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차지나마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며, 또 어떤 이들은 이것저것 다 포기하고 일신의 안위만을 꿈꾸며...
그런 시대였다. 1930년대란. 1940년대란. 뜻을 꺾지 않고 버티기란 죽거나 아니면 묻히거나 그도 아니면 미치는 수밖에 없었다. 전향을 거부했기에 감옥에서 죽지 않기 위해 미친 척 해야 했던 - 혹은 진짜 미쳐야 했었던 박헌영처럼.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은 사람을 좌절하게 만든다. 좌절은 자포자기하게 만들고 자포자기는 인간을 비굴하게 만든다.
어차피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도저히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 현재다. 어찌할까? 부당하고 불합리하고 억울하고...
누군가 그러더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말 그대로.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차꼬를 차고 죽을 때까지 노를 저어야 하는 노예더라도, 아직 성징도 나타나지 않은 나이에 억지로 마약을 주사맞고 총을 들고 전장으로 나가야 하는 어린아이더라도, 강제로 납치되어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소녀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정상이다." "이것이 옳은 거다." "전혀 잘못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나는 괜찮다."
이를테면 인지의 부조화랄까? 분명 현실은 부당하고 불합리한데, 그래서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데, 그렇다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 계속해서 속을 썩이며 억울해 할까? 아니면 억울하지 않다 차라리 자위하고 잊고 말까?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것이다. 뭣같은 현실이기에, 그 현실을 도저히 어찌할 수 없기에 차라리 그에 순응하고 마는 것.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에 동조하고 마는 것.
같은 여성인데 오히려 여성주의자를 증오한다.
"어딜 여자가..."
노예해방을 부르짖는 같은 노예에게 노예들은 역시 말한다.
"미쳤구나!"
그래서 여성주의자로 인해 시끄러워지고, 노예해방운동가로 인해 문제가 불거지면 당연히 그리 말하며 질책한다.
"너 때문이야!" "네가 문제야!"
이미 그런 현실에 동의해 버린 때문이다. 그것이 정상이라. 그것이 당위라. 그 일부로써 자신을 인식하고.
문제는 그런 것들이 결코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기득권이었다면, 그래서 당연스레 그런 질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면, 그때는 차라리 다른 여지라도 있다.
노예가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여성이 남성우월주의자와 같은 눈으로 여성을 본다? 그런 비정상이 정상이 되자면 그만큼 강한 충격과 강한 인위가 가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위는 사고를 고착시킨다.
"나는 옳은가?"
세상에 그 질문에 자기가 틀렸다고 대답하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차라리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때라면 상관없겠지만, 이미 결론을 내리고 그리 입장을 정하고 난 다음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물며 그것이 정상과 한참 비틀어진 비정상이라면야.
그래서 더욱 완고해지고, 그래서 더욱 과격해지고, 심지어 더 잔인해지고 난폭해지고...
그래서 보면 노예에게 가장 잔인하게 구는 것은 같은 노예다. 여성에게 더 지독스레 구는 것도 같은 여성이고.
"너만 아니면!" "너만 아니었으면!"
그랬다면 이대로 모른 체 계속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 있었을 텐데. 때로 부당하고, 때로 불합리하고, 때로 그로 인해 아프고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미운 것은 아프게 한 당사자보다, 그것을 깨닫게 한 그다. 원망스러운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한 그보다 그 억울함을 깨닫게 만든 이다. 그만 아니었다면... 그래서 더욱 그런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더욱 완고해지고 더욱 엄격해지고.
그 또한 인간의 자기애에서 나오는 강력한 방어기제라 하겠다. 나는 옳다. 나는 괜찮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설사 현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한.
짐승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그래도 한 번 살고 가는 세상 뭐라도 이름은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이름은 못 남기더라도 다른 사람들에 의미있는 기억은 남기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나 자기시현의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뭐든 해야 하고, 뭐든 이루려 하고, 그것을 과시하려 하고...
역사상 많은 권력자들이 그랬다.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제나, 대운하를 판 수양제나, 로마의 황제들도 자신의 호칭에 붙는 엠페라토르로써의 자격을 인정받고자 참 쓸데없는 전쟁을 많이도 일으켰었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있구나 전쟁. 건륭제가 강희와 옹정 두 선대황제가 이룬 부른 60년의 재위기간동안 대외원정으로 다 퍼다 날렸었다.
당장 북한만 봐도 그렇다. 인민대학습당이던가? 그거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짓다 만 고려호텔인가 뭔가는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었고. 피죽도 못먹는 주제에.
몇 년 전 중국정부가 장강 상류에 쌓은 싼시댐, 그리고 이집트의 독재자 나세르가 나일강을 막아 쌓은 아스완 댐...
말했듯 사람은 죽어도 이름이 남고, 이름은 사라져도 그 흔적은 남는 법이니까. 이집트제국이 멸망한지 벌써 수천년이 지났어도 쿠프왕의 피라미드는 그 자리에 서서 이집트의 찬란한 영화를 증명하듯.
"서태후가 욕먹으며 지은 이화원이 지금은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지 않느냐?"
그 덕분에 대포가 없어 더 강력한 최신의 함을 보유하고도 청일전쟁에서 패했던 역사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더구나 동아시아의 세계관 자체가 사후세계가 있는 다른 문명권과는 달리 불멸을 통한 영생이 아닌 필멸자로서의 역사를 통한 영원성을 추구했었다. 말은 복잡한데 한 마디로 이름을 지켜 이름을 남김으로써 역사속에서 영원하기를 바랬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리 후손에 집착했던 것이고, 그래서 그리 문중에 집착했던 것이고, 그래서 그리 자신의 이름에 집착했던 것이고, 또 그래서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이름을 훼손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치욕적인 처벌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또 조상의 이름을 보다 아름답게 남기려는 후손의 노력이 그리 치열하고 집요했던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렇게 이름에 대한 집착이 강한 문화이다 보니, 그래서 또 이 동네 사람들이 그 이름에 대한 강박이 강하다. 어떻게 그 이름이 불리는가? 어떻게 그 이름이 후세에 남는가...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더 멋지게...
더구나 변화된 시대에서 권력이란 영원한 것이 아니다 보니. 삶이 영원하지 않듯 권력도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더욱 집착하고 강박하고...
대못이라 하지? 바로 그거다. 전 정권이 남긴 유산에 대해 마치 각인인 양 박아놓은 대못이라 평가하는 것.
왜 저리 4대강에 집착하는가? 왜 저리 세종시를 취소하지 못해 안달하는가?
새로이 왕조가 창설되면 전왕조가 남긴 흔적은 지우고, 새로운 왕조의 흔적을 더욱 강하게 남기고 싶은 법이다. 권위를 세우고자. 인정받고자. 이어가고자.
정치논리에 좌우되어서는 안된다라...
원래 시작부터가 정치논리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현실적인 이유가 얽히며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정치논리 운운...
그러나 그것이 권력이라는 거다. 그것이 권력을 잡은 심리인 것이고.
기왕에 권력을 잡았으니 흔적은 확실히 남기고 싶다...
민주주의가 갖는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다. 황제로서의 지위가 불안했던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권위를 인정받고자 끊임없이 정복전쟁을 일으키고 선심을 베풀었던 것처럼. 물론 그 또한 민주주의이기에 그 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짐이겠지만.
아무튼 솔직한 심정으로는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언젠가도 썼지만 나는 동프로이센에서 강간당하고 학살당한 독일인에 대해 별로 동정하지 않는다. 드레스덴에서 타죽은 독일 시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도 그렇다. 결국에 자업자득이라...
과연 4대강은 어떤 이름으로 남을 지. 지금은 어떤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될 지. 지금의 우리들은...?
그래봐야 다 죽고 난 다음의 일이다. 살아서야... 살아서 또 살면 얼마나 살까? 어차피 인간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을.
지켜 볼 뿐이다. 어디까지 가려는지.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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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그동안 보인 행보를 보라. 정연주 사장 - 그동안 받았던 혐의들에 대해 무혐의로 판결났다. 해임조치에 대해서도 부당하다고 판결이 나왔고. 그러나 당시 KBS노조가 어땠더라? 그리고 이병순 사장에 대해서는?
미디어법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이 함께 일어나 반대하는데 KBS가 보인 것은 어정쩡함과 역주행이었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KBS라고 반드시 미디어법에 반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친정부인사를 사장으로 맞는 데 반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부당한 해고에 항상 반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못 믿겠다는 거다. 지금 낙하산인사의 문제가 무언가? 바로 언론의 중립성에 대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에 대한 그동안의 KBS의 입장은? 수신료 올려주면 좋고, 자기 주머니에 돈 들어오면 좋다는 것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들이라는 것도 딱 그 수준이고.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죽을 때라 그런다. 아니면 뭔가 크게 사기치려 하는 것이거나. 하던대로 사는 게 좋은 거다. 정권 바뀌면 바뀐 정권 따라 해바라기처럼 입장 바꿔가며 월급이나 두둑이 챙기는... 그러자는 KBS 아닌가?
하긴 어차피 쇼다. 그냥 넘어가기 그래도 입장이 있으니까 한 바탕 쇼를 보여주려는 게지. 그렇지 않아도 최근 KBS 예능이 강세 아니던가? 리얼버라이어티 찍듯이. 리얼이라고 다 리얼은 아닌 거 알지?
유시민도 마찬가지다. 나는 유시민 개인에 대해서는 호감이 있다. 좋은 사람이다. 착하고, 똑똑하고, 생각 깊고, 아는 것 많고, 글 잘쓰고, 말 잘하고... 행실도 참 바른 편이다. 단,
나는 유시민이 개혁당을 처음 창당할 때 한 말을 잊지 못한다.
"백 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
그리고 그 이듬해였지? 개혁당을 한 순간에 공중분해시켜버린 것이.
다 좋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 정치라는 게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믿음이 생겨버렸다.
"유시민은 정치적인 이해 앞에서 얼마든지 입장을 바꿀 수 있구나!" "유시민은 정치적인 상황이 그러면 얼마든지 말을 바꾸고 행동을 뒤집을 수 있구나!"
믿음이 깨어져 버린 것이다. 어차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일도 없의니 호감이야 가지거나 말거나겠지만,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정치에 대해서는 그를 지지할 수 없는 이유다.
요체는 신뢰다. 믿음.
믿음이 연대를 만들고 관계를 만든다. 그를 지지하도록 하고, 그를 기대하도록 하고, 그를 기대도록 한다.
그런데 믿음이 깨지면? 완전 남남이다. 아니 어지간하면 내 삶에 끼어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차라리 살인자가 낫지, 사기꾼은 불안하다. 살인자는 죽일 뿐이지만 사기꾼은 끊임없이 거짓말로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죽일 거라 안다면 차라리 미연에 그것을 막고자 노력할 수나 있지만, 속이려는 것을 안다고 항상 속지 않으려 어떻게 견디는가?
유시민이 진보개혁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를 믿지 못한다는 것. 그를 믿을 수 없다는 것.
KBS? 그건 그냥 포기했고. 그냥 예능프로 몇 개만 챙겨보고 있다. 그 정도?
세상에 가장 웃기는 거짓말. KBS도 언론이라는 거짓말. 그깟 예능채널따위. 훗...
이번 미디어법으로 종합편성채널 만들면 KBS는 세계최초의 국영예능전문채널로 바꾸면 되겠다. 딱 그게 제 역할이다.
아무튼 그냥 웃고 마는 요즘이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같잖아서.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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