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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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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연예인에 대한 어떤 소문이 돌고 있다.

열심히 그 게시물에 리플을 달며 뭐라뭐라 비난한다.

그래서 그게 잘못이냐고 물으니,

"잘못은 아닌데 연예인이니까 이미지 손상이 있지 않겠느냐...?"
"연예인이니까 당연히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뭔 소리?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연예인이다.

연예인이니까 이미지 손상이 있다.

그래서 비난한다.

이해가 가는가?

그런데 이게 또 흔히 보이는 심리더라는 것이다.

뭐냐면 빈약한 자아에서 오는 일종의 의존심리다.

권위에 대한 복종?

그런데 그 권위란 학습과 경험이 만들어낸 허구의 권위다.

허구의 권위를 만들고 그에 스스로 복종하고...

대개의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그렇다.

사실 종교인 가운데 - 특히 광신도 가운데 진정으로 종교를 이해하고 빠져드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광신도일수록 그의 머릿속에는 애매하게 재조합된 종교의 이미지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가끔 광신도 가운데 인지의 부조화로 인해 더 미쳐버리는 경우도 나오는데...

민족이 어떻고, 국가가 어떻고, 인간이 어떻고, 세계가 어떻고...

내가 보기에 잘못이 아니면 잘못이 아닌 거다.

잘못이 아니면 비난해서는 안되는 거고.

비난은 커녕 문제삼는 자체를 비웃고 마는 거다.

참 비루한 게 또 인간의 심리라...

하긴 그러니까 있지도 않은,

"백성을 위한 정치..."

를 이유로 역사를 모욕하고 하는 것일 테지만.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나?

그러니까 맨날 어처구니 없는 꾼들에게 넘어가고 말지.



참고로 내가 못하는 건 참 많은데,

그 가운데 진짜 못할 짓이라 여기는 게 바로 들을 생각 없는 사람에게 들으라 말하는 것이다.

어차피 들을 생각도 없는 걸 아는데...

솔직히 가끔 짜증도 나고 열도 받고 하지만 들을 생각이 없다는 걸 아니까...

소통은 입보다 먼저 귀를 여는 데서 시작하는 거다.

귀가 닫혀 있으면 소통이란 무의미한 것.

내가 리플을 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서는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눈다는 자체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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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宗 25卷, 14年(1559 己未 가정(嘉靖) 38年) 6月 6日(丙午)

其曰賊船高大堅實, 雖放天、地字銃筒, 未易衝破, 鐵丸亦能貫徹眞木【橡樹。】防牌, 予甚怪焉。 未信其然也。 朴茂所騎船, 眞木防牌, 則牢厚, 故鐵丸未得貫穿云。 其所穿破者, 必是不堅厚而然也。 戰船左右前後, 排設天、地、玄字銃筒, 整備器械, 人伏板屋之下, 不露形體, 而疾棹直進, 迫近賊船, 隨其高下, 一時齊發, 則豈有不破之理, 亦豈有人被鐵丸之患乎? 將士等違越節制, ?禦器械, 殊未整設, 習成懦怯, 臨戰無勇之所致也。
적선이 크고 튼튼하여 천·지자(天地字) 총통을 쏘아도 쉽게 부서지지 아니하였으며 철환 역시 참나무【상수리나무.】 방패도 꿰뚫었다고 하는데, 나는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믿어지지가 않는다. 박무가 탔던 배의 참나무 방패는 단단하고 두꺼워 철환이 꿰뚫지 못했다고 하였으니, 그 꿰뚫리어 부서진 것은 틀림없이 단단하고 두껍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전선의 전후 좌우에 천·지·현자(天地玄字) 총통을 설치하여 기계를 정비하고 사람들은 판옥(板屋) 밑에 숨어 몸을 노출시키지 않고서 빨리 노를 저어 곧장 적선에 가까이 다가가 그 높낮이에 따라 동시에 일제히 발사했다면, 어찌 격파하지 못할 이치가 있었겠으며 사람들이 철환을 맞을 염려가 있었겠느냐. 장사(將士)들이 절제(節制)를 어기고 방어 기계들을 거의 정비 설치하지 아니하였고 겁이 많은 것이 습관이 되어 전투에 임하여 용맹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0책 518면
 
원래 조선의 주력전선은 맹선이었다. 대맹선, 중맹선, 소맹선으로 이루어진 맹선은 원래 세종 때 조운을 겸할 수 있도록 규격화해서 건조한 전선들이었는데, 그러나 수송도 겸하다 보니 전투함으로서는 여러가지로 한계가 있었다. 속도도 느리고, 전투공간도 좁고, 더구나 격꾼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전투병과 뒤섞이다 보니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확인한 것이 삼포왜란과 사량왜변, 을묘왜변...

사실 이 을묘왜변이야 말로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조선조정은 일본의 전투력에 대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으니.

첫째는,

"일본의 지상전력은 보잘 것 없어 조선의 주력인 활만 잘 써도 격멸할 수 있다."

둘째는,

"일본의 수상전력은 매우 용맹하고 사나워서 만일 우리 수군이 저들과 붙어 싸운다면 이길 수 없다."

이것이 결국 임진왜란의 전황을 결정짓는 이유가 되었다. 육전에서는 고전하고 해전에서는 우위를 점했던.

아무튼 을묘왜변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력을 가지고도 일단 배가 느리고, 전투원과 격꾼이 한 데 뒤섞여 노출되어 있고, 무엇보다 단병접전에서 절대적인 열세였던 탓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고 조선 조정에서도 그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술과 무기의 개발을 서두르게 되니, 그렇게 개발되어 나온 것이 판옥선, 그리고 판옥선을 통해 구현된 새로운 해상전술이었다. 위에 인용한 바대로.

먼저 맹선에서는 노출되어 쉽게 적의 공격목표가 되곤 했던 격꾼을 상갑판과 패란에 의해 보호되는 판옥 안에 위치케 함으로써 적의 공격으로부터도 기동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고, 격꾼과 함께 뒤섞여 전투를 치르던 전투원에 대해서는 따로 상갑판에 여장을 설치하고 각종 무기며 장비들을 배치함으로써 순수하게 전투임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따로 상갑판을 올리고 여장을 둘러 보호함으로써 더욱 높아진 배의 높이는 중요한 잇점이 되었는데,

한 마디로 그냥 바다위에 뜬 성이었다. 성을 공략하기 어려운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굽어보며 싸우기는 쉽지만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기어오르며 싸우기란 불리한 때문이다. 그것은 동서고금에 같고, 현대전에서도 일단 조금이라도 높으면 그만큼 더 유리한 것은 다르지 않다. 하물며 단병전을 주로 하던 일본군이야... 일단 단병전을 하려고 해도 이쪽 배로 건너올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높이가 걸리고, 보다 높은 위치에서 공격해 오는 이쪽의 수군이 걸린다. 여기에 보다 높은 위치에서 굽어보며 쏘아대는 화살과 총통이 더해지면?

사실 이순신이 개발한 것으로 여겨지는 함포를 사용한 해상에서의 원거리 포격전술은 고려말 이후 조선수군의 기본전술 가운데 하나였다. 어차피 왜구에 비해 단병전에서 약한 것은 분명하고, 또한 조선의 배에 비해 왜구의 배가 더 빠른 것도 확실하기에, 괜히 붙어 싸우느라 어려움을 자초하기보다는 조선군이 우위에 있던 화포와 활을 사용함으로써 멀리에서 일찌감치 왜구의 배를 끝장낸다... 그것은 이미 고려말 최무선이 나주와 더불어 진포에서 500여 척의 배를 화포를 사용해 불태움으로써 직접 확인한 바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전술이었다. 다만 맹선으로는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가 어려웠었는데, 마침내 그에 적합한 새로운 개념의 전선이 도입됨으로써 비로소 제대로 구현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순신의 승리란 원리원칙에 충실했던 탓이랄까?

하긴 어느 시대나 그것이 정답이다. 모든 무기는 그 시대, 그 상황에 걸맞는 전술적, 전략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즉 그 무기를 가장 훌륭히 사용하는 방법은 그 무기가 원래 만들어진 바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한 원칙을 잘 지킨 지휘관은 항상 명장으로 추앙받았고, 그러한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지휘관은 당장의 작은 공을 세울 수는 있어도 오래 가지 못했다.

어차피 단병전에서는 약한 것, 단병전에 들어가기 전에 원거리에서, 그러자고 전투갑판의 높이를 높였고, 원거리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당시로서는 정말 귀하던 총통을 천지현황 여럿 배치했으며, 적의 공격에 대비해 두꺼운 판재로 성벽처럼 둘렀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멀리서는 쉽게 뚫리거나 깨지지 않고, 가까이 붙어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런 전선을 가지고 단병전을 하겠는가? 당파전을 하겠는가? 물론 조선수군에 있어 당파 또한 중요한 전술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명종 10년 을묘왜변의 교훈을 바탕으로 오랜 토의와 연구 끝에 개발되어 시험되기 시작한 판옥선은 이후 조선의 주력전선으로써 맹선을 대체하여 조선의 각 수군진포에 배치되기 시작하는데... 그러나 판옥선이라는 것이 그 건조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았던 터라 - 판옥선은 당시 세계적으로도 가장 덩치가 큰, 더구나 오로지 해상전투에만 특화된 전투함이었다. - 명종 연간부터 시작된 전선교체작업은 선조 연간에 이르러서야 겨우 마무리된다. 임진왜란 일어나기 바로 몇 해 전이었다. 물론 그렇게 겨우 확보해 놓은 판옥선의 대부분을 원균과 박홍 둘이서 싸우지도 않고 모조리 불태워버렸지만.
 
그러나 워낙에 거북선이 갖는 임펙트가 강했던 탓에, 더구나 구키 유키타카의 기록으로 말미암아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타이틀마저 가지게 된 탓에, 판옥선이라면 거북선에 가려져 거의 인식이 없는데... 아마 판옥선이라는 이름 자체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 않을까? 당시 조선수군이라 하면 이순신이고, 이순신이라 하면 거북선이고, 오로지 거북선에 의해 조선수군은 승리했고...

그러나 당시 조선수군이 보유하고 있던 거북선이 을미년 기준으로 최대 5척이 고작이었다. 당시 판옥선이 모두 60여 척, 초탐선까지 포함하면 130여 척이 되었다. 그 가운데 5척... 무기라는 게 일정한 의미를 갖자면 어느 정도 세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그 수에서 거북선은 터무니없이 적다. 전술적으로는 의미가 있을 지 몰라도 전략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국지적인 전투에서 그 특유의 돌격함으로서의 장점을 살려 크게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전쟁이라는 규모에서는 결국 세력이다. 규모가 되어야 하고, 전술적 운용에서도 여유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항상 조선수군의 주력전선으로써 모든 전장에서 조선수군과 함께 했던, 교전중이 아닐 때에도 그 존재로써 전략적인 의미를 가졌던 판옥선이야 말로 중요하다 하겠다.

하지만 역사는 영웅만을 기억하는 터라... 한 눈에 확 들어오는 거북선만을 보려 할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더 많은 일을, 온갖 진창을 구르면서도 항상 조선수군과 함께 더 많은 일들을 수행해냈던 판옥선은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아쉽게도. 그래서 더욱 판옥선을 개발하고, 판옥선의 운용전술을 개발해낸 조선의 조정에 대해서도 무시하는 것일 테고. 거북선을 만든 이순신은 보여도 판옥선을 만든 조선조정은 보이지 않는게지.

참고로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판옥선은 주력전선으로써 19세기 개항할 때까지 운용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몇 척인가가 명나라에 수출되기도 했었다는데, 아무튼 19세기까지도 동아시아에서는 최대 최강의 전선으로써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첨병에 있었다. 숙종 연간 너무 크기가 커져가는 것에 대해 목재의 확보등을 이유로 크기를 제한하기도 했었고. 조선도 영국처럼 인도같은 식민지가 있었다면 판옥선도 한참 더 자랄 수 있었으련만. 그래봐야...

자세한 제원은 지금 당장 기억이 나지 않는 관계로 패쓰한다. 찾아볼까 했는데 귀찮아서... 그것을 이야기하자는 게시물도 아니고. 판옥선이 개발된 경위, 그 판옥선을 개발한 이유, 그 판옥선을 운용한 사례, 판옥선의 가치... 무엇보다 우리 조상들이 스스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했던 흔적들. 아마도. 단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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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기신 2009.11.21  01:14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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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가 깨어지다... 왜 시민들은 침묵하는가?

2009.11.19 21:29 | 잘난맛에 칼럼 | 가난뱅이

http://kr.blog.yahoo.com/sawoochi/1245098 주소복사

작년 촛불집회는 그야말로 뜨거웠었다. 거의 10여 만이 거리로 몰려나왔으니.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거리는 조용하다. 4대강에 미디어법에 이슈가 그리 많은데도. 왜?

간단하다. 왜 시위를 하는가? 알리기 위해서다. 알리고 동의를 얻기 위해서다.

"이런 게 있으니 들어줘!"
"이런 게 있으니까 동의해줘!"
"이런 게 있으니까 함께 해 줘!"

그런데 어떠했는가? 분명 쇠고기수입협상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여론이 더 높았다. 그러나 시위에 대해서는...

딱 한 마디였다.

"불법이다."

그리고 여론은 돌아섰다.

"불법은 안된다."

그리고 끝. 괜히 거리로 나갔던 사람들만 매맞고 체포당하고 벌금 내고 처벌받고...

자, 이제 묻는다. 현재 중요한 이슈가 있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과연 거리로 나설 사람이 있을까?

어차피 거리로 나서봐야 두들겨 맞는 건 자신이고, 처벌받는 것도 자신이고, 자칫 생계를 위협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알아나 주나? 결국 그들만의 리그로 끝날 뿐.

시민의 연대가 끊긴 결과다. 시민의 서로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이다.

"저들도 나와 같다!"

노! 노!

"어차피 저들은 나와 다른 남이다."

전혀 생판 남을 믿고 자신의 뒤를 맡길 수 있나? 결국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지.

하긴 이런 걸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얼마나 조용한가? 시위도 없고.

미성년자 성폭행 지원에 대한 예산이 감축되고,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지원 및 각종 복지예산이 줄어들고, 결식아동에 대한 지원도 줄어드는 와중에도, 그럼에도 모두가 반대하는 4대강에만 올인하고 있음에도...

조용하게... 조용하게... 조용하게... 정부가 바라는 바, 합법적으로...

그러더라.

"도대체 다른 방법이 없는 거야?"

어쩌겠는가? 나 혼자 거리 나가서 소리지르다 경찰이 두들겨 맞고 잡혀갈까? 그런 미친짓을 내가 왜?

어차피 앞으로 어떻게 되는 대한민국 국민이 스스로 선택한 바다. 말했듯 죽자고 한다면 그것 못 말린다. 결국에 스스로 그 책임을 질 뿐. 동프로이센의 독일인처럼, 히로시마의 일본인처럼.

하긴 그러고 보면 현재 대통령 지지율이 거의 50%다. 4대강이며 세종시며 미디어법이며 지지하는 인간들이 그만큼이라는 소리다. 또 그 소리 하겠지?

"정책은 반대하지만 대통령은 지지한다."

참고로 지난 정권에서 노빠들이 그 지랄들 떨었다.

그저 지켜 볼 뿐. 망하기밖에 더하겠는가? 그조차 자기가 책임질 바다. 자기가 행한 바다.

아무튼 조용하니 좋다. 나 역시 괜한 힘 뺄 필요도 없고. 그러거나 말거나... 정말 멋진 신세계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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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chaffee2080 2009.11.20  16:08

혁명선동글입니까...불평글입니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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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란 곧 돈을 버는 국가다. 이전의 국가가 단지 기존의 생산 가운데 세금을 거두어 그 안에서 쓰는 - 그래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해 더 많은 영토와 백성을 거느려야 했다면, 자본주의에 이르러서는 국가의 부 자체를 증대시키는 -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돈을 불려 그 안에서 더 많이 쓰려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국민총생산이라는 게 거기서 나온 거다.

즉 자본주의 국가에서 항상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부의 증대다. 얼마나 자유롭게 얼마나 더 많은 부를 추구하고 생산하고 누릴 수 있는가? 국민이 더 많은 부를 생산할 때 국가는 더 부유해지고 당연히 정부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두게 되며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부국강병이다. 부국강병이라는 자체가 사실 자본주의 이후에나 등장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에서 국가정책은 어디까지나 자본의 이익에 맞추어야 한다. 아이티에서 혁명정신을 쫓아 반란이 일어났을 때, 아이티가 없으면 설탕도 커피도 없다는 자본가의 말을 쫓아 잔인하게 진압했던 나폴레옹처럼. 아편무역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던 영국처럼. 이익이 있으면 자본이 그곳에 있고, 항상 그 옆에는 국가가 따라간다. 말 그대로. 그래서 야경국가이고 - 더 정확히는 기도국가, 조폭국가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미국이 굳이 이라크를 침략한 이유... 석유자본을 위해서다. 베네수엘라에서 반차베스 친위쿠데타를 지원한 것 역시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수단과 칠레에서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이라크에서 후세인이 쿠르드족을 학살하는 것을 방치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을 후원했던 모든 것이 결국 자본을 위해서다. 자본에는 도덕도 없고 염치도 없고 윤리도 없다. 그리고 자본을 쫓는 국가에게 역시 자본의 이익밖에 없다.

일단 그에 대한 판단의 여지는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 바로 그 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봉사하는 것.

그런데 보라.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만들겠다 한다. 그러면서 별 생각도 없는 기업들을 쪼고 있다. 거기 가는 게 이익이면 기업들이 왜 안 가고 있겠나? 이익이 있으면 어디든 가는 게 기업이다. 로비를 해서라도,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어떻게든 그 이익을 쫓는 것이 자본이다. 그런데 그 자본이 별 생각이 없단다. 그런데도 정부는 총리까지 나서서 가달라 조르고...

이게 무슨 자본주의인가? 까놓고 말해 어느 나라에서든 기업이 정부와 척을 져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가장 자본주의가 발달했다는 미국만 해도 기업이 정부와 사이가 틀어지면 여러가지로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가까워지지는 않더라도 틀어지지는 않게... 그런데 우리나라는 더욱 정부의 영향력이 막강해 기업 하나 곤란하게 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정부가 하라는 걸 하지 않고 버틴다? 나중에 뭔 보복을 당하려고?

아니 그런 게 없다면 처음부터 가달라 졸라서는 안되는 거였다. 정히 기업들을 끌어모으고 싶으면 그만한 이익을 주던가. 땅을 공짜로 나눠준다거나, 아니면 인근에 공항을 지어 물류와 교통에 도움을 주거나, 아니면 바로 앞까지 땅을 파서 물류를 위한 항구로 만들어주거나, 그도 아니면 운하를 파서 항구와 이어주거나... 그러고 나서 와달라... 이익이 있으니 와 달라...

그런데 하는 짓거리란 아무것도 없이 - 구체적인 어떠한 계획도 없이 기업도시를 만들 거니까 와달라... 어느 나라 자본주의인가?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자본주의를 그런 식으로 하는가?

정말이지... 그래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였다는 사람이...

뭐 더 말은 않겠다. 말해봐야 들어먹을 이도 없으니.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말해두겠다. 대한민국은 어찌되었거나 자본주의 국가이고 좋든 싫든 기업에는 기업활동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윤을 위해, 오로지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만 이기적일 수 있는 자유다. 그게 대한민국의 이념이다. 생각은 하고 사는 것인지... 자본주의가 남의 나라 와서 무척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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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사진도 넣고 사료도 인용하고 해서 간만에 그림과 이야기에 써볼까 했지만... 결정적으로 귀찮아서. 사진 찾고 넣고 하는 건 글 쓰는 몇 배의 시간을 요구하니.

아무튼 참 같잖은 소리를 들었다. 아마도 의전식장에 전통군인의 복장을 한 사람이 있었던 모양인데,

어느 분 왈,

"멋지네?"

그러자 그분 왈,

"싸우기엔 불편한 복장이다."

하아아아아아아아...

이 천박한 역사인식이여...

이 블로그만도 얼마나 많은가? 조선은 문약하고 나약하고... 우리 조상들은 무능하고 비루했다.

생각해 보자. 공식적인 자리에 군인들은 정복이라는 걸 입고 나온다. 그러면 그 정복 입고 전쟁터 나가 싸우나?

조선무관이 입던 융복은 원래 문무관 공용으로 유사시, 혹은 왕이 출타할 때 호종하면서, 혹은 사신으로 나갈 때 움직이기 좋도록 만들어진 옷으로 활동복인 동시에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던 말하자면 정복이었다. 그러면 싸울 때는? 당연히 갑옷을 입었지.

이야말로 대충 만든 사극의 폐해라 할 텐데, 원래 조선시대 병졸들도 갑옷을 입었다. 가장 흔하게 찰갑에서부터 두정갑, 종이로 만든 지갑까지, 그래서 국조오례의 등을 보면 병사들이 입는 갑옷에 대해서도 나와 있고, 군수물자에 대한 문서를 보더라도 갑주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장수는? 당연히 갑옷이지.

갑옷도 여러가지가 있다. 조선초기의 쇄자갑, 찰갑, 두석린갑에서 조선후기로 가면 두정갑으로 통일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조선후기 화약무기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두정갑 안의 철편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정에서야 철편을 넣으라 다그치지만 그 무겁고 귀찮은 걸 필요도 없는데 넣고 다닐 일이 없지 않나? 아무튼 그래도 조선 후기까지 무관의 전투복장은 갑옷이었다. 물론 이 가운데 두정갑이나 찰갑은 이때에 이르러 이미 의전용 이상의 의미는 없지만 일단 상징적으로 무관이라 하면 갑옷을 입었다. 한 마디로 흔히 드라마에서 보는 융복과 같은 것은 비전투용의 예복이었던 셈.

지금도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예복 입고 전투하는 예는 없다. 공식석상에서는 예복을 입어도 싸울 때는 전투복을 따로 입는다. 그리고 전투복은 전장에 특화된 전투를 위한 복장이다. 당연히 움직이기 불편해서야 전투복이라 할 수 없을 테고.

물론 그건 있다. 18세기, 19세기 유럽의 전투복을 보면 참 뭐하러 저렇게 만들었나 싶은 게 많은데... 꽉 끼지, 조이지, 너무 화려하지, 아무튼 무척이나 실용적이지 못하게 만들어졌었다. 이건 좀 그런 게 있지만... 어차피 당시의 전투라는 게 지금과 같지 않아서 서로 정면으로 마주보고 접근해 싸울 때 얼마나 아군의 존재감을 과시하는가 하는 것도 중요했으니까. 전투방식의 차이 때문일 뿐 역시 당시의 전장에 특화된 옷이었다. 즉 불편해보이는 자체도 사실상 당시의 전장환경에 맞는 실용적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조선이라고 다를까?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예복을 보고,

"싸움에는 맞지 않는다."

이따위 말이 나올 수 있는가 말이다.

미국 방문할 때 미국 장성들이 예복을 입고 나와 맞는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그리 말한다.

"싸움에는 맞지 않는 옷이로군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그것이 제대로 된 말이라 생각하는가?

참으로 천박한 역사인식이라... 아니면 군대를 경험해보지 못해 정복과 전투복의 차이를 모르거나.

"참 멋진 옷이로군요?"
"조선시대 무관의 예복입니다. 중요한 손님이 올 때나 행사가 있을 때 입는 옷이죠."

딱 이 정도면 좋았을 것을... 그게 그리 어려운 말인가?

"싸우기에는 불편한 복장이다."

얼마나 비웃었을까?

"조선놈들은 싸우기도 불편한 저런 옷을 입고 싸웠구나..."

물론 조선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전혀 아무런 기본상식도 없다는 전제에서.

단 한 마디 말로 조선을 융복이나 입고 전장을 구르는 얼간이들의 나라로 만들었으니... 말 한 마디로 나라의 격을 떨군다는 것이야 말로 이런 게 아닐까? 정말 어이가 없어서...

아무튼 저 말이 뭔 문제냐는 사람 있으면 외국 나가서 그러기 바란다. 특히 영국 의장대 앞에서 그래보라지?

"이건 참 싸우기 불편한 복장이로군요."

참 좋아하겠다.

이 정도면 그냥 입이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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