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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1/11
 



明宗 25卷, 14年(1559 己未 가정(嘉靖) 38年) 6月 6日(丙午)

其曰賊船高大堅實, 雖放天、地字銃筒, 未易衝破, 鐵丸亦能貫徹眞木【橡樹。】防牌, 予甚怪焉。 未信其然也。 朴茂所騎船, 眞木防牌, 則牢厚, 故鐵丸未得貫穿云。 其所穿破者, 必是不堅厚而然也。 戰船左右前後, 排設天、地、玄字銃筒, 整備器械, 人伏板屋之下, 不露形體, 而疾棹直進, 迫近賊船, 隨其高下, 一時齊發, 則豈有不破之理, 亦豈有人被鐵丸之患乎? 將士等違越節制, ?禦器械, 殊未整設, 習成懦怯, 臨戰無勇之所致也。
적선이 크고 튼튼하여 천·지자(天地字) 총통을 쏘아도 쉽게 부서지지 아니하였으며 철환 역시 참나무【상수리나무.】 방패도 꿰뚫었다고 하는데, 나는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믿어지지가 않는다. 박무가 탔던 배의 참나무 방패는 단단하고 두꺼워 철환이 꿰뚫지 못했다고 하였으니, 그 꿰뚫리어 부서진 것은 틀림없이 단단하고 두껍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전선의 전후 좌우에 천·지·현자(天地玄字) 총통을 설치하여 기계를 정비하고 사람들은 판옥(板屋) 밑에 숨어 몸을 노출시키지 않고서 빨리 노를 저어 곧장 적선에 가까이 다가가 그 높낮이에 따라 동시에 일제히 발사했다면, 어찌 격파하지 못할 이치가 있었겠으며 사람들이 철환을 맞을 염려가 있었겠느냐. 장사(將士)들이 절제(節制)를 어기고 방어 기계들을 거의 정비 설치하지 아니하였고 겁이 많은 것이 습관이 되어 전투에 임하여 용맹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0책 518면
 
원래 조선의 주력전선은 맹선이었다. 대맹선, 중맹선, 소맹선으로 이루어진 맹선은 원래 세종 때 조운을 겸할 수 있도록 규격화해서 건조한 전선들이었는데, 그러나 수송도 겸하다 보니 전투함으로서는 여러가지로 한계가 있었다. 속도도 느리고, 전투공간도 좁고, 더구나 격꾼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전투병과 뒤섞이다 보니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확인한 것이 삼포왜란과 사량왜변, 을묘왜변...

사실 이 을묘왜변이야 말로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조선조정은 일본의 전투력에 대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으니.

첫째는,

"일본의 지상전력은 보잘 것 없어 조선의 주력인 활만 잘 써도 격멸할 수 있다."

둘째는,

"일본의 수상전력은 매우 용맹하고 사나워서 만일 우리 수군이 저들과 붙어 싸운다면 이길 수 없다."

이것이 결국 임진왜란의 전황을 결정짓는 이유가 되었다. 육전에서는 고전하고 해전에서는 우위를 점했던.

아무튼 을묘왜변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력을 가지고도 일단 배가 느리고, 전투원과 격꾼이 한 데 뒤섞여 노출되어 있고, 무엇보다 단병접전에서 절대적인 열세였던 탓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고 조선 조정에서도 그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술과 무기의 개발을 서두르게 되니, 그렇게 개발되어 나온 것이 판옥선, 그리고 판옥선을 통해 구현된 새로운 해상전술이었다. 위에 인용한 바대로.

먼저 맹선에서는 노출되어 쉽게 적의 공격목표가 되곤 했던 격꾼을 상갑판과 패란에 의해 보호되는 판옥 안에 위치케 함으로써 적의 공격으로부터도 기동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고, 격꾼과 함께 뒤섞여 전투를 치르던 전투원에 대해서는 따로 상갑판에 여장을 설치하고 각종 무기며 장비들을 배치함으로써 순수하게 전투임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따로 상갑판을 올리고 여장을 둘러 보호함으로써 더욱 높아진 배의 높이는 중요한 잇점이 되었는데,

한 마디로 그냥 바다위에 뜬 성이었다. 성을 공략하기 어려운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굽어보며 싸우기는 쉽지만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기어오르며 싸우기란 불리한 때문이다. 그것은 동서고금에 같고, 현대전에서도 일단 조금이라도 높으면 그만큼 더 유리한 것은 다르지 않다. 하물며 단병전을 주로 하던 일본군이야... 일단 단병전을 하려고 해도 이쪽 배로 건너올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높이가 걸리고, 보다 높은 위치에서 공격해 오는 이쪽의 수군이 걸린다. 여기에 보다 높은 위치에서 굽어보며 쏘아대는 화살과 총통이 더해지면?

사실 이순신이 개발한 것으로 여겨지는 함포를 사용한 해상에서의 원거리 포격전술은 고려말 이후 조선수군의 기본전술 가운데 하나였다. 어차피 왜구에 비해 단병전에서 약한 것은 분명하고, 또한 조선의 배에 비해 왜구의 배가 더 빠른 것도 확실하기에, 괜히 붙어 싸우느라 어려움을 자초하기보다는 조선군이 우위에 있던 화포와 활을 사용함으로써 멀리에서 일찌감치 왜구의 배를 끝장낸다... 그것은 이미 고려말 최무선이 나주와 더불어 진포에서 500여 척의 배를 화포를 사용해 불태움으로써 직접 확인한 바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전술이었다. 다만 맹선으로는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가 어려웠었는데, 마침내 그에 적합한 새로운 개념의 전선이 도입됨으로써 비로소 제대로 구현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순신의 승리란 원리원칙에 충실했던 탓이랄까?

하긴 어느 시대나 그것이 정답이다. 모든 무기는 그 시대, 그 상황에 걸맞는 전술적, 전략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즉 그 무기를 가장 훌륭히 사용하는 방법은 그 무기가 원래 만들어진 바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한 원칙을 잘 지킨 지휘관은 항상 명장으로 추앙받았고, 그러한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지휘관은 당장의 작은 공을 세울 수는 있어도 오래 가지 못했다.

어차피 단병전에서는 약한 것, 단병전에 들어가기 전에 원거리에서, 그러자고 전투갑판의 높이를 높였고, 원거리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당시로서는 정말 귀하던 총통을 천지현황 여럿 배치했으며, 적의 공격에 대비해 두꺼운 판재로 성벽처럼 둘렀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멀리서는 쉽게 뚫리거나 깨지지 않고, 가까이 붙어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런 전선을 가지고 단병전을 하겠는가? 당파전을 하겠는가? 물론 조선수군에 있어 당파 또한 중요한 전술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판옥선의 위력이 가장 잘 드러난 전투가 바로 저 유명한 명량해전이었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당시 울돌목에는 열두척의 전선이 있었지만 실제 그 가운데 전투에 참가한 것은 이순신이 타고 있던 대장선 하나였다. 대장선 한 척으로 적의 진격을 막고, 무려 30여 척의 적선을 격침시켜 기세를 꺾은 연후에야 나머지 전선이 전투에 끼어들고 있었다.

"안위야, 네가 죽으려느냐!"

저 유명한 대사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홀로 300여 척의 적을 막아서며 그 기세를 꺾고서 겁먹고 뒤로 물러나 있던 조선수군더러 나와 싸우라 독려하던. 이순신도 이순신이지만 단 한 척으로 수백 척 일본 수군을 막아설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판옥선의 위력이었다. 일본군의 조총으로는 결코 뚫을 수 있고, 일본수군의 짧은 다리로 결코 뛰어 오를 수 없고, 마치 성과도 같이 버티고 서 있으며 적을 마음껏 농락하고 유린하던. 과연 이 판옥선 수백척을 이끌고서도 한 번의 싸움에 처참히 전멸당한 원균이란 어떤 인물이겠는가? 그를 명장이라 하는 것이란?

명종 10년 을묘왜변의 교훈을 바탕으로 오랜 토의와 연구 끝에 개발되어 시험되기 시작한 판옥선은 이후 조선의 주력전선으로써 맹선을 대체하여 조선의 각 수군진포에 배치되기 시작하는데... 그러나 판옥선이라는 것이 그 건조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았던 터라 - 판옥선은 당시 세계적으로도 가장 덩치가 큰, 더구나 오로지 해상전투에만 특화된 전투함이었다. - 명종 연간부터 시작된 전선교체작업은 선조 연간에 이르러서야 겨우 마무리된다. 임진왜란 일어나기 바로 몇 해 전이었다. 물론 그렇게 겨우 확보해 놓은 판옥선의 대부분을 원균과 박홍 둘이서 싸우지도 않고 모조리 불태워버린 탓에 한 번 써보지도 못했지만.
 
그러나 워낙에 거북선이 갖는 임펙트가 강했던 탓에, 더구나 구키 유키타카의 기록으로 말미암아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타이틀마저 가지게 된 탓에, 판옥선이라면 거북선에 가려져 거의 인식이 없는데... 아마 판옥선이라는 이름 자체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 않을까? 당시 조선수군이라 하면 이순신이고, 이순신이라 하면 거북선이고, 오로지 거북선에 의해 조선수군은 승리했고...

그러나 당시 조선수군이 보유하고 있던 거북선이 을미년 기준으로 최대 5척이 고작이었다. 당시 판옥선이 모두 60여 척, 초탐선까지 포함하면 130여 척이 되었다. 그 가운데 5척... 무기라는 게 일정한 의미를 갖자면 어느 정도 세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그 수에서 거북선은 터무니없이 적다. 전술적으로는 의미가 있을 지 몰라도 전략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국지적인 전투에서 그 특유의 돌격함으로서의 장점을 살려 크게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전쟁이라는 규모에서는 결국 세력이다. 규모가 되어야 하고, 전술적 운용에서도 여유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항상 조선수군의 주력전선으로써 모든 전장에서 조선수군과 함께 했던, 교전중이 아닐 때에도 그 존재로써 전략적인 의미를 가졌던 판옥선이야 말로 중요하다 하겠다.

하지만 역사는 영웅만을 기억하는 터라... 한 눈에 확 들어오는 거북선만을 보려 할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더 많은 일을, 온갖 진창을 구르면서도 항상 조선수군과 함께 더 많은 일들을 수행해냈던 판옥선은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아쉽게도. 그래서 더욱 판옥선을 개발하고, 판옥선의 운용전술을 개발해낸 조선의 조정에 대해서도 무시하는 것일 테고. 거북선을 만든 이순신은 보여도 판옥선을 만든 조선조정은 보이지 않는게지.

참고로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판옥선은 주력전선으로써 19세기 개항할 때까지 운용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몇 척인가가 명나라에 수출되기도 했었다는데, 아무튼 19세기까지도 동아시아에서는 최대 최강의 전선으로써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첨병에 있었다. 숙종 연간 너무 크기가 커져가는 것에 대해 목재의 확보등을 이유로 크기를 제한하기도 했었고. 조선도 영국처럼 인도같은 식민지가 있었다면 판옥선도 한참 더 자랄 수 있었으련만. 그래봐야...

자세한 제원은 지금 당장 기억이 나지 않는 관계로 패쓰한다. 찾아볼까 했는데 귀찮아서... 그것을 이야기하자는 게시물도 아니고. 판옥선이 개발된 경위, 그 판옥선을 개발한 이유, 그 판옥선을 운용한 사례, 판옥선의 가치... 무엇보다 우리 조상들이 스스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했던 흔적들. 아마도. 단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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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신 2009.11.21  01:14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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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wa6440 2009.11.23  15:51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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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o 2009.11.23  16:12

판옥선의 특징중 하나는 배 밑이 요즘 배들처럼 유선형이 아니라 평평해서 회전력이 빠르다는게 특징이며 장점임!!
쉽게 말해서...배 밑부분의 일부가 물에 잠겨 있는게 아니라 배 전체가 물위 떠있는 상태죠...그래서 제자리에서 빠르게
360도 회전할수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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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oq5 2009.11.23  18:10

단점은 원양 항해가 불가능하다는점

살빛낮달 2009.11.24  07:10

회전력이 빠르다는 표현보다는..... 회전(조향)이 용이했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즉, 대형의 변화가 쉽고 진을 구성하기가 유리했다고봐야지요. 넓은바다에서 전투하기보다는 지형적인 잇점이 있는... 해수의 흐름이 빠른, 그러한곳에서 절대 유리했다고 보여집니다.

나무꾼 2009.11.24  07:49

살빛낮달님은 ""회전(조향)""이라 햇는데 우째서 회전이 조향이요??/회전은 도는 것이고 ...조향은-방향을 조정하는 것인데....남의 글을 트집잡을려거던 자기 글부터 정확히 하시던지 남의 글 틀린 것도 아니고 맞는거잔아

살빛낮달 2009.11.24  09:38

나무꾼님.... 성격이 까칠하진분이시군요... 내가 말하려는것은 진을 형성한 우리나라 수군들의 매가운데를 일본을 뽀족하고 빠른 배들이 정면으로 달려들면... 크게 움직이지않고.. 정면의 길을 열어... 왜군들의 배들이 다 들어오고난후 다시 진을 형성하여 가두어 오도가도 못하게 포위하는 그런 움직임을 말하려던겁니다. 조향이 꼭... 달리면서 도는것으로만 이해 하시렵니까 ? 뜻그대로라면.. 방향을 조절하는것이 조향입니다. 말다투자는뜻은 아니고... 한려수도 제성당을 다녀오면서.. 그곳분들께 설명들은내용입니다.

살빛낮달 2009.11.24  09:42

그리고 트집으로생각하게끔 했다면.. 나의 설명 부족으로 이해 하세요. 부연의 설명을 하려던겁니다.

민스 2009.11.23  17:01

우리역사속의 전투를 보면 '전쟁은 꼭 숫자로만 하는것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게 되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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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될껴 2009.11.23  17:27

우리선조들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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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 2009.11.23  17:49

죠센징들아 개소리 작작허고 죠따꼬 디벼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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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해 2009.11.23  20:26

고정간첩 첩자야 죽여 버리기 전에 조용이 하라

이종일 2009.11.24  02:22

미친 놈은 몽둥이 뜸질이 특효지!

paralee@Y 2009.11.24  08:32

걸레는 역시 걸레. 만약 니가 일본인이 아니면 넌 머리가 약간 돈 아니 많이돈 정신 이상자 이니라.

castle127 2009.11.24  15:53

그 걸레가 죠딱는 걸레냐??

rex 2009.11.24  22:06

자슥 걸레답다 이노마 ㅋㅋㅋ

비련대 2009.11.23  17:51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나도 그 판옥선에 주목했었는데...오늘 이글을 보니 더 명확해지는군요...거북선은 상당히 과장되어 있고...이순신 또한 과장되어 있다는 소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잊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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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e 2009.11.24  01:36

에구 이순신같은 영웅도 드물다.

운두령 2009.11.24  16:29

빙신아 그 좋은배로 몰살당한 원균을 보면 과장인지 아닌지 모르겠냐? 원균도 장군인데 모자라는 사람은 아닐터 이부분에서 이순신의 능력이 보이는거다.

최민수 2009.11.23  17:53

웃기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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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 2009.11.23  17:57

웃기고 있네요. 거북선은 5척이 아니구요. 일본기록에 보면 200척이 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왜냐? 거북선의 크기는 4인용 반 잠수정이라는거 모르시죠?
배앞에 쇄말뚝을 박아서 적에게 돌진. 배 구멍내고 같이 자살.... 오늘날의 가미가제의 원조입니다.
그러니 일본이 질수밖에..

참조로... 우리가 알고 있는 덩치 큰 거북선 그거 머리가 뭘로 만들어져 있습니까... 거북이 대가리가 아닌데요.. 그쵸?
지금 거북선 완전 구라입니다. 거북선 머리는 실제로 거북이 머리를 달고 다녔답니다.
거북이 등과 머리만 물위에 떠있고 나머지는 물밑에... 세게 최최의 잠수함 이라는 말이 얼추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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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oq5 2009.11.23  18:11

그 기록 링크나 제목이라도 좀...

어흥어흥 2009.11.23  18:28

그렇습니다.....전해지는 거북선은 케리어같은 모선입니다....크기도 더컷구요..........지붕위에 철침으로알고 있는건..사실 대륙간 탄도 화살이였습니다.......도색과 앞에서 뿜는 연기로 스텔스기능의 시초였습니다.....당근 여러발의 어뢰와 디젤엔진을 썻답니다...

Tom 2009.11.23  18:39

어흥어흥님 맞습니다.
하지만 거북선은 그 당시에도 핵연료를 사용해서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으며 하늘을 날 수도 있었습니다.
또 철침은 대륙간 탄도 화살에 극도로 압축한 핵폭탄을 탑재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그 도색은 스텔스기능 맞습니다. 그걸 바르면 사람 눈으로 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현재 위상 배열 레이더로만 볼 수 있습니다.
크기는 C5수송기 보다 더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이 크루즈 선 정도 말이죠...
하부엔 어뢰가 미니건처럼 발사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어뢰는 현재 백상어와 청상어 정도의 성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판옥선도 거북선의 축소판으로 보시면 됩니다.

도라버리게스 2009.11.24  00:46

거북선의 등에는 활주로가 달려있어 당대 최신 무기였던 비차를 50대 비치해두고 적의 선단을 폭격했다죠.

아수라장 2009.11.24  00:57

전투가없을땐 우주왕복선으로 사용하기도 했다죠

ume 2009.11.24  01:38

앗 어디서 이런 자료를.어렀을때 어부였던 할아버지 말씀이 전해오는 이야기라며 거북선이 물속을 뀌어 다녔다는 애기가 있다고 하셨는데.

elora3k 2009.11.24  01:49

웬 자다가 봉창뜯는 소리여?
그리구, 제대로 글로 못쓰는 인간이 남의글에 대해 첫마디가 "웃기고 있네요" ?
먼저 예절을 배워라

kxtg5432 2009.11.24  04:15

거북선은 원래 최초 트랜스포머로 로버트로 변했다가 배로변했다죠...

몰러 2009.11.24  18:46

저기 그당시에 우리나라 해군다합쳐두 200~300넘을까말까한데 거북선은200척못만들구요 일본기록 그거 왜곡해서 기록한거라 정확하지않아요근데 최민수님혹시 의성사시는건아니죠????

지나가는눔 2009.11.23  17:59

이런배 백여척를 가지고도 원균은 대패해 목숨까지 잃고 이순신은 12척만 가지고도 왜군을 격파했죠. 무기도 중요하지만 지휘관이 가장중요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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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달근 2009.11.23  20:47

최종적으로 쪽팔리게 비명횡사한건디 이순신이 ㅋㅋ

badak114 2009.11.23  22:09

황달근/ 국사공부는 제대로 해놓고 나불대냐?

id1398@Y 2009.11.24  09:14

원균은 섬으로 도망쳤다가 쫒아온 일본군 칼 맞아 죽었죠.
칠전량 해전의 참패는 원균의 무능도 있지만 무조건 싸우라고 명령한 선조의 띨띨함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편집증환자인 선조는 그 전쟁중에도 모반을 꾀한다고 유능한 의병장도 잡아 고문해 죽인 인물이니.. 헐.

kimyunho_kr 2009.11.23  18:48

우리나라 역사는 언제나 침략 침략입니다. 이 조그마한 땅떵어리에서 거대한 중국과 일본(쪽발이)에 맞서 싸운 우리의 선조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살고있는 땅 조차도 못지키는 아주 어리석은 나라가 된것 같군요. 역사 외곡 간도땅 독도 그리고
마지막 반단 국가라는 아주 어리석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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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2009.11.23  20:46

왜구의 전선도 개량되어 판옥선의 이점으로만 승리하기힘들었음 왜구의 함선도 함께 알아보세요 서양배의 모양을 거의 따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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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달근 2009.11.23  20:47

임진왜란이 승리는 무씬 ㅋㅋ,, 우리나라에서 침략 받아서 90%가 점령된건디 ,, 쥐터진거져 ㅋㅋ
그건 패전이라는겨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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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ak114 2009.11.23  22:10

개구멍으로 나온 놈은 어쩔 수 없구나.

simplegkssha@Y 2009.11.23  23:01

임진왜란..... 솔직히 이긴 전쟁이라고는 할 수 없죠. 일본군을 몰아냈으면 다인가요? 전쟁의 여파로 일본의 지배자가 토요토미에서 토쿠가와로 바뀌었다고 이긴 전쟁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인적 피해를 기준으로 조선과 일본을 비교하면 조선의 피해가 훨씬 심하니까요. 전쟁으로 소실된 논이며 밭도 상당했구요. 임진왜란은 뭐랄까. 이긴건도 진것도 아닌 전쟁이죠..

netdosa 2009.11.24  00:15

판옥선의 제원은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거북선에 대한 김재근 저서에 보면 거북선의 제원이 전장 33.7m(110자) 선체길이 27.6m(90자) 내외로 추정하고 있으니 비슷한 판옥선의 총 길이는 꼬리날개포함 25~40정도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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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dean78 2009.11.24  01:04

그 때의 거북선이란 한 마디로 요즘의 일반 군함 대 이지함 정도의 수준이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일본 배가 10척 있어도 거북선 한 척에 상대가 안 되니 말입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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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일 2009.11.24  02:21

판옥선이나 한옥의 장점은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짜맟춤이고 설령 못을 써도 나무못을 써서 튼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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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lerkim 2009.11.24  05:23

마자. 원균은 순신과 격이 달라. 용맹무식이 정확하달까? 글고 거북선은 홍보용, 전시용이고...
판다님의 견해에 99% 동감. 1% 비공감은 이순신은 외계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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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rgi 2009.11.24  23:09

원균 장군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능한 장군은 아닙니다. 보통의 조선 장군 정도였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aurgi 2009.11.24  23:14

23전 23승의 이순신 장군이 워낙 뛰어나서 원균 장군이 무능한 장군으로 보였을 뿐입니다. 또한 일본 해군 역시 무척 강한 군대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연전연승했다고 해서 일본 해군이 약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오해입니다. 아마 보통의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해군과 일본 해군이 붙었다면 서로 승리를 예측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은 태평양을 끼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조선술과 항해술 역시 뛰어났었습니다. 다만 전략적으로 이순신 장군에 밀렸을 뿐이지요.

aurgi 2009.11.24  23:18

배는 조선의 배가 소나무로 만들었고, 일본의 배는 삼나무로 만들었는데, 조선 배가 튼튼한 반면 무거워서 가벼운 일본배에 비해서 기동성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포위 전술로 학익진을 썼습니다. 처음에는 학이 날개처럼 일자로 죽 늘어서 있다가 좌우 양쪽의 배들이 전진하면서 포위하는 전술이지요.

aurgi 2009.11.24  23:22

그렇게 포위를 하고 나면 기동성이 뛰어난 일본 전함도 접근전을 해야 하는데, 접근전에서는 튼튼하고 본글에 있는 것처럼 성처럼 높은 곳에서 싸우는 군대가 유리한 것이지요.

time2return 2009.11.24  07:29

원거리포격전술의 원조가 고려말의 최무선으로 보기에는 조금 힘들것 같습니다. 고려말의 화약무기는 총통이 아닌 로켓형식의 주화라 불리던 것이거든요. 기존의 불화살의 확대 개량형이죠. 포라 불리는 물건 즉 총통이 확립된 시기는 조선시대의 문종때입니다. 세종시대에 화약무기에 대한 개발이 활발했고 이를 체계화 규격화 시킨때가 문종때죠.-임진왜란 시기 사용된 화약무기중 어떤것들은 문종때 만들어져서 창고에 보관되었던것들도 있을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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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2return 2009.11.24  07:40

함대함포전이란걸 처음 보여주는게 그 유명한 한산대첩입니다. 그 이전에 어떤 함대도 함대를 유기적으로 움직여 화망을 구성해서 함포전을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서양에서도 현측에 많은 포를 장비한 전함이 나오고서도 화망구성은 힘들어서 단종진을 형성 서로 스쳐지나면서 포격을 교환하던게 다였고 근대적인 중앙포곽형전함이 나온이후에야 함대화망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죠. 함대함포의 화망구성을 근대에 최초로 재현한것이 러일전쟁때의 일본함대였습니다. 이때의 진형이 2차대전때까지 함대함포전의 기본진형으로 쭉 쓰입니다. 티 T자 진형. 한자로 정 丁자진으로 불리는 이 진형은 한산대첩때의 이순신장군이 학익진으로 왜군함대의 봉시진을 막아서 격멸한 진형 그대로이죠. 300년전에 이미 함대함포전의 원형을 보여준게 이순신장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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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iose4 2009.11.24  09:06

이순신도 전라디언인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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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1398@Y 2009.11.24  09:20

그 당시 총통의 명중률은 좀 의문입니다. 서로 물에 떠있는 상태에서 정확한 조준장치도 없이 오로지 화약의 힘으로 밀어 쏜 것이
명중할 확률이 아주 적거든요. 제가보기엔 화망구성이라기보단( 그러기엔 화약이 너무 많을 들었을 듯, 전시상황에 화약 확보도 힘들었을 거고) 꽤 근접거리에서 쏘아댄 것 아닐까요? 물론 단병접전할 거리는 주지 않는 정도의 거리.
거북선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결국 판옥선 위에 지붕하나 더 덮은 것 뿐입니다. 전투병력까지 보호해서 일본놈의 단병접전을
애초부터 차단한 거죠. 거북선이 뭐... 전 거북선이라는 것이 후대에 너무 과대평가되고 신격화되었다고 봅니다.
판옥선이 역시 당대 최고의 전선이란 점은 부인하기 어렵고 특히 한국의 리아스식 해안과 낮은 수심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뛰어난 발명품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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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소 2009.11.24  12:45

분명한건 판옥선의 배 형태는 원시적이고 나룻배로나 쓴다는 것입니다. 즉 기술이 안돼서 못 만들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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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4  13:19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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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구 2009.11.24  13:46

당시 전술을 보면 태란과 저그의 전투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글링이 겁나게 양으로 밀어 붙일려고 좁은 곳(울돌목)으로 몰려오니 스팀팩에다 아카데미 교육 받은 마린의 장거리 사격에 다가오지도 못하고 전멸된 거지요, 이 사실을 MB가 알면 슬퍼하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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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사람 2009.11.24  14:00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실제로 이순신의 승전 요인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이것 판옥선 이었죠... 그 장점만 열거 했네요. 단점은 속도가 느리다. 깊은 바다에 못 나간다. 쉽게 말해서 파도치면 아작난다... 동력이 무지 많이 든다(노를 저어가던 시대에 이건 병사의 일이죠). 원균의 패전 원인 이랍니다. 그 먼거리를 가느라고 병사들이 다 지쳐 버렸죠.. 그 사이를 빠른 일본 배들이 치고 들어와서 불 붙이고, 올라와서 전투를 치뤘으니.. 이순신은 그래서 항상 매복전술을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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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사람 2009.11.24  14:03

화망도 맞는 말 이네요... 당시 화포는 정확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화망을 구성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죠... 천자총통은 최대 1km까지 날라가니까, 근거리는 현자 총통 정도로(200-300m).. 이렇게 다양한 화포 구성이라면, 역시 학인진 같은 화망구성이 최고죠... 자신의 무기에 대해 가장 적절한 전술을 쓴 이가 바로 이순신이고, 최악의 전술을 쓴이가 바로 원균이었죠... 같은 무기, 같은 병사로 한쪽은 연전연승, 한쪽은 몰살... 그래서 지휘관을 잘 만나야 하는게 동서고금의 진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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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지방인 2009.11.24  14:41

Junk 라기보다는, Zunk 선박 ... (홍콩 재야 깃발에도 모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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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지방인 2009.11.24  14:43

요즈음에는, 이순신급 프리깃 6 척 있으니까, 저당시 거북선 급 보다는 숫자 많은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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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ha45@Y 2009.11.24  15:41

판옥선의 존재를 알았다면 일본 역시 그것의 유사전함을 요구해, 건조 입니다.
당시 일본역시 해전에서 능숙했습니다. 다만 조선의 해협이 일본의 전함과 맞지 않을뿐,
토요토미의 전국통일후, 대륙진출을 목표로 명과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명을 공략위해서, 명에 조공바치는 조선을 먼저 공격 하지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조선을 전초기지로 명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므로 뜻밖에도 조선의 전투력은 일본의 예상과 다르게 일본군을 괴롭혔습니다. 조선의 군은 이미 신립,원균의 육군, 해군 큰 규모의 군은 무너졌는데도 불구하고, 조선 각지 산으로 둘러싸여, 천연의 요새역활 입니다. 조선의 민병?의 게릴라 같은 전투방식으로, 조선의 복잡한 지리 조선의
수군 익숙한 지리와 해엽 그러나 일본군에게 반도의 지리와 해엽은 충분한 정보가 부족 또는 확실하지 않았으므로, 조선수군의 지리의 이점을 이용한 게릴라의 의해 수군으로부터 본토의 원조까지 끊어 지므로, 이것이 일본군의 기근을 불러오게되는 원인, 토요토미의 휘하 해전에도 유능한 인재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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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칼 2009.11.24  16:25

중세에 성웅 이순신 장군께서 계셨으면 지금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계셨고, 또 근세에 이완용이 있었다면 지금에는 땅바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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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떡따거 2009.11.24  18:12

맞습니다 맞구여 절라도 가 있꼬 정일 호구 좌빨도 있구여 개민주 한날 뒤져라 싸우고 국민 들 팬갈라 코피나게 뽁구빵꾸 야튼 뭣가튼 종자는 갱상.절라 에 다모여 있나 벼 ㅋㅋㅋㅋㅋㅋㅋ

hiway1234 2009.11.24  16:32

이 판옥선으로 대마도를 지켰어야 했었다. 거북선과 판옥선은 연안 내해를 지키는데 딱이다.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관리했으면
일본시키들이 우리를 만만히 보질 못했을 것이다. 한반동에는 그런 야심있는 자가 없었다. 앞으로도 중국과 전쟁이 붙으면 어떻게 싸울것인가? 수적, 물량적, 핵적으로는 우리가 진다. 중국에 일찌감치 빌붙던가 아니면 제주도에 잠수함 비밀핵기지를 개발하여 암중으로 나라를 지키던가..이런 지략있는 자가 한반동에 있겠는가? 이완용을 욕하지 마라. 이가를 욕하는 자 어리석은 자다. 이가 아니라도 어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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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 2009.11.24  18:44

사실거북선도빼놓을수가없죠 최초의철갑선 그리고 이순신의 탁월한전략도 빛이났죠 저는이렇게생각해봅니다
무모하지만 스페인의무적함대와 조선수군의 판옥선 거북선이 붙으면 누가이길까 라는상상해봅니다
그런데 1가지의문은 임란때 왜 육군에서 관군만 왜군한테밀렸을까요???? 신립과 이일송상현 정발이왜 밀렸을까요???
신립은 육군에서최고의장수인데 아시는분은dudtncnrrn@yahoo.co.kr 답변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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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2009.11.24  22:52

판옥선은 이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 모형이 국립진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아래층에는 노젓기를 전담하는 '격군'이 있었고요, 이층에는 전투병이 있었다고 해요. 거북선은 판옥선에 지붕을 얹었다고 보시면 되는데, 지붕위에 칼이나 창이 꽂힌 것은 일본군이 거북선으로 넘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랍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임란 때 거북선은 3척 뿐이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유성룡전을 하면서 학예사님이 5척이라고 되어있는 보고서를 발견했습니다. 그후 자신있게(?) 다섯척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거북선은 숫자는 적지만 돌격선 역할을 하여서 적선을 교란시키고, 그 처리를 판옥선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임란 때의 주전함은 판옥선인 셈이지요. 거북선이 돌격선이었던 까닭에 탑승자들의 부상이 많았다고 합니다. 위의 분 말씀대로 판옥선은 평저선인 관계로 속도는 느리지만 무기를 싣기에는 안정감이 있었고, 암초가 많은 우리나라 바다에는 적합했다고 합니다. 재질도 조직이 질긴 참나무나 소나무를 사용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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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2009.11.24  23:04

일본에는 '회본태합기'라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대기가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기록되어있는데, 일본이 패한 그림은 해상에서의 전투 단 하나 밖에 들어있지 않다고 해요. 그러니 일본의 기록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겠지요. 진주성 전투도 일차는 크게 퍠했지만 이겼던 2차전투만 기록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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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낙화 2009.11.25  00:42

우리집엔 진짜 거북선 사진이 있다 와 보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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