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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깊게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다시 공부해야 하거든. 설마 블로그 하자고 그렇게까지나...
그냥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다.
그래서? 성리학이 아니면?
정말 묻고 싶은 게 그거다. 성리학이 아니고 다른 사상이어야 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도교? 불교? 아니면 이슬람이나 기독교일까? 도대체 당시 한 나라를 이끌만한 정치이데올로기로서 성리학을 대체할만한 게 뭐가 있었지?
당장 도교를 보자. 도교에 현실에 적용할만안 정치이데올로기적인 부분이 뭐가 있던가? 불교에는? 이슬람에는? 기독교에는? 당장 이슬람만 하더라도 종교가 현실정치에 개입할 경우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는 역사를 통해 종교가 인간의 이성을 지배하는 것을 암흑기로 규정하고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과연 이 가운데 하나로 조선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삼아보자. 불교라면? 갑자기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가 떠오른다. 도교라면? 명의 세종 가정제가 떠오른다. 가톨릭은? 지금의 가톨릭이 아니라 당시의 가톨릭이다. 느닷없이 위그노 전쟁과 30년 전쟁이 떠오른다. 마녀재판과 이단심문관도. 참 많은 사람이 불에 타 사라졌겠지. 이슬람이라면? 뭐 굳이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이 질색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그 밖에는 뭐가 있을까? 아, 관학? 여기서 관학이란 한당대에 유행하던 훈고학을 말하는 게 아니다. 조정에서 주도하는 관제성리학이다. 이 역시 성리학이고 단지 현실정치라는 필요성으로 인해 그리 특화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사림이 등장해서도 마찬가지여서 조선후기 예학이 주를 이루던 상황에서도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종모법이 폐지되고, 서얼차별이 철폐되는 등 많은 현실적인 개혁정책들이 바로 이들 성리학자 - 그것도 서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금난전권이 폐지되고, 균역법이 시행되고, 기타등등등... 고증학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실학자의 바탕 역시 성리학이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했으니 남는 것이 양명학과 고증학... 그러나 고증학은 솔직히 좀 그렇고 - 고증학은 정치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순수 학문에 가깝다.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려 한 점으로 보아 양명학이 성리학의 대척점에 설 만 한데, 사실 양명학이라고 해서 별 것 없다. 지행일치, 치양지.
사실 이건 좀 아깝다. 이상과 현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이원적으로 구분했던 성리학에 대해 왕양명은 양지야 말로 천리를 아는 것이며,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 아는 것과 실천을 하나로 하는 새로운 가르침을 펴고 있었다. 물론 덕분에 일본에서는 아는 것은 실천해야 한다며 부자의 곳간을 털어 가난한 사람을 나눠주려다가 자신은 물론 주위까지 곤란에 처하게 만든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아는 것은 반드시 실천해야 하며, 실천으로써만이 안다고 할 수 있다는 그의 가르침은 현실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성리학과 양명학이 서로 균형을 이루었다면 꽤 재미있어졌을 텐데...
그러나 어떻게 해도 유학은 유학이었다. 그리고 양명학이 갖는 약점도 있었고. 지행일치는 좋은데, 그것이 때로 너무 직관적이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원래 성리학이 가장 경계하던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이든 일본이든 양명학을 받아들이기는 했어도 주류는 여전히 성리학이었다.
그러면 그러겠지. 왜 유럽은 이야기하지 않는가? 자유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시민주의, 사회주의, 계몽주의 기타등등등등등... 그러나 계몽주의는 18세기 아닌가? 나머지는 모두 19세기에나 나타난 것들이고, 민주주의는 20세기 들어서나 자리잡은 것들이다. 더구나 계몽주의는 가만 뒤집어 보면 유교와 별 차이가 없다. 심지어 러시아의 차르가 가부장적인 전제군주로서 군림할 수 있었던 전제도 바로 그것인 것을. 하긴 계몽주의 자체가 중국을 방문한 선교사로부터 번역되어 전해진 유교 경전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이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뭐 기타등등 그런 것들인데... 그러나 19세기에 나타난 그것들을 19세기에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더구나 19세기에 나타난 사상들로 19세기 이전의 조선의 정치에 적용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것은 더 그렇고.
여기서 전제해야 하는 것은 조선은 14세기에 건국된 나라라는 것이다. 이들 유럽에서 새로운 사상이 나타난 것은 19세기나 들어서고, 그 가운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백성을 - 아니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이데올로기는 19세기 말에나 나타나게 된다. 그 전까지 자유주의든 민주주의든 시민주의든 결국 부르주아를 위한 것이었지 노동자나 농민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조선의 성리학 쪽이 농민에 대해 더 많이 배려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딱 제 3세계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당시 유럽의 노동자들이 했으며, 그 여건이 오히려 더 열악했다고 보면 된다. 오죽하면 평균신장이 19세기 들어 더 줄어들었다 할까?
결국 이래저래 자르고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성리학과 양명학 둘이다. 그리고 말했듯 양명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말했듯 어차피 성리학이나 양명학이나다. 나머지야 19세기에 나타난 사상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 이전에 나타난 사상 가운데서는 딱히 성리학을 대체할만한 것이 없고...
말 그대로다. 달리 선택이 없었다. 불교도 그렇고, 도교도 그렇고, 19세기 유럽에서 나타난 사상들은 19세기 이후에나 나타날 것들이고, 물론 그것들을 나름대로 발전시켜 그런 수준에 이르도록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게 또 그리 말처럼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나름 19세기 세도정치가 막장을 달리기 전까지도 성리학은 조선에서 제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법가나 도가, 묵가 이런 것 들먹이지 말기 바란다. 이미 한당대에 이르면 이들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들은 유가로 흡수되어 융합되고 있었다. 유가가 곧 법가이기도 하고, 도가이기도 하고, 묵가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관학은 주로 법가적인 성격을 띄고, 율곡의 사상은 묵가에, 퇴계의 사상은 도가에 가깝다. 이 모든 것을 아울러 유儒다. 시작이야 공자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제자백가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 곧 유인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그렇게 성리학이 대단했으면 왜 조선은 그리 막장이었느냐? 여기에 대해서는 그냥 이 말밖에 해줄 말이 없다.
"먼저 세계사부터 훑고 와라."
말했듯 계몽주의조차 18세기나 되어서나 나타났는데 그 전에는 과연 어땠겠느냐 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역사와 이면의 역사는 크게 다르다. 역사는 게임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망상은 더욱 아니다. 과연...
조선은 성리학 때문에 망했다는 누군가로부터 들은 말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그냥 한 마디로 그거다.
"성리학 아니면 뭐로 하게?"
글 길게 써봐야 별 것 없다. 이 한 마디로 끝이니. 딱 이게 답이다. 더도 덜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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