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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찬호를 좋아한다. 야구를 잘해서도 그가 메이저리거여서도 아니다. 한결같이 자신의 목표에 도전하는 오롯한 그 의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애국심도 한 몫 한다.

올 초였을 것이다. 불안한 현재의 입지로 인해 더 이상 WBC 국가대표 소집에 응할 수 없다고 기자회견을 할 때 그가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보면서 한 구석이 먹먹해 져 온 사람은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다. 그 전에도 아직 팀에서의 입지가 불안하고, 장차 불이익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박찬호는 솔선해 국가대표 소집에 응했고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대표팀을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애국심이란 국가라고 하는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해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것이다. 바라고 위한다는 것이다. 내가 속한 집단인데, 그것은 또한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한데 어찌 기분이 나쁠 수 있을까?

박찬호만이 아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나라의 이름을 알리고, 나라의 명예를 드높이고, 나라에 실제 도움이 되고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의 희생을. 노력을.

그러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누군가 나더러,

"너는 애국심이 부족해!"
"애국심을 가져!"
"애국해!"

이따위 소리를 늘어놓는다면 꽤나 기분이 싸해질 것이다. 그보다 먼저 고개가 틀어지고 입에서 막말이 나온다.

"그래서?"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를 떠나서 만일 그러한 요구에 내가 응하지 않겠다면 어쩌겠는가? 때리겠는가? 아니면 내쫓겠는가? 설마 죽일까?

하긴 설마도 아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애국심을 이유로 그런 것들이 수도 없이 저질러지고 있었으니. 나라를 위해 죽이고, 나라를 위해 고문하고, 나라를 위해 강간하고, 나라를 위해 폭행하고, 나라를 위해 내쫓고...

불과 몇 달 전에도 있었다. 한 아이돌그룹의 리더가 무려 4년 전 생소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겪은 위화감이나 부대끼던 어려움들을 조금 거칠게 표현했다는 이유로 아예 연예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몰아세워 쫓아내고 있었다. 4년도 더 전에 남긴 몇 마디가 한 연예인으로 하여금 더 이상 연예인으로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내가 애국심을 갖지 않으면 때릴 거야?"

여기서 갈린다.

"때릴 거야!"

이게 애국주의,

"아니면 할 수 없고..."

이게 그냥 애국심.

사실 탈민족주의 운운하는 인사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다.

애국심과 애국주의는 다르다. 애국심은 오롯한 자기 자신의 양심에 기준한 자기 선택이며 실천이다. 반면 애국주의는 자기 양심에 기준하는 것은 같은데 타인에게 그 선택과 실천을 강요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에잇! 이대로 간다면 일본은 저들에게 유린될 것이다. 이 한 몸 바쳐서!"

이것은 그래도 정상적인 애국심이다.

"일본을 위해서, 천황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라! 살아서 돌아오지 마라!"

같은 카미카제더라도 초반 파일럿이 자기 판단에 의해 몸통공격 - 다이아다리를 가한 것은 순전한 개인의 애국심에 의한 것이었다.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그리고 본토에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해 이 한 몸 기꺼이 희생한다...

그러나 후자는 다르다. 겉으로야 자원의 성격을 띄웠지만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라...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라... 그것이 진정한 남자의 길이다. 군인의 길이다. 그래서 자원하지 않으면 은연중 따돌리고, 무시하고, 그래서 떠밀리듯 전투기에 몸을 싣고 자살공격에 나서게 만들고...

물론 군인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의 성격상, 승리를 위해서라도 명령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분명 있다. 예를 들어 퇴각을 해야하는데 추격해 오는 적군의 기세가 심상치 않을 경우 일부는 남아 주력이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도록 지연전을 펼치는 것과 같은 경우들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한 가지 원칙은 있는데,

"아군이 여기까지 퇴각하는 동안, 즉 앞으로 24시간 동안 현 진지를 고수하며 지연전을 수행하고 이후는 자유판단에 맡긴다. 퇴각하거나 아니면 항복하거나. 무운을 빈다."

퇴각하는 아군의 후미를 확보한다고 거기서 죽으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요한 시간 만큼만 적을 저지하고 만일 가능하다면 역시 같이 퇴각하고,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그 자리에서 항복할 수 있다. 임무는 아군이 퇴각할 수 있도록 적을 저지함으로써 시간을 버는 것이지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이 아니니까.

같은 맥락이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전체 아군을 위해 희생하는 것... 그 역시 군인의 임무다. 그러나 그 임무란 그 전략적 전술적 필요성에 한정한다. 그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임무를 완성하고 나면 그 다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마찬가지로 상식인 것이다.

그런데도 임무와는 상관없이 상황이 그러하니 죽으라? 살아돌아오지 마라? 그게 애국주의라는 것이다. 실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미국이야 실종자 하나하나에 대해서까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추적해 유해라도 찾으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국군 포로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은 지가 수십년이다. 한국전쟁에서도 그랬고 베트남 전쟁에서도 그랬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한국군 포로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나?

항복하는 것이 수치스럽고. 그러니까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어야 하고. 항복했다는 사실만으로 배신자 취급을 하고. 그래서 떠밀리듯 죽어야 함을 알면서도 그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

그러나 왜 죽어야 하는가? 왜 그런 무의미한 죽음으로 내몰려야 하는가?

물론 그럼에도 스스로 죽음을 각오하며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 존경스럽다. 그러나 그것을 강요당하는 입장은 어떨까?

민간인의 경우는 더 그렇다. 앞서 박찬호 선수의 예를 들었지만, 박찬호 선수의 경우처럼 팀내 자기 입지도 불안하고, 대표소집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불이익이 큰 경우, 사실 국가대표소집에 불응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자기 선수생활을 위해서, 그리고 당연한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 먼저 자신의 현실과 입장을 최우선으로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여러 사정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소집에 응해 최선을 다한다면 아름답겠지만. 비난받아야 하는가?

아니 비단 애국심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선은 어떨까? 누군가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를 위해 헌납한다. 평생 모은 재산의 일부를 - 하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을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기부한다. 아름답다. 그러나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러라 강요하는 것은?

개인재산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것이다. 자기가 모은 것이고 자기가 쓰려는 것이다. 그것을 과연 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까닭이 있을까? 그래서 않겠다면? 홍길동이나 로빈훗이 되어 그것을 털자고? 아니 그렇게 욕하고 비난하고 강요해서 억지로 기부를 이끌어낸다면 그것이 도적질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자선이란 말 그대로 자기가 내켜서 하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누가 하란다고 해서가 아니다. 누가 하란다고 한다면 그건 자선이라기보다는 강탈이다. 내 돈인데 남이 내놓으라 한다고 내놓으니 그게 강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구나 그렇게 하란다고 아예 외면하고 듣지 않으면 또 어쩌려는가? 굳이 자선을 위해 재산을 내놓지 않겠다고 한다면? 때리겠는가?

내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이 그래서다. 사회주의 국가라면 모를까, 아니면 전제군주에게 모든 권리가 있던 왕조국가라면 모를까,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재산은 오롯한 개인의 것이다. 누가 뭐랄 수도 없고, 누가 뭐랄 것도 없다. 그것을 어떻게 쓰든 개인의 자유다. 사회에 도움이 되라고 내놓든, 아니면 개인 하렘을 만들기 위해 쓰든, 딱히 사회적으로 해가 되지 않는 이상에는 무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차라리 세금을 더 걷던가. 국가가 개입해 돈이 더 많은 만큼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그것으로 합법적, 공식적으로 사회적인 평등을 위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옳다. 딱 이 만큼의 재산을 가진 사람은 그 재산에 대한 사회의 기여도 - 곧 비용이 얼마이므로 그 만큼을 세금으로 거두어 사회유지를 위해 쓴다, 개인에 강요할 수 있는 강제란 여기까지이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어쩌든 아예 신경 쓸 것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노블리스 오블리제 운운하며 당연한 권리에 대해서까지 강요하고 나서니.

이게 주의라는 것이다. 물론 주의가 반드시 그런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지향해야 할 바, 혹은 집단이, 사회가 지향해야 할 어떤 가치로써 주의는 한 개인, 혹은 한 사회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혹은 무정부주의이거나 사회민주주의이거나 전제주의이거나... 결국은 개인이 나아갈 바, 사회가 나아갈 바, 그로써 어떠한 일관성을 갖고 그로부터 앞으로 해야 할 바를 그려보고...

그러나 그런 것을 넘어 그것이 한 개인에 대한 강요가 될 때, 혹은 집단 속의 무수한 개인에 대해 강제가 될 때,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럴 생각이 없다는데 그러라는 것은? 전혀 동의할 생각이 없는데 억지로 그러라는 것은? 그에 따른 불이익이 가해지고. 심지어 죽고, 다치고, 빼앗기고, 너무나 당연한 권리에 대해서까지도 침해당하는 것은?

주의가 오늘에 와서 비판받는 이유도 그래서다. 너무 많았으니까. 그런 예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미국인에 의해 자행된 원주민 학살이라든가,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 당장 우리나라에서만도 보도연맹 사건이나 거창학살, 제주학살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자행되었다. 심지어 그 희생자의 유가족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모이자 아예 그 무덤을 파헤쳐 유해마저 흩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래도 당당했다.

"빨갱이는 때려잡아야 하니까!"

나라를 위해서, 자유주의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본주의를 위해서, 그래서 죽는 것도 당연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다. 단지 몰라서 그에 분노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직접 보았었다. 광주의 참상을 보고서도, 제주도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해 알게 되어서도, 숱한 학살과 그로 인한 희생자들에 대해 알려주어도 그리 말하는 사람들을.

"나라를 위해서!"

그게 문제라는 거다. 굳이 나라를 위한다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 그렇다면 지금 당장도 내가 애국심이 없고, 나라를 위할 생각이 없다면, 나라를 위해 나를 죽일 텐가?

이것은 중요하다. 과연 내가 애국심을 갖는 것은 이 나라가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어서인가? 아니면 죽기 싫어서인가? 내가 애국심을 갖고 하는 것이 이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해서인가 아니면 애국심이라는 빌미로 죽는 것이 두려워서인가? 재외동포들도 박재범처럼 내쫓기기 싫으니 억지로라도 애국심을 갖는 시늉을 보여야 할까? 그것이 애국심인가?

애국심이란 말했듯 자발적인 의지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고 스스로 그것이 옳다 추구하는 것이다. 누구로부터도 강요받지 않는. 누구로부터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그래서 애국심 아니겠는가?

그런데 애국심이 없다면? 애국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또한 개인의 선택이다. 생각해 보니 굳이 애국할 이유가 없다는데 누가 뭐라겠는가? 구일본제국의 제국주의적인 정책이 싫어서 구일본제국 정부를 비판하고, 천황을 비판하고, 도리어 조선의 독립운동가들과 연대하려 했던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을 우리가 애국심을 이유로 비판할 수 없듯 말이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에서 보통의 인민들이 애국하지 않고 애족하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비난한다. 애국애족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에 항거하지 않고 독립투사가 되지 않았다고. 그러니 다 같은 친일이라고.

애국주의의 또다른 폐해가 이것이다. 모두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변별이 사라지는 것이다.

어떻게 제국주의의 침략에 앞잡이가 되어 식민지의 인민을 약탈하는데 앞장서고 협력한 것이 단순히 지배에 순응한 것과 같이 취급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식민지의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여 소모하도록 협력한 것들에 대해서까지 단순히 애국심이라는 이유로 같은 것으로 치부한다. 하긴 애국심을 이유로 사람도 죽이는데. 아니 이제는 당시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협력한 것조차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는가?

모두가 애국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굳이 애국심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다. 애국심을 강요받을 이유도, 애국심을 이유로 비난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양심, 즉 애국심 또한 개인의 양심에 의한 것일 터다. 그래야 하니까. 그래야 한다고 믿으니까. 따라서 그에 대한 판단도 양심에 의해 내려져야 할 것이다. 과거 나치 독일의 군인과 관료들이 애국과 애족을 이유로 저질렀던 많은 행위들이 범죄로써 지금에 이르러까지 단죄되고 있는 것처럼.

양심이라는 것이다. 애국심 이전에 양심이며, 애국심 또한 양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심이란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며,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평가 또한 양심에 비추어 이루어져야 한다. 애국심이어서가 아니라. 애국심이어야 해서가 아니라.

분명 애국심은 존경받을만한 가치다. 그러나 애국심이라고 모두 옳은가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더불어 애국심이란 타인에 강요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혼자서 애국하는 것이야 상관없겠지만 남더러 애국하라 강요하며 위해를 끼칠 것은 더욱 아니다. 내가 애국심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면서 애국주의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다.

민족주의도 마찬가지다. 민족이야 얼마나 훌륭한 가치인가? 우리고, 우리다. 우리이기에 우리다. 단, 그러나 애국주의가 그러하듯 민족 역시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을 수만 있다면. 민족 역시 양심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모두가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거다. 자기가 옳다고 모두에게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옳다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타인이 옳기를 바랄 때 자신은 어긋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항상. 주의를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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