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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1/11
 
광고 - 야후! 코리아 에서 '가난뱅이'님의 블로그를 지원합니다.

오종은 자를 홍성이라 하며, 원래 하북성 창현 맹촌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용력과 지혜가 출중하여 사람들 가운데 두드러졌었는데, 마침내 뜻한 바 있어 책을 버리고 무술을 배우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단련하기를 여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밤을 낮삼아 용맹정진하니 그 기세가 자못 놀라운 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들일을 마치고 밤늦게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데 난데 없이 도사 하나가 나타나 그에게 무술을 겨루어 볼 것을 청해오는 것이었다.(일설에는 승려라고도 한다.)

마침 오종 역시 나름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던 터였다. 그래서 떠돌이 도사쯤이야 우습게 보고 겨루기에 응했는데, 웬걸? 그의 눈앞에는 놀라운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겨루기를 마치고 그의 앞에서 다시 시연해 보여주는 도사의 권법은 그가 이제까지 보도 듣도 못한,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세계였다.

오종은 더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도사에게 예를 올리며 가르침을 청했다.

"불초한 오종이 도사님께 감히 배움을 청합니다."

다행히 마침 도사도 달리 할 일이 없었는지 오종의 청을 받아들여 무려 10년을 그의 집에 머물며 그에게 권법을 가르쳐주게 되었다. 파자권 - 즉 지금의 팔극권이었다.

그렇게 10년이 하루같이 흐르고 어느날 도사는 오종을 불러 말했다.

"이제 내가 아는 바를 모두 전했으니 나는 이만 떠나도록 하겠다."

그것은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10년을 하루같이 무술을 배운 스승인데 이제 떠나야 한다니.

그러나 10년은 긴 시간이었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라 마침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안 오종은 탄식으로 도사를 배웅했다.

"10년 공부로 제가 배운 것은 너무나 크고 훌륭한 것들이었습니다. 이제 떠나시면 언제 다시 뵈올 지 모르니 다만 스승님의 함자를 모르는 것이 한입니다."

그러나 도사는 오종에게 이같이 대답했다.

"무릇 라癩자를 아는 자는 모두 나의 무리이리라."

그렇게 도사가 떠나고 2년 뒤, 도사의 소식도 끊긴 지도 한참을 지나 다시 한 사내가 오종을 찾아와 무술을 거룰 것을 청해왔다. 겨루기에 응해 그 수법을 살펴보니 바로 스승 라癩의 기법들이었다.

오종은 반가움에 사내에게 누구인가 물었다.

"나는 벽癖자이니라."

그러나 사내의 대답은 이 짧은 한 마디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러기 위해 그를 찾은 양 오종에게 팔극비결 한 권을 전하고는 라가 미처 전하지 못했던 대창술의 기술을 가르쳤다.

오종이 대창술까지 다 익히자 벽이라는 이름의 사내는 이번에는 오종을 이끌고 강호를 떠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운하를 타고 강남으로 내려갔다. 강남의 여러 지방을 돌며 무술가를 만나 겨루기를 여러 차례, 항주의 어느 절에서는 소림무술의 달인이라는 주지를 꺾고 그로부터 금표를 선물로 받기도 했었는데, 그리고 다시 절북에서 북경으로 나아가 거기서 명성을 떨칠 큰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바로 강희제의 11자이자 당대의 고수로 이름높았던 윤제와 겨루게 된 것이었다.

처음 윤제는 오종의 추레한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시골의 이름없는 무술가라 업수이 여기며 적선하듯 시합을 받아주게 되었다.

아마 이랬겠지?

"대인께 배움을 청합니다."
"허허... 나의 창은 무겁고 둔하네."
"저의 목숨은 깃털처럼 가벼워 바람에 날려 사라져도 그 뿐입니다."
"후회하지 않겠나?"
"대인의 높으신 실력을 견식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읍할 따름입니다."
"사람이 되었구만. 좋네. 내 잠시 가르침을 내림세."
"감사합니다!"

물론 상상이다. 내가 그 시대 살았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자세히 기록에 남은 것도 없다.

아무튼 당시라고 무술시합하다가 사람 죽고 죽이고 하는 일이 허용될 리 만무하니 둘이 시합을 벌인 것은 수라고 부르는 대나무 끝에 천을 감아 만든 연습용 창이었다. 그 끝에 횟가루를 묻히고 서로의 몸에 남은 횟가루의 흔적으로 승패를 가늠하는 것이었는데, 수호전을 보면 청면수 양지가 유배지에서 관리인 양중서에게 발탁되는 과정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사술이다!"

그러나 시합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끝나고 말았다. 어어 하는 사이, 심지어 눈썹에 흰 횟가루가 묻어 있는 상태에서도 윤제는 그같은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속임수라 여기고 다시 겨루고 몇 번을 다시 겨루어도, 나중에는 아예 횟가루를 밀가루풀로 바꾸어 겨루었음에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윤제는 눈썹에 묻은 밀가루풀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윤제는 눈앞의 이 추레한 촌뜨기가 자기와는 비교도 안되는 고수임을 알았다.

"제가 눈이 어두워 태산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윤제는 자세를 가다금고 얼른 오종을 윗자리로 모셨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언제 거만했느냐 싶게 공손히 배움을 청했다.

"부디 이 불초한 제자의 눈을 틔워 주십시오."

이로부터 오종에게 한 가지 별호가 붙었으니 신창神槍. 북경무술계의 새로운 바람 신창 오종의 등장이었다.

이후 오종은 북경에 머물며 많은 제자를 거두어 가르쳤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머니가 늙자 봉양하고자 낙향하게 되었으니 고향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이들이 백 리 밖에서까지 몰려들어 그 가운데 입신한 이만 15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북성 창현 맹촌의 팔극권의 시작이었다. 오종의 기법은 딸인 오영이 물려받아 다시 이대종, 장극명 등에게로 이어졌다.


참고로 오종이 윤제와 시합한 시점을 오종이 30대를 넘긴 시점이라고 보았을 때(라에게서 배운 것이 10년, 라로부터 벽이 찾아오기까지가 2년,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시점을 10대 후반으로 잡아도 강남을 여행한 시간까지 계산하면 최소로 잡아 30대 중반이 된다.) 오종의 출생년도는 순치말에서 강희초 사이인 1660년 전후해서일 텐데, 이미 명 가정연간에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에 파자권곤이라는 팔극권의 옛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윤제와 시합한 시점이 1700년 언저리라고 보았을 때 거의 200년의 시간차이가 나는 셈이다.

더구나 벽이 찾아와 건낸 책의 제목이 팔극비결이라는 것도 그렇다. 전에도 말한 바 있듯 팔극권의 원래 이름은 파자권으로 팔극권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에 들어서다. 즉 당시까지는 팔극권이 아닌 파자권이었고, 따라서 팔극비결이라는 책음 있을 수도 없고, 있더라도 다른 제목이었어야 했다. 이 역시 문제.

다만 이야기가 사실이라 가정했을 때 팔극권의 원류는 아마도 백련교나 홍문 등의 비밀결사가 아니었던가 싶다. 일단 파자권이라는 권법이 이전부터 있었고, 하북성 창현 맹촌에서는 오종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때, 아마도 라라는 도사나 벽이라는 사내는 백련교나 홍문 같은 비밀결사의 일원이 아니었을까. 라癩와 같은 불길한 이름을 암호처럼 말하는 것도 그렇고, 무술을 전하면서도 신분을 철저히 숨기는 점, 그리고 무려 10년을 은거하듯 오종의 집에 머물며 무술을 전한 것도 그렇다. 무언가로부터 몸을 숨길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원래 무술가 가운데는 비밀결사에 몸담는 경우가 많았으니.

아니 그보다는 오종 자신이 그같은 비밀결사의 일원이었을수도 있겠다. 오종이 굳이 강남을 여행한 것이나, 북경으로 가 유력자들과 교류한 것이나, 라나 벽과 같은 이름들은 그와 관계된 것이 아니었을까? 라가 오종의 집에 머물며 무술을 가르친 것도, 벽이 그를 데리고 강남이며 하북을 여행한 것도. 아닐까?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아닐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지만... 워낙 중국무술이라는 게 처음 무뢰한들 사이에서 전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문인들에게까지 전해지면서 그들에 의해 포장된 부분이 많으니. 팔극권도 그런 게 아닐까... 물론 추측이다. 정확한 사실은 당사자들만이 알겠지. 그냥 이런 게 있다는 것 뿐. 일단은 그렇다.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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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신 2009.11.06  11:59

ㅎㅎㅎㅎ
무협소설을 보는 것 마냥 재미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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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커 2009.11.08  09:59

넘 재밌게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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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성취 2009.11.08  10:49

잘읽고 유익한글 잘보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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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타헤럴드 2009.11.08  11:01

근데 왜 복사를 안되게 했는지 모르겄다. 글씨도 작고 . 사실 하얀 바탕에 작은 검정 글씨로 쓴 글을 읽는 것은 정말 눈을 피곤하게 한다. 내용은 읽은만 하지만 눈을 피곤하게 까지 하면서 읽어야만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난 웬만하면 복사해서 한글로 글자크기를 키워 일다보면 잘보여 뭔 내용인자도 잘알게 되고 좋은 글귀이면 고이 간직하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까페운영자에게 복사를 못하게 할려면 글씨크기를 10정도가 아닌 13정도로 아니 12정도로만 크게하여도 훨씬 읽기 쉬우니 글자 크기를 키우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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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ro2000 2009.11.08  21:27

ctrl키를 누른 상태에서 마우스 휠을 돌려 보세요. 그럼 글씨 크기가 작아졌다 커졌다 합니다..ㅎㅎ 번거롭게 복사해서 보시지 마시고... ㅎㅎ

용학이아재 2009.11.08  11:02

한마다 요약하지요 당신이 쓰면 진실이고 다른사람 이야가는 소설이니 딴나라식으로 이야기 하면 욕먹어야 하는건 당연한건 아닌가요 다른 글을 쓰더라도 잡기록은 분명 그시대에 살지않아 참조하여 썼을것이어늘 다른 사람 비방하기를 밥먹듯이 하면서 본인은 온전하시기를 바라시나이까? 실제 경험하지 않은것은 픽션에 가깝거늘 님은 앞으로 글쓰지 마세요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불륜인네 삐딱이 사람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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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hime 2009.11.08  18:08

혼자 오해하고 혼자 흥분하고 혼자 죽어가라.

용학이아재 2009.11.08  11:03

참고로 님은 의미있게 쓰는 글이지만 남은 그 글에 맞아 죽어요 알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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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rywon 2009.11.08  11:58

백학권사, 태극권사의 중국 무술 혈투를 본다면 당대 중국을 풍미한 고수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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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BJ 2009.11.08  13:55

팔극권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그리고 좀더 재미있게 알려면... 만화책을 보심이 좋을듯... '쿵후 소년' 또는 '쿵후 보이'라는 제목으로 상당히 오래전에 나왔던 만화책인데... 작가분이 상당히 자세하게 그리고 역사 고증에 의해서 만든 만화책입니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허구이지만.. 만화책에서 나오는 단체명과 '팔극권'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제가 봤던 무술 만화중에서는 가장 현실적이고 역사고증을 기반으로 해서 '팔극권'에 대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재미도 있어서 시간가는줄 도 모르고 빠져들 때가 많습니다.. 특히 '신창 이서문'에 대한부분은 참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인지라... 추천 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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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성 2009.11.08  17:03

ㅎㅎ멋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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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면소인 2009.11.08  18:17

상걸묘가 저술한 옹정검협도에는 옹정제 윤정은 동림이라는 무림 협객을 초빙하여 개인 무술 교사 및 경호인을 중용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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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sussy 2009.11.08  18:20

ㅎㅎ 중국인의 무술이란 그냥 체조 또는 무용 실전에선 막쌈.... 차라리 아령들고 팔힘 기르거나 달리기 하는편이 훨 효과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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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4020 2009.11.08  18:34

근데 궁금한게... 왜 요즘은 저런 고수가 없지? 만약 있다면 인터넷에 의해 퍼져 나가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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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락판명일채 2009.11.08  23:09

중국무술은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하고, 현대격투기는 점수따는 것을 목적으로 하니까 그치.
죽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현대의 룰을 적용시키면 중국무술은 그냥 약한무술이야

IDK 2009.11.08  23:48

중국 무술 태극권이나 팔극권,팔괘장 등 배우려고 했지만 결국 안 배운 이유가 중국 무술 배우면 결국 동화 되서 중화 사상에 빠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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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2009.11.09  00:24

말씀하신대로 중국무술의 역사는 좀 오락가락 불확실한 거다 보니, 가정제 시절의 그 파자권곤이 후에 팔극권이 되는 파자권과 우연히 비슷했지만 다른 것이었을 수도 있고 (즉, 신개발된 무술을 보고 누가 파자권이네 한 게 붙었을 수도 있고)... 무술 이름은 파자권인데 책 이름에 팔극이 붙어있는 덕분에 나중에 팔극권이라는 이름이 되었을 수도 있고요. 가정제 때 이미 존재는 있었던 파자권곤이 별로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다가 오종이 뜨는 바람에 시조로 알려졌을 수도 있고... 한편 당초에 시조는 라이고 오종에게는 벽이라는 사형도 있었던 거니 시조 개념 자체가 좀 느슨한 걸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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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huon 2009.11.09  10:11

이름을 숨기는 고수에게서 배웠다는 썰은 중국에서 상투적인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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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803 2009.11.09  14:08

ㅎ......허.....헉...안읽어봐서...모르겠어글시가0......너무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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