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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한 말이지만,
가장 좋은 것은 보다 나아지는 것이다.
그보다 안 좋은 것은 보다 나빠지는 것이다.
그럼 가장 최악은?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 것이다.
나아지면야 당연히 좋다. 그러나 나빠지면? 그러면 나중에 더 나아지도록 하면 된다.
채우는 것은 비우는 것부터 시작한다. 술자리에서 술을 받으려면 먼저 잔을 비워야 하듯 말이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그러면 모른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는가?
잘못 알고 있다면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면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 아는가?
부족함을 알면 그것을 채우면 된다. 그러면 부족함은 또 어찌 알 수 있는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면 그대로 모르고 지나가고 마는 거다.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면 평생 그대로 잘못 알고 지낼 뿐이다. 부족함을 모르는데 어찌 채울 수 있을까? 채우려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나빠질 수 있으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도 그런 의미다. 나빠지면 더 좋아지려 할 테니까. 나빠지면 뭐가 문제인지 알려 할 것이고, 그것을 바로잡을 것이고, 장차 더 나아질 수 있을 테니까.
그조차도 없다면? 단지 언제고 닥칠 실패를 나중으로 - 어쩌면 더 큰 실패로 미뤄두었을 뿐이다.
어린아이가 빨리 배우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이 수다스럽기 때문이다. 뭐가 그리 궁금한 건 많고, 알고 싶은 건 많은지... 모른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족함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고 솔직하게 듣는다. 그것이 아이들이 빨리 배우고 빨리 자란다는 이유다.
조금 더 수다스러울 수 있기를. 조금 더 무모할 수 있기를.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내딛을 수 있기를.
그러나 또 이 사회의 현실을 알기에 아이들에게 그리 말하지는 못하겠다. 패자에게 잔혹한 사회. 실패자에게 더 가혹한 사회. 한 번 쓰러지면 짓밟고 짓밟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실패를 두려워해야 하는 사회다. 무지를, 오류를, 부족함을 두려워하고 감추어야 하는 사회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넌 그런 것도 모르니?"
아이들은 그 순간부터 침묵을 배우게 된다. 마치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부끄러움을 알고 몸을 가리기 시작했듯 아이들도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와 부족함을 부끄러워하며 그것을 감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가 아니게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침묵을 배우고 자신을 감추는 것을 배운다. 감추다 감추다 그것을 지키려 난폭해지고 잔인해지고...
"넌 그런 것도 모르니?"
어느새 그 말을 배워 써먹기 시작하고...
바다 위에 보트를 띄워놓고 가만히 있으면 어느 샌가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이 흘러가듯 시간은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중간은 간다는 말은 그 시간 속에 어느샌가 멀리 떠밀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게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중간이기 위해서는 항상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오리가 물에 떠 있기 위해 쉴 새 없이 발을 젓듯 그렇게 떠들고 부딪히고 좌절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게 아니다. 당장은 중간이더라도 그것은 멈추어 선 중간이다. 세상에 멈추어 있는 것은 없다. 모두가 움직이는데 홀로 멈추어 중간이라는 것은 곧 도태를 뜻한다.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란...
중요한 것은 먼저 부족함을 아는 것이다. 모자름을 아는 것이다. 어리석음을 아는 것이다. 무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것들을 채우고 메꾸어 일어서 나아가는 것이다. 침묵이 아니라.
"모르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하긴 그 또한 꿈일까? 가만히 있어도 현상은 유지되는.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도 인간의 특권일 테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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