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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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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느껴오던 것이었다.

"나에게는 정의감이란 없구나..."

정의감이란 옳은 것을 옳다고 여기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신념이고 의지다. 이 가운데 특히 의지다.

이것이 옳다. 모두가 그래야 한다. 이것이 바르다. 역시 모두가 그래야 한다. 혼자만 옳고, 혼자만 바르고... 그런 건 없다. 그런 경우더라도 결국은 모두가 함께 옳고 함께 바르기를 바라게 된다.

그런데 내게는 그런 게 없다.

"냅둬, 그렇게 살다 죽게..."

내 입버릇이다.

물론 바로 앞에서 어린 녀석들이 노인네 폭행하고 하면 나라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가끔 무모한 짓도 하다가 꽤 곤란한 경우를 당하기도 했는데,

그러나 그것을 정의감이라 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고 남들도 그러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그러거나 말거나..."

어쩌겠는가? 싫다는데. 마음에 안든다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는데.

설득이란 환상이다. 세상에 설득처럼 힘든 일은 없다. 아예 불가능하다. 스물 이전이라면 어떻게든 권위의 힘을 빌어서라도 설득이 가능하지만 스물 넘어서고 나면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더구나 나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말을 잘하나? 생각을 논리있게 하나? 뻑하면 화내고, 흥분해서는 어버버버거리고... 그렇다고 내가 설득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설득이 불가능하다면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래서 친구와 만나서도 서로 의견이 충돌하면 그런다.

"그만하자. 더 이야기해서 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감정만 상해."

그대로다.

"자살도 권리다."

이 말에는 한 마디가 더 따라붙는다.

"죽는 걸 보는 건 괴롭지만 그렇게 죽겠다는 데 어쩌겠느냐?"

그렇지 않은가? 옆에서 죽겠다 난리치면 당장 말리게 된다. 당사자의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내가 보기 불편하니까. 아프고, 슬프고, 화나고, 짜증나고... 그러나 그래도 죽겠다면 또 어쩔 수 없는 거다. 죽겠다고 해서 죽었는데 그 다음에 내가 어쩌겠는가?

아마 내가 별 더러운 꼴, 어이없는 꼴을 많이 보고 살아와서 그런지 모르겠다. 즉 내 삶에서 인간의 부조리와 모순이란 인간의 일상적인 본성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부정할 필요도 없고, 굳이 그것을 바로잡을 필요도 없는. 아니면 좋지만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크게 문제는 아닌.

그래서 의외로 고루하기 이를 데 없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일탈에 대해 꽤 관대한 편이기도 하다. 혼외정사라든가, 미성년자의 성행위라든가, 심지어 성매매에 대해서까지도. 단, 다른 사람에게 - 즉 내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대개는 작기 알아서 할 바라 넘어간다. 사람이 넓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런 것까지도 인간의 본성이라 인정하는 때문이다. 범죄만 아니면 된다.

그래서 아마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블로그에서 그렇게 과격하게 주장을 하면서도 내가 항상 전제하는 것이 있다. 옳다가 아니라 좋다, 틀렸다가 아니라 싫다, 그르다가 아니라 마음에 안 든다,

솔직히 그게 옳은지 내가 어떻게 아는가? 그게 틀렸는지 또 내가 어떻게 알고? 내가 신인가? 내가 전지전능한 존재인가? 내가 읽고, 혹은 주워들은 것들 역시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어찌 아는가? 다만 당장의 내가 보고 듣고 판단하기에 그것이 더 옳아 보이고, 그것이 더 그른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옳다, 그르다, 정확히는 좋다, 싫다 이야기할 뿐이다. 설사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 또한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인간은 모두가 독립적인 존재다. 어떤 인간도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설득이든 조언이든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스스로가 할 바고.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듯 어차피 다른 사람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바로 알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하는 조언이나 충고는 또 얼마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겠는가? 얼마나 적확하며 얼마나 올바른 것이겠는가?

결국에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스스로 보고 듣고 스스로의 뇌로 판단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오롯한 자신의 권리다. 권리 이전의 존재다. 그것을 누가 감히 뭐라 어찌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냥 좋은 거다. 그래서 그냥 싫은 거다. 옳고 그름은 상대가 판단할 몫이다. 그것이 얼마나 옳고 얼마나 그른가는 상대가 알아서 스스로 판단하여 결론을 내릴 일이다. 나는 그 한 근거를, 그 판단에 도움이 될만한 한 근거를 제공하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상도 아닌 그것에 불과하다. 죽는 것이야 자기 마음이더라도.

물론 그런 건 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쿨할 수는 없다. 당장에 그가 어떻게 되면 내가 아픈데. 그가 어떻게 잘못되면 내가 그리 슬플 건데. 어찌 알아서 판단하라 내버려둘 수 있을까? 결국에 타인이니까. 남이니까.

하긴 당장 사랑하더라도 어느 순간 남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게 사람이다. 아무리 깊이 사랑하더라도 결국에는 서로 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옳은 것이 아닌 좋은 것일 수밖에 없다. 그른 것이 아닌 마음에 안 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상대가 곧 내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아무튼 그래서 자살도 권리라는 것이다. 죽는 것이야 자기 선택하기 나름, 그러나 나는 그것이 싫어 무어라도 한 마디 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이 받아들여지거나 무시당하거나 그 다음은 알아서 할 바다.

사람이 하는 착각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다른 사람을 내가 어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옳게 가르치고 바르게 이끌고... 남도 나처럼, 다른 사람도 내 뜻대로... 그것만 아니었어도 세상은 이보다는 몇 배 더 평화로웠으련만.

"왜 나는 이런데 넌 그래?"

이 한 마디야 말로 모든 싸움의 발단이 아닐까?

다르다는 것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르다고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조금만 게을러지고 무책임해지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자살도 권리다."

자살을 막고자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기를.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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