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중에 제대로 자료를 찾아 써보기로 하고 - 원래는 차근히 문헌도 뒤지고 하면서 써볼까 했지만 지금 약간 열이 받은 상태라,
아무튼 무협에서 나오는 협을 정의하자면 멀리 전국시대 유행하던 묵자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겠다. 묵자는 박애를 주장하면서 또한 비폭력무저항으로써의 평화가 아닌 약자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저항을 통해 강자로부터 쟁취하는 평화 또한 주장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약자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써 "묵수"라 일컬어진 독특한 - 그러나 매우 고도의 수비전술까지 발전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그 신념을 지키고자 약소국의 성을 지키는 싸움에 참가해 제자 700명이 목숨을 잃은 적도 있었으니...
즉 협이란 바로 그러한 묵자의 사상 - 박애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단순한 박애가 아니다. 널리 사랑하되 그를 위해 스스로 손을 더럽히는 것도 불사하는 박애다.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그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가 나타났을 때 그에 목숨걸고 항거하여 쟁취해내는 박애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에 이르면 다른 이의 억울함이 없도록 대신해 나서는 협객이 된다.
실제 역사상 나타난 협객들을 보면 그 상당수가 남의 원수를 대신 갚아준 이들이다. 간장과 막야의 전설에서부터, 친구의 원수를 대신해 갚아주고 쫓기는 몸이 되었다던 삼국지의 서서나, 억울한 사람의 원한을 대신해 갚아주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던 시선 이백의 경우가 그렇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사기의 협객열전에서 말하는 협객과 일반적으로 말하는 협객의 의미는 약간 다르다는 것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협객열전을 정리할 때 그 기준은 역시나 유교적인 가치의 실현이었다. 충, 효, 예, 의, 신... 그러나 민간에서 말하는 협객이란 이와는 약간 다르다. 말했듯 누군가 억울한 사람이 있을 때 이것저것 재지 않고 자기 일처럼 나서서 해결해주는 사람... 즉 유교적인 가치가 아닌 인간적인 가치 -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다. 그래서 묵자의 계승이라는 것인데...
그러한 협객의 형태가 자리를 잡은 것은 당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물론 그 전부터도 협객이란 있었지만, 당나라 때 통속소설이 유행하면서 특히 협객의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개소문의 화신이라며 관심이 높은 규염객전도 이때 나오게 된 것인데, 그러면서 막연하게 전해지던 협객의 이미지는 확정되어 송과 원을 거치면서 삼국지와 수호전으로 계승된다.
사실 삼국지도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유협소설에 가까운데, 실제 유비, 관우, 장비 등은 유교적인 인과 의를 실현하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지극해 개인적인 협을 추구하는 캐릭터에 가까웠다. 정사에서는 그닥 비중이 없는 조자룡이 유독 강조될 수 있었던 것도 정사에 나오는 조자룡이야 말로 바로 그러한 협의 가치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사귐에는 신의가 있고, 어떠한 판단을 내림에는 절도가 있고, 결정한 바를 행동으로 옮김에 있어서는 주저함이 없는, 어질고, 의롭고, 신의가 있고, 용기가 있고, 스스로에 엄격한...
그리고 그러한 협객의 모습이 가장 완벽하게 형상화된 것이 비슷한 시기 같은 작가 - 시내암은 나관중의 또다른 필명이라고도 한다. - 에 의해 쓰여진 수호전이었다. 딱 협객의 모습들이었다. 자기 재산을 털어 어려운 이를 도와주는 급시우 송강에, 귀신이 날뛴다고 하니 이웃마을의 귀신쫓는 탑을 뽑아들고 왔더라는 탁탑천왕 조개, 노지심도 어려운 이의 원수를 갚아주느라 쫓기는 몸이 되었고, 무송 역시 형의 원수를 갚아주다 죄인의 몸이 되었다. 관직에 있으면서도 도적출신인 지인들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든가, 한 번 은혜를 입으면 목숨을 걸고 갚는 것이라든가, 물론 원한을 맺으면 그 일족까지 도륙내어 갚는 잔인함까지.
자, 여기에서 어렴풋 눈치를 챘겠다. 그렇다. 유교적인 가치와 동떨어져 민간에 전해진 협이란 중국의 정신을 지배하던 유교와는 또다른 것이었다. 하긴 당장 주동을 끌어들이겠다고 어린아이를 가차없이 죽이던 이규의 모습이라든가, 술집을 차려놓고 여행자를 마취약으로 쓰러뜨려 그 고기로 만두를 빚어 팔던 장청이라든가, 그리고 도적질하며 여성을 약탈하곤 하던 왕왜호라든가, 분명 일반적인 상식 - 나아가 보편적인 가치와는 충돌하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협객이 되는가?
말 그대로다. 유교는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묵자 역시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그러나 어느새 민간으로 흘러든 묵자의 사랑이란 보편적인 가치에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정의감으로 바뀌었다. 아니 정의감이라기보다는 울컥하는 감정일 것이다. 옳지 못한 것에 분노하고 바른 것을 동경하는. 사실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라 할 텐데...
그래서 수호전을 보더라도 당장 자기는 사람의 고기를 팔아도 탐관오리의 패악질에는 함께 분개한다. 산에 숨어 도적질을 하면서도 어디 훌륭한 인물이 있다면 받들어 공경하기를 나랏님 모시듯 한다. 급시우 송강이 관리로 있으면서 베푼 덕으로 어딜 가든 호걸들의 환대를 받던 것이 그런 경우다. 물론 송강 역시 범죄자이지만 호걸의 풍모를 갖춘 이들을 우대하고 있기도 했고.
사실 수호전이라는 자체가 - 삼국지도 마찬가지만 - 북송이 망하고 혼란기에 사방에서 협객들이 일어나며 그 영향을 받아 성립된 이야기다. 중앙조정의 통제는 사라지고, 치안과 질서를 유지해야 할 공권력은 어디에도 없고, 그래서 사적인 폭력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중국에서도 유협집단이 성장하게 되었다. 백련교의 난이 그 대단하던 대원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유협들이 종교적인 믿음과는 상관없이 백련교의 거사에 동참했기 때문이고 보면, 당시 유협의 성장이란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다. 당연히 그 유협의 모습이란 삼국지의 유관장이고 수호전의 양산박 호걸들이다.
즉 원래 유협이란 중앙의 조정과는 무관하게 자생적으로 나타난 세력이라 기본적으로 법질서와는 상관이 없다. 법이란 권력의 폭력에 불과하다 여기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수호전에서도 법을 무시하는 것을 호걸의 또 하나 자질로 여기고 있기도 했다. 간단히 어디 대단한 곳에라도 가서 보는 사람이 없으면 오줌이라도 갈기고 싶은 심리와 같은데, 더구나 그들은 대개 향촌출신으로 교육을 받지 못해 무식했다. 일자무식도 적지 않았고, 글을 읽어봐야 필요한 문서나 장부나 읽고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 고작이었다.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교육 없이 민간에 전하는 어떠한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정의가 그 행동의 원리인 셈이다. 예를 들어 그런 거다. 얼마전 딸을 성폭행한 범인을 가족들이 몰려가 때려죽였다는. 그리고 그것을 잘했다고 하는 그런.
관리인 송강과 도적인 왕왜호가 형님아우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후주의 후손인 시진이 도망자인 무송이나 임충 등을 숨겨줄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관리이던 대종이 죄인인 송강을 살리려 또 죄를 짓고, 도적을 토벌하라 보낸 호연작이 어느새 송강과 형님아우 하며 관군에 대항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옥기린 노준의는 얼마나 곧고 바른 인물이었던가? 도적과는 상종할 수 없다던 그가 양산박의 우두머리를 다투고 스스로 양산박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보편적인 가치란 상관없으니까. 법이든 도덕이든 윤리든 뭐든.
그래서 그러한 협객을 정의하는 가치란 다른 게 아니었다. 오로지 개인과 개인을 잇는 관계였다. 가장 흔한 것이 바로 의리, 인의예지신의 가치도 함께 추구하기는 했지만 유교의 그것과는 약간 달랐다. 인이란 어짊이 아니라 동정이고, 의란 정의가 아닌 분노이며, 예란 절제가 아닌 관계이고, 지란 관계의 연장이고, 신이란 곧 의리다. 이 가운데 특히 의리가 중요해서 - 즉 다른 유협과의 관계가 유협으로써의 존재를 증명하게 되면서 더욱 강조되게 되었다. 구문룡 사진이 의리에 감탄하며 소화산 도적들과 한패가 되는 것이 바로 그런 예다.
문제는 워낙 이것이 개인적인 관계에 좌우되다 보니 이게 전혀 엉뚱하게 작용하기도 하더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앞서도 말했던 뇌동을 끌어들이려 뇌동이 돌보던 관리의 아이를 죽이는 이규의 경우다. 아니 그 전에도 이규는 성급하고 난폭한데다 잔인해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대종이나 송강 등 이름난 호걸에 대한 존경심과 그들에 대한 의리가 있었다. 다른 것 없다. 그냥 의리다.
이런 부분들을 잘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 김용의 "비호외전"과 작가는 모르겠고 "청강만리"라는 소설이다. 비호외전에서는 개인적인 인연을 들어 비호가 쫓던 원수를 비호하던 협객들이 나오고, 청강만리에서도 억울하게 한 여인의 정조를 빼앗고 심지어 그 약혼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부자가 평소 베푼 인정에 힘입어 협객들의 도움을 받아 주인공에 대항한다. 즉 이규가 아이를 죽였어도 의리로 맺어졌기에 어짊의 상징과 같은 송강과 친분이 있듯, 그들 역시 개인적인 인연이 그 행위를 우선하더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흔히 중국이라 하면 이야기하는 "꽌시"와 "멘즈"라는 것이다. 이야말로 협의 핵심일 텐데, 한 마디로 꽌즈란 관계다. 멘즈란 그 관계에 있어서의 자기를 돋보이는 것이고. 뭔가면 수호전의 호걸들이 어디서 유명한 사람이 오면 도적질을 해서라도 잔치를 열어 대접하고 선물을 주어 보내는 그것이다. 그러면서 인연을 맺고, 그로써 얼굴을 세운다. 서로 인사를 할 때도 상대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고 그로써 서로 인정하고 인정받는다. 그 테두레 안에 들어가면 인정받는 것이고, 그로부터 벗어나면 가차없는 제제가 가해진다. 수호전이며 삼국지며 중국의 고전들이 말하는 가치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원래 유협이란 자생적 권력이다. 그들의 권력을 증명할 아무것도 없는 알몸의 권력이다. 그를 증명하자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들 스스로 증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계를 통해서. 관계 속에 자기를 증명하면서.
실제 요즘은 모르겠지만 예전 건달들이 모여 시비가 붙으면 바로 이런 말이 오갔다.
"내가 노량진 쪽에 누구를 알거든?" "아, 그 형이요? 그러면 대방쪽에 그 형은 아세요?" "아, 그 형님? 알지. 그럼 그 형 동생이냐?" "동생은 아니고 좀 알아요..."
별 것 아니지만 그로써 그들은 서로 유대를 갖고, 또한 배타적인 동질감을 갖게 된다. 또한 그로써 그 안에서 자기를 증명받고. 유명인과 사귀기를 좋아하고 그들과 어울리고자 많은 것을 희생하는 것은 그래서다. 자기증명인 거다. 더구나 그렇다 보니 그 안에서 애초의 옳은 분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꽌시와 멘즈만 남게 되고.
다시 말해 그게 협객이라는 거다. 처음에야 옳은 일을 하고자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힘이 되고 권력이 되는 순간 그들은 그 안에서 자기를 증명하기를 바랬다. 그래서 유력자인 관리와 결탁하고, 부호와 결탁하고, 지주와 결탁하고, 그러면서 자기들끼리도 서로 관계로써 인정하고 증명하고, 그렇게 자기들끼리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도리어 보통의 힘없는 사람을 위한다던 것이 도리어 그 위에 군림하게 되고.
지금의 중국의 비밀결사라는 게 그렇다. 천지회니 홍방이니 죽련이니 용호방이니 하는 것들. 결국에 시작은 민간의 상부상조를 위한 조합 - 길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힘이 생겨나고 권력이 나타나고 그러면서 오히려 그들이 민간에 대해 통제하기 시작했다. 억압하고 지배하고 만일 이탈하려 하면 목숨을 뺏어서라도 제제하고. 그러나 워낙 중앙권력을 믿을 수 없었던 중국이었던 탓에 그럼에도 그러한 비밀결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른바 관용적으로 말하는 협객과 현실의 협객의 차이다. 관용적으로 말할 때는 그것은 옳은 일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협객이란 폭력에 의지하여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폭력이 옳다고, 폭력을 사용하는 자신이 옳다고, 그렇게 폭력을 휘두르며 그것으로써만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들이다.
오늘 뉴스를 보았다. 마지막 협객이라던가... 괜히 어디서 해꼬지 당할까 말은 못하겠고 - 그쪽과는 애초에 얽히지 않는 게 좋다.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라 - 참 협객이 많이 싸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또 협객은 협객이라, 자기들끼리 의리나 지키고, 자기들끼리 인정하고 존중하면 그게 협의고 협객일 터이니. 차분히 자료를 조사할 생각도 않고 글을 쓰게 된 이유다. 별놈들이 다 협객이라. 뭐 그렇기는 하지만. 웃기지도 않아서. 어이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