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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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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무지란 지극히 협소하거나 쓸데없이 크고 넓은 것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내 일도 아닌데 뭔...?"
"난 그런 데 관심없거든?"
"남의 일에 무슨..."

그러는 한 편으로,

"국가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희생을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은 그에 포함되지 않는다. 말했듯,

남이니까...
타인이니까...
관심이 없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왜 그들더러 희생하지 않는가 말한다. 농민더러는 농사를 포기하라 하고, 노동자더러는 직장을 포기하라 하고, 지식인에 대해서는 신념을 포기하라 한다.

왜? 내가 아니거든. 물론 그가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할 주제는 못 된다. 말했듯 크거나 혹은 작으니까.

그게 문제라는 거다. 크거나 혹은 작다는 것. 그 크고 작은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더라는 것. 사실 그게 인문학이거든. 나와 남, 나와 우리, 나와 전체, 나를 비롯한 모두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거다.

그런데 인문학같은 거 누가 하던가?

"그런 건 돈이 안 되잖아?"

심지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탁상공론..."

그래서 항상 생각하는 것이,

"돈 되는 학문..."
"현실에 직접 도움이 되는 기술..."

역사고 철학이고 문학이고 사회학이고 뭐고,

한국사람들의 정의감이라는 게 위험하다는 것도 그래서다.

한국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밖에 모른다. 자기와 가족과 친구와, 어찌되었거나 어떠한 연고와, 그런 주제에 또 거대담론에는 관심이 많다. 국가와 민족과 나아가 세계정세와,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정의감을 잇는 연결고리가 없더라는 것이다. 개인과 국가, 개인과 민족, 개인과 세계, 개인과 인류, 전혀 없다. 그래서 개인의 정의가 사회의 정이가 되고, 개인의 섣부른 판단이 전체의 정의가 된다.

"내가 불편하니 옳지 않다."
"내가 피곤하니 문제가 있다."
"내가 짜증나니 그건 틀렸다."
"내가 불쾌하니 그건 아니다."

아닐 것 같은가?

그래서 내가 또 하는 말이 있다.

"항상 결론이 먼저 있고 이유가 뒤따른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자기중심적인 사고나 판단이 반드시 자기로부터 비롯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관계를 전제하지 않은 거대담론이라는 것은 결코 개인에게서 생산되어 소비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니까. 즉,

"내가 어떠니 다른 것도 어떻더라..."

이 전제란,

"그에 대해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라..."

쉽게 권위에 굴복하고, 이슈에 현혹되고, 명확한 자기중심 없이 휩쓸려 내몰리듯 결론부터 내리고 만다. 그리고 이유를 찾는다. 또한 누군가가 제공하는 이유를. 물론 자기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에 자기란 거기에 없고. 더욱 거대담론이 나라는 개인과 유리되는 이유다.

그래서 정작 정의로운 그들의 거대담론에는 개인이란 없다. '나'라는 개인은 있다. 그러나 '나'는 철저히 그 거대담론으로부터 유리된 타자로서의 '나'다. 한 마디로 구경꾼이다.

"주인공인데 왜 약해?"
"주인공인데 여자를 왜 내버려두는 거야? 덮쳐! 먹으라고!"
"복수가 왜 그렇게 약해? 여자는 벌레로 만들고 임산부는 배를 가르라구!"

구경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그토록 정의롭게 분노하고 흥분하면서도 그러한 이야기들에 자기란 없다. 철저히 타자로써의 군상들 뿐. 나랑은 상관없는 유닛? 혹은 캐릭터? 고작 그런 정도? 그래서 더욱 쉽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리해고당해 일자리 잃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살지 않겠어?"
"비정규직이라서 대우도 열악하고 차별까지 당하더라도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다 괜찮아지지 않겠어?

말했듯 자기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자기가 그런 경우를 당할 일이란 없으니까. 

한 마디로 상상력이 없는 것이다. 나와 남과의 사이에, 나와 타자와의 사이에 대한 어떠한 관계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저와 같을 수 있다고 하는... 지금 저들이 처한 상황이 나와 같을 수 있다고 하는...

그것이 계급이고 연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되는가?

"정작 내가 노조 만들고 파업도 해 보니 왜 그러는지 알겠더라."

실제 노동현장에서 절박한 상황에 내몰려 가장 극렬하게 파업에 투쟁에 앞서는 누군가는 평소 노조니 그런 것에 적대적인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상상력 자체가 결여되었다. 왜? 말했지 않은가. 그에 대한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니.

개인적으로 정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이 너무나도 잘해주었다고 하는 부분이 이것이다. 신자유주의라... 그래서 경쟁을 강조하는 사이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현장에서 사라져버렸다. 오죽하면 등록금 이하를 두고 삭발하며 투쟁하는 같은 학생에게,

"그럴 시간에 공부해서 장학금이나 타지!"

정진정명 현역 대학생의 반응이었다. 즉 등록급 이하를 위해 투쟁하는 대학생들과 자기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저렇게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고, 저들도 나와는 전혀 다른.

바로 이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그동안의 교육이 만들어 놓은. 오로지 등수로써만, 등급으로만, 대학으로만 모든 것이 결정되는. 그것이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 자신에게서 왔다.

내가 항상 입버릇처럼 한국 민주주의에 희망이 없더라는 것이 그것이다. 민주주의란 자기희생을 전제하거든. 자기희생이란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다. 벽돌을 쌓다 보면 때로는 일부를 깨고, 또 다른 일부를 덧붙이기도 하듯 서로 공존하기 위한 양보며 타협이다. 그리고 그것은 관계에서 나오고, 관계란 또한 상상력이다. 그런데 그게 없이 어찌 민주주의를?

세상에 가장 쓸데없는 것이 뭣도 아닌 주제에 말만 많은 헛똑똑이들이다. 차라리 멍청하면 혼자서나 손해보지, 진짜 똑똑하면 사회에 어떻게든 도움을 준다. 그러나 헛똑똑이들은... 돌아가시겠다는 거다. 아주.

다시 말하지만 관계란 상상이다. 거대담론이란 바로 그러한 관계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와 너와, 나와 남과, 나와 타자와, 나와 모두와, 그것이 없는 거대담론이란? 그냥 허깨비다. 헛소리. 망상. 몽상. 공상. 쓸데없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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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ador 2009.07.01  01:35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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