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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우익에서 주장하는 깔때기 이론이라는 게 있다. 즉 한반도는 대륙과 일본을 이어주는 깔때기라 따라서 대륙의 문화가 일본으로 전달되는 통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고대일본에 대한 문화전파론을 들먹일 때 그 반박으로 나오는 주장이다. 솔직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사실 우리가 일본에 문화를 전달해주었다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그 문화라는 것들이 대개는 대륙으로부터 전해진 것들이다. 특히 지금도 기념행사를 하는 왕인박사의 경우는 낙랑인으로 백제에 망명한 후손으로 그들에 의해 전해진 것은 중국의 유교 경전이었으니 백제를 통해 건너갔다고 해도 우리가 전해준 것이라 으스대기는 조금 민망한 부분이 있다.
불교도 그렇다. 불교가 처음부터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이던가? 원래 인도에서 발생해 중국을 통해 한반도로 전해진 것이다. 중국에서 중국화된 불교가 다시 한반도로 들어와 한반도에서 다시 한반도화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불교가 전해진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라면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로 불교가 전해진 것은?
물론 한반도가 일본의 문화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한 것은 맞다. 많은 문물이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많은 한반도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직접 그들의 문화발전에 기여를 했다. 그것은 분명 자부해도 좋을 일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중국은?
조선 후기까지 일상에서 쓰이던 문자는 중국의 문자인 한자였다. 그리고 그 독음은 당나라 때 전해진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당나라 때의 중국어를 연구하는 데 한국의 한자 독음을 크게 참고한다던가? 복식에서도 지금 전통복식의 하나로서 입고 있는 마고자만 하더라도 구한말 청나라로부터 들어온 것이었다. 한반도인들의 정신을 지배한 불교와 유교, 도교 역시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것이었다. 건축양식 역시 중국의 그것을 받아들여 독자적으로 발달한 것이었다.
우리가 자랑하는 도자기문화는 어떠한가? 도자기가 처음 발명된 것도 중국, 청자가 처음 만들어진 것도 중국의 북송 왕조, 백자가 널리 쓰이게 된 것도 원대에 들어서면서, 상감청자나 철화백자가 분명 독창적인 고유의 양식이기는 하지만, 당초문양 등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도자기들도 상당수 된다. 특히 조선의 회화는 중국 남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써 조선후기 독자적인 화풍을 갖추기 전까지 그 양식에 있어서도 중국의 남화를 많이 모방하고 있었다.
어디 중국 뿐일까? 일본으로부터 받아들인 것도 상당해서, 당장 흔히 먹는 김밥만 해도 그 원류는 일본의 김말이초밥 노리마끼다. 붕어빵도 일본에서 타이야키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고, 천안의 명물인 호두과자나 경주의 명물 경주빵이나 황남빵도 일본식 과자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에서 비롯된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고. 회도 전통적으로 먹던 회와 요즘 먹는 회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상당히 다르다. 최소한 우리나라 전통에는 생선의 모양을 유지하며 회 뜨는 법은 없었다.
사실 이것은 자랑스러워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당장 우파들만 하더라도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받아들이려 하지 않던가. 좌파들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우리사회에 접목시키려 그리 노력하고 있고. 그것은 그만큼 미국의 그것이, 유럽의 그것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면서도 누군가는 미국의 헐리우드식 제작기술을 따라 하고, 누군가는 유럽식의 문법을 따라가기도 한다. 그것은 그들의 영화에서 우리의 영화보다 나은 점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들의 경험과 기술로써 우리의 영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다.
문학에 있어서도 그렇다. 만화에 있어서도 그렇다. 게임은 어떨까? 자동차는? 기계는? 가구는? 입고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은? 더 나은 것이 있다면 더 나은 것은 따르는 것이고, 더 나은 것이 있어 더 좋아 보인다면 그것을 어떻게든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기에는 국경도 없고 민족도 없다. 단지 있다면 필요와 당위 뿐.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산적에 햄과 맛살을 끼워 넣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소시지에 계란옷을 입혀 전처럼 부쳐 먹는 거야 이미 일상이다. 막걸리 대신 맥주를 마시고, 소주 대신 위스키를 마시고, 김치찌개에도 햄이 들어가고, 찍어먹는 된장에는 마요네즈가 들어가 부드러운 단맛을 더한다. 간장도 맛이 강한 전통간장 대신 일본식 양조간장이 주를 이루게 되었으니 음식문화도 그에 따라 적잖이 변화를 보이고 있다.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이 역시도 더욱 맛을 추구하는 본능에 따른 것이다. 더 맛있는 것, 더 입맛 당기는 덧, 더 즐거운 것, 그래서 국경이고 민족이고 상관 없이 맛있는 것이 있으면 찾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그것을 일상으로 만든다. 그러면서 문화는 발전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다. 그것이 역사의 발전이고 인류문명의 발전이다.
"한류"라고 하는 것도 결국 그 맥락이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나름 성공한 나라다.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안정되어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 그러한 한국의 이미지가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고, 한국의 자신들과 다른 부분에 대해 보다 개방적이도록 한다.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의 영화를 보는 것과 제 3세계의 영화를 보는 것과의 차이를 떠올리면 된다. 그만큼 한국이 발전되었고 그만큼 다른 나라에서도 한국의 문화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금도 세계각국은, 여러 나라 여러 민족들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탐욕스럽게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다양한 요소들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더 나은 것들, 더 좋은 것들, 더 훌륭한 것들, 더 멋진 것들, 물론 주관적인 것이기에 항상 그러한 판단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이미 하나의 본능이다. 발전하기 위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그래서 더욱 탐욕스럽고 더욱 뻔뻔할수록, 그렇게 집요하게 남의 문화를 탐낼수록 그 나라, 그 민족은 발전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와 민족은 쇠퇴한다. 그것은 이미 역사의 법칙이다.
고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구려가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고구려에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신라가 애써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중국으로부터 직접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려 했던 것도 당시 중국이 한반도보다 한참 앞선 선진국이었고, 따라서 중국의 문화와 기술이 신라를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제대로 국가도 이루지 못한 일본이지만 이미 한반도를 보았고 중국을 보았던 그들로서는 최소한 한반도 수준의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로부터의 문화수입은 필연이었다.
따라서 한반도인의 일본에 대한 문화전파는 한반도인이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다. 단지 지리적으로 중국에 더 가까웠고 그래서 더 일찍 중국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고 자기화시켰다는 것 뿐, 오히려 더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은 그렇게 열심히 한반도로부터 문화를 받아들여 나름의 발전을 이룬 일본인 자신이다. 한반도로부터 전해진 문화를 그냥 허비하고 만 것이 아니라 자기화시켜 지금의 독자적인 문화를 일구어낸 일본인 자신인 것이다.
솔직히 창피한 것이다.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것들은 뒤로 한 채 우리가 일본에 전해준 것만 가지고 으스대는 것은, 더구나 지금 일본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한참 뒤진 우리가 그러고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창피해 고개를 들지 못할 일이다. 역사상 어디서나 있었고 수도 없이 있어 왔던 일들을, 고작 그것 하나 가지고 일본에 우월감을 느끼는 꼬락서니라니. 꼬락서니다. 두 말 할 것 없는 꼬락서니다.
물론 우리도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문화들을 우리화시켜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중국의 아류라지만 분명 한반도의 문화는 한반도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문화가 중국의 그것과 다르듯 일본의 문화도 우리나 중국의 그것과 다르니. 그것이야 말로 일본인의 역량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존경할 일이지 폄하할 일은 아니다.
하여튼 민족주의라는 것이... 내 것은 내 것, 네 것도 내 것, 놀부심보도 이런 놀부심보가 없는 터라, 아전인수에 자기중심의 아집에, 편견에, 어떻게 해서든 상대를 깎아내리고, 그렇게 상대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을 돋보이려 하고, 그런데 그런 것이 고작 천 년 전에 문화를 전달한 것밖에 없는 것인지. 참으로 비루한 민족주의라 아니 할 수 없다. 한심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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