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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 우리집에는 무려 어머니가 학교 다닐 때 쓰시던 옛날 도시락이 있었다. 소풍이라도 가게 되면 김밥을 꽉꽉 눌러담아 먹던 도시락이었는데, 아마 내 기억에 그거 하나면 김밥이 여섯 줄이 들어갔던가 그랬다. 정말이지 옛날사람들은 밥도 많이 먹었구나 새삼 생각하게 만들던 놈이었다. 물론 거기다 김밥 꽉꽉 눌러담아 점심으로 먹던 국딩시절의 나도 많이 먹기는 어지간히 많이 먹었었다. - 지금 그렇게 먹으라면 못 먹는다. -
그런데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어느날 우연히 전쟁전 일본의 사진을 보다가 사진 속에서 그와 비슷한 도시락을 보았다. 이름은 들어보았나? 히노마루 벤토. 바로 그 히노마루 벤토였다. 넙데데 네모난 도시락 한 가운데 시커먼 우메보시 하나가 놓여 있는. 아마 노동자의 사진이었을 것이다. 어느 공사현장에서 점심을 먹는 노동자의 사진이었는데 그 괴물같은 도시락에 오로지 쌀밥만 가득 담긴 채 우메보시 하나가 놓여 있었던 것이었다.
하긴 그러고 보면 내가 일본어 가운데 인삿말과 수사 말고 가장 먼저 배우고 써먹은 단어가 '오까와리'였다. 우리말로 '더 주세요.'
아마 일본 만화나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쉽게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즙삼채라 하여 미소시루와 세 가지 - 혹은 그 이상이나 그 이하의 반찬이 놓인 상이 각자 앞에 놓이면 그 옆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무로 만든 밥통을 끼고 부인이든 하녀든 앉아 있다. 그러면 그들은 자기 앞에 놓인 밥을 다 먹고서 그네들에게 밥그릇을 내민다.
"오까와리!"
오다 노부나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천하포무에서도 오다 노부나가가 밥에 물을 말아 된장을 얹어서는 후루룩 마셔버리고 다시 밥을 달라고 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다시 말해 한 번에 들고 먹는 밥그릇이 작은 것이지 한 끼에 먹는 밥의 양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실제 앞서 말한 전쟁전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은 츠케모노라 해서 절임이나 낫토 된장만을 반찬으로 해서, 약간의 반찬만으로 몇 그릇씩 밥을 먹기도 했었다. 지금처럼 밥은 조금 먹고 반찬은 많이 먹는 건 전쟁이 끝나고 일본인의 생활습관이 서구식으로 바뀌면서부터다. 밥은 상대적으로 조금 먹게 되고 그대신 서양이나 그밖에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새로운 음식까지 포함된 반찬은 많이 먹고.
사실 일본인의 쌀밥에 대한 집착은 대단한 것이었다. 일본이나 우리나 근대 이전까지 쌀본위제라 해도 좋을 정도로 쌀이 중요한 경제단위로 쓰이고 있었던 데다, 산이 많아 농사를 지을 땅조차 부족하니 쌀생산량도 부족해서 영주들은 대개 번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서 악착같이 세금을 거둬들였기 때문에 정작 농민들은 쌀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센다이번과 같은 경우는 아예 세금으로 거둬들이고 남은 쌀까지 돈을 주고 사들였기 때문에 이 지방에서는 농민이 쌀을 먹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쌀 자체의 맛과 향이 다른 곡식에 비해 나은 것도 있겠지만 이토록 자기가 농사를 짓고도 먹을 일이 없으니 쌀에 대한 일본 특히 농민들의 집착이란 단순히 먹을 것이 없어 먹을 것을 바라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하나의 종교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메이지유신이 있고 비로소 농민들에게도 쌀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그 기분이 어떠했겠는가? 그냥 쌀밥만 먹으려 들었고, 기왕에 쌀농사를 짓느라 다른 야채를 재배할 땅조차 없어 아주 적은 양의 반찬만으로 입맛을 돋구며 많은 양의 쌀밥을 먹어댔다. 특히 열량소비가 높은 노동자 가운데 그렇게 먹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들이 밥을 담아 먹던 것이 앞서 말한 그 괴물같은 도시락이었던 것이다. 한국사람도 거기에 밥을 담아 먹었지만 일본사람들도 너끈히 그 밥을 다 먹었었다.
그런데 또 앞에서 말했다. 일본은 쌀이 부족했다고. 그렇다면 메이지시대 이후 그 비약적으로 늘어난 쌀소비는 뭘로 다 충당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조선이다. 개화기에는 상인들이 와서 영국으로부터 사들인 광목을 팔아 조선 농민들이 먹을 쌀조차 없이 쓸어갔었고, 경술강제병탄 이후로는 조선총독부와 결탁한 조선인 지주들로부터 당당히 돈을 주고 사갔다. 그 대신 조선인들이 먹었던 것이 만주로부터 수입한 콩과 조, 수수등 잡곡이었다. 교도소 가면 콩밥먹는다는 것도 만주에서 수입한 콩이 워낙 많아 기름을 짜고 남은 콩을 교도소에서 밥에 섞어 지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태평양전쟁이 있기 전까지 일본인은 결코 소식을 하지 않았다. 없어서 못 먹었지 있으면 각기병이 걸릴 정도로 쌀밥만 먹어댔다. 우메보시 하나 도시락 가운데 놓고서 그것으로 입맛을 다셔가며 그 어마어마한 양의 밥을 먹어댔었다. 소식하는 일본인이란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현대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일 뿐. 말하자면 이것도 만들어진 전통이라 할 것이다.
하긴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처럼 주발에 밥 담아 먹는 경우는 별로 없다. 노인이나 되지 않으면 밥공기에 살팍하게 담아 싱겁게 간이 된 야채며 고기와 함께 먹는다. 유럽에서도 설탕과 우유, 이스트를 넣어 노동자나 농민이 하얀 빵을 구워 먹은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가난이라는 게 근대 이전 모든 사회의 숙명과 같은 것이라. 일본이나 우리나 유럽이나.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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