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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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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유목기마민족인 스키타이인들은 적의 피를 마시고, 그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썼으며, 적의 살가죽으로서 외투를 만들고 방석을 만들어 썼다고 한다. 몽골족 역시 적대하는 부족을 아직 어린 아이만 남겨두고 모조리 살해하고 있었고. 칭기즈칸 자신도 적을 죽이고 적의 아내와 딸을 범하는 것 이상의 즐거움은 없다고 했던가? 죽이고 약탈하고 강간하고 고려를 침입했을 때도 몽골족의 잔인함은 듣는 것만도 살이 떨릴 정도였다.

고려사를 보면 왜구들도 어린아이의 배를 갈라 점을 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니 그 잔인함에서 유목민족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하긴 사무라이 자신이 남의 목숨은 물론 자기 목숨마저 하찮게 여기는 무리들이었으니. 태평양전쟁에서도 그래서 적국의 군인과 민간인은 물론 자국의 군인과 민간인에 대해서도 기꺼이 희생을 강요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바이킹도 한 번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제대로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던가?

하긴 펄벅의 대지에서도 생생히 묘사되고 있다. 기근으로 당장 먹을 것도 없는 때 아이를 낳게 되자 갓태어난 아기를 목졸라 죽이는 산모의 이야기가. 사실 그건 소설상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가난에 못이겨 아이를 팔거나 어디다 버리고 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서도 유럽에서도 세계 어디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바로 그런 이야기 아니던가. 먹고 살기 힘드니 아이를 산속에 버리고 오는 이야기. 피리부는 사나이도 결국 그 비슷한 이야기였었다.

흉년이 들면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빤한 생산에 생산량마저 줄어들게 되면 더 이상 그 집단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먹을 것이 부족해 죽는 사람도 나오고, 굶주림으로 약해진 몸에 전염병마저 돌아 병들어 죽는 사람도 나오게 된다. 부족한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기도 하고 다른 마을로부터 식량을 빼앗고자 도적질에 나서는 사람도 있다. 굶어서 죽고 굶지 않기 위해 죽이고, 심지어 살기 위해 사람을 죽여 그 고기를 먹는 경우마저 있다.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하찮아지는 것이다. 산다는 앞에, 살기 위해 필요한 약간의 식량 앞에.

원래 목축이든 어로든 그 생산량은 농경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더구나 목축과 어로는 농경에 비해 노동력의 필요가 적다. 어차피 목초지는 한정되어 있고 가축이 자라는 속도도 정해져 있다. 사람이 더 많다고 새끼를 더 많이 낳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일한다고 가축이 더 빠르게 자라는 것도 아니다. 뻔한 조선기술에 뻔한 항해기술에 뻔한 어로기술만을 갖고 있던 시대 그렇지 않아도 날이 궂으면 바다로 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해지니 그 역시 생산이 뻔할 수밖에 없었고. 생산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람에 대한 필요조차 적다. 그나마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사람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던 농경민족에 비해 사람의 목숨이 더 값싸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유목민족과 해양민족이 특히 잔인한 이유는 그것이다. 그만큼 그들이 처한 환경이 가혹한 거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는 약간 여유가 있는 편이라 할 수 있다. 아주 가혹한 환경에서는 인구가 늘어날 새도 없이 죽어나가느라 오히려 최소한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인구의 확보가 더 절박할 테니. 이누이트들이 그렇다. 그들은 가혹한 환경에 놓여 있고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에 매일같이 다른 생명을 빼앗으며 살면서도 상당히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한 마디로 어느 정도 먹고살만한 환경에서 인구가 늘어날 여지가 있을 때 부족한 생산이 늘어난 인구의 배제를 원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생산이 부족하다. 그런데 노동력의 필요도 적다. 그러면 당연히 나머지를 배제해야 한다. 나머지를 배제할 수 없다면 부족한 만큼의 식량을 다른 누군가로부터 빼앗아와야 한다.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희생은 따르게 된다. 이래 죽고, 저래 죽고, 그래서 이들 유목민족이나 해양민족은 자신의 죽음은 물론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도 익숙해진다. 심지어 스키타이와 같이 누군가를 죽여 본 적이 없다고 하면 오히려 멸시를 당하는 경우마저 있다.

어쩌면 풍요로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대에서도 당장 얼마간의 돈을 위해 자기 부모를, 형제를, 아내를, 자식을 죽이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간의 이익을 얻고자 친구를 배신하여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만이 정의이며 그 희생을 딛고 성공하는 것이 존경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같은 거다. 단지 현대에서는 자본주의적인 이익을 위해 타인을 짓밟는다면 과거 거칠고 가난한 삶 속에서는 생존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들은 원래 모든 시대 모든 사회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가치는 아니다. 그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의 삶을 누리고자 만든 하나의 질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환경이 바뀌면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들도 모두 바뀌게 된다. 굳이 죽이거나 빼앗지 않아도 되는 풍요로운 삶 속에서는 죽이거나 빼앗는 것은 죄악이 되고, 죽이거나 빼앗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서는 더 많이 죽이고 더 많이 빼앗는 자가 존경받게 되는 것이고. 삶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그 삶이 처한 환경에 따라 그 사는 방식도 달라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삶 그 자체로써 행동의 가치가 정의된다고 할 수 있겠다.

가난하고 절박한 삶 속에 살아야 하는 사람은 삶 그 자체의 무게가 너무 크기에 다른 모든 가치는 무시된다. 반대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삶이란 이미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기에 그 자체에만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농경민족과 유목민족, 혹은 해양민족이라는, 그리고 전근대와 근대라고 하는 전혀 다른 삶의 양식을 정의해 버린 것이다. 혐오스럽기까지 한 잔인함이 일상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고.

하긴 지금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변명이 그거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사는 게 막막해서."

그것은 어떠한 상황 어떠한 조건에서도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마법의 주문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먹고 살기 위해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앞날이 막막해서. 문제는 충분히 먹고 살만한 사람도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사람이 이와 같은 말을 떠들고 다니면 어떻게 될까? 누구보다 강성해진 유목제국이 가난하고 고단하던 시절의 삶의 양식을 주위로 투사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된다. 지옥이다. 한 마디로.

하여튼 불경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산다는 그 자체가 괴로움이다. 기뻐서 괴롭고 즐거워서 괴롭고 화나가 괴롭고 슬퍼서 괴롭고, 살아있는 그 순간순간이 괴로움이다. 그래서 그 괴로움에 사람은 마구니를 부르고 타락하고 악해지고 다른 사람을 해치고. 그러나 또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사람이라. 사람을 죽이는 것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는 것도 결국은 사람인 때문인 것이다. 그때든. 지금이든. 언제든. 결국은 사람이니까.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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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rru 2008.07.20  00:18  [61.26.17.141]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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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dginaz 2008.07.20  10:26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의 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느냐 아니면 껌값 취급도 받을 수 없는 비참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느냐가 되겠군요.
현재의 대한민국은 친일부역에 뿌리를 두고 군부독재에 야합하여 기득권을 키워나간 지배엘리트가 무한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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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dginaz 2008.07.20  10:26

그렇기에 '충분히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사람이 이와 같은 말을 떠들고 다니면 어떻게 될까? 누구보다 강성해진 유목제국이 가난하고 고단하던 시절의 삶의 양식을 주위로 투사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된다. 지옥이다. 한 마디로.'는 본문의 글이 더욱 가슴아프게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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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mny 2008.07.23  13:11

절대윤리, 절대가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해주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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