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법이라 하는 것은 권위다. 법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복종이다. 법이 지시하는 바를 일방적으로 따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찰이 존재하고 검찰이 존재하며 강제력으로서 법을 따르도록 강제한다.
더구나 법은 한 사회에서도 일부에 의해서 제정된다. 국회라고 하는 한정된 공간에서, 국회의원이라고 하는 한정된 인원에 의해, 그나마 간접민주주의 아래에서 국회의원을 선출할 권리라도 얻지, 그조차도 없었을 때에는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법은 제정되고 집행되었다.
말하자면 어떠한 과정을 거치든 결국 소수에 의해 제정된 법에 대해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복종하고 따를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만일의 경우 그 법을 따르지 않으면 공권력에 의해 강제적인 제제를 받게 되고.
반면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구성원 개개인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개개인을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그 사회의 어떠한 의사결정에 대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존중하고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봉건적인 일방적인 지배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제도이기에 당연히 일방적인 복종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사실 많은 경우 서로 충돌한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개인과, 그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제약하고자 하는 법, 개인과 공권력, 개인과 국가, 개인과 사회,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질서, 개인의 정의와 사회의 정의, 소수의 당연한 가치와 그 사회의 다수가 추구하고자 하는 보편적 가치, 법은 당연히 후자의 편을 들고 그래서 소수이거나 혹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다수의 보편적 가치에 거스르는 개인의 경우 그 사회의 법과 제도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들도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 결혼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것은 개인으로서 당연한 법이다. 그러나 이성애자로 이루어진 사회는 그러한 소수자의 일탈적인 - 그들이 보기에는 - 행위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당히 오랫동안 동성애는 그 자체로 범죄로 취급되었다. 체포되고 구금되고 처벌받고 사회적으로 격리되어 고립되고, 심지어 강제로 정신병원에까지 보내졌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 뿐인데도 법이라는 이름 아래 그 권리는 철저히 부정되는 것이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현재도 어떤 나라에서는 문맹자에 대해 강제로 불임시술을 하고 있는데, 열등한 유전자가 계속해서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당연히 모든 인간에게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문맹자라고 해서, 질병이나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서, 유전병을 앓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박탈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는 그것이 법이고 국가의 공권력은 그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과연 법이고 공권력이고 그래서 지키도록 강요한다고 해서 그것에 따라야 할까?
현실에서 법은 분명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도구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그것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 과연 개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자신의 자유와 자신의 권리, 자신의 양심과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존엄, 그리고 법, 공권력, 그리고 사회의 질서, 과연 무엇에 더 우선권을 두고 행동해야 할까?
앞서 전제했듯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 개인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그 존엄을 존중하고 현실에 반영는 제도다. 그런데 그 법에 의해 그들의 당연한 자유와 권리, 그들의 당연한 양심과 가치와 존엄의 자유와 권리가 박탈당하고 억압당한다면, 그러한 때라도 개인은 그에 따라야 할까? 그렇다면 그들의 자유와 권리는,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것은 어디에 존재하게 되는 것일까? 바로 그러한 모순으로 비롯된 충돌이다.
물론 인류의 역사는 이러한 모순에 대해서도 이미 오래전에 해답을 내려놓은 바 있다. 바로 시민불복종이다. 시민 스스로 법과 공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당연한 자유와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경우에라도 법의 권위는 일단 존중된다. 그들이 속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규범이니까. 단지 자기 자신에 있어 그 법이 부당하며 불합리하다는 것을 불복종으로서 항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바로 이러한 시민불복종으로서 완성된다.
그저 법을 따라야만 한다면 누가 법을 제정하든 그 법을 제정하는 사람의 의사에 따라 모든 것은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법을 만들 수 있고, 그 법을 집행할 힘을 지니게 된 소수에 의해서 모든 개인의 행동은 결정되고 제약당하게 된다. 그것이 모두가 동의한 보편적인 가치에 의한 것이라면 물론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만일 그것이 그들 일부만의 이익을 반영한 것이라면? 그럴 경우 그저 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것은 소수에 의한 전횡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불과하게 된다.
그래서 어떠한 때라도 시민은 법을 제정하는 자를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이 제정한 법에 대해서도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감시와 비판과 견제를 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도저히 동의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법이라면 그에 대해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한 권리를 갖는 개인으로서, 자신의 양심과 가치와 존엄을 위해 그를 거부하여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만이 소수에 의해 법이 독점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그로써 개인이 희생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전혀 다른 말이다. 왕조시대에도 법치는 있었고, 전체주의 국가에서도 법은 존재하고 그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이 존재했다. 그러나 왕조시대에는 민주주의가 없었고, 전체주의도 민주주의는 아니었다. 굳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접점을 찾자면, 시민 스스로 선출한 대표자에 의해 시민의 의사가 반영되어 법이 만들어지고, 따라서 시민 모두의 합의가 전제된 법이기에 자발적인 준법의 의무가 암묵적으로 보다 강화된 정도랄까? 그로써 법으로 인해 개인은 더욱 자유롭고 더욱 안전해질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에 대해서도 맹목적인 준법은 말하지 않는다. 그 전제 자체가 시민 모두의 동의와 합의이기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이고 권리다. 더 정확히는 개인의 존재다. 민주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실존적인 개인개인들이다. 법은 그러한 개인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를 위해 권위가 부여되고 공권력을 동원한 강제가 동원되는 것이지 법이 개인의 위에 존재하기 때문은 아니다. 법을 개인의 위에 두고 일방적인 복종만을 강요하는 법치주의는 그래서 민주주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일 수 있다.
법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법이 존재하는 이유이기에 지극히 당연한 명제다. 지키지 않을 법이라면 굳이 만들어 공권력까지 동원해 강제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수 없는 것은 법을 제정하는 자와 법을 지켜야 하는 자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서도 후자이기에 민주주의는 법을 지키지 않는 것까지도 허용한다. 양심에 의해. 가치에 의해. 스스로의 존엄에 의해. 그것이 민주주의를 전제한 법치주의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