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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바다든 초원이든 강력한 정치집단이 출현하기가 매우 힘들다. 너무 넓기 때문이다. 너무 넓다 보니 서로간의 거리도 멀고, 굳이 멀리 있는 다른 무리를 찾아 어떻게 하기보다는 그냥 아무데나 자리 잡고 눌러사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인구가 늘어날 만큼 생산력이 뒷받침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넓은 곳을 이동하기에 편한 것도 아니고. 그나마 말이라는 이동수단이 있는 초원에서는 상당히 느슨한 형태의 유목제국이 성립하기도 했지만 바다에서는 그조차도 없었다.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다. 정보의 바다라던가? 하지만 워낙 끝도 없이 넓은 것이 인터넷이다보니 그 수많은 공간을 다 헤집고 돌아다닌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워낙 수많은 다양한 형태와 성격의 공간들이 있다 보니 어느샌가는 그 공간과 공간 사이의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찾아가기도 힘들어지고, 더구나 현실의 바다나 초원과는 달리 특별히 물리적으로 제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보니 이동도 자유로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떠날 수 있다. 결국 그렇게 남는 것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어떤 특정한 무리들이다. 하나의 섬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서로가 친척이고 서로가 친구인.
작은 섬에 고립된 작은 집단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근친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당연하다. 근친혼을 않으려 해도 집단 자체가 작은 거다. 처음에는 아니더라도 두어 세대만 지나가면 모두가 친척이 되어 버리니.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처음에는 다양한 논리와 사고들이 공존하다가도 그렇게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은 떠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은 서로를 수렴해가는 과정에서 논리와 사고마저 하나로 수렴되어 버린다. 예를 들어 예전 모 사이트에서 특정 정치인이 인터뷰하는 내용을 찬양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묻지마 추천이 글마다 무려 300이상씩 달렸던 것처럼.
그 사이트도 처음에는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극좌파에서 극우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던 곳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곳에 남아있던 것은 파시스트들 뿐이었다. 오로지 하나의 주장과 하나의 논리와 하나의 정의만을 추구하는, 그 이외의 것들은 가차없이 배제하고자 하는 파시스트들 뿐이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특정한 한 정치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 그것만이 논리가 되고 그것만이 정의가 되어 오로지 그것만이 환영받았다. 그리고 그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모든 이들은 어제까지 친구라 해도 다음날에는 배척되어 축출되었다.
하긴 그 사이트만일까? 워낙 하는 소리들이 주류와는 거리가 먼 터라 여러 사이트에서 같은 일을 겪었다. 그 사이트에서 추구하는 어떠한 방향성에 어긋나면 어느샌가 온갖 비난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사이트를 떠나거나, 아주 작은 꼬투리를 가지고 죄인을 만들어 그 사이트에서 쫓아냈다. 심지어 일주일 동안 글 하나 올라오면 고작인 게시판에다 하루에 하나씩 글 올렸다는 이유로 "도배"라고 쫓겨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이미 그 사이트에서는 왕따였다. 떠날 타이밍을 못 잡은 거지.
내가 다음 아고라를 신용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그곳에도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구체적이고 개연성 있는 논거로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논객"이라 할만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건, 그보다는 아고라라고 하는 사이트의 어떠한 성향에 편승하여 편협한 선동을 일삼는 글들이 더 많고 더 환영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어떠한 논리가 아니다. 어떠한 논거도 아니고 어떠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론도 아니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일방적인 주장 뿐이다. 그 주장과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주장과 그 주장에 근거한 주장과 그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주장과 그 주장에 편승한 주장과 그에 대한 묻지마 지지와 묻지마 추천들. 나도 한나라당 싫고 이명박 싫고 조중동 싫지만, 그곳은 이미 이성을 잃은 광기과 들끓는 도가니가 되어 있다.
인간은 원래 자신과 비슷한 다른 이로 인해 안심을 얻는다. 나보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 어쩐지 자신의 가난도 괜찮아 보이고, 나보다 더 사치스런 사람을 보면 나의 사치도 별 문제가 안 되어 보이고, 옆에서 같이 도둑질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의 도둑질도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 의해 자기 자신을 위해 판단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에 그 판단을 위임하려는 본능 때문이다. 아직 원숭이이던 시절 오로지 두목 원숭이만을 따르던 본능이 아직도 남아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기보다 다른 이의 종이기를 원하는 속성이 남아있는 때문이다.
지금 아고라가 보이는 모습이 그렇다. 그곳에 들르는 사람들은 이미 다종다양한 의견을 접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다른 생각과 다른 의견과 다른 주장들과 접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어떤 것이 더 옳은가 고민하고 탐구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긴 인터넷이라는 공간 자체가 그런 심오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다. 감각적으로 지금 보고 지금 느끼고 지금 생각하는 것, 더 정확히는 지금 믿고 있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믿고 싶은 그 욕망을 확인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를 위한 주장들, 그를 위한 논리들, 그를 위한 논거들, 지금 그곳에 남아있는 것이 그것들이다.
물론 지금 아고라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아고라의 역할은 매우 지대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아고라의 부작용도 컸다. 걸러지지 않은 선동적인 주장과 근거들을 오로지 믿음 하나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확산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으니.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훌륭한 논리와 멋진 주장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들이 그리 비난하는 악플러 "알바"들과 성향만 다를 뿐 전혀 다르지 않은 글들에 대해서까지 추천과 찬양이 몰여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역시나 여기도 다른 사이트와 다르지 않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자정기능을 잃었달까? 과거 그 사이트가 그랬듯, 그 사이트에서 파생되어 나간 다른 사이트가 그러했듯 그곳은 사고와 논리의 근친교배만이 존재하는 기형의 공간이 되어 버렸다.
더구나 더 큰 문제는 그런 주제에 어느샌가 그들이 특권의식마저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고라라는 것, 아고리언이라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다른 사이트나 다른 개인과 차별되는 어떠한 우월함이 되었다. 언론이 띄워주면서, 촛불시위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관심과 지지를 보내면서, 어느샌가 자신들만이 옳다고 하는 독선에 빠지게 되어 버린 것이다. 열띈 토론 만큼이나 일방적인 배제가 병존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배타적인 독선이 자기 이외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나마 메인이나 추천글로 올라오는 글들이 균형을 맞춰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고라만을 비난하기엔 원래 인터넷 사이트라는 게 그렇다. 어느 사이트를 가 보아도 여러 다양한 주장이 공존하는 것을 보기는 힘들다. 다른 주장이란 항상 소수이고, 그 주류가 하는 소리는 항상 거의 같다. 늘 같은 소리들, 늘 같은 논리들, 그러면서 서로 칭찬하고 서로 추천하고 서로 만세를 부르고, 아고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이트들이 그렇다. 아고라를 비판하는 특정 언론의 홈페이지나 그와 관련된 사이트들에서도 역시 같은 모습이 보인다. 즉 아고라가 문제라서가 아니라 인터넷 자체의 한계인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이 글은 아고라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아고라로 대표되는 인터넷 문화에 대한 비판이다. 항상 같은 의견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항상 같은 의견만을 인정하며 그 외의 것들은 가차없이 배척하려 하는, 인터넷과 네티즌의 편협함에 대한 비판이다. 단지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아고라가 그 중심이 되었을 뿐, 아고라가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때가 때인 만큼 아고라가 두드러져 보일 뿐인 것이다.
혹시나 오해할까 말해두지만, 나는 아고라를 신뢰하지 않을 뿐 아고라 같은 사이트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와 반대되는 성향의 다른 사이트가 존재하듯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사이트라는 것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비슷한 논리와 비슷한 주장과 비슷한 논거들을 서로 나누며 확고히 하는 것이 뭐가 나쁜가? 인간이라는 자체가 불편부당일 수 없는데, 누군가는 편이 있고 어딘가는 당이 있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단지 그 독선이 불쾌하게도 느껴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 역시 아고라에 자주 들르고 하는 편이지만 별로 크게 호감이 간다거나 신뢰가 간다거나 하는 그런 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냥 다른 언론이나 사이트에서 들을 수 없는 그곳만의 논리와 논거들을 찾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들르는 정도? 요즘은 그조차도 어쩐지 불편해지는 것을 보니 여기도 슬슬 발길을 끊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정보의 바다, 바다는 넓고 섬은 많지 않은가? 아주 발길을 끊기는 아깝지만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이니.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