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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대체 책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관계로 그냥 기억나는대로 끄적이는 것임을 전제한다.
2차세계대전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독빠가 되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보여준 선전은 눈부신 것이었다. 전쟁기간동안 독일군과 연합군과의 손실교환비가 평균 1 : 3에 이를 정도였다고 하던가? 물량만 아니었어도 지지 않았을 것이라 여기는 이들이 적잖이 많은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독일군이 특별히 연합군보다 무기가 좋았느냐면 그것도 아닌 것이, 독일군에 티거와 판터가 있었다면 소련군에는 스탈린이 있었다. 독일군이 최초의 제트전투기 Me262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영국은 스핏파이어를, 미국은 머스탱과 선더볼트를, 소련군도 대전말기에는 Yak-9과 같은 우수한 전투기를 개발해 실전배치하고 있었다. 그나마 전쟁초기에는 상황이 더 안 좋아서 당대최강의 전투기 가운데 하나였던 Bf109를 제외하고 전차 가운데 실질적으로 주력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2호전차였고, 독소전 초반까지도 체코에서 노획한 38t전차까지 주력전차인 3호전차와 4호전차의 부족으로 다수 운용하고 있을 정도였다. 사실상 무기가 좋아 선전했다고는 도저히 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전략과 전술이 좋았느냐면, 폴란드야 전력상 차이가 너무 컸었고, 프랑스와 독소전 초반의 소련군은 알아서 자멸해 주었었고, 오히려 전쟁중반으로 가면 전략적 전술적으로 독일군이 아주 제대로 "발리는" 모습을 적잖이 보게 된다.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주제넘지만 과연 독일군 지휘관 가운데 군단위 이상의, 그러니까 군집단이나 집단군 단위에서의 전략이나 전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되었는가 의심마저 들 정도다. 하긴 사단단위 이상에 대해서는 깡통인 하사관 출신의 히틀러가 독일군 전체를 좌지우지하고 있었으니 뭐라 할 수도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독일군의 강점은 무기나 지휘관의 전술전략보다는 각 제대단위에서의 전술적 역량이 더 컸었다. 즉 일일이 다음행동에 대해 구체적인 명령을 내려보내야 했던 다른 연합군의 제대와는 달리, 독일군은 일정한 전술적 목표만 제시되고 나면 그 다음의 행동에 대해서는 지휘관의 재량을 인정했다. 무슨 말이냐면 사단사령부에서 연대에 어디에서 어디까지 이동하라 명령만 내리면 차를 타고 이동하든 걸어서 산을 넘든 아니면 공군을 털어 수송기로 낙하를 하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선지휘관의 재량이라는 거다. 그래서 실제 전장에서 독일군의 각 제대는 상급부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현지 상황에 맞는 전술적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럼으로써 특히 경험많은 하사관들의 역량이 개별전투에서 극대화될 수 있었다.
이것은 작아 보이지만 매우 큰데, 원래 일단 싸움이 벌어지고 나면 전선의 상황이라는 게 초단위로 바뀌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령부에서는 이렇게 명령을 내렸어도, 정작 전선으로 명령이 도착할 때면 전선상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거다. 그런 상황에 상급부대의 명령이라는 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그런 때는 경험많은 조언자의 도움을 얻어 바뀐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다른 선택을 취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프로이센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내려 온 독일군 특유의 "임무형 지휘체계"라고 하는 것이다. 아마 들어보았을 것이다. 전군의 간부화라고. 북한군조차 4대군사노선의 하나로 채택하여 운용할 정도로 이미 임무형 지휘체계는 현대 군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문제는 이 임무형 지휘체계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는 거다. 당장 사단에서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을 때 그 명령 안에서 제대로 재량권을 발휘하려면 먼저 그 명령을 이해해야 한다. 그 말은 곧 사단단위의 전술에 대해 연대단위에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대대단위에서는 연대단위의 전술을, 중대단위에서는 대대단위의 전술을, 전군의 간부화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러지 않았는가. 소대장은 중대장의 임무까지 숙지하고, 중대장은 대대장의 임무까지 숙지하고... 이것이 일선 하급제대까지 내려가려면 지휘관들의 역량이 보통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 지휘관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잘 훈련된 지휘관이라도 초급지휘관들은 이제 갓 임관한 초짜들인 경우가 태반이니까.
바로 여기서 빛을 발한 것이 프로이센 시절부터 계몽주의를 내면화하여 발전해 온 독일의 국민교육이었다. 독일은 아다시피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국민교육이 시작된 나라다. 무수한 학교에, 도서관에, 지역마다 자발적으로 개최되어 온 독서토론회까지, 거기다 비스마르크 집권 이후 사회보장제도까지 갖추어 지면서 거의 모든 독일국민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1차세계대전은 물론이고 2차세계대전 때에도 그래서 독일국민은 전세계에서 가장 문맹율이 낮았고, 교육수준도 높았다. 그 말은 곧?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도 다른 나라의 군대보다 명령이해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 된다.
간단히 몇 시 몇 분에 어디로 가라, 일단 문서로 명령서를 작성해 넘기면 그것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알아야 하지. 거기에 쓰인 용어들이나 어휘들, 그리고 그 개념들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물론 훈련을 받기는 한다. 그러나 훈련을 받더라도 숙달되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숙달되었어도 실제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그만한 실전에서의 경험이 필요하다. 높은 교육수준이라는 것은 바로 그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것이다. 세 마디 할 것을 한 마디로, 두 번 보여줄 것을 한 번으로, 몇 번의 작은 시행착오만으로도 어느새 그것을 깊이 이해하고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마 군대 갔다온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중등교육의 내용이 어떻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가를.
하지만 그러한 명령에 대한 이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명령 그 자체를 이해하는 능력이었다. 원래 국가가 주도하는 국민교육이란 국가가 필요로 하는 국민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다. 국가 입장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국민이란 어떤 국민일까? 그것은 자신이 명령받는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국민일 것이다. 그냥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왜 어떠한 이유로 어떠한 권리로 자신에게 명령하는가를 먼저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복종하여 바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그런 국민일 것이다. 바로 나치 독일의 끔찍한 전쟁범죄들을 가능케 한 독일군 특유의 냉정하고 합리적이며 철두철미한 성실함이다. 그것이 명령에 대한 높은 이해력과 더해지면서 독일군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재빠르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었으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굳은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버텨낼 수 있었다.
사실 이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그래서 베트남 전쟁이나 한국에서의 근무를 통해 한국군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미군 지휘관치고 한국군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 정도다. 높은 교육수준과 철두철미한 국가주의 교육에 따른 복종심과 인내심은, 모병제로 전환된 이후 날이 갈수록 그 수준이 떨어지고 있는 미군 병사들에 비해 매우 탐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이라크 전쟁에서 한국군의 파병여부에 대해 미군 장성 가운데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뭐 그런 이유로 이라크로 굳이 자이툰 부대를 파병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대학교육을 받은 병사의 비율이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한국군의 존재는 그들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중동전쟁에서도 여전히 전근대적인 부족사회에서 끌려나온 중동의 병사들은 현대전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차가 뭔지, 자동소총이 뭔지,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가 무엇인지, 당장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것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역시나 전쟁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무능한 지휘관들에 의해 전장으로 내몰렸다. 반면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근대적인 사회에서 근대적인 교육을 받았었고 현대의 전쟁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경험으로 깊이 숙지하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모르는 군대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던 군대, 이미 싸우기 전에 결과는 벌써 나와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무튼 당시 독일군이 보였던 전투능력이라는 게 꽤나 인상적이었던 터라 전쟁이 끝나고 독일군의 임무형 지휘체계는 그 문제점을 수정하여 각 군에서 다투어 도입하게 되는데, 갈수록 기동전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독일군이 보였던 전술적 유연성과 전장적응능력이 필요해진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도 쓰고 있다. 북한만 쓰는 게 아니라. 아마 소련군의 종심전투이론과 더불어 2차세계대전이 세계군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이것이 아닐까? 어차피 교육수준도 그때보다 한참 높아졌고.
물론 전쟁은 독일이 연합군에 패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이길 능력이 안 되었기에 진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전쟁에서는 졌어도 독일군은 지금도 강군의 대명사처럼 여겨질 정도로 나름대로 나름대로 선전했었는데, 그 강함의 원인은 전쟁에서 패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강할만 했기 때문이었다. 질만 해서 졌고 강할만 해서 강했다, 말할 것도 없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이 답이다.
사회가 강해야 군대도 강하다. 문화가 강해야 군대도 강하다. 전쟁은 무기나 전술, 전략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총력전을 지향하는 현대전에서는 더욱 그렇다. 비록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모두 패해 많은 영토를 잃고,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많이 위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독일이 강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독일 자체가 강한 거다. 사람과 문화, 사회 모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