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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남대문이라 불리우는 숭례문 역시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원래 일제는 조선을 강제로 병탄한 뒤 한양성의 성벽과 성문을 허물면서 동대문인 흥인지문과 남대문인 숭례문도 같이 허물려 했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숭례문으로, 고니시 유키나가가 흥인지문으로 입성했던 것을 기념해 조선점령의 상징으로서 그대로 남겨두게 되었다. 그리고 1934년 근대적인 문화재관리체계를 도입하면서 남대문을 보물 1호로 지정하니 말하자면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의 일본군의 개선문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것이 그대로 이어져 지금의 국보 1호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오욕의 역사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숭례문은 태조 4년인 1394년에 짓기 시작해 3년 뒤 1397년에 완공된 이래 무려 600년 넘는 시간을, 정확히는 611년이라는 시간을 서울을 지켜 온 그야말로 수도 서울의 상징이었다. 몇 차례 크고 작은 보수공사는 있었지만 14세기 여말선초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임진과 병자, 그리고 경술국치와 한국전쟁까지 민족의 영욕의 역사를 서울의 남쪽을 지키며 그대로 지켜 봐 온 역사의 산 증인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멀리 남쪽에서 찾아 온 이들은 이 숭례문을 지나야 한양에 들어설 수 있었고, 조선이 망하고 나서도 서울을 찾는 사람은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숭례문을 찾아 보곤 했었다. 70년대 이후 고도성장의 시대에도 변해가는 서울의 모습을 그는 서울 한복판에 버티고 서서 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어느때고 우리의 곁에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그런데 그것이 타 버린 것이다. 바로 그 숭례문이 타버린 것이다. 역사의 산증인이며, 서울의 상징이기도 한, 숭례문이 불탄 데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충격이란 여타 다른 문화재가 불탄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있어야 했고,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 데 대한 일종의 공황이다. 늘 보아오던,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을 것으로만 여겼던, 언제나 함께일 것이라 여겼던 바로 그 숭례문이 어이없는 이유로 불에 타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어찌 태연할 수 있을까? 어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물론 복원은 가능하다. 이미 한 번 대대적인 해체보수공사가 있었고, 그동안 여러 차례 학술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숭례문의 구조에 대해서는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다. 아마 시간과 돈이 문제이지 다시 짓는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다만 그것은 결코 이전의 숭례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새끈하게, 원래 모습 그대로 복원한다 하더라도 600년 산역사의 그 숭례문은 아니다. 단지 숭례문과 같게 복원한 복원품일 뿐. 영원히 우리는 우리 민족과 영욕을 같이 해 왔던 600년 오랜 친구를 다시 볼 수 없이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어제. 그 짧은 순간에. 그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도대체 정말 무어라 말해야 할 지...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그 마지막 모습에 그래서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고마움과 그리고 아쉬움을 담아.
잘 가시라.
그리고 고마웠다.
안녕히...

謹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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