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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옥선...



明宗 25卷, 14年(1559 己未 가정(嘉靖) 38年) 6月 6日(丙午)

其曰賊船高大堅實, 雖放天、地字銃筒, 未易衝破, 鐵丸亦能貫徹眞木【橡樹。】防牌, 予甚怪焉。 未信其然也。 朴茂所騎船, 眞木防牌, 則牢厚, 故鐵丸未得貫穿云。 其所穿破者, 必是不堅厚而然也。 戰船左右前後, 排設天、地、玄字銃筒, 整備器械, 人伏板屋之下, 不露形體, 而疾棹直進, 迫近賊船, 隨其高下, 一時齊發, 則豈有不破之理, 亦豈有人被鐵丸之患乎? 將士等違越節制, ?禦器械, 殊未整設, 習成懦怯, 臨戰無勇之所致也。
적선이 크고 튼튼하여 천·지자(天地字) 총통을 쏘아도 쉽게 부서지지 아니하였으며 철환 역시 참나무【상수리나무.】 방패도 꿰뚫었다고 하는데, 나는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믿어지지가 않는다. 박무가 탔던 배의 참나무 방패는 단단하고 두꺼워 철환이 꿰뚫지 못했다고 하였으니, 그 꿰뚫리어 부서진 것은 틀림없이 단단하고 두껍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전선의 전후 좌우에 천·지·현자(天地玄字) 총통을 설치하여 기계를 정비하고 사람들은 판옥(板屋) 밑에 숨어 몸을 노출시키지 않고서 빨리 노를 저어 곧장 적선에 가까이 다가가 그 높낮이에 따라 동시에 일제히 발사했다면, 어찌 격파하지 못할 이치가 있었겠으며 사람들이 철환을 맞을 염려가 있었겠느냐. 장사(將士)들이 절제(節制)를 어기고 방어 기계들을 거의 정비 설치하지 아니하였고 겁이 많은 것이 습관이 되어 전투에 임하여 용맹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0책 518면
 
원래 조선의 주력전선은 맹선이었다. 대맹선, 중맹선, 소맹선으로 이루어진 맹선은 원래 세종 때 조운을 겸할 수 있도록 규격화해서 건조한 전선들이었는데, 그러나 수송도 겸하다 보니 전투함으로서는 여러가지로 한계가 있었다. 속도도 느리고, 전투공간도 좁고, 더구나 격꾼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전투병과 뒤섞이다 보니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확인한 것이 삼포왜란과 사량왜변, 을묘왜변...

사실 이 을묘왜변이야 말로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조선조정은 일본의 전투력에 대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으니.

첫째는,

"일본의 지상전력은 보잘 것 없어 조선의 주력인 활만 잘 써도 격멸할 수 있다."

둘째는,

"일본의 수상전력은 매우 용맹하고 사나워서 만일 우리 수군이 저들과 붙어 싸운다면 이길 수 없다."

이것이 결국 임진왜란의 전황을 결정짓는 이유가 되었다. 육전에서는 고전하고 해전에서는 우위를 점했던.

아무튼 을묘왜변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력을 가지고도 일단 배가 느리고, 전투원과 격꾼이 한 데 뒤섞여 노출되어 있고, 무엇보다 단병접전에서 절대적인 열세였던 탓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고 조선 조정에서도 그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술과 무기의 개발을 서두르게 되니, 그렇게 개발되어 나온 것이 판옥선, 그리고 판옥선을 통해 구현된 새로운 해상전술이었다. 위에 인용한 바대로.

먼저 맹선에서는 노출되어 쉽게 적의 공격목표가 되곤 했던 격꾼을 상갑판과 패란에 의해 보호되는 판옥 안에 위치케 함으로써 적의 공격으로부터도 기동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고, 격꾼과 함께 뒤섞여 전투를 치르던 전투원에 대해서는 따로 상갑판에 여장을 설치하고 각종 무기며 장비들을 배치함으로써 순수하게 전투임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따로 상갑판을 올리고 여장을 둘러 보호함으로써 더욱 높아진 배의 높이는 중요한 잇점이 되었는데,

한 마디로 그냥 바다위에 뜬 성이었다. 성을 공략하기 어려운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굽어보며 싸우기는 쉽지만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기어오르며 싸우기란 불리한 때문이다. 그것은 동서고금에 같고, 현대전에서도 일단 조금이라도 높으면 그만큼 더 유리한 것은 다르지 않다. 하물며 단병전을 주로 하던 일본군이야... 일단 단병전을 하려고 해도 이쪽 배로 건너올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높이가 걸리고, 보다 높은 위치에서 공격해 오는 이쪽의 수군이 걸린다. 여기에 보다 높은 위치에서 굽어보며 쏘아대는 화살과 총통이 더해지면?

사실 이순신이 개발한 것으로 여겨지는 함포를 사용한 해상에서의 원거리 포격전술은 고려말 이후 조선수군의 기본전술 가운데 하나였다. 어차피 왜구에 비해 단병전에서 약한 것은 분명하고, 또한 조선의 배에 비해 왜구의 배가 더 빠른 것도 확실하기에, 괜히 붙어 싸우느라 어려움을 자초하기보다는 조선군이 우위에 있던 화포와 활을 사용함으로써 멀리에서 일찌감치 왜구의 배를 끝장낸다... 그것은 이미 고려말 최무선이 나주와 더불어 진포에서 500여 척의 배를 화포를 사용해 불태움으로써 직접 확인한 바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전술이었다. 다만 맹선으로는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가 어려웠었는데, 마침내 그에 적합한 새로운 개념의 전선이 도입됨으로써 비로소 제대로 구현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순신의 승리란 원리원칙에 충실했던 탓이랄까?

하긴 어느 시대나 그것이 정답이다. 모든 무기는 그 시대, 그 상황에 걸맞는 전술적, 전략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즉 그 무기를 가장 훌륭히 사용하는 방법은 그 무기가 원래 만들어진 바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한 원칙을 잘 지킨 지휘관은 항상 명장으로 추앙받았고, 그러한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지휘관은 당장의 작은 공을 세울 수는 있어도 오래 가지 못했다.

어차피 단병전에서는 약한 것, 단병전에 들어가기 전에 원거리에서, 그러자고 전투갑판의 높이를 높였고, 원거리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당시로서는 정말 귀하던 총통을 천지현황 여럿 배치했으며, 적의 공격에 대비해 두꺼운 판재로 성벽처럼 둘렀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멀리서는 쉽게 뚫리거나 깨지지 않고, 가까이 붙어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런 전선을 가지고 단병전을 하겠는가? 당파전을 하겠는가? 물론 조선수군에 있어 당파 또한 중요한 전술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판옥선의 위력이 가장 잘 드러난 전투가 바로 저 유명한 명량해전이었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당시 울돌목에는 열두척의 전선이 있었지만 실제 그 가운데 전투에 참가한 것은 이순신이 타고 있던 대장선 하나였다. 대장선 한 척으로 적의 진격을 막고, 무려 30여 척의 적선을 격침시켜 기세를 꺾은 연후에야 나머지 전선이 전투에 끼어들고 있었다.

"안위야, 네가 죽으려느냐!"

저 유명한 대사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홀로 300여 척의 적을 막아서며 그 기세를 꺾고서 겁먹고 뒤로 물러나 있던 조선수군더러 나와 싸우라 독려하던. 이순신도 이순신이지만 단 한 척으로 수백 척 일본 수군을 막아설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판옥선의 위력이었다. 일본군의 조총으로는 결코 뚫을 수 있고, 일본수군의 짧은 다리로 결코 뛰어 오를 수 없고, 마치 성과도 같이 버티고 서 있으며 적을 마음껏 농락하고 유린하던. 과연 이 판옥선 수백척을 이끌고서도 한 번의 싸움에 처참히 전멸당한 원균이란 어떤 인물이겠는가? 그를 명장이라 하는 것이란?

명종 10년 을묘왜변의 교훈을 바탕으로 오랜 토의와 연구 끝에 개발되어 시험되기 시작한 판옥선은 이후 조선의 주력전선으로써 맹선을 대체하여 조선의 각 수군진포에 배치되기 시작하는데... 그러나 판옥선이라는 것이 그 건조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았던 터라 - 판옥선은 당시 세계적으로도 가장 덩치가 큰, 더구나 오로지 해상전투에만 특화된 전투함이었다. - 명종 연간부터 시작된 전선교체작업은 선조 연간에 이르러서야 겨우 마무리된다. 임진왜란 일어나기 바로 몇 해 전이었다. 물론 그렇게 겨우 확보해 놓은 판옥선의 대부분을 원균과 박홍 둘이서 싸우지도 않고 모조리 불태워버린 탓에 한 번 써보지도 못했지만.
 
그러나 워낙에 거북선이 갖는 임펙트가 강했던 탓에, 더구나 구키 유키타카의 기록으로 말미암아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타이틀마저 가지게 된 탓에, 판옥선이라면 거북선에 가려져 거의 인식이 없는데... 아마 판옥선이라는 이름 자체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 않을까? 당시 조선수군이라 하면 이순신이고, 이순신이라 하면 거북선이고, 오로지 거북선에 의해 조선수군은 승리했고...

그러나 당시 조선수군이 보유하고 있던 거북선이 을미년 기준으로 최대 5척이 고작이었다. 당시 판옥선이 모두 60여 척, 초탐선까지 포함하면 130여 척이 되었다. 그 가운데 5척... 무기라는 게 일정한 의미를 갖자면 어느 정도 세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그 수에서 거북선은 터무니없이 적다. 전술적으로는 의미가 있을 지 몰라도 전략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국지적인 전투에서 그 특유의 돌격함으로서의 장점을 살려 크게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전쟁이라는 규모에서는 결국 세력이다. 규모가 되어야 하고, 전술적 운용에서도 여유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항상 조선수군의 주력전선으로써 모든 전장에서 조선수군과 함께 했던, 교전중이 아닐 때에도 그 존재로써 전략적인 의미를 가졌던 판옥선이야 말로 중요하다 하겠다.

하지만 역사는 영웅만을 기억하는 터라... 한 눈에 확 들어오는 거북선만을 보려 할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더 많은 일을, 온갖 진창을 구르면서도 항상 조선수군과 함께 더 많은 일들을 수행해냈던 판옥선은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아쉽게도. 그래서 더욱 판옥선을 개발하고, 판옥선의 운용전술을 개발해낸 조선의 조정에 대해서도 무시하는 것일 테고. 거북선을 만든 이순신은 보여도 판옥선을 만든 조선조정은 보이지 않는게지.

참고로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판옥선은 주력전선으로써 19세기 개항할 때까지 운용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몇 척인가가 명나라에 수출되기도 했었다는데, 아무튼 19세기까지도 동아시아에서는 최대 최강의 전선으로써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첨병에 있었다. 숙종 연간 너무 크기가 커져가는 것에 대해 목재의 확보등을 이유로 크기를 제한하기도 했었고. 조선도 영국처럼 인도같은 식민지가 있었다면 판옥선도 한참 더 자랄 수 있었으련만. 그래봐야...

자세한 제원은 지금 당장 기억이 나지 않는 관계로 패쓰한다. 찾아볼까 했는데 귀찮아서... 그것을 이야기하자는 게시물도 아니고. 판옥선이 개발된 경위, 그 판옥선을 개발한 이유, 그 판옥선을 운용한 사례, 판옥선의 가치... 무엇보다 우리 조상들이 스스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했던 흔적들. 아마도. 단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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