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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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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불쾌한 사진...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꽤 유명한 사진이다. 연합군에 의해 독일군이 쫓겨가자 프랑스 사람들이 독일군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프랑스 여성들을 단죄하여 내쫓기 전 모욕을 주기 위해 머리를 깎는 장면으로 특히 친일파 청산과 관련해서 자주 인용되는 것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로서는 참으로 역겹기 그지없는 사진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가 전쟁에서 이겼다고, 어느새 기세등등해져서는 그저 살기 위해, 살아있기에 독일군과 어떠한 관계를 가졌을 뿐인 여성들을 저리 난폭하게 모욕을 줄 수 있다는 자체가 내게는 비상식 그 자체니까.

물론 저 여자가 실제 나치 독일의 점령기간 동안 아주 못되게 굴었을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이 그러했듯 나치독일군과 붙어먹으며 프랑스인을 착취하고 학대하고 핍박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저러한 보복행위가 아주 명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알기로 저렇게 머리를 깎이고 마을에서 쫓겨난 여자 가운데 그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개는 생계를 위해 - 말 그대로 전란의 혼란 속에서 당장 먹고 살고자 몸을 팔았거나, 아니면 진심으로 독일군과 사랑에 빠져 관계를 가진 경우였다. 어떠한 정치적인 동기나 목적이 없이 그저 살아가는 일상으로서 그렇게 독일군과 어떠한 관계를 가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사회는 - 아니 더 정확히는 프랑스 남성들은 바로 그러한 평범한 여자들에게까지 독일군에 대한 증오를 투영시켜 저와 같은 잔혹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하긴 프랑스인들은 독일영토로 진격해 들어가면서 독일인 마을을 유린하며 강간과 살인, 약탈, 방화를 일삼기도 했었다. 물론 독일인이기에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행위는 소련군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야만적인 범죄행위였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껏 그러한 사실들에 대해 사죄도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같은 맥락이다.

내가 전쟁을 싫어하는 것은 전쟁이란 필연적으로 약자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장에서 죽어가는 것은 건장한 젊은 남자들이다. 그러나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막대한 물자가 필요하고, 그러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국가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명분삼아 후방에서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궁핍과 궁핍으로 말미암은 질병과 굶주림, 남자들이 적과 싸우다 죽는다면, 노인과 아이, 여자들은 피폐해진 현실과 싸우다 죽어간다. 그러다가 자칫 전쟁에서 패하기라도 하면 밀려드는 적에 의해 다시 그들은 철저히 유린당한다. 모든 것을 잃고 심지어 목숨마저 잃고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고통일 정도로 끔찍한 지옥이 그들을 덮치게 된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끔찍한 것이 이러한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전쟁의 증오가 집중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군인이야 전선에서 싸우는 존재들이다. 서로에 대한 증오심으로 죽고 죽이는 것이야 일도 아니다. 물론 죽이기도 쉽지 않다. 적 병사 한 명을 죽일 때 아군도 그만한 희생을 감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자와 아이들은 아니다. 여자는 마음껏 강간할 수 있고, 아이들은 무력하게 죽어갈 뿐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전쟁을 통해 쌓였던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다. 패했을 때는 패한 굴욕을, 승리했을 때는 승리의 도취감을, 그렇게 전장에서 인간은 짐승이 된다. 짐승이 되어 버린 인간들에게 나약한 인간이란 그저 포획물이자 먹이감일 뿐이고.

프랑스에서 나치와 붙어먹었다며 단죄당한 여성들도 그런 경우다. 정히 그렇게 나치 독일이 증오스러웠다면 나치 독일을 공격했어야 했다. 나치 독일의 군대와 병사들을 공격해 그들을 죽이고 그들을 프랑스 땅에서 몰아냈어야 했다. 그렇게 증오스러워서, 그에 붙어먹은 여자들조차 용서하지 못할 정도였다면, 그들이 이용한 도로며 집이며 모든 시설물을 파괴하고, 그들이 이용한 식량과 공산품들을 생산한 자기 자신도 단죄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프랑스 의용군도 프랑스인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레지스탕스도 프랑스인 가운데서도 아주 소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머지는 그저 독일의 지배를 속으로는 어땠을지 몰라도 순순히 순종해 따르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정작 나치독일이 물러나자 만만한 여성들에게 자신들의 분노를 배설하고 있는 것이다.

맞다. 배설이다. 말 그대로 배설이다. 저항하지 못한 비겁한 자신에 대한 분노와 좌절의 배설. 저항했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한 나약하고 소심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와 경멸의 배설. 그리고 나치 독일에 순종하여 따랐던 과거의 현실에 대한 부정의 배설. 말하자면 희생양이다. 저 여성들은 당시 프랑스인들을 짓누르고 있던 좌절과 분노와 자신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대신해 뒤집어쓰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지금 이슬람세계에서 한창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명예살인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옹졸하고 이기적인 자존심을 위해 힘없는 여성들을 희생양으로 삼아버린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저 여성들도 전쟁의 피해자다. 아마 전쟁이 아니었다면 굳이 독일군 병사들을 상대로 매춘을 할 일도, 혹은 매춘을 했다고 저리 비난을 들어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독일군과 사랑에 빠진 것이라면 오히려 주의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것은 전쟁이 있었다는 것과 그 전쟁에서 프랑스가 한 번 패했었다는 것과 다시금 연합군의 도움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단지 그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상황의 변화만으로 저들은 비난받아 마땅한 "마녀"가 되고 있다. 그것도 전쟁을 일으키고 그 전쟁에서 저 여성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남성들에 의해 그들의 굴욕과 분노를 배설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되어 저리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말로 남성주의가 만들어낸 저열한 폭력의 배설장 - 이 또한 전쟁의 광기가 만들어낸 옹졸하고 일방적이기 이를 데 없는 잔인한 폭력의 현장이라 할 것이다. 현실이라 할 것이다.

물론 친일의 과거를 청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국민국가에서 민족적 정체성과 관련하여 민족과 국가를 배반하고 적에게 붙어 부역한 이들을 역사적으로 단죄한다고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큰 의미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청산작업이 비교적 잘 이우러진 프랑스의 예를 본받으려 하는 것도 아주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건 그거 이건 이거다. 전후 부역자에 대한 처리와 단순히 약자에 대해 분풀이를 한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아무리 친일파를 청산하자고 그저 살았을 뿐인 것을 이유로 그것도 약자만을 골라 단죄한다는 것이 얼마나 역겹고 가소로운 일인가 말이다. 그런데 그같은 사진을 당연하게 돌려보며 잘한다 박수까지 치고 앉았으니 이 또한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건 그거, 이건 이거 아닌 건 아닌 거다. 그 정도도 구분 못하는 것일까?

다시 말하지만 단죄라고 하는 것은 "행위"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그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여야 한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어떤 나쁜 결과를 가져왔는가? 그래서 누구에게 피해를 입혔는가? 과연 저 여성들은 무슨 그리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저리 끔찍한 모욕을 당하고 고향에서 쫓겨났어야 했을까? 자신할 수 있는가? 저 여자들이 저러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아주 정당한 처분이라고? 인간의 양심에 대고 물어보자. 과연 그러한가? 과연 그들은 "보편"적인 "죄악"을 저지른 것일까? 대체 뭐가?

하여튼 이래서 내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뢰하지 못한다. 저열하고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난폭하고 잔인하고, 그런 주제에 자기만 옳은 줄 안다. 자기가 옳다 여기면 다른 사정따위는 돌아보지 않고. 이미 자기가 옳다 여기고 나면 폭력도 정의가 되고 비겁하고 옹졸한 이기심도 보편적인 가치가 된다. 후회도 망설임도 없이 아무 거리낌없이 행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 같은 무리들에 의해 자랑스런 역사로 기록되는 경우마저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바로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정의로 치장된 전쟁의 광기를. 그래서 역겨운 거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덧) 기왕 메인에 올라온 글이고 사진이니 그냥 트랙백을 걸어버릴까 하다가 괜히 시비거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어 따로 뺐다. 아무래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면 실례도 보통 실례가 아니니까. 또 이 사진 소스가 다른 곳도 많기도 하니까 그래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 트랙백이 아닌 별개의 글로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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