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은 가토릭大 김길수 교수님의 한국 가토릭의 역사에 대한 강의로 시작 되었어요. 오전 오후 총 4시간의 강의 내용은 너무나 방대할 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깊어서 제 능력으로는 이곳에 옮길 수가 없는 점이 애석합니다.
김교수님께서 10가지를 말씀 하셨으면 그 중에서 알아 들은 한 두 가지만 요약해서 올리겠어요.
우리는 주께서 주신 생명의 시간을 감사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소록도에서 나환자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신 신부님께서 나환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셨는데 손가락이 없는 나환자들이 어렵게 영성체를 하는 것을 보시고는 미사 후에 제대앞에 업디어 우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손가락이 정상으로 있다는 것 자체도 감사 한 일입니다.
제가 2007년에 미국에 갔다가 뇌졸증으로 급히 귀국해서 수술을 받았어요. 그런데 집도 한 의사의 말이 작은 실핏줄 하나가 막혔는데 만약에 바로 옆에 있는 실핏줄이 막혔었다면 기억상실증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아찔한 일입니까? 우리는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명의 한계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의 외침이 없는 삶의 모습은 무의미 합니다.
1797년 정조 14년에 과거시험이 있었습니다. 이 때에 장원 급제 한 사람이 당시 17세의 소년 황사영 입니다. 조선시대에 10대에 장원급제 한 사람은 성삼문, 김시습, 맹사성, 황사영 이렇게 4명 뿐입니다.
정조임금께서는 열 일곱 살 소년선비 황사영의 손을 잡고 치하 하면서 "네가 20세가 되면 벼슬을 내리겠다." 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황사영이 공부할 수 있는 비용을 내렸습니다.
황사영은 11대가 진사시험에 급제한 명가의 자손으로 정약현의 딸과 결혼 하였으므로 처삼촌이 되는 정약종에게서 교리를 배웠습니다.
정약종은 조선 최초, 최고의 평신도 로써 최초의 천주교 교리서를 폈는데 이것을 본 중국의 주교가 중국의 교리서 보다 우수하다고 칭찬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분에게 교리를 배우기 시작 하면서 황사영은 얼굴이 누렇게 될정도로 열심히 교리를 배웠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전국 각지를 돌며 교리를 가르쳤는데 당시에 이미 박해가 시작되었으나 포졸들이 황사영을 잡지를 못했어요. 그 이유는 임금께서 손을 잡았고 벼슬을 내리겠다고 약속한 사람이므로 임금님의 허락이 없이는 잡을 수 없는 신분이었던 것입니다.
신하들이 정조임금께 국법에 금한 천주학을 믿는 황사영을 잡을 수 있도록 허락을 주청하자 정조께서는 눈을 감고 사색을 한 연후에 벼슬을 가벼이 여기고 소신대로 행동하는 황사영을 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1800년에 정조임금이 승하 하시고 순조임금이 등극 하자 수렴청정을 한 정순왕후가 과거의 금교령을 내리고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가 시작 되었습니다.
많은 천주교인들이 잡혀서 순교를 할 때에 황사영은 충북 제천 베론 성지에서 땅굴을 파고 숨어 지내면서 생존을 지킬 의무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의 도리에 대해서 고민하였습니다. 그리고 박해가 점점 심해져서 나날이 천주교인들이 형장의 이슬로 살아지고 마침내 주문모 신부님 마저 순교 하시자 황사영은 의분을 이기지 못하고 북경 주교에게 에 보낼 밀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황사영 백서帛書> 입니다.
백서는 가로 62cm, 세로 38cm의 흰명주 천에 1줄에 110자 씩 122줄로 총 1만 3천 3백 11자 빼곡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백서는 중국에 전해지기 전에 압수되었고 이것이 임금에게 전해질 것이 두려워서 가짜 백서를 만들어서 결국 황사영은 서소문에서 순교하게 됩니다.
백서의 진본은 후에 갑오경장때에 발견되었어요. 진본의 도판 사본이 아래의 사진입니다.
이 백서를 보면 황사영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명문으로써 자신의 재능을 하느님께 바치는 자세로 썼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신앙생활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보장 되었던 출세의 길을 버렸고 가정은 풍기박산 되었으며 최후에 그는 자신의 목숨도 버렸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버렸습니까?
최상의 모습으로 사십시오! 최상의 직장인으로 사십시오! 더러운 버릇~ 더러운 성질을 버리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오전 강의를 끝내고 점심식사 시간의 모습입니다. 두개의 교리실에 준비된 맛있는 한식을 모두들 맛있게 먹었어요.
점심 식사 후에 묵주기도와 까떼나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성가와 율동을 하였습니다.
오후 강의 시작 전에 우리 본당 신부님께서 김길수 교수님에 대한 소개 말씀이 있으셨는데 이런 내용도 있었어요.
"제 가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에 교수님께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입학한 우리들이 무얼 알겠습니까? 그런데도 교수님께서는 우리들이 마치 사제인 것처럼 깍드시 대하셨습니다."
오늘 피정이 열린 북경 한인성당 교육관 전경입니다. 오후 강의 내용은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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