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9일, 진시황병마용 전문가인 秦兵馬俑박물관 명예관장 원중(袁仲)은 "병마용들 중에는 소량의 소년전사의 俑도 있다."고 발표하였다.
진시황병바용이 발견된 이래 여러가지 모양의 병마용이 발굴 되었지만 이렇게 소년전사의 병마용이 발굴 된 것은 처음이다.
그는 말하기를 "진황병마용 발굴 이래 천여건의 俑이 발굴 되었으나 그중에 아이의 얼굴로 보이는 천진한 용모의 소년전사들도 있었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소년전사용이 몇명이나 있느냐?"는 질문에는 "후에 정확한 통계가 나오면 답변 하겠다" 라고 하면서 현재 비공식적으로는 10개 정도 라고 하였다.
중국고대에는 턱수염이 성인의 기준이었는데 발굴자들은 1호갱에서는 턱수염이 있는 병마용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병마용에 턱수염이 있는 병사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의외라며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알수가 없다고 한다.
진병마용 중에 소년전사용은 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병사들 사이에 분산되어 있다. "그들은 독자적인 소년전사인가?"의 질문에는 전문가도 답변하지 못했다.
중국 인민대학의 王교수는 "고대로부터 15세 이상의 소년을 일정범위 안에서는 징집할 수 있었으며 그 관습이 秦나라에도 이어진 것으로 본다." 고 말했다.
참고로, 시안(西安)에 있는 진시황릉은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으며 당시에 발굴로 4개의 갱이 발견되었는데 이중에 1호갱에 대한 발굴이 2009년 6월 13일에 착수 되었다.
발굴 4개월 만에 많은 성과가 있었으나 병사용들 중에서 소년전사용이 발굴 되었다는 발표는 병마용 발굴 이래로 처음이다.
진황병마용이 묻혀있는 갱들에 대해서 간략히 기술하면, 진시황병마용에는 총 4개의 갱이 있다. 그중에서 4호갱은 무슨 이유인지 완성되기 전에 매몰하여 유물이 존재하지 않는 빈 갱이고 2, 3호 갱은 1985년에 발굴에 착수하여 중군용등 중요한 유물이 발굴되었으나 작업 중의 실수로 출토된 장군용의 머리부분이 부서지고 채색된 병마용은 햇빛에 노출되자 변색되어서 유물의 보존을 위해 발굴이 중지 되고 다시 묻었다.
그런 이후로 1호갱은 무려 20년 만에 발굴이 재개되어서 병마용의 비밀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