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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帝王廟는 명나라 嘉靖9년(1530년)에 건립되었다. 이곳에는 중국 삼황오제(三皇五帝)로 부터 시작하여 청나라 황실까지의 제왕 188위의 위패와 西配殿에 文臣과 武臣의 위패79위, 그리고 단독의 관우묘(關羽廟)가 있다.
접지면적은 21,500평방m이고, 건축면적은 6,000m이다.
남경에 이보다 앞선 1373년에 명태조 주원장이 洪武 6년에 세운 역대제왕묘가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아서 이 제왕묘가 중국 유일의 역대제왕묘이다.

위 사진은 廟門이다. 묘문을 지나면 바로 경덕문(景德門)을 만나는데 경덕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앙에는 황제가 지나는 곳으로 용이 조각되어 있다.


경덕문 왼쪽에는 황제의 거동 때에 사용되던 북이 있었다.

경덕문을 지나면, 역대제왕묘의 중심 건물인 景德崇聖殿이 웅장한 모습을 들어낸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정동비정이 있고 서쪽에는 정서비정이 있으며 전면에 좌우로 동남비정과 서남비정이 역대제왕묘를 호위 하듯 서있다.

삼황오제는 각각 독립되어 신위가 모셔졌고 맨 오른쪽에서 본 것은 宋, 唐, 明, 淸代의 황제 신위가 한곳에 있었다.
향로 뒤로 뿔이 보이는 것은 소머리이다. 소머리와 돼지머리의 조각품이 각 신위 전면에 모두 보였다.

이곳에는 사당을 지키는 직원이 3명이나 있었다.
역대제왕의 신위가 모셔진 이곳은 촬영이 금지된 관계로 문 밖에서 담은 것이라 선명치 못한 아쉬움이 있다.

제왕묘를 좌우에서 옹립하듯 서있는 4개의 비정(碑亭)들 중에서 오른쪽에 크게 잡힌 것이 東南碑亭이다.
동남비정 뒤로 경덕숭성전이 살짝 보이고 그 뒤로 正西碑亭과 그 앞에 西南碑亭이 보인다.

동남비정 안에 있는 비석의 머리부분을 담았다.
비정 외부는 모두 새로 채색이 되었고 천정은 퇴색하기는 하였으나 아름다운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위는 정동비정의 모습이고 아래는 비정 안을 측면에서 천정까지 담았는데 이곳 역시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남동비정 오른편에 보이던 東配殿의 모습과 녹색 자기로 지은 동료로(東燎爐)의 모습이다. 신위 앞에 향로에 담을 불을 피우는 곳으로 보인다.

동배전에는 삼황오제 시대로 부터 역사적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역시 촬영은 금지되어서 밖에서 분위기만 담았다.
서배전에는 문무관의 신위는 이동하고 황성미술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곳은 <사비나 겔러리>폴더에서 별도로 소개)

옛날에 있었던 비석이나 조각품들을 동쪽 담옆에 모아 두었다.

경덕문 앞뜰 서쪽 담에는 삼황오제에서 부터 청대까지의 역대제황을 그림과 글로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뒤쪽으로 살짝 보이는 청색 지붕이 관우묘이다.


역대제왕묘에는 좀 색다를 곳이 있는데 바로 관우의 단독사당이 있다는 점이다. 신하들의 위패는 동서배전에 79위가 있는데 그곳에 1위를 추가하지 않고 이렇게 따로 사당을 세웠다.



경덕문 동쪽으로 삼황오제때의 성씨(性氏)에 관한 내력(百家性)과 56개 민족의 유래 등이 설명 전시된 공간이다.



역대제왕묘는 원래 훨씬 넓은 터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영벽(影壁)으로 알수가 있다.
영벽은 묘문 앞에 있었던 것인데 묘문과 영벽 사이로 대로가 뚫렸다. 영벽은 지금 묘문 길건너편 인도에 서있다.

역대제왕묘 가는 길
주소--北京市西城區阜成門內大街 131호 버스노선--7,101, 102, 103, 13, 42, 409, 603, 604, 709, 812, 814, 823, 846, 850, 855, 白塔寺 정류장에서 내려서 찾아 가는데 버스마다 백탑사 정류장이 달라서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내려서 주변에 물어볼 수밖에 방법이 없는데..., 백탑사 정류장에서는 먼 곳도 200m 이내로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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