毛岸英(1922년 10월 24일~1950년 11월 25일)은 모택동의 큰아들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모택동에게는 여러병의 부인이 있었으므로 첫부인 양개혜(楊開慧)와의 사이에 아들인데 양개혜 이전에도 부모가 권해서 결혼을 하였다는 설도 있어서 두 번째 부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위 사진에서 보면 마치 모택동과 양개혜가 나란히 기념촬영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래 양개혜 사진으로 미루어서 위의 사진은 나름대로 포토샾을 거친 사진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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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모안영은 모택동에게는 첫아들인 것만은 분명한데 양개혜는 모안영을 맏이로 둘을 더 낳아서 아들만 삼형제를 두었다.
그런데 모택동이 혁명전선에 나가면서 양개혜는 세 아들과 함께 고향에 남았는데 공산당원 이었던 양개혜가 적군에 체포되어서 1930년에 사형당했다.
그로부터 모안영 3형제는 외가와 친지, 당원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모진 고생을 하였고 이 와중에 어린 막내는 죽었고 바로 아래 동생 모안청(毛岸靑)도 건강이 온전치 못했다고 한다.
아래의 사진이 양개혜와 모안영, 모안청의 모습이다.
어머니 양개혜가 죽은지 7년이 되어서야 아버지와의 연락이 닿아서 모안영은 소련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정규교육을 받았다.
1949년, 모택동이 중국의 개국을 마치고서야 비로서 그 해에 모안영이 중국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와 만나게 되었다. 모안영이 아버지 모택동을 실제로 만난 것은 실로 20년 만이라고 한다.
모택동에게는 여러명의 부인과 아들들이 있었지만 큰아들인 모안영을 가장 사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자국의 전선도 아닌 한국전에 아들을 보낸 것일까?
이는 모안영이 자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젊은 혈기에 아들이 자원을 하더라도 안보내려고 했다면 어떤 구실로도 안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머니도 일찍 여의고 무진 고생을 하며 자란 아들인데...., 그러나 그는 아들을 전쟁터로 보냈고 그리고 아들은 미군 폭격으로 전사했다. 이 때 모안영읜 28세 였다. (1950년 11월 25일전사)
모안영은 1949년에 유사제(劉思濟)와 결혼하고 다음해인 1950년에 한국전쟁인 6,25가 터져서 당시에는 군인신분이 아니었는데 자원입대하여 북한 전선에 투입되었다.
아래의 여성은 2006년 유사제의 모습이다.
毛岸英妻子爲中朝人員共同確定毛岸英犧牲地点
모안영의 처 유사제가 모안영이 전사한 지점인 평북 운산 대유동에서 북한군인들과 함께 헌주를 하는 모습이다. 이는 2006년 5월 12일이니 그녀가 남편이 전사한 땅을 밟는 데에는 무려 56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가 원했다면 그동안에 언제라도 가볼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홍위병 혁명 때에 홍위병들이 북한의 김일성을 폄훼하여 비평한 것에 반발하여 모안영의 비석을 깨버렸다가 후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반세기를 훌쩍 넘긴 세월에도 비석이나 반신상이 너무나 깨끗하다.
모안영의 묘가 있는 <中國志願軍熱士陵園>은 평양으로 부터 동쪽으로 약 100km 정도 떨어진 거리의 평안남도 회령군(檜令郡)내에 있다. 이 묘역에는 중공군 지원자 134명의 묘가 함께 있다.
대략 13만명이 넘는 중공군 지원병의 유골이 조선의 청산록수(靑山綠水)에 묻혀 있다고 이들이 말하니 이곳에 묻혀 있을 아군의 유골은 또 얼마나 되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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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t213님. 님의 글을 읽고 뿜었습니다. ^^ 남의 전쟁에 왜 중국이 껴들었냐고요? 그리고 그리고 참전 외국인 동상을 신주모시듯 모시냐구요? 그래서 북한이 중국식민지고 자존심도 없는 더러운 족속이라구요? ㅋㅋㅋㅋ 그럼 우리는? 미국 안껴들었나요? 맥아더 동상 안 모시고 있나요? 그리고 중국과 마찰빚는 북한에 비해 우리는.... 미국 심기 건드릴까봐 설 설 기잖아요. 북한도 가지고 있는 전시작전권 회수하는데도 나서서 반대하는 꼴이라니.... 부끄럽습니다.
모택동이 모안영을 보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후계문제 때문이지 댓글에서 말하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모택동은 모얀영를 북한으로 보낼때 팽덕회(彭德怀)에게 부탁을하였습니다 .
"모안영을 잘 이끌어야한다고 ,차세대 중국 지도자로 내세울 명분을 남북전에서 잘 쌓아야 한다고..........
전방은 위험하기에 당시 총사령관인 팽덕회의 특별지시하에 후방전선에서 활동하다 미군비행기의 폭격을 맞아 사망해버렷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팽덕회는 남북전이후 모택동의 정치적인 보복을 당하여 처참한 여생을 마감하게 되였습니다.
중국지도자 모택동, 모안영,,,이런 사람들이 진심으로 본받을 인물이 아니라는것을 ..
참고: 모택동의 오망으로....중국의 수많은 지도자가 정치적인 보복을 당하여 처참한 여생을 마감하엿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적화통일되면,남한 역사는 없어진다.군사력이 세다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절대 아니다.지도자와 국민의 정신이 흐리멍텅하면,그 나라 역사는 없어진다.지금 우리는 고구려 발해 역사를 얼마나 아는가?초대 대통령 이슴만이도 대전으로 피난가 있었으면서도,방송으로는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킨다고 설레발 이었으니.....국민이 누굴 믿어야하는가?봐라!어떻게 하면 군대에 안가려는 인간들이 넘친다....이미 북에 정신부터 지고있다.전쟁 나봐라!도망가는 인간들에 깔려 죽는다.
예...., 조선 청산녹수에 13만명의 공산군 유골이 수습도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자기 아들 유골만 찾아 올 수 있었겠습니까?
모안영의 처에게도 아들이 죽었다느 것을 3년 후에 알렸다고 하니
중국에서는 장례절차도 생략된 것입니다.
유사제가 모의 시신을 중국으로 데리고 와 달라고 간청해도
모택동이 거절 했다고 해요.
그렇게 바로 자살행위였던 것을 말하는것으로 왜 와서 죽었는지 크게 후회하였을것이다. 비겁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무모한 사람이 바로 모택동이라고............... 인민복을 입혀서 참전시켰다는 사실은 크게 의미가 살아나는듯하다. 바로 조선한국인이 된것을 말하는것으로 아마도 그들만큼의 비율로 우리 통일한국에 흡수당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인들은 속아서 그들을 대한것으로 중공군인줄 모르고 모두다 인민군인줄 알았던 그 복장이었던만큼 속았던 모두들이다 그건 큰 의미가 있다.
11월 25일에 죽었다는데 그러니까 전사한 셈인데 그건 바보 우리 조선 한국인들의 머리가 더 좋은 평균아이큐 106으로 기지를 말하는 가는 동자꽃이미지로 개옿나무를 말하는 정주영이 생일과 같은 그 날에 죽은 그 사람으로 기지앞에서 죽고만 현명함인것으로 멧돼지를 연상시키는 정주영이더니만 역시나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난 중국인들 특히 중공군들을 멧돼지들이라고 미련한 그 공산 문화혁명이란것을 상징적으로 말하는데
뿐만아니라 땅덩어리를 미련하게 많이 차지하고 있는것으로 그렇다고 그것이 끝까지 관리가 돼 지네것이 된다고 생각하는 미련한 백성들이라고 보게 되는것으로 살찐 멧돼지 라고 보는데 여기서 제대로 걸렸다.
마치 지금은 VIETNAM(철자가 맞나?) 망할때 비슷하다.자본주의가 극에 다달으면 나타나는 현상!황금 만능주의!돈없는 인간은 인간 취급도 못받아 매일 자살자가 늘어나는데도,이 정부나 저 정부나 싸움박질에 지그들 배 채우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으니.....옳바른 소리하면 좌빨로 몰아 버리고 그런다음 뒤에선 책임지지도 못하는 일만 벌어지고....sky대학,대기업에나 다녀야 대접받는 세상.공부는 못해도 학연 지연이 우선시 되는 현상.몇십년이 지나도 지역감정 하나 정리 못하는지?안하는지.......
총쥐고 적과 싸우나,짠밥 만드는 취사병이나,부대장 군복 빨아주는 당번이나,취침나팔 불다가 박격포탄 맞은 병사나,운전만하는 운전병이나,위생병,무전병 등등.전투에 참여했으면 다 똑같은 참전 용사이다.꼭 일선에서 총을 쏴야 군인이냐!먼저 가신 모든 참전 용사님들께 헌화 올립니다.또 꽃이 어떻다고 시비할 넘들이 나타나겠지....평생 시비분별하다가....싸움만 하고...
하기야,다음 내생이 없다고 생각되면, 걍 막살면 됩니다.대충 남의 것 빼았고....윤리 도덕 예의범절도 필요없다.돈은 벌어 뭐하는가?지나가는 사람것 슬적하면 되고....될대로 되라 하는 것은 조금만 상황이 몰리면 막되먹은 생각이 나온다.아무리 인터넷 세상이지만,세월의 연륜을 무시하면 백전백패입니다.나이먹은 사람들 눈에는 아무리 긴급한 상황에도 상황 대처가 노련하다.젊은 패기로 악만 쓰다간 바로 지옥행입니다.함부로 자기 생각과 좀 다르다고 사상범으로 몰지 맙시다.그러는 본인이 그런 상황에 몰리는 그런 황당한 상황으로 몰릴때가 잇답니다.그래서,항상 입조심.
에릭 똘아!6.25때 전후방이 어디에 있니....낙동강이 전방이냐?인천이 전방이니?전쟁에 자원 참전했다는게 중요하다는 말이다.영국의 왕자처럼 아프칸에 참전해도 어디에 있는 줄 너는 아니?근데,이 나라 1%의 귀족들은 돈 버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고,막상 전쟁나면 제일 먼저 미대사관에 미국 여권부터 내밀 인간이 수두룩하다는거다.미국가서 애 낳는 아줌들! 안 그래요?
내가 한국에서배운 교육관들??? 공산주의는 싫어요????????????? 한국에 국방의무도안하고,,,,지도자와 기업에종사하는,,,,웃끼는 짬뽕...웃끼는 짜장면 사회 한국????????도대체 나쁜것은 어느쪽이냐???????? 자유민주주의자들에... 빨갱이정신사상자들은,,,바로 개판한국인들에,,,조선한민족이지````입이있으면 국방의무안한자들 이유를 말해보라????????
지금 우리는 전쟁이 끝난 상태가 아니고,전쟁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 휴전 중입니다.지금의 대한민국은 모두들 착각에 빠져있다.안빠진 사람은 미국가서 애 낳은 아줌마들.언제 어느때고 저쪽에서 미친척하고 대포 쏴버리면 그때부터 다시 전쟁입니다.그런데,지금 국방의 의무를 하는 우리 젊은이들을 너무 무시한다.24개월이 뭐 벼슬이냐!남자가 그것도 못하냐!군사정권때 도저히 입에도 올리지 못 할 망말을 서슴치 않으니.....이렇게 軍이 위축되면 바로 전쟁과 연결된다.군인도 봐라!대접 안해주니 시간나면 골프나 칠 궁리나 하고....이래서 전방이 튼튼하다고 누가 말하겠는가?지도자님들 제발 말 좀 삼가해서 합시다.
중국의 계산은 북한을 확보하므로써.....압록강,두만강 접경지대가 안전하다.만약,통일 되었다면,그 접경지역에 많은 돈과 인력을 퍼 부어야한다.그리고,지금에 와서 고구려 역사, 발해 역사 더 나아가 고려도 자기네 역사요 땅이라고 우기는 겁니다.압록강이 위험해 지면 중국 전체가 위험하다는 걸 중국은 너무마 잘 안다.
그리고 전쟁나면 북한이 이길꺼라는 애들은 뭐냐? 요즘 전쟁이 정신력으로 하냐? 요즘 전쟁은 그냥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100% 돈으로 결정된다. 얼마나 비싼 미사일을 퍼부을수 있느냐로 그냥 전쟁이 끝나버리는 버튼전쟁이란 말이다. 게다가 김정일 부자의 더러운 봉건왕조를 지키는 게 무슨 가치있는 일 이라고 목숨을 걸고 싸울 거라고 가정을 하냐?
확실히 세계최강대국이라고 이야기 할수 있는 나라들의 지도층은 다르군요...
양키들도 징병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들 대부분이 자원입대를 하고 자식들도 군대 꼬박꼬박 보내고...
지도층의 도덕성이 중요하다는것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뭐 군대문제가지고 도덕성 운운할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상징성이랄까요...
6. 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밴플리트 중장은 미 8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 아들 짐 밴플리트 역시 공군중위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1952년 4월 4일 새벽 1시 15분 그는 압록강 남쪽 평북 순천지역을 폭격하기 위하여 출격했다가 2 시간후 교신이 두절되었다. 아침 10시 30분 밴플리트 장군은 미 제 5 공군 사령관으로 부터 아들이 실종되어 수색작업을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밴플리트 장군은 아들에 대한 수색을 즉시 중단하라고 지시하였다.
며칠 후 부활절을 맞아 밴플리트 장군은 전선에서 실종된 미군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모든 부모님들은 저와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말씀하신 바와같이 친구(한국)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라고 미국의 실종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흘린 핏값을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자유를 지켜야 한다.
안전한 후방에 있다가 죽었다고 하신 분도 있는데 안전한 후방이라기 보다는 팽덕회의 사령부에 참모진으로 같이 있다가 미군이 공습할때 팽덕휘랑 다른 지휘부는 피했는데 피하지 못하여 폭격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사령부가 폭격당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안전한 곳에 따로 숨어 있었던 것도 아니지요 모택동 아들 뿐만 아니라 스탈린 장남도 독일과 싸우다 포로가 된 다음에 수용소에서 죽었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독재자 입장에서 아들을 희생시킨 것으로 볼 수도 있죠
사비나씨 말이 맞긴 한데 당시 모안영은 야전 화장실에서 대변보다 미군 폭격기의 폭탄투하 때문에 바지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상태로 방공호로 대피하던 중 2차 폭격에 그자리에서 즉사함 올리실 때는 더 자세한 내용도 조사하시어 올리세요 전장은 전 후방이 없어요 당시미군 폭격기도 그냥 폭격거리가 없어 심심하던차 지나다가 이상한 부분을 폭격하였는데 그게 중공군 지휘부였지요
남주나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의견을 올리신 분들은 누구나 현장에 있지는 않았던 인물들이고
또한 그 시기에는 아직 지구상에 태어나지 않았던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현장 상황은 역사적 기록이나 추정일 수밖에 없는데요.
(뭐....농담이지만 전장에서 심심한 폭격기가 과연 존재 할 여건일까요?)
당시에 미공군이 투하한 폭탄은 네이팜탄 이라고 해요.
헌데 네이팜탄이 투하되면 고열의 기름불이 붙는데 위에 적으신 내용을 제삼자가 육안으로든 사후에 시신검시로든
확인이 될수가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자본주의 유태인 자금으로 만들어 진것을 아시나요 ? 러일전쟁에서도 유태인 자금으로 일본이 이긴거고...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한국을 식민지 한거죠... 중국 인민들이 그 사실을 알면 공산당을 하고 싶을 까요 ? 중국 화족은 유태인 자금으로 조선족을 몰아내는데 성공한거죠... 한족이란 자체가 만들어진지가 몇년 안되는것을 .......
모안영의 죽음에대한 진실
얼마전 중국에서 들은 조선족중에 가장 고위층에 올라간 조장군님의 말을 통해 진실을 알아봅시다.
진실의 내막은.......
그당시 북한의 파병 요청을 받은 중공정부는 파병을 결정하고 팽덕에게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출정할것을 명령하였으나
팽덕(북한군 총사령관을 지낸 무극도 마찬가지)은 과거에 중국공산당 하급전사로 소속되었던 김일성의 명령을 받을수 없다고 거부하여 당시 수상인 주을래의 계속적인 설득에 김일성 연락 장교로 조선족인 조장군으로 자신의 연락장교로 모안영을 임명해줄것을 요구조건으로 내세워서 참전하였으며 폭격 당일 텐트에서 조장군과 모안영이 같이 자고 있는대 팽덕으로 부터 김일성에게 긴급전달 사항이 있어 조장군은 기상하여 팽덕에게 가는대 평소에도 늦잠이 많던 모안영은 계속 자겠다고 하였다고 함.
조장군이 팽덕의 명령으로 김일성에게 전달사항을 전하러 가는사이 미 군사정보부가 팽덕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판단해 실시한 소이탄 공군 폭격에 완전히 화장되어 주었음.
웃기는 블로그 주인놈이네.. 6.25 미국연합군 도움으로 거의 완전 통일직전까지 갔다가 중국놈들 땜에 다시 밀려서 지금 한국이 이모양으로 분단되어 있는데 그것도 개택똥 이색1기 아들놈은 전투중에 뒈진게 아니라 후방에서 노닥거리다가 미사일맞구 갓는데 그게 머 자랑거리냐? 나라 말아먹으러 참전한 짱꼴라놈을 왜 블로그에 쳐넣냐고.. 빨갱이 티내는건지 먼지.. 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