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제(光緖帝)는 청나라 11대 황제이다. 광서제는 적통이 아니고 선대왕 10대 동치제와는 4촌지간으로 서태후가 자신의 아들인 동치제가 사망하자 어린 조카 재첨을 데려다 네살짜리를 황제위에 올리고 자신이 섭정을 맡았다.
이렇게 영문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광서제는 서태후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황제로 지내다 장성하여 친정을 하여 개혁을 하려하자 서태후와 보수세력이 광서제를 잉타이에 유폐시켰다.
광서제는 38세의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는데 죽을 당시에는 병사로 처리되었으나 근래에 법의학자들이 광서제의 능에서 머리카락을 채취하여 검사를 한 결과 광서제는 비상(비소를 넣은 극약)에 중독되어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비소 성분으로 이루어진 비상은 극약으로 냄새나 맛이 없는 하얀색 가루이다.)
<광서제의 사망>사건은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1908년(光緖34년), 청나라 황제 광서제는 유폐된 잉타이(瀛台)에서 38세의 생을 마감했는데 약 반세기동안 청나라를 사실상 통치했던 서태후도 거의 동시에 사망을 하였다.
이런 사실은 2천년이 넘는 중국제국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그간에 역사학자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과 억측이 난무하여 사인을 규명하는 급선무라 여겨져 왔다.
광서제의 능(淸西陵에 崇陵)을 열고 머리카락과 유골, 그리고 의류를 수거하여서 검사를 하는 작업은 2003년에 시작 되었다. 중국 중앙방송국과 청서릉 문물관리처, 중국 원자력연구원, 북경 공안국法醫學수사국등의 기관이 서로 협력하여 <광서제 사인규명>의 과제를 안고 면밀한 조사를 벌려왔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현대과학수사팀은 지난 5년 동안 광서제의 머리카락과 유골, 의복을 입수하여서 첨단장비를 이용한 광선 검사와 약품검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서 검사한 결과 다량의 비상이 머리카락과 위의 잔류물에서 검출되었는데 砒霜의 총량은 치사량에 이르렀음이 명확하다고 한다.
이것은 2008년 11월 14일, 광서제가 서거한 1908년에서 꼭 100년이 되는 날에 발표한 내용이다. 단, 광서제가 누구에 의해서 독살 되었는지는 향후 더 연구와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광서제를 독살한 자는 과연 누구일까? 광서제를 유폐시킨 서태후를 지목할 수도 있는데 자신이 죽은 후에 광서제가 대권을 잡는 것을 원치않아서 서태후가 사람을 보내어 독살했다는 설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원세개(袁世凱)를 의심할 수가 있다. 원세개는 광서제가 친정을 할 당시에 번법시행으로 보수파의 반발이 심할때에 군사력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광서제를 배반하고 서태후의 편을 들었었다.
서태후의 병세가 위중하자 서태후가 죽으면 광서제가 집권을 할 것임으로 환관 대총관 이연영(李蓮英)과 모의 하여 독살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대총관 이연영 역시 서태후에게 아부하여 광서제에게 미움을 샀던 인물이다.
첫회와 달리 더 흥미진진 합니다
청나라의 멸망을 안겨다준
최고의 권력을 휘두른 여걸 서태후
권력은 옛날이 더 잔인했던거 같아요
오늘날의 과학의힘은
100년전 광서제의 의문의 죽음의 까지 알아 내었군요
그당시 통용되던 화폐까지
사비나님 어찌 우리가 이렇게 정성들여 올려놓은걸 무심히 볼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