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꿈길을 가듯 한 시간 정도를 걸어가자 앞에서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얏! 빛입니다. 드디어 밖으로 통하는 입구를 찾았나 봅니다."
"그런 모양이다. 이런 종유석 동굴의 입구가 있는데 왜 그동안 발견이 안 되었을까? 여기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아주 깊은 산속인 모양이지?"
두 사람은 달리다시피 하였다.
드디어 빛이 들어오는 곳에 도착한 두 사람은 깜짝 놀았다.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고 굴속이었는데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곳은 통혈通穴이었던 것이다.
통혈은 일명 일광굴日光窟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굴 안에 햇볕이 비치는 굴을 말한다.
어둠에 익숙해 있던 두 사람에게 그곳은 너무나 눈이 부셨다.
그곳에서는 아주 작은 샘이 있었고 바위틈에는 파란 풀도 있었는데, 가장 놀라운 발견은, 이곳에..... 누군가가 생활한 흔적이 있었다.
벽에는 선반을 만들었었는지 정으로 쪼아서 턱을 만들었고 바닥에 있는 넓은 바위에는 먼지도 하나 없이 정갈했다.
"드디어 우리가 영화의 집을 찾았군요!"
도현이 감격에 넘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런 모양이야, 그러나.....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군."
두 사람은 간단히 점심해결을 하고 짐을 그곳에 둔 채로 옆의 통로로 다시 들어갔다.
그곳은 종유석은 없고 바위와 흙만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들어갈수록 추워졌다.
추위를 무릅쓰고 한 시간쯤 들어가자 이번에는 얼음굴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어름으로 꽉 막혀버려 더 나아갈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여기가 한양지寒陽地 아래가 아닐까?"
"한양지라니요?"
"얼음골 말이네, 빙혈이라고도 부르는데 삼복염천에 얼음이 나는 곳이 금수산 속에 있거든!"
"참으로 불가사의한 곳이로군요. 한여름에 얼음이 나다니요."
그날 밤에 두 사람은 일광굴에서 야영을 하였다.
"내일은 지서로 돌아가야 하는데요."
"나도 그래, 이제는 돌아가야지."
슬리핑백 속에 누워서 잠을 청하던 도현이 문득 생각난 듯이 입을 열었다.
"형님, 형님은 왜 영화를 꼭 잡으려고 하십니까? 우리 지서장님 말씀이 설령 영화를 잡는다고 하여도 기소하기에는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을 거라던데요."
도현의 질문에 소반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으며 천만의 말씀이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자네는 왜 내가 영화를 잡으러 다닌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영화를 잡으러 다니는 것이 아니네."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잡지도 않을 것을 왜 이리 사서 고생을 하십니까?"
소반장은 잠시 생각 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영화를 한번 만나고 싶어서 그러네. 자네가 한여름 강가에서 영화의 대답을 들었듯이 실은 나도 비슷한 경우에 영화의 대답을 들었었지. 그 때는 누군가의 장난으로 돌렸었는데...차츰 영화가 이곳에 살아있다는 확신이 들면서 꼭 한번 만나서 어떻게 오늘날까지 살아왔는지 그 이야기를 꼭 듣고 싶었네, 나의 희망은 그 뿐일세!"
소반장은 까마득히 먼 위쪽에 돈짝만한 하늘을 쳐다보았다. 언뜻 별이 보인 듯도 했으나 워낙 보이는 하늘이 좁아서인지 별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지루하던 장맛비가 개이고 모처럼 환한 햇볕이 내리쪼이자 소반장은 눈이 부신 듯 창밖을 내다보며 양미간을 모았다.
청사 앞 화단에 빨간색 글라디올러스가 물기를 방울방울 머금고 가지런히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고선희가 다가와 메모지를 내밀었다. 그도 말없이 메모지를 받아서 읽어보니 '구철이....충북 제천시 능강리 73번지' 이렇게만 적혀 있었다.
"이게 누구야? 구철이?"
소반장이 고선희의 등 뒤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반장님도...., 잊으셨어요? 원주 벙어리 남자. 항상 체크해라, 그러셨잖아요?"
고선희가 도훈의 억양을 흉내 내며 까르르 웃었다.
"어, 그랬지! 그래, 언제 옮겨갔어?"
"날마다 체크 했는데요. 오늘 아침에야 변동이 있었어요."
음, 드디어 움직이는구나!
그는 메모지가 무슨 보물지도라도 되는 양 소중하게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들여다보더니 직원들에게 대충 오늘 할 일을 지시하고, 몇 군데 전화를 걸고는 벽에 걸린 겉옷을 들고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돌이켜보면 풍혈에 다녀온 후 5개월 동안을 그는 거의 영화를 잊고 지냈다.
아니 애써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 더 옳았다.
그러자 바쁜 나날 속에서 드디어 장마철이 온 것이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그는 결코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모여서 빨간 핏빛으로 변하더니 모조리 풍혈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이제는 풍혈도 물이 찼을 것이다.
풍혈이 물에 찼으면 풍혈에 살고 있다고 믿는 영화는 어찌 되었을 것인가?
청풍지서에서는 도훈이 기다리고 있었다.
"말씀하신 주소는 이장과 통화를 하여 알아보았더니 정방사였습니다."
"뭐? 절이란 말이야?"
"예, 구철이가 정방사로 살러 온 모양입니다."
"함께 온 사람이 있다던가?"
"이장도 그 이상은 모른다고 하는데요."
두 사람이 탄 오토바이는 청풍대교를 건너서 바람처럼 달렸다.
새로 닦은 도로에는 아스팔트가 깔려있어서 강변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너무나 상쾌하였다.
약 15분쯤 달려서 도화리에 도착을 하여서 오토바이를 맡긴 후에 두 사람은 도보로 정방사로 향했다.
정방사는 커다란 바위아래 위태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앞에서 바라보니 왼쪽으로부터 산신각과 칠성각, 그리고 본당과 요사채가 거의 한 줄로 나란히 서있었다.
그렇게 터가 좁았던 것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절 마당에 들어서자 50대 초반 쯤의 주지가 합장을 하고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들은 스님이 권하는 대로 요사채 앞의 툇마루에 자리하고 앉자 바로 구철이를 찾았다.
"구철이는 지금 산에 올랐습니다.. 아마 곧 올 겁니다."
"구철이와 함께 온 사람이 있지요?"
"예?"
도훈의 질문에 스님은 가당치 않다는 듯이 놀라 보였다.
"구철이 혼자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함께 온 여자 분은 어디 있습니까?"
주지승은 아무 말 없이 합장 한 채 머리를 깊이 숙였다.
"나무관세음보살....."
이번에는 도현이 물었다.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왔습니다. 어서 그 여자 분이 있는 곳을 말씀해 주시지요."
그때였다.
칠성각 쪽에서 회색바지저고리를 입은 건장한 남자 한 사람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주지승이 손짓으로 그 사내를 불러서 가까이 오자 말했다.
"이리 와서 인사 하게. 자네를 찾아 오셨네."
구철이는 두 사람을 의심쩍은 눈으로 보면서도 주춤주춤 다가와서 꾸벅 인사를 하였다.
도훈도 목례를 하고 말없이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서 구철이에게 내밀었다.
엉겁결에 사진을 받아든 구철이 소반장을 쳐다보다가 사진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그의 입에서는 외마디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어어마마, 어어어....."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리를 토하며 그 사진을 품에 안았다가 얼굴에 대었다가 어쩔줄을 몰라했다.
도훈이 사진을 되돌려 달라고 손을 내밀었으나 구철은 사진을 가슴에 숨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훈이 또 한 장의 사진을 꺼내어 스님에게 주었다."
"이 여자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이 분이 올 봄에 틀림없이 구철이와 함께 이곳에 오셨었지요. 그러나 어디로 가셨는지는 빈도 역시 알지 못합니다."
올 봄이라면 풍혈을 헤집고 다닐 때로구나.
"구철이가 이 절에서 여생을 편히 살 수 있도록 부탁을 하고 그 비용도 충분히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유하신 다음 날 새벽에 떠나셨습니다."
"그, 그럼 연락처는요?"
"가시는 곳은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다만..."
스님은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안으로 들어가서 누런 사각봉투 하나를 들고 나왔다.
"다시는 못 올 듯이 떠나신지 며칠 후에 다시 오셔서 이걸 맡기고 가셨습니다. 그 분 말씀이 청풍이 전부 물에 잠기거든 구철이 주민등록을 이곳으로 옮기라고 하셨어요. 그런 다음에 누군가 자기를 찾는 사람이 오거든 이것을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걸.....내게 주라 했단 말입니까?"
소반장은 무엇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자신이 언젠가는 이곳을 찾아오리라 예견했단 말인가?
"브브브브 이이이아~~~"
구철이가 애타게 두 사람에게 애원했다.
"철이, 이 분들도 가신 곳을 모르시네, 어디로 가셨는지 몰라서 여기로 찾아 오신거야."
스님의 말뜻을 알아들은 양 그는 양손으로 가슴을 치며 절망적으로 외마디소리를 지르더니 그들이 오던 방향으로 내려 달렸다.
"쯧쯧, 올 사람이 아닌데...., 저렇게 매일 기다립니다."
주지승의 말로는 이곳에 12년을 있는 동안에 그 여자는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다고 했다.
"구철을 이곳에다 맡긴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 보살님의 말씀으로는 구철이 살던 곳에 오니 아주 좋아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여자 분이 나이는 몇 살 쯤 되어 보이시던가요?"
"글쎄요. 겉보기는 한 스무 살 남짓 보입니다만, 그러나 이상하게도 빈도에게 산신각을 옮겨짓고 절 앞에 해우소가 있어서 절의 모습이 옛날 같지 않다고 아쉬워 하셨습니다. 산신각은 원래 절 오른편에 있었는데 25년 전에 폭우로 지붕이 무너져서 절 뒤편으로 옮겨서 새로 지었다고 들었거든요."
두 사람은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다면 역시 영화였단 말인가?
그러나 어찌 그런 일이?
소반장은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