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보이자 고선희는 한결 기분이 좋아진 듯 라디오를 틀고 이쪽저쪽 다이얼을 돌리다가 음악이 나오는 곳에 고정을 시키고는 편안한 자세로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강 건너 들녘에는 벼들이 누릇누릇 익어가고 산에는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윽고 수안보 시내에 들어선 차들은 오른쪽으로 조금 꺾어서 한참 올라가더니 연정蓮庭 이라고 간판이 붙은 요정 앞에 차들을 댔다.
"일단 우리도 저녁을 먹지."
두 사람은 요정이 보이는 곳의 식당에서 주문을 한 다음에 본서로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할까? 고형사 먼저 버스타고 가겠어? 색시들 앉혀놓고 노닥거릴 테니까 보나마나 늦어질 거란 말야."
색시라는 말이 우스워서 고선희는 호호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뇨. 그냥 함께 가죠."
"그럼 늦는다고 연락이나 하지?"
"연락은 무슨, 나 여기 혼자 있는 거 모르세요?"
"아, 참 집이 수원이랬지. 깜빡 했군."
"지형사님이나 연락을 하세요."
"아, 우린 그런 거 안 하고 살아. 언제는 뭐 일찍 들어가는 날 있었나?"
식당에서 나와 다방 문 닫을 시간까지 죽치고 앉아서 묵은 신문까지 다 읽고, 다시 자동차로 옮겼어도 전소장 일행은 꿈쩍을 않았다.
12시가 조금 넘는 시각에 고선희가 지창국의 팔을 툭 쳤다.
등받이에 기대어 깜빡 잠이 들었던 지창국이 창밖을 보더니 얼른 시동을 걸었다.
전소장 일행은 다섯이었는데 대리 기사들이 뒤따라 나와서 운전을 하고는 곧장 출발을 하였다.
"흠, 충주로 나가는 것이 아닌데?"
그들은 국도로 나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가서 파라다이스 호텔로 올라갔다.
"그럼, 우린 이제 가도 되죠?"
"아냐,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왜요? 도로 나올까 봐요?"
"그게 아냐! 이왕 왔으니 확인 할 건 하고 가야지! 조금만 기다려 보자고, 여기서 충주가 30분 거리 밖에 안 되는데 자고 가는 이유가 있을 거야!"
과연 15분 쯤 기다리니 아까 요정 문밖에서 배웅 하던 아가씨 5명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가씨들은 이제 막 미성년을 넘었을까 말까 한 앳된 얼굴 들이었다.
그 중에서 4명의 아가씨들은 마치 즐거운 나들이라도 가는 양 웃고 떠들며 걸어 오고 두세 발짝 뒤에 한 아가씨는 조용히 앞만 보고 걸었다.
"오우~ 꽤 미인인데?"
지창국이 감탄을 하자 고선희가 자창국의 시선을 따라 뒤의 아가씨를 보았다.
과연, 긴 머리에 8등신의 빼어난 미인이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서 무심히 걷고 있는 여자는 가로등의 불빛에 음영이 더욱 두드러져서 그런지 오똑한 콧날과 새하얀 피부, 짙은 눈썹에 커다란 눈, 그리고 도톰한 입술이 잠깐 스쳐 지나갔어도 고선희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요정에서 접대부를 할까? 올해 미스코리아도 저만큼 예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다음날 아침, 소반장은 수안보에 다녀온 지창국에게 전에 없이 신경질적으로 나무랐다.
"이 사람아 미행을 했으면 올 때까지 따라 붙어야 미행이지. 그래 호텔에 들었다고 그냥 오면 어떻게 하나?"
"그렇기는 합니다만 호텔에서 아가씨들을 불렀으니 뭘 더 기다립니까? 그리고 고형사도 함께 갔고요."
"뭐가 어째? 형사가 남자 여자 따지고 일해?"
지창국이 고선희를 힐끔 돌아보자 쳐다보던 고선희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 여자들 인적은 뽑아 왔겠지?"
"저, 그게 미행이라서 자칫 전소장 귀에 들어 갈 수도 있고 해서 그냥 ....."
소반장은 눈동자가 하얗게 돌아가자 지창국은 뒷말을 얼른 바꾸었다.
"저, 지금 수안보에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소반장은 지창국에겐 대답도 않고 고선희를 향해 지시를 내렸다.
"댐 현장에 전화해서 전소장 출근 했나 확인해 봐."
고선희는 어젯밤 귀가를 서두른 것이 자기 때문인지라 수화기를 들며 어깨를 움츠렸다.
"예? 안 나오셨어요? 예, 알겠습니다."
"것 봐, 그럼 연락은 있었데?"
고선희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댐 현장에서는 몸이 좀 불편하다는 연락이 조금 전에 왔었단다.
"그럼 M장에 연락해서 더 자세히 알아 봐!"
고선희가 또 수화기를 들자 조경남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만 둬, 내가 직접 가서 알아보고 올께."
소반장이 방방 뛰면 알아서 움직이는 것이 또한 이들이었다.
조경남이 서둘러 M장에 도착을 하여보니 과연 은회색 전기호 차가 있었다.
"예, 지금 계시기는 한데요. 아주 많이 편찮으신가 봐요."
전기호는 방금 전에 왔는데 대리운전을 하고 와서는 2층 객실도 겨우 올라가는 눈치더란다.
지창국이 수안보 연정에 다녀와서 메모를 내밀자 소반장은 다시 또 역정을 내었다.
"어제 아가씨가 다섯이라더니 왜 넷 밖에 안 돼?"
"그게, 그러니까 한명은 그 요정의 종업원이 아니었답니다."
"허면?"
"그러니까 아르바이트로 그날 저녁만 왔었다는 데요."
"흠, 그럼, 소장 방에 들어갔던 애는?"
"그, 명단에 없는 저, 양혜연이라는 아가씨랍니다."
"뭐야?"
"그러지 않아도 마담에게 질책을 좀 했습니다. 정식 접대부도 아닌데 외박까지 시켰다고요. 그리고는 소개소 까지 아예 들러서 왔는데, 그곳에서도 ....대학생이라 신분을 밝혀야 하면 안 나간다고 해서 그냥 전화번호만 받고 보냈다는 겁니다."
"그래서 확인 해 봤어?"
"예,.....그런데 그게 결번 입니다."
소반장이 핀잔주기도 지쳤는지 휭 나가자 지창국이 툴툴대기 시작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전기호가 데리고 잔 아가씨 까지 말썽이네. 그리고 술 마시고 술병 난 게 내 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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