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나의 소설 풍혈風穴 [25]
충주경찰서 소대혁반장은 반원들을 몽땅 한자리에 모아놓고 수사회의를 열었다.
반장과 지창국, 조경남, 이승철과 홍일점 고선희, 이렇게 다섯 사람이 충주댐 건설현장소장들의 변사사건을 다시 한 번 분석해 보기 위해서였다.
"자, 그간에 개인 원한이나 수몰보상금에 불만이 많은 주민들까지 조사를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지. 이제는 다른 각도에서 좀 머리를 짜내 봐. 아주 작은 문제라도 괜찮아, 기탄없이 의견들을 내 보자고."
묵묵부답에 소반장이 인상을 그으며 빙 둘러보았다.
뭣들 하느냐는 일종의 압력에 조경남이 불쑥 입을 열었다.
"국과수에서 뭐 이렇다하게 보내주는 자료가 있어야 우리도 방향설정을 좀 하는데요."
"그거 자꾸 말해봐야 우리 입만 아파. 똑 같은 말을 왜 또 하나?"
조경남이 머쓱한 얼굴이 되고 이승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길도가 차를 상류로 몰고 간 것은 ....여자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닐까요? 비밀스런 만남 같은...."
"여자 때문에? 여자가 죽였다 이거야?"
지창국이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듯 퉁명스레 물었다.
"여자가 죽였든 안죽였든, 일단 그런 후미진 곳에는 데이트가 아니면 잘 안가는 장소다 이겁니다."
"야, 너나 여자꽁무니 쫓아서 그런 곳으로 데리고 다니지?"
조경남이 놀리자 모두 와르르 웃었는데 유독 소반장만은 웃지를 않았다.
"가만, 일리가 있다. 그런데....고형사는 꿀 먹었어?"
반장의 말뜻을 알아들은 고선희가 배시시웃었다.
"아, 웃지만 말고 반짝이는 아이디어 좀 내놔 봐!"
고선희는 등받이에 기대었던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자신 없이 말했다.
"이게, 뭐 반짝이는 건 아닌데요. 그런데 너무 장기전이 될까봐서..."
눈치 빠른 조경남이 얼른 알아듣고 되물었다.
"장기전이면, 누굴 미행하자고? 둘 다 죽어버렸는데 누굴 미행 해?"
"새로 온 소장 있잖아요? 두 명이나 죽었으니 세 번째 소장도 안 당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보호 차원에서라도 한번..."
"가만, 그거 ......하루 이틀에 끝나지는 않겠지?"
소반장의 이 말은 곧 시행에 들어간다는 신호였다.
충주댐은 이제 거의 완공단계에 와 있었다.
댐의 공사 마무리에 맞추어서 새로 닦은 도로의 포장공사를 하느라 뜨거운 아스콘을 쏟아 놓은 덤프트럭을 따라가며 로울러카가 계속 붕붕거렸다.
댐이 보이는 길목에 은회색 포니의 운전대에 앉아 있는 이승철이 따분해서 죽을 지경이라는 듯이 고선희에게 투덜거렸다.
"반짝이는 고선배 아이디어 때문에 나는 몸살이 납니다. 사흘도리로 소장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니 원!"
"너무 그러지 마, 나도 반장이 그렇게 재깍 받아들일 줄은 몰랐어."
고선희는 이제 막 갓 서른의 처녀이고 이승철은 27살 총각이었다.
둘은 서로 티격태격 하기는 해도 사내에서는 가장 호흡이 잘 맞는 편이었다.
요즈음 미행을 하는 전기호소장은 먼저 소장들 보다 더욱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는 올해 마흔 세 살로 이런 대형 공사현장 소장으로는 파격적으로 젊었다.
나이도 그렇지만 큰 키와 헌칠한 외모로 토목공사 현장보다는 외교관이 훨씬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젊은 소장이 부임한 것은 앞선 두 소장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 때문이라고 한다.
전기호도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이사를 오지 못하고 충주 시내에 있는 M장에 숙소를 정해서 현장으로 출퇴근을 하였는데 사람이 워낙 정확하여서 오후 6시 30분 경 이면 어김없이 이 앞으로 지나갔다.
"가만, 저기 온다."
후사경에 눈을 떼지 않던 고선희의 말에 이승철이 부르릉 시동을 걸고는 슬금슬금 출발을 하였다.
"어어~, 먼저 가면 어떻게?"
책망을 들어도 이승철은 대꾸도 않고 슬금슬금 기어가듯 차를 몰자 뒤따라 온 전기호의 차가 크랙숀을 울렸다.
이승철은 옆으로 비켰다가 전기호를 앞세워 놓고는 푸념조로 말했다.
"오늘도 보나마나 M장으로 직행이지, 아~, 또 여관 창문이나 쳐다보며 불 꺼지기만 기다려야 하다니..."
"왔다 갔다 하다가 사람 놓치는 것보다야 백배 났지 뭘 그래?"
"그래도 그렇지요. 어차피 미행을 했으면 총격전은 않더라도 좀 스릴도 있고 해야지 이거야 원. 젊은 남자가 한번 여관방에 박히면 두문불출이니 이해가 안가요. 자기도 남잔데 어찌 그리 수도승처럼 매일 똑같아?"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럼 뭐, 일없이 나돌아 다녀야 남자야?'
고선희는 앞차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면박을 주었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객지에 홀로 나와 있는 남자가 저녁이면 술집도 가고 여자들도 만나고 해야 정상이지요."
"전소장은 유부남이야, 여자는 무슨?"
"우리 고선배는 너무 순진 하신가요? 아님,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시나요?"
고선희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빨리 오른쪽으로 꺾어!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좀 집어치우고 앞차나 잘 봐!"
그러나 전기호는 시내의 서점에 들러서 약 20분 정도 있다가 책을 몇권 들고 나오더니 차를 몰아 M장으로 직행을 하였다.
다음날은 어제보다 더 가까운 곳에 검은색 차가 서 있었고 차안에는 고선희와 지창국이 앉아있었다.
"고형사는 퇴근하면 뭐 하나?"
"뭐 친구도 만나고 책도 읽고 그러죠."
고선희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매일 이렇게 죽은 말 지키듯 하다가 좋은 세월 다가고...시집도 가야지!"
고선희는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추잠자리 한마리가 차창에 부딪힐 듯 다가오자 고선희도 질세라 고추잠자리를 향해서 눈을 부릅떴다.
고선희의 딴청에 머쓱해진 지창국이 슬슬 턱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그러게요. 칸트처럼 정확한 사람인데요. 아아....저기 차가 오기는 하는데...도대체 몇대야?"
정문에서 한꺼번에 네 대나 몰려 나왔다.
차들이 지나가자 지창국은 천천히 차를 출발시키면서 말했다.
"어디 몰려가서 회식을 하려나 본데.....그러고 보니 나도 슬슬 시장기가 드네. 그나저나 고형사 오늘은 왜 그래 침울 해?"
"날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하려니 은근히 부아가 나서 그래요."
"하긴, 고형사는 날마다 나오지, 그렇지만 이게 누구 아이디어야? 게다가 매일 남자 바꿔가며 데이트 하는 재미도 있고."
한참을 달리던 지창국이 또 시답잖은 소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말야, 총각도 하나 있잖아? 가만..... 이거 수안보 가는 거 아닌가?"
앞차는 벌써 호암지 근처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차들은 금방 시내를 벗어나서 강변도로를 달렸다.
이렇게 되면 교대고 뭐고 없이 그냥 두 사람이 따라 붙을 수밖에 없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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