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은 지구의 일부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사람들에겐 하늘을 향해 솟은 장엄한 고산위용에 경외심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감정이지만 그곳을 오르는 산악인들에겐 때론 끔찍스럽고 ‘잔인한 경기장’이 된다.
남미 불리비아 안데스의 일리마니산으로 떠나는 우리도 어머니 품속 같은 근교 산에서 자유와 평화 안식 건강 등을 만끽하던 남산골 샌님이 어느날 갑자기 갑옷과 투구로 완전무장 한 서구적 검투사 버전으로 전환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물론 원정등반에 걸맞은 체력단련과 기술연마를 한다. 고산에선 신체적인 조건보다 정신력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흔히 말하지만 몸이 받쳐주어야 강인한 정신력도 발휘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 산행이었다.
고산 등반자에게 가장 큰 장애는 고소 증입니다. 5천 미터이상 고산의 산소량은 평지의 절반수준에 불과합니다. 평지에서 하루 산소 흡입량 30%인 150리터 정도가 뇌활동을 위한 필수량이라 합니다. 고산의 희박한 산소량은 뇌활동에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고소증세는 두통 식욕부진 구토 판단장애를 일으키며 심하면 폐부종으로 목숨도 잃습니다. 또 기압이 현저히 낮아 비등점이 70도 정도이어서 취사가 어렵고 저기압상태에서의 신체적인 변화가 옵니다. 저기압이면 평지에서도 온 몸이 쑤신다고 하듯이 신체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제일 먼저 악화됩니다.
다음 장애는 날씨입니다. 고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합니다. 고산의 악천후엔 인간은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이도 고만고만, 고산 등반경력도 고만고만한 우리 세 사람,
5500미터 고도에 설영한 하이캠프에서 날씨가 개선되기를 기다리며 이틀 밤째 텐트 속에서 시체처럼 꼼짝하지않고 누워있다.
여전히 바람은 텐트를 요란스럽게 찌부러뜨리고 세우기를 반복하는 중에 전쟁터 폭음과 같은 천둥소리가 가물거리는 의식을 깨운다.
작년 아니 재작년부터 산악회의 선배인 의사들과 주치의는 나의 고산 등반을 적극 말렸다.
약해진 심장기능과 고혈압, 무릎통증, 특히 심각한 것은 고산에서 안압상승으로 시각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프스, 안데스, 히말라야를 다녀왔다. 거기에 자신감이 생겨 별다른 조바심 없이 떠난 산행이었다. 이번엔 토악질이 나를 잡았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옆의 대원이 벌떡 일어나 새까만 토사물을 내 침낭에 뿜어댄다. 올해 새해맞이 산행에서 술 취한 친구가 내 침낭에 토한 일을 빗대어 금년은 토사물의 은사가 충만하다며 침낭을 닦아주고 있다. 나는 어제 올라 올 때 이미 토하고 싸서 넘어 올게 하나도 없는데도 모든 음식은 물론 냄새에도 구토 반응을 일으킨다. 이게 바로 환장(換腸)이다. 부족한 산소량과 기압으로 소화활동이 중지되었는지 물만 마셔도 토했다. 바람은 수그러 들 기미가 없다. 가물대는 의식은 누워있는 바위능선이 흔들대는가 하면 때론 유체이탈 같은 가위눌린 꿈에 휘둘리다 깨어 농약 먹은 벌레처럼 비참하게 헐떡이다 다시 땅속으로 침잠 되기를 반복하였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체력이 떨어질 것 같아 가이드를 불러 오늘 정상공격을 하자고 물었다.
잠시 후 돌아 온 가이드는 아래동네와 전화한 시늉을 하며 ‘투 다이 웨더 노굿’ 또는 ‘쓰리 다이, 훠 다이, 웨더 노굿’이라며 손을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