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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자격(?)을 상실하면서 '거지도 아니면서 거지근성이 뿌리 깊은 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한국사회도 그 손가락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든지, 불우한 처지를 동정하지 않으면 되레 화를 낸다든지, 뭐든지 남의 도움을 빌어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빌어먹는 주제에 큰소리치기도 한다. 지난해 3월에도 제주도 보건복지여성국장이 기자들에게 복지정책이 잘 시행되고 있다는 브리핑한답시고 "제주에 노숙자는 단 한 명도 없고, 극빈자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고 있으며, 현재 급식을 받는 이들은 거지근성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발언했다가 곤욕을 치른 끝에 사과하기도 했다.
복지담당 공무원의 발언치고는 지나쳤다 하더라도 당국에서 생계를 보조해주는데도 노숙하며 빌어먹는 사람들의 '거지근성'을 나무라는 언론은 없어 뒤끝이 씁쓸했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전동차 내에서 고아출신이라고 밝힌 20대 남녀가 "예식장 빌릴 돈이 없어 우리들이 처음 만난 이 5호선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고 울먹이면서 혼인서약을 한 뒤 서로 반지를 끼워주고 포옹하는 등 '지하철 결혼식'을 올렸다고 해서 화제다.
'지하철 결혼식'이 인터넷 인기검색어 1위에 올라와 있는 가운데 '지하철 커플, 신혼여행 보내줍시다'라는 네티즌 청원이 시작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7,000여명이 서명했는가 하면 무료 웨딩촬영은 물론 결혼식과 신혼여행까지 약속하면서 이들의 신상을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업체들이 줄을 서고 있다.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가슴이 뭉클한가? 천만에. 진짜 결혼식을 올린 것이라면 "거지근성으로 축하까지 구걸하는 거냐?"고 꿀밤을 쥐어박아야 한다.
돈 없으면 교회나 절간에 가서 냉수 한 사발 떠놓고 맞절을 올리든지, 그게 서러우면 이를 악물고 돈을 벌 때까지 결혼식을 미루든지, 그것마저 싫으면 아예 결혼을 하지 말든지! 아무쪼록 엽기 발랄 좋아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퍼포먼스'나 장난이기를 바란다.
장난으로라도 거지근성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기를 바란다. 걸불병행(乞不竝行), 거지도 나란히 다니면서 구걸하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정치한답시고 표를 구걸하고, 가난이 무슨 권리라도 되듯이 떼지어 몰려다니면서 국가나 사회의 도움을 강요하고, 남 보기에는 잘 먹고 잘 사는데도 욕심 더 채우기 위해 남의 도움을 동냥질하고....
거지근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진짜 거지들이 비웃을까봐 두렵다. 기부는 'give'가 아니라 'donation'에 가깝다. 'donation'의 뿌리는 선물 따위를 대가 없이 준다는 의미의 라틴어 'donatus'로서 'donatus'는 '선물'이라는 의미의 'donum'에서 나왔다. 어쩔 수 없어서 마지못해 주는 것은 기부가 아니다.
변칙 상속과 정경유착 등으로 인해 궁지에 몰려 있는 삼성그룹이 8000억원을 '조건없이' 내놓은 것은 '기부'인가? '기브'인가? '도네이션'인가?
삼성측은 '사회환원'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억지로 뜯겼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돈의 운용방식에 대해 이런 저런 의견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궁극적인 관리는 시민사회가 하더라도 소모적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과정과 절차를 관리해 줄 필요가 있다"고 교통정리(?)를 해준 것도 그런 인식을 대변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번 돈이므로 삼성 돈이 아니고, 불법 대선자금 지원과 변칙 상속으로 인해 궁지에 몰려서 내놓은 것이므로 삼성측의 의사를 존중할 필요도 없으며, 따지자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야 할 '임자 없는 돈'이므로 정부가 관리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읽혀진다.
거액을 내놓고도 생색을 내기는커녕 '처분대로 하십쇼'하고 납작 엎드려 있는 이건희 회장의 처지가 딱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그 또한 자업자득일 것이다.
주고받는 태도가 역겹다. 삼성측은 8천억원 가운데 이재용 등 이 회장 자녀들이 편법증여로 얻은 추정이익 1천3백억원을 포함시켰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이재용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거니와 이병철-이건희-이재용 삼대의 편법 상속과 정경유착으로 끼친 죄는 삼성그룹 전체를 사회에 환원해도 씻지 못한다.
진심으로 반성하려면 불법선거자금 지원 등에 대한 벌부터 달게 받아야 하고 그간 떼먹은 상속세 증여세는 물론 왜곡된 지배구조로 벌어들인 불로소득에 대해 세금을 소급 납부해야 한다.
그런 파렴치 회사가 내놓은 돈을 정부가 관리하여 생색을 내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도둑놈이 죄를 씻겠다며 도둑질한 돈의 일부를 교회에 헌금하자 주인에게 돌려주기는커녕 얼씨구나 좋다 교회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러운 돈으로 국민들을 더 이상 우롱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유층과 극빈층이 다툴 때 중산층은 섣불리 한 쪽을 편을 들어봤자 좋을 게 없으므로 침묵을 지킨다. 그래서 '침묵의 다수(silent majority)'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침묵'이 사회를 이끌어간다. 자신을 극빈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불만이 팽배해지고, 자신을 부유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과소비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적당히 절제하고 적당히 소비하는 중산층이 많아지면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는 데 이의를 달지 못한다. 서구 민주주의의 근간인 시민정신의 뿌리를 중산층에서 찾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국개발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외환위기가 닥쳤던 97년의 중산층 비율은 68.5%였으나 지난 2004년에는 63.9%로 무려 4.6% 포인트나 줄었다. 한국 인구를 4천800만명이라고 할 때 무려 180만명 정도가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추락했다는 의미다. 또 최근의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소득기준 상위 10%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776만3천731원으로서 하위 10% 가구의 42만7천684원의 18.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양극화 해소'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와 민간경제연구소들이 조세개혁 등을 통한 '중산층 육성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진단과 처방이 잘못 됐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지난 97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550달러, 이후 외환위기로 인해 1만 달러 아래로 떨어졌다가 2002년에 다시 1만1400달러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1만6500달러를 기록하여 2만달러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국민들의 생활수준 또한 과거보다는 훨씬 향상됐다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소득이 늘고 생활수준이 향상됐는데도 중산층은 엷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모순'을 정부와 일각에서는 '소득 분배의 양극화 증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월 소득 1000만원이 넘는 부자들 중 60%만 '중산층 이상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30%는 자신이 속한 계층이 '중의 하' 또는 '하의 상'이라 답하고 심지어 10%는 '하의 하'라 생각하고 있다"는 한 경제연구소의 조사보고서는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모르겠다.
어느 사회든 계층은 상수(常數)가 아니라 변수(變數)다. 그리고 그 변수의 폭은 사회의 안정성과 정비례한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자신이 극빈층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 또한 그와 무관치 않다. 가진 자'(Haves)와 '가지지 못한 자'(Have-Nots) 사이에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면서 줄 서기를 강요해왔기 때문에 '침묵의 다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데 토를 달지 못한다. 물질의 양극화보다 의식의 양극화가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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