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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8/01/07
 

[스크랩] 최근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눈물’이라는 글이

2009.05.21 17:12 | 생활의발견 | 이첨지

http://kr.blog.yahoo.com/rndrma/5549 주소복사

최근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눈물’이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성세대의 땀과 노력,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의 일화를 담은 이 글에
20, 30대 네티즌들은 <우리 세대의 가벼움>을 반성하게 됐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며 공감을 표명하고 있다.
이 글은 육군사관학교의 김충배 교장이
생도 교육에 사용해 그동안 ‘육사교장의 편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 작성자는 예비역 장성인 김유복(金遺腹·79)씨. 
그가 로터리코리아(한국로터리의 기관지)에 기고한 글은
“60대를 수구 골통이라 몰아붙이는 젊은이들이여!
이 글을 읽어 보렴”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서독 간호학교 유학생 출발인사차 예방1(65.3.24) 청와대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싶어요. 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강당에 입장하시는 박대통령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였다. 

          

              광부들의 숙소 방문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행사도중 눈물을 닦으시는 육여사님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해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됐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에르하르트 수상과 회담(1964.12.9) 수상관저 (사진 가운데 분이 백영훈 통역관)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 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는 우리들 신,구 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 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뤼브케 대통령(70세)과 박대통령(47세) 의장대 사열

                             (서독 본 도착)

행복한 가정 생활

 



행복한 가정 생활



행복한 가정을 위한 조언...



가족간의 신뢰로 똘똘 뭉쳐라

그리고 가급적 식사를 함께 하라.



잘못을 다시 끄집어 내어 재론하지 않고,

크고 작은 가족사는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하라.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같이 하라.



집에 드나들 때 인사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밝고 크게 하라.



엄마, 아빠, 아내, 남편에게 사랑을 담아

안마 서비스를 해주던지 스킨싶을 자주하라.



온 가족이 함께 영화, 연극, 콘써트 등

문화생활을 같이 즐기며 대화를 나누어라.



부모와 자녀간의 데이트를 자주하고,

가끔 가족을 위한 특별 식탁이 차려보라.



가정은 도덕의 학교이다

스위스 교육개혁가 페스탈로치의 말입니다



가정은 우리인간에게 도덕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가정교육은 인간의 성격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인생의 여러 가지 진리와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씨에서 사랑을 배우고

아버지의 엄격한 태도에서 권위를 배우게 됩니다.



형제자매의 동기애에서 협동정신을 배우며

서로 웃고 즐기는 화목한

분위기에서 이해와 단결을 배웁니다.



또 서로 희생하고 양보하는

생활에서 예의와 질서를 배웁니다.



어린이의 경우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제일 길고 또 제일 중요 합니다.



어린이는 어머니의

무릎에서 어머니의 표정을 바라보며

인생을 배우고 또한 성격이 형성 됩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만나는 최초의

스승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품은 어린이 학교요,

어머니의 얼굴은 어린이의 교과서입니다.



인간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도덕을 가정이라는 학교에서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른 사회건설의 기초는

바른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사회의 정화는 먼저

가정의 정화에서부터 비롯하는 것입니다.



- 안병욱 명상록 中에서 -펌
 
행복 하십시요.  수림결혼정보


95세의 생일날 쓴 일기

흰매화2.jpg

나는 65세때 직장에서 정년 퇴직을 했습니다. 30년 전 이지요.
내 분야는 특수한 전문직 이어서 남들 보다는 더 오래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불경기에 직장에서 명예퇴직이니 구조조정 이니 하는 퇴직의 회오리 바람이 거세게 불때도 내가 65세 까지 끄덕없이 버티며 정해진 정년에 명예롭게 퇴직 할 수 있었던 것은 직장에서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 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나는 젊어서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그 분야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는 실력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힘을 기울였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 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끝없이 실력을 닦았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덕에 아무도 그 분야에서 내 실력을 능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젊은이도 나를 따라 잡을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덕분에 나는 무척 명예스럽게 퇴직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정년이 되자 직장에서는 내게 좀 더 기회를 주려고 했지만 나는 사양 했어요.

65세의 나이쯤 되고 보니 나도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연금을 받으며 안락한 여생을 즐기다 남은 인생을 마감 하고픈 생각이 들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나는 평생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기에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때 자식 들에게 생일 케이크를 받는순간 얼마나 내 인생에 대해 통한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 했지만 그 이후 30년의 삶은 가장 부끄럽고 후회가 되고 비통한 삶 이었습니다.

나는 정년 퇴직 후에 이제 나는 다 살았다. 남은 생애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덤으로 주어졌을 뿐이다 하는 그저 그런 생각만 하면서 하루하루를 허송세월 했던 것 입니다.

죽기를 기다리는 삶 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덧없고 희망없는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던 것입니다.

30년 이라는 세월은 지금의 내 나이 95세로 따져 보아도 생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시간 입니다.

내가 95년의 생일을 맞으면서 가장 후회한 것은 왜 30년이라는 소중한 앤생을 무기력하게 낭비 하면서 살았을까 하는 점 입니다.

만일 내가 정년퇴직 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 했다면 전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 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다른 무엇을 시작 하기에 너무 늦었고 늙었다고 생각 했던것이 큰 잘못 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 이지만 건강하고 정신이 또렷합니다. 혹시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을 더 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부터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어학 공부를 다시 시작 할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혹시 10년 후에라도 왜 95살 때 공부를 시작 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Animation6.gif                                                                           

 

블로거님!..이 글은 삭제해도 무방합니다.

2009.03.27 23:12 | 생활의발견 | 비타민님

http://kr.blog.yahoo.com/rndrma/4892 주소복사

Magna Carta 법의 존중에 대하여

 

헌법은 국가에 관한 근본규범을 정하는 법으로서 국가의 통치의 조직과 작용의 원칙, 즉 국가의 구성.조직.작용에 관한 根本法.最高法.授權法이며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규범이다.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 7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 10 29

비타민님 블로거는 위의 사항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민주시민임을 자부합니다.

법은 절대 존중되어야 합니다.But,,,그러나 헌법 전문에 위배되거나 알송 달송한

편법의 제정을 민주주의 선량이 다수결이란 편법으로 특정법을 제정하여,

특별히 무지하고 부정한 정치인의 패거리들이 작당 제정된 법이라도 존중되어야

함을 아는 비타민님들은 다음 사항을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지금 야기된 야후의 불편한 일들은 헌법에 위배돤 사항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분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어쩔 수가 없지만

법의 권위와 헌법을 연구하고 이로 밥을 먹는 전문직 종사자들은 ¿..

이러한 불편에 말씀을 하시고진살의 위대함을 밝히소서.

국가의 100 대계를 위해 법의 정의를 실현하시라..

선하고 약한 백성들은 먹고 살기도 힘이든데

어찌?...그대들의 부정함과 위법에 항거를 하겠는가?...

그대의 친족이고,,, 배달의 자손임을 압소서

                      비타민님의 비겁한 숨어서하는 진정의 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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