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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마루 넘어 꿈과 희망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높고 거친 산의 고갯마루를 지나면 다른 세상이 된다. 날씨가 다르고, 말과 사람도 달랐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 그런 고갯마루를 넘는 일이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높은 고갯마루를 넘기 위해서는 꼬박 하루를 걸어야 했고, 고갯길에 만날 산적이나 호랑이도 걱정해야 했다.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인 조령(鳥嶺)은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여서 ‘새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신선봉(967m)과 조령산(1,017 m)의 사이, 백두대간의 척추를 넘는 그 길은 해발고도 642m이다. 고려시대 이후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가장 큰길이었는데, '영남'이란 명칭도 조령의 남쪽지방이란 뜻이다. 영동과 영서를 나누는 대관령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갯길인 셈이다.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이었던 새재는 입신양명을 꿈꾸던 선비들은 과거를 보기 위해 넘었던 길이고, 등짐을 진 보부상들도 생계를 위해 그 길을 넘었다. 세금으로 받은 곡식들과 궁중 진상품등 영남의 산물들도 그 고갯길을 넘어 충주에 이르고, 그곳에서 남한강 뱃길을 따라 서울의 한강 나루터까지 연결되었다.
새재는 험난한 지세에 바탕을 둔 군사상의 요충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도 왜적의 진로를 험준한 고갯길인 조령에서 막으려 했었다. 하지만 이미 적들에게 그곳을 빼앗겨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전투를 했지만 패하고 말았다.
그 뒤 조정에서는 이 실책을 크게 후회했고, 조령에 대대적으로 관문을 설치할 것을 논의해 오다가 숙종 때 3개의 관문을 완성했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 제2관문을 조동문 또는 조곡관, 제3관문을 조령관이라 한다. 세 관문 안에는 진지와 군창지 등이 아직 남아 있다.
세 개의 관문을 거쳐 새재로 오르는 단풍나무 길은 가을 여행에 더 아름다운 길이다. 7km 정도의 등산로는 3시간 정도 걸리는 길인데, 어린 자녀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제3관문인 조령관에서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 편하다. 또한, 제1관문 안쪽에 있는 KBS 촬영장도 문경새재의 여행을 더 즐겁게 해주는 곳이다.
 제1관문의 앞, 과거길 표석...

제1관문...

조령원터

교귀정과 소나무

제2관문...

새재박물관...

안내판...

건강지압길...






문경 촬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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