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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전설독후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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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사회 조직이 거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매일 나사만 돌리며 무의미한 삶을 사는 개인을 통해 기계에 종속되어버린 인간의 모습의 삶은 비단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회사 인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인은 스스로의 삶을 거대 조직에 내맡기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작은 사회\'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흔히 접할 수 있지만, 크기를 말할 때 항상 그 비교대상이 필요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크고 작음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개인의 삶의 목적은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다.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서 거대한 사회구조는 인간을 사회에 구속하여 행복을 가로막고, 그렇다고 해서 사회의 크기를 줄이는 것은 큰 발전을 할 수 없게 한다. 진정한 행복은 이렇게 \'크고 작음\'에만 집착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그 인생의 근본 목적과 본질에 대한 탐구가 있을 때 가능할 수 있는 것 같다.\'한번의 날개짓으로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 있다\' 는 카오스 이론에서 규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 날 때 우리는 사회를 올바른 시각으로 판단하여, 거대조직에서 오는 문제점을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주인공처럼 넓은 세상보다는 배 안의 세상이 자기에게 행복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나의 삶은 어떠한가? 죽음이 두려워 살고 삶으로 죽음을 멀리하려 하지 않았는가? 내가 존재함으로 세상이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지 않음으로 세상이 무가치해지는 이기주의적 삶을 살지 않았는가? 그렇다. 이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내게 또 다른 삶의 질을 선물해 주셨다. 주인공에게 새로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이었다. 보통 쉽게 생각하면 목숨을 버림으로 삶을 얻는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살려 발버둥치며 그렇게 죽는 인생이 있다면 헛된 삶을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당황하며 죽음을 맡지 말라!\' 이게 주인공이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오늘 내 작은 삶의 구석구석을 살펴 죽음으로 새 삶을 얻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겠다.나에게 있어 미래는 아직 가보지 아니한 길이다. 낯선곳에 대한 두려움이 주인공처럼 사실 제게도 많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담대해 보이는 것처럼 보일 뿐 속 좁은 내 안에선 언제나 두려움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듯 하다. 사실 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과거에 대한 두려움이라 생각했다. 인생의 모래밭 길을 걸어오면서 남긴 아름답지 못한 발자국 때문이었을 것이라 여겨졌지만 내 안에 숨어 있는 두려움은 주인공의 삶을 보며 사실 미래에 대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어렵다는 이 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삶이란 대수롭지 않으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문제와 어려움이 가혹하다고 불평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문제만 가장 특별하다고 믿으며, 왜 다른 사람들은 당하지 않는데 자신과 가족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만 이같이 고통스런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불평한다.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일 것이다. 주인공처럼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 행복의 목표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면 고통 역시 가르침으로 다가갈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내 인생에 처음으로 낯선 길에 대한 구체적인 혜안을 느끼게 해 준 영화이다.
태그 : / 전설 / 피아니스트 / 피아니스트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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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국가독후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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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읽어도 떠오르지 않는 의문이 깊은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보는 선명함처럼 나에게 다가 왔다. ‘국가’를 읽으면서,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선생님께 들은 플라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시절 \'철인 정치\'와 \'동굴…\' 얘기를 하는 플라톤에 대해 꽉 막힌 생각을 품은 철학자쯤으로 생각했었다. 이러한 나의 편견은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플라톤의 ‘국가’의 내용은 \'정의롭지만 부정하게 보이는 사람\', \'부정하지만, 정의롭게 보이는 사람\'의 예를 들어, 정의와 부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의 내용 전반에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 아데이만토스이 문답법으로 되어있고, 소크라테스의 주장-비록 플라톤은 대화의 형식을 빌려 내용을 전개시키지만-이 모든 내용의 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딱딱하고 방대한 분량에 조금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를 읽어 가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흥미를 안겨주었다. 그 이유는 \'과연 내가 이 책에서 뭔가 발견 한 것인가?\'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개인과 국가에 대한 책의 내용을 보자면, 이상적인 국가의 운영과 통치에 대해 대화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본다. 그런데, 책에 나온 비유를 들자면, \'개인들은 작은 글씨요, 국가는 큰 글씨\'라는 비유에서, 큰 글씨가 작은 글씨보다 명료하게 보인다‘라는 것은 크게 보이는 국가로 개인들이 뭉쳐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국가라는 커다란 숲에 가려진 개인의 욕구나 의지는 무시되기 쉽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플라톤이 생각하는 규모가 작은 개인 생활보다는 국가에서 정의를 관찰하기 쉽다는 말은 나에게는 \'철인통치\' 정도를 외치는 철학자의 궁색한 자기 합리화라고 보여졌다. 국가가 개인의 거의 모든 영역을 침범하는 \'플라톤의 국가\'는 그가 이야기하는 이상국가나 이데아론을 그럴법하지 못한 주장들로 생각시킨다.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생각을 보자면, 국가를 통치하는 통치자들만이 정의로울 수 있다는 얘긴데, 이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시의 사람들은 플라톤의 의견에 어떤 반응을 했을지 알 수 없지만, 오늘날을 살고 있는 이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 \'통치자들의 정의\'는 심각한 반감을 살게 뻔하다. 이 내용에서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자 됨과 뭔가 타협적이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나 보이게 한다. 과연 \'정의\'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어떻게 판단될 수 있을까? \'정의\'라는 말을 어떤식으로 표현을 하든 그 개념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책에서 얘기하는 플라톤의 정의의 개념은 내게 그리 썩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점점 책 속에 빠지며, 나는 21C 신의 인식개념과 플라톤 시대의 신에 대한 인식개념이 어떻게 다른지 정말 궁금해졌으며, 글라우콘의 예를 통한 전개방식에서 과연 타당성 있는 예를 들었는지가 참으로 의문이었고, 올바름과 올바르지 못함의 상황에 따른 변화성에 대한 나에 견해와 올바른 것보다 올바르지 못한 것이 더 이득이 된다고 하는 것에 대해 반론을 펴나가고 싶다는 충동에 빠졌다. 참으로 놀라웠던 점은 플라톤 시대에 신에 대한 인간들에 인식개념이 내가 사는 지금에 현실과 무척이나 다르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실 21세기 현재의 신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절대적 모순이 없는 존재로 인식되어지는데 플라톤 시대의 신은 인간에게 관심도 없을 뿐더러 올바르지 못함이 있다고 해도 재물과 기도를 통하면 눈감아 주는 우리에 공무원 모습이 연상되어지며 절대적이지도 않고 모순이 많은 신들로 묘사되어져 완전하지 못한 인간과 같은 모습에 신으로 비쳐진다. 올바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이 나는 참 맘에 들었다. 올바름, 그건 그냥 돈계산 정확하고 속이지 않는 건 아니라는 것, 그렇다고 강자의 논리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그렇다면 적합한 정치체제는 무엇이냐로 발전하고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시교육과 철학자, 동굴비유를 통한 이데아적 이상으로의 접근으로서 정치의 개념이 등장한다.
태그 : / 플라톤의 국가 / 플라톤 /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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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독후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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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유한킴벌리는 CEO의 경영 철학 뿐만 아니라 고통을 감당한 인내, 그리고 사람을 존중하는 사고방식을 높이 평가한다. CEO인 문국현 사장의 경영 마인드는 사람의 능력을 최대한 존중하고, 그 능력을 최대한 끄집어내는 인간 존중의 경영이다. 직원들의 몸이 건강하고, 자기계발을 할 시간이 주어지고, 이것은 개개인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구조조정은 안일한 생각이며 인력 구조조정을 일삼는 것은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감추기 위한 무능한 경영자의 핑계에 불과하다고 역설한다.통틀어서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유한킴벌리에는 권위주의적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새벽이면 자발적으로 나와 공장을 청소하는 공장장, 직원들이 상부에 표시된, 여느 회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조직도, 직원을 조직의 주인으로 대하는 그와 같은 태도 속에서 직원들은 회사를 진정 자신의 것으로 여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결국 가시적인 생산성의 향상으로 나타났다. 교육을 통해 습득한 기술로 인해 직원들은 망가진 기기를 스스로 고칠 수 있었다. 그들은 노동의 과정 속에서 느낀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털어놓았고, 그러한 아이디어들은 작업 환경을 그리고 생산품에 있어서의 변화로 이어졌다. 그들에게 유한킴벌리는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고픈 직장일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인간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경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 위기 앞에서 많은 기업들은 유한킴벌리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 이태백 등 우습지도 않은 용어가 보편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유한킴벌리의 사례는 적지 않은 교훈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결코 혼자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한 회사가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이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음을 회사는 기억해야만 한다. 일하는 이들에게 인간다운 환경을 보장할 때 그들은 비로소 그들이 투자한 비용보다 더욱 많은 생산상의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동시에 회사와 노동자 모두 변화한 시대에 대해 인식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제한된 일자리를 나누는 속에서 보다 많은 이들이 노동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짧아진 노동시간은 생산 질의 향상과 동시에 자기 개발의 기회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말이다. 맺으며 제목 탓인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각인된 단어는 \'희망\'이었다. 그 희망은 내 안에서 생긴 희망이 아니라, 외부에서 발견한 그것이다.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는 \'잘 좀 하지\' 하는 외부의 원망도 생기는 게 사실인지라, 이 책의 메시지가 더욱 반가웠다. 사실, 유한킴벌리의 4조 2교대나 평생교육제도 자체보다도 그러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실제 작업장에 적용하여 성공할 수 있었던 경영진의 리더십과 노사간의 신뢰가 한층 더 가슴에 다가왔다.책에는 한국형 새로운 상생의 모델로 유한킴벌리의 독특한 노동방식인 4조교대제를 비롯해 평생교육제도나 복지제도 등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자부심이었다. 물론 그 뒤에는 직원들의 각별한 회사만족과 여가생활 등이 있었다. \"단 한번도 회사를 떠날 거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는 어느 직원의 인터뷰가 진심으로 다가오면서 왠지 가슴이 찡했다. 나는 국가든 회사든 뭐든 어떤 조직에 대해 그 조직원이 자부심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 자존심이고, 만족이고, 미래를 보장받는다는 것이고, 그래서 더욱 의욕을 불러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태그 : / 문국현 / 유한킴벌리 / 유한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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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와국제정치서평.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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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근대화와 민족주의 제1장 근(현)대화의 다양한 길 제2장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제3장 20세기의 민족주의 제4장 민족주의와 국제사회
제2부 국제정치와 민족주의 제5장 갈등의 신국제정치와 국가통합 제6장 중국 태평천국의 민족주의 정치사상 (동학혁명과 비교하여) 제7장 미국민족주의의 전개
제3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제8장 마르크스의 민족주의의 이해에 대하여 제9장 민족주의시각의 변화에 대하여 제10장 중국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제11장 네루의 민족주의 정치사상(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위의 각 시기 어느 과제에서도 한국민족주의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였다. 독립을 잃었으며, 민족분단을 막지 못했으며, 자주자립체제를 이룩하지 못하였고, 대외 종속을 탈피하지 못하였다. 통일국가 형성으로 다가가지 못하였고, 세계화의 돌풍 아래 국가주권과 민족 정체성의 약화를 막지 못하고 있다.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국민족주의가 정치이념으로서 개발되지 못했고 따라서 국가-민족 발전의 이념적 기반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한국민족주의가 체계적인 이념으로 발전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민족주의를 견인할 시민계급이 형성되지 못한데다가 대외 의존세력이 지배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민족주의 시민 세력이 피어나기 전에 일제에 강점되었고, 해방 이후 분단구조에서 친미 세력이 지배권을 장악했다. 자본주의 산업화를 국제자본과 연합한 세력이 주도했으며, 안보 역시 미국에 의존했기 때문에 강력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대두하지 못하였다. 해방 이후 정치-경제-군사-문화의 모든 부문에서 친미 의존 세력이 지배권을 장악한 결과, 정치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가 개발될 수 없었다.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민족주의는 주로 반 정권 또는 민중 세력에서 두드러진 이념이 되었다. 이승만 정권이 하야한 뒤 장면 정부 하에서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들과 혁신세력들이 한미행정협정 개악 반대와 남북 학생회담 등을 외치면서 적극적인 민족주의 공세를 펼쳤고,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학생-재야 세력들의 민중-민족운동이 기세를 떨쳤다. 정치적 민주화가 달성된 뒤 노태우 정부 아래 한국의 정부들은 민족주의 이념의 통일목표를 일부 받아들여 대 북한 유화정책을 펼치고 적극적인 남북대화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대화도 정권의 정치적 목표에 종속되어 진정한 민족통일의 이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이와 같은 한국민족주의의 역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첫째로 한국민족주의는 정치이념으로 개발되지 못하였다.둘째로 외세와 이에 편승한 비민족-반민족 세력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지배층을 이루었다.셋째로 민족주의 세력은 해방 뒤 독립국가건설 과정에서 힘을 잃고 오히려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넷째로 한국민족주의는 재야 세력과 반정부 세력, 일부 지식인, 그리고 민중세력이 전개한 반체제 저항운동의 이념적 동력이 되어,안으로는 정치적 민주화에 공헌하고 밖으로는 대한민국이 외세의 지배에 완전히 넘어가는 것을 막는 방패막이 구실을 하였다.이렇게 볼 때 한국민족주의가 보였던 성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 한계도 있었다. 그 한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첫째로 그것은 반체제․민중세력에 국한되었다. 다시 말해 민족주의가 민중에게만 있고 지배세력에서는 미약했다. 둘째로 그것은 구체적인 이념이나 정책으로 개발되기보다는 대중적 정념으로만 존재했다. 다시 말해 ‘정치적 민족주의’는 미약하고 ‘정념적 민족주의’만 강했다. 이러한 점들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동학민족주의의 정치사상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 학문의 정립과 참교육을 통해 민족의 정치발전과 평화통일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그러하다. 민족주의가 많은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한 우리는 민족주의에 숨겨져 있는 깊은 뜻에도 감탄을 감추지 못한다.
태그 : / 국제정치 / 민족주의 /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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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문화의몰락서평.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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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런 몰락의 해결 방법으로써, 수도자적인 해법을 제안한다. 이 대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집단주의 적인 것의 대안을 거부하고, 개인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대안이 상당히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대안은 지난 1960년대부터 존재 했으며, 이러한 개별적인 대안은 미국사회에 대한 흐름을 잘 판단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저자의 주장과는 반대로 보다 집단적으로 활성화 되는 광범위한 것만이 지금 미국의 부정적인 흐름들을 막아낼 수 있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그런데 확실한 것은, 저자가 글을 통해 미국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우리나라 이야기 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나라 얘기인것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라는 구체적인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화된 세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저자는 이렇게 미국화 된 것의 한계를 지적하며, 그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그리고 미국화라는 것도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우리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이 든다.또, 구체적으로 우리사회에서 발견되는 미국적 몰락의 규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신 지식인을 원하는 태세에 따라 대학도 구조조정을 시작하고, 여러가지 시스템이 개편되면서, 결국에는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의 학생들이 줄어들고, 학교 당국에서도 지원하지 않는 것 등이 당장 우리사회의 문제점으로 나타난다. 대학에서의 학문은 이것이 보다 사회를, 혹은 개인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는 도구적인 속성만을 강조하게 되고, 이것이 대학의 경영, 이른바 대학의 개혁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결국 시장이 대학을 지배하게 되는 문제점이 나타난다. 또한, 학부제의 등장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학생이 과를 선택하게 되므로, 학생이 수요자가 되어 버린다. 이로인해 대학의 다양성이 없어지고, 획일화 되어지는 문제점이 나타난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비판을 하고, 반성을 할 때, 미국 사회 자체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와의 비교를 통해 옳은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미국이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미국식 시장 중심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가 심어졌다.미국 문화의 몰락이라고는 했지만 우리가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미국이 다른 나라에 군대를 보내거나, 환경문제를 벌이는 등의 악행을 하게 됐을 때, 그것에 대해서 제일 크게 반대저항을 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바로 이런 미국문화의 몰락이라는 책을 통해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끊임없이 해결해 나가는 의지와 에너지가 강한 사회문화를 가진게 아닌가 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즉, 미국사회의 지식인이 자기 사회를 이렇게 비판했다는 사실때문에, 우리가 미국이 별것 아니다라는 의식을 가져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정도의 문제점을 가지고 망한다면, 우리사회는 벌써 망했을지 모르며, 미국이 겪는 고통들을 사실 우리는 더 심하게 겪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우리가 여기서 배우고, 느껴야 할 것은 우리가 반성하는 계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사실 이 책을 읽으며, 미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을 했지만,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태그 : / 미국문화의 몰락 / 미국문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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