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한국의경관[1].hwp
| 
없음
경관과 문화는 밀접한 관계이다. 비가시적인 문화를 가시적인 경관의 독해를 통해 이해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를 알기위해 경관의 독해가 필수적일 것이다. 한국의 경관에 대한 문화지리학의 이해 사례분석에 앞서 입지 이론에 대하여 알아보자. 인간 사회는 먼저 그 시대의 사회적 요구와 기술적 수준에 따라 가장 적절한 위치를 선택하여 장소화의 기초를 마련한다. 선택된 위치는 그 시대의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여 조직되며, 이 과정이 오랜 역사를 통해 누적되면서 역사적 경관이 생산되고 역사저거 장소가 된다. 역사저거 경관은 사회적 통합과 차별화라는 동전의 양면처럼 상반되지만 보완적인 사회조직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이를 ‘차별적 통합’으로 정의할 수 있다. 차별적 통합이 만들어 낸 사회적 공간이 의도하는 정체감의 본질은 ‘참여’와 ‘배제’라는 상이한 장소 경험에 있다. 참여와 배제의 사회적 공간을 이해하는 개념 틀로서 ‘공간성’개념을 원용할 수 있다. 공간성 개념에 의하면, 경제적․정치-법적․이데올로기적층위로 구분되는 사회적 기능의 실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존재하는 영역 안에 그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가 공간적으로 ‘출현’해야 한다.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장소가 지역 내에 ‘부재’하거나 접근이 거부되는 경우, 그곳 주민들은 그 기능의 실천으로부터 참여가 배제되는 것이다. 공동체적 통합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장소와 경관을 통해 얻어지는 정체감의 본질은 ‘외부’와 구별되는 ‘내부’라는 경험 속에 있다. 어떤 장소의 안에 있다는 것은 거기에 소속된다는 것이고 그곳에 동일시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더욱 깊이 내부에 있게 될 수록 장소와의 동일시, 즉 장소는 느낌이 강화된다. 장소 창출에서 기본적인 것은 외부로부터 분리된 ‘내부’를 창조하는 것이다. 내부에 있다는 느낌을 통해 내가 어디에 참여한다는 것, 곧 정체감을 얻게 된다. 내부와 외부의 차이는 안전과 위험, 조화와 혼돈, 폐쇄와 노출, 간단하게 말해서 안전과 불안의 차이를 의미한다. 우리가 장소정체감을 가진다는 것은 내부자로서 경험한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며, 장소에 둘러싸여 그 사회의 일부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내부-외부라는 영역적 구분은 단순하지만 사회적 참여와 배제를 구분하는 가장 기초적인 이원 구조로서 장소의 본질이며 생활공간에 대한 인지적 경험의 기초가 된다.
류제헌, 한국문화지리, 살림출판사, 2002 임희섭 외, 한국의 문화변동과 가치관, 나남출판, 2002 김진송, 현대성의 형성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현실문화연구, 1999 노웅희· 강정화, Stepping geography 인문지리, 북타운, 2007 일상문화연구회 편, 일상속의 한국문화, 나남출판, 1998 김왕배, 도시, 공간, 생활체게 계급과 국가권력의 텍스트 해석, 한울, 2000 국제한국학회, 한국문화와 한국인, 사계절, 1998 장보웅, 한국의 민가, 법문사, 1989 김한배, 한국전통마을과 읍성의 경관성-대조와 연쇄, 도서출판 조경, 1992 홍경희, 촌락지리학, 법문사, 1985
태그 : / 인문 경관 / 문화 경관 / 한국의 경관
|
|
http://kr.blog.yahoo.com/report_blog/trackback/85/249384
|
|
|
|
|
|
|
|
|
평화를위한노력‘오슬로협정’.hwp
| 
없음
평화를 위한 노력 ‘오슬로 협정’ 내전이 끊이지 않는 중동지방의 평화를 위한 해결방안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그 노력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과제에서 오슬로 협정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1. 오슬로 협정의 배경 1993년 8월 30일, 이스라엘 내각은 이스라엘 정부와 PLO의장 야세르 아라파트의 대리인들이 합의한 ‘팔레스타인 자치’ 관련 협정 초안을 승인했다. 실제로 무엇이 성취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관련된 배경부터 알아야 한다. 초강대국의 갈등으로 인해 비동맹국이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은 모두 사라져 버렸고, 1980년대 서구의 전통정인 식민지를 휩쓸었던 자본주의의 대실패는 관리된 시장의 힘에 길들여진 제 3세계 전반을 절망 속에 빠트렸다. 아랍민족주의가 사담의 공격과 테러, PLO의 무능한 전술로 인한 또 다른 파괴적인 충격을 부각함으로써, 아랍의 지도자들은 친팔레스타인 조처를 취하라는 대중의 압력에 반응할 필요성을 전보다 덜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아무런 방해 없이 거부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좋은 위치에서, 걸프 위기 훨씬 전에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가 윤곽을 잡은 해결책에 접근했다. 모든 협정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국가적 권리를 전면 부인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1989년 계획에 근거를 두어야만 한다.(베이커 계획, 1989 12월) 팔레스타인인들의 지위는 다른 가치 없는 민족들의 지위보다 훨씬 낮다. 그들의 곤경이 아랍 세계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 미국의 목표달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그들의 가치는 ‘영(0)이 아니라 음(-)’이다. 따라서 어쩌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감독 아래 자시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도록 놓아두는 ‘자치’의 형태로 어떻게든 주변화해야 할 것이다. 캠프데이비드에서 제안된 이 계획은 1991년 가을 마드리드에서 ‘평화 프로세서’를 재개했을 때 다시 거론되었다. 이전부터 그렇지는 않았지만, 인티파다 초기부터 점령지에서 PLO의 지도력이 대중의 지지를 잃고 있음이 명확해지고 있었다. 세속적 민족주의 진영의 지역 활동가들은 PLO를 협상의 유일한 대리인으로 인정하면서도, PLO의 부패, 개인의 권력 다툼, 기회주의, 자신이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익과 견해를 무시하는 태도를 공개적으로 경멸했다. 모든 징후를 볼 때, PLO에 대한 불만은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라빈의 정책은 이 점증하는 부란과 사기 저하를 바탕으로 실행됐고, 경제적, 외교적,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아우르는 미국의 끊임없는 전방위적 지원과 함께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양성한 원리주의 반대정책이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태그 : / 분쟁 / 팔레스타인 / 오슬로 / 평화협정
|
|
http://kr.blog.yahoo.com/report_blog/trackback/85/249383
|
|
|
|
|
|
|
|
|
중국의국민경제와사회발전2.hwp
| 
없음
중국의 국민경제와 사회 발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본격화 되는 것은 대체로 1978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78년 12월 중국 공산당 제 11기 3중 전회는 10개년 계획을 포기하고 경제개혁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여, 농산물의 가격의 대폭인상과 30년에 걸친 중공업 우선의 고도성장 정책으로부터 균형 잡힌 안정 성장 노선으로 전환하였으며, 대내적인 개혁과 동시에 대외 개방을 선언하였는데, 이로써 중국 경제는 개혁․개방 노선으로서의 전환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개혁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요인은 결국 사회주의 건설 기간동안 누적되어 온 중국 경제의 문제점들과 특히 문화 혁명 이후의 경제 침체와 국민 생활의 파탄이었다. 1976,77년을 전후한 중국 경제의 문제점은 ①농업과 공업 간의 불균형으로 인한 농촌 경제의 파탄 ②경공업 낙후로 인한 극도의 소비재부족 ③에너지 생산 및 교통․수송 능력부족 ④축적과 소비의 불균형 등이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사회주의 시장 경제론이 등장한 1992년 이전 1992년부터 2000년, 1999년 현재까지 3단계로 나눌 수 있고, 개혁․개방 1단계인 1992년 이전까지는 계획 경제의 부분적 수정이 개혁․개방의 기본 방침으로 제시 되며, 이것은 또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단계는 개혁의 시작단계로서 그 초점이 농촌에 놓여 있었다. 2단계는 전면적인 개혁의 확대 단계로서 도시부문개혁에 보다 많은 중점을 두고 있으며, 3단계에서는 경제 구조의 조정 단계로서 개혁 이후의 성장에 따른 생산 및 분배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조정 정책을 실시한 시기이다. 1992년 덩샤오핑 남순강화에서부터 2000년까지가 개혁․개방의 2단계다. 이때 중국의 경제발전은 그 기세가 맹렬했으며 각 지역의 경제 건설, 특히 연해 지역의 경제 발전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에 중국 경제는 지속적으로 빠르게 발전했으며 전체적으로 국력이 크게 높아졌다. 국민 생활수준도 보편적으로 개선되었다. 1999년 말 중앙이 서부 대개발을 제기했을 때부터 현재까지가 3단계이다. 세계경제 현세가 좋지 않은 사와에서도 중국경제는 여전히 연평균 8%의 성장 속도를 유지했다. 이는 전 세계 국가들 중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물질생활 방면의 개선이 주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의 사상은 해방되었고 마침내 개혁․개방의 근본 목표가 생산력증가, 노동효율제고, 생활수준제고 임을 깨달았다.
태그 : / 사회 발전 / 국민 경제 / 중국
|
|
http://kr.blog.yahoo.com/report_blog/trackback/85/249382
|
|
|
|
|
|
|
|
|
유럽민족1.hwp
| 
없음
1. 유럽의 지리적 정의 먼저 유럽은 유라시아 대륙 북서쪽에 돌출한 여러 개의 반도와 섬으로 구성된 주(洲)를 말한다. 이는 오세아니아주보다 약간 큰,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주이다. 북쪽은 북극해, 서쪽은 대서양, 남쪽은 지중해로 둘러싸이고, 동쪽은 우랄산맥·우랄 강·카스피 해·카프카스산맥·흑해·보스포루스 해협을 경계로 아시아 대륙에 접한다. 지형적으로는 유라시아 대륙의 커다란 반도에 불과하나, 정치적·인종적·언어적 개념으로는 아시아 대륙과는 다른 하나의 뚜렷한 특성을 갖는 지역이다. 유럽이라는 명칭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단순히‘서쪽의 땅’또는‘해가 지는 곳’이란 뜻의‘에레브(ereb)’에서 유래한다. 아시아와 유럽의 지형적 경계는 우랄 산맥으로 상정하는 관습이 오랫동안 고정화되어왔고, 따라서 우랄산맥 서쪽의 러시아 영역을 유럽 러시아라고 불러 유럽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구분 방식으로 되어 왔다. 그러나 유라시아 대륙 북부의 넓은 영역을 차지한 러시아는 면적·인구에서 하나의 대륙으로 볼 수 있을 만하므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유엔에서도 우랄 산맥 서쪽의 러시아 영토를 제외한 좁은 뜻의 유럽을 유럽 대륙으로 보는 구분 방식을 취하고 있다. 좁은 의미의 유럽 대륙은 면적이 490여 만 km2로 오세아니아 대륙의 1/2이 약간 넘고, 러시아의 1/4, 캐나다·중국·미국·브라질의 1/2보다 큰 정도의 작은 대륙이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러시아를 구성한 7개국을 빼고도 36개의 크고 작은 나라들이 있고, 대부분이 육지를 국경으로 삼고 있어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오랜 동안 정치적 ·군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유럽을 지리적 위치·정치·인종 문화적 지표에 의해 다시 나누면 서부 유럽(영국·프랑스·베넬룩스 3국), 북부 유럽(아이슬란드·스칸디나비아 3국), 중부 유럽(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남부 유럽(지중해 연안 국가), 동부 유럽(러시아·벨로루시·우크라이나·폴란드·유고슬라비아·체코·불가리아 등)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이러한 구분은 어디까지나 편의적인 것이지 엄밀한 구분 방법은 아니다. 현재의 국제 관계에서 유럽 여러 나라들의 정치적 ·경제적 비중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비해 떨어졌으나, 문화적으로는 아직 다른 어느 대륙 보다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인구 면에서는 1990년 현재 약 4억 9800 여만 명(구소련 인구 제외)으로 아시아대륙 다음으로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인구 밀도는 101인/km2로 아시아 대륙(113인/km2)보다는 낮으나 오세아니아 대륙(3인/km2)의 33배 이상, 세계 평균 인구밀도(39인/km2)의 2.5배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은 인구밀도가 300인/km2 이상으로 세계적인 인구 조밀한나라 들이다. 산업별 인구 구성에서는 농업 인구율의 평균이 8.6 %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율을 보이고 있고(알바니아만 농업 인구비율이 47 %로 가장 높다), 2 ·3차 산업 인구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특색이다.
태그 : / 언어 / 민족 / 유럽
|
|
http://kr.blog.yahoo.com/report_blog/trackback/85/249381
|
|
|
|
|
|
|
|
|
인도의빈민.hwp
| 
없음
인도의 빈민(빈민가의 노상생활자) 우리에게 타지마할과 간디, 카스트 제도와 힌두교로 유명한 인도는 그 곳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만 1700명가량이 살고 있으며, 11억에 이르는 인구와 구매력 기준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우리들이 무관심한 나라 중 하나이다. 21세기의 새로운 경제 대국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급격한 인구증가와 도시 성장으로 인해 도시에 사람들이 몰리고 그들로 인해 여러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러한 도시 문제와 그에 따라 초래된 빈민들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1. 인도의 경제 현황 자료 인도는 이미 빈곤의 대명사로서 정착해 버린 것인가 하는 관점이 있다. 보통 인도의 가난함은 그 근거로 GNP나 국민 연간 소득이 가리키고 있는 숫자에서 쉽게 구해볼 수 있다. 1992년의 데이터에 의하면 개인의 연간 소득의 평균은 일본 엔으로 환전하면 3만 엔이 될까 말까하고 주별로 보면 최고로 그 액수가 높은 뻔잡 주에서 4만 엔이 모자라고 비하르 주 등에서는 1년에 1만 7천 엔 정도 방글라데시에서는 1만 5천 엔 정도였다고 한다. 최근 2001년 조사에서 나타난 인도의 주택 수는 모두 1억 7900만개였고, 이것은 한집에 평균 6명이 사는 셈이다. 그러나 가족수가 1억 9200만에 이르러, 약 1300만 가족이 집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에서 자기 집에 사는 사람들은 67%, 임대해서 사는 사람들은 29%에 이른다. 인간이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인데, 수돗물이든 우물물이든 집에서 편하게 물을 추할 수 있는 가구는 전체의 38%(도시 65%, 시골 29%)에 불과하다. 이 중에는 36.7%가 수돗물을, 35.7%가 수동펌프를, 18.2%가 우물을 이용한다. 집안에서 물을 취할 수 없는 62%의 나머지 가구는 집밖에 있는 공동우물이나 빗물탱크, 강에서 물을 길러먹어야 한다. 하지만 물의 질을 따져선 안 된다. 마실 물은 끓여 먹든지 정수기로 걸러 먹지 않으면 거의 탈이 난다. 그나마 이런 물조차 하루에 4시간 이상 공급하는 도시가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인도에서 은행계좌를 가지고 있는 가구는 6800만, 전체 가구의 35%정도이다. 도시에서는 50%가, 시골에서는 30%가 은행을 이용한다. 이들은 쉽게 말해 저축할 돈이 있고, 이를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다수의 사람들이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인도 도시의 문제점 도시화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도시 내부에 빈민가(슬럼)가 급속하게 형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태그 : / 경제 / 빈민 / 인도
|
|
http://kr.blog.yahoo.com/report_blog/trackback/85/249380
|
|
|
|
|
|
|
|
오늘 |
전체 |
|
| 방문자 |
342 |
8785868 |
|
| 구독자 |
0 |
149 |
|
| 댓글 |
2 |
8510 |
|
| 참조글 |
2 |
834 |
|
|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
27
|
28
|
29
|
30
|
31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