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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의 삶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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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인가?(3)
2008/07/18 오전 12:40 | 예수 이야기 | [spero]

예수 시대의 메시야들 - 예수는 과연 메시야인가?

메시야란 히브리어이고 그리스어로는 그리스도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예수 시대와 그 이후에도 "메시야" 칭호를 얻었던 사람들이 꽤나 된다. 그들은 왜, 어떤 명목으로 메시야 칭호를 얻었을까?

유대교 학자인 라피데와 신약학자 울리히 루츠가 공저한 <유대인 예수>라는 책에 의하면,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기적들, 예컨대 질병치유, 귀신축출, 폭풍을 잠잠케 함, 빵을 배가시킴, 죽은 자를 살림 등의 기적들은 초기 랍비들의 문헌에도 등장한다고 한다. 즉, 랍비들 중에도 이런 기적들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고 전해져 왔다. 그런데, 이들을 메시야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즉, 기적 자체가 메시야의 징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표적으로 기원후 132년 바르 코흐바(Bar Kochbar)와 같이 아무런 기적을 행하지도 않았지만 당대의 추앙받는 랍비 아키바에 의해 3년 간이나 메시야로 지칭되어 사람들을 몰고 다녔던 사람도 있다.
벤 요섭이라는 사람은 그가 죽은 뒤 2세기 중엽에서야 메시야로 사람들이 믿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메시야 됨의 징표는 무엇인가? 예수시대와 그 후에 등장한 메시야들을 보면, 하나같이 모두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다시 말해 다윗왕조의 회복을 꾀했다는 것이다. 물론 기원후 44년에 등장한 토이다스(Theudas)같은 이는 요단강을 둘로 나누겠다면 사람들을 이끌고 다녔다고 한다.  55년에 등장한 엘레아사르 벤 딘세우스는 로마에 대항해서 싸우다가 체포되었고, 66년에는 젤롯당의 우두머리인 메나헴이 예루살렘에서 메시야로 존경받으면서 유대전쟁을 이끌었다고 한다. 70년에는 시몬 바르 기오라가 왕의 복장을 하고 메시야 행세를 하며 로마에 대항하다 티투스 장군에게 잡혀 로마에서 처형되었다. 73/4년에는 요나단이라는 이름의 메시야가 등장하고, 115-117년 사이에는 키레네에서 '메시야왕'이라는 호칭을 달고 반란을 일으킨 자도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 21,38에 나오는 이집트의 예언자에 대해서도 요셉푸스(유대전쟁사II, 13,5)는 보고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시몬 바르 코흐바가 132년에 메시야로 칭송받으며 전쟁을 이끌었고, 그 후 3년 뒤에는 '별의 아들'이라는 칭호한 자가 수천명과 함께 로마군대에 대항해서 싸웠다.

이처럼 메시야니즘은 당시 로마의 압제 밑에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정치적 독립과 연관되어서 인식되었고, 이 시대의 메시야들은 스스로를 메시야로 칭하면서 군중들을 이끌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예수는 메시야였는가? 그는 스스로를 메시야라고 했는가?
공관복음서의 기록을 역사비평적으로 검토하면, 예수는 자신을 메시야라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을 메시야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는 인자의 수난과 버림받음, 죽음에 대해 말하였고, 그럴 수 없다면 반박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라고 면박을 주기까지 한다.(마가 8, 27-30)
또한 베드로의 고백 이후에 제자들은 예수를 메시야라고 부르지 않고, 랍비(선생님)라고 부를 뿐이다. 학자들은 예수는 자신을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메시야와 일치시키지도 않았으며, 제자들 역시 그를 그런 유대적 정치적 메시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 예수는 "고난받는 인자"에 대해 언급하는데, 유대의 정치적 메시야에게 고난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귀신들린 자가 말했을 때도 이는 유대의 메시야니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말이다.

예수는 유대의 정치적 메시야상과는 전혀 다른 메시야상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힘에 의해 폭력에 대항해서 새로운 힘의 왕국을 건설하는 그런 메시야가 아니라, 고난당하는 자들과 함께 고난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삶을 살았다. 따라서 이를 후에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힌 메시야"를 자랑한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일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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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인가?(2)
2008/07/17 오후 2:17 | 예수 이야기 | [spero]

과연 우리는 역사의 예수를 찾을 수 있을까?

한국교회는 신학계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다수의 신앙인들은 학문적인 책보다는 신앙서적,경건서적에만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신앙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다. 설교를 위해 자극적이고 감성적인 언어들을 찾아내어야 하기 때문일까?
학문을 하는 신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신학교에 들어오자 마자 전도사 생활이나 교사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학문적인 토론들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다. 왜냐하면, 학문적 논의라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확실성 보다는 개연성을, 어떤 결정보다는 고민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고민할 시간적, 정신적 여력이 없는 한국교회는 그동안 가르쳐 왔던 대로 가르치고 새로운 논의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불신앙으로 매도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기독신앙은 예수신앙이다. 예수의 말씀과 그의 행위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이다. 그런데, 예수의 말씀과 그의 사역을 우리는 어디서 배울 수가 있는가? 일차적으로는 성서며, 오늘날에 새로 발굴된 예수에 대한 옛 문헌들이다. 오늘날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라는 이름하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성서의 문헌과 아직 잘 알려지지 않는 나그함마디 문서나 쿰란문서에서 역사의 예수를 복원하고자 한다.

과연 이 역사적 예수 복원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복원에는 항상 복원하고자 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전제와 관심, 잣대라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복원된 역사의 예수는 이미 해석된 예수일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그러나 하나의 해석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무덤덤하게 그저 수용해 왔던 예수 상에 비해 보다 근거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귀 기울여 들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래는 타이센의 책을 통해 역사적 예수 연구의 역사를 시기적으로 나누어 요약해 보았다.


역사적 예수를 찾아서:

게르트 타이센의 Der historische Jesus에서

소위 “역사적 예수 연구”는 크게 다섯 시기로 나뉘어진다.

제1기에는 라이마루스(1694-1768)나 쉬트라우스(1808-1874) 등과 같이 계몽주의의 합리성의 잣대를 가지고 복음서의 예수를 신화적인 것, 비역사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소위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격을 인지했다.

제2기에는 소위 역사비평에 의해 예수상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교회의 교의화된 그리스도상에서 벗어나 역사의 예수를 성서비평의 원리를 통해 복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바우어나 홀쯔만의 연구가 여기에 속한다. 공관복음서의 두 자료설이 이 때 등장한다.

제3기는 알버트 슈바이쩌, 브레데 그리고 루돌프 불트만(1884-1976)으로 이어지는 시기이다. 이들은 공관복음서의 오래된 자료층도 역시 교회공동체의 작품임을 인지했다. 즉,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미 신앙적인 관심에 의해 수집되고 선별되고 채색되었기 때문에 성서의 예수상을 통해 역사의 예수에게로 가는 길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제4기는 불트만의 제자인 에른스트 케제만같은 학자에 의해 대표된다. 이 시기를 특히 “새로운 질문”의 시기라고 말하는 것은 제3기의 학자들에 의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선언된 역사적 예수연구가 다시 새롭게 질문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역사의 예수와 교회공동체의 그리스도상 사이의 어떤 연관성이 있음을 주장하면서 방법론적으로는 종교사와 전승사적 연구들을 수용하면서 역사의 예수와 초대교회공동체의 고백 사이에 무엇이 다른지에 관심하였다. 즉, 초대교회공동체가 그려낸 그리스도상은 역사의 예수를 반영한 것이지만, 그들에 의해 그려지지 않은 예수의 원초적인 상을 돌출해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제5기를 영미권의 학자들은 “세번째 추구”(the third quest)라고 부른다. 제4기의 관심이 초대교회의 정황에 집중하면서 역사의 예수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상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관심을 집중했다고 한다면, 이 시기에는 예수 당시의 사회세계를 추적하여 역사의 예수와 초대교회 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던 사회상 사이에 연관성을 검토한다. 이를 위해서 성경 외의 새롭게 발견된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물론 이 시기에 속하는 많은 학자들이 모두 일치되는 예수상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를 유대교 내의 개혁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파악하면서 미국의 학자들은 예수를 비종말론적인 예언자, 지혜로운 현자로 파악하기도 한다. (타이센은 이들의 비종말론적 예수를 갈릴리 지방의 예수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식 예수라고 표현한다.) 어쨌든 이들은 예수 당시의 사회상을 복원하고 예수를 그 시대의 아들로 파악하려고 한다. 여기서는 역사적 개연성이 잣대로 놓여 있다.


신앙과 역사: 의미의 해석사.

예수의 역사 없는 예수신앙이 가능할까? 비록 신앙자체가 역사와 동일시 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신앙은 역사를 매개로 해서 일어나지 않으면 그 영향력을 쉽게 상실하고 만다. 예수 신앙은 예수의 역사를 매개로 해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예수 신앙의 다양성은 예수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의 역사는 유대묵시문학적 지평에서 새롭게 이해되고 의미있는 사건으로 발전되었으며, 헬레니즘적 지평에서, 영지주의적 지평에서는 또 다른 의미의 역사로 해석되어 전개되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자로, 고난받는 종으로, 예언자로, 영적인 계시자로, 귀신 축출자로, 치료자로, 지혜로운 현인으로, 빛, 로고스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으로, 성자 하나님으로 해석되었다.

오늘날도 예수의 역사는 이 역사와 조우하는 시대상의 의미지평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예수를 자유사상가로 해석하는가 하면, 혁명가로, 민주투사로, 해방자, 무정부주의자로 이해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휴머니스트로, 최고경영자 CEO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술가로 해석하기도 한다. 예수의 역사는 새로운 의미지평과 만나면서 때로는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기도 한다. 무엇이 맞고 틀리냐를 떠나 이것이 예수의 역사가 안고 있는 힘이 아닐까?

역사의 예수가 누구인지 복원하려고 할 때, 예수 자신만이 아니라, 예수와 관계하고 그를 따랐던 자들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복원하지 않으면 우리는 실제로 그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그가 목수였거나 농부였다는 주장은 사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왜 예수 운동이 일어났는지를 도무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된다. 따라서 예수가 누구인지는 왜 예수를 메시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자로, 고난받는 종으로 불렀는지 하는 관계적 사유 안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관계적 언어와 사건 안에서 우리는 예수가 누구였으며, 이 언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역사적 예수 연구를 하는 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이 이를 드러내는데 도움을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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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인가?(1)
2008/07/15 오후 5:32 | 예수 이야기 | [spero]

독일의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에 따르면, (그의 저서: 왜 그리스도인 인가?)

19세기에 Bruno Bauer라는 인물은 예수를 하나의 "이념"이라고 표현했다. 즉, 원복음서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 후에 1909년 Arthur Drews는 예수를 순전히 "그리스도신화"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유사하게 영국의 J.M. Robertson이나 미국 수학자 W.B.Smith) 

서기 112년 경, 플리니우스 2세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자들이며, 그리스도라는 잡신을 숭배하며 절도, 강도, 간음, 배교를 하지 않기로 서약한 자들로 묘사한다.

플리니우스의 친구이며 로마 제국사를 편술했던 Cornelius Tacitus는 네로 황제때의 대화제에 대한 누명을 쓴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말하는데, 그리스도인은 "티베리우스 황제 때 빌라도 총독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따르는 무리로, 그가 죽은 후에도 "해로운 미신"을 추종하는 무리로 묘사하고 있다.

그 후, Suetonius가 쓴 황제열전에 따르면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한 이유는 "선동자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90년 경에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 Flavius Josephus는 야고보가 62년에 돌에 맞아 죽은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를 "이른바 그리스도라는 예수와 형제"였다고 기록한다.

이런 기록들은 예수는 티베리우스 황제때 활동하다가 본디오 빌라도가 예루살렘을 관할할 때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성서의 보도와 모순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이런 기록들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또 신약성서는 기독교인들이 기록했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예수에 대한 어떠한 역사적 사실도 부인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세계종교의 창시자들의 역사적 실존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의 역사적 활동과 그의 메세지에 대해 보고하고 있는 사복음서는 예수 사후 100년이 넘지 않는 시기에 기록된 것들이다.

그러나 예컨대,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의 말씀어록과 전승들은 그의 입적 후 400년 경쯤에야 기록되었다.

공자의 경우에도 논어는 적어도 100년 후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의 전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훨씬 후대의 것에 속한다.

또한, 예수의 출생과 죽음의 연도가 비교적 확실한 반면(예수의 출생은 B.C 6년 또는 B.C. 4년 경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대략 30년 쯤 후로 본다.), 고타마 싯타르타의 출생은 불가에서는 B.C. 544/543년 경으로 보지만, 학자들은 그가 B.C. 450에서 370년까지 활동했다고 보고 있다. (노자에 대한 역사적 전승과 노자와 도덕경의 관련성이 사실상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정황들을 살펴볼 때,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부인하는 것이야 말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착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 문제는 예수의 역사적 실존의 사실성이 아니라, 과연 복음서에서 보도하고 있는 그런 예수가 실제했는가일 것이다. 즉, 복음서의 예수 보도는 역사적 사실인가 아니면 신화인가? 하는 물음이 진정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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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없는 시청광장
2008/07/07 오전 11:20 | 현실비평 | [spero]


출처: 한겨레 신문 인터넷판에서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97390.html



광장...일찍이 사회학적 화두가 되었던 단어라고 생각한다.
광장은 민주주의의 상징이며 소통문화의 시장이다.
시장없는 자본주의가 없듯이, 광장없는 민주주의는 없다.

광장은 라틴어로는 forum이라고 하는데, 로마제국의 도시들마다 이런 포럼을 갖추고 있어 이 곳이 종교적, 정치적, 법적인 토론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시내 한 가운데 무슨 광장, 무슨 광장하며 등장하는 넓은 마당을 보고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만 해도 이 촌놈은 그런 광장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것을 사실 몰랐다. 그냥 넓은 공간이 시내 한복판에 있어 편하고 좋다, 여유롭다는 생각에서 좋았을 뿐이었다. 적어도 내가 살던 울산에서 난 그런 광장체험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시절 집 안에 있다가 답답하면 언제나 뛰어나가 놀 수 있었던 공터가 곁에 있었다.
그 곳에 좀 있으면 친구들이 온다. 공을 가지고 축구를 할 수도 있고 구슬치기를 할 수도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뛰노는 공터가 없다는 사실이 요즘 아빠로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아들 놈을 데리고 나가서 맘껏 뛰놀도록 풀어놓을 때가 없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에게 공터가 필요하다면, 민주시민에게는 광장이 필요하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자신의 맘에 담은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는 광장이 필요하다. 좌충우돌하는 사이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뛰어오르고, 그 속에서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응집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광장은 항상 열려있어야 하는데, 광장에 담을 쌓아놓다니....이명박 대통령도 광장에 나와야 한다. 청와대라는 감옥에 갇혀 있기 보다는 광장에 와서 직접 대화를 해야 한다.

바쁜 몸이신 것은 알지만, 온 국민의 불안을 사그러뜨리기 위해서는 광장에 담을 쌓고 스스로 넓은 땅에 갇혀 있기 보다는 광장의 무대에 올라와 국민의 머슴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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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강의에 대한 회고와 인사
2008/07/06 오후 7:44 | 단상 | [spero]

지난 주는 방학 후 성적내느라 좀 정신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시범강의가 있어서 그것 준비하느라 무척이나 긴장된 한 주였었죠.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강의인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니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할 일입니다.

방학 중에는 주로 집에 있겠지만, 7월 말 경엔 제주도에 갈 예정이고 틈나는대로 그동안 했던 강의록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내 보려고 합니다.
출판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아 도서관에 좀 다녀야 겠죠.

지난 학기에 했던 종말론 수업과 신학방법론 수업은 제 스스로에게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게 기존의 수업과는 좀 다른 재미를 주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생각했던 수업과는 좀 달라 실망한 학생들도 분명히 있었겠죠. 기존의 가르침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어서 거리감을 둔 친구들도 있을테고, 아님, 오히려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겠죠.

늘 강의는 하나의 모험인 듯합니다.

특히 제게 종말론 수업은 역사의 우연성과 개방성을 신앙인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흔히, 종말론은 종말에 일어날 무슨 프로그램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먼저 종말론적 표상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해석학적 문제가 선행적으로 해결되어야 하기에 성서시대와 우리시대의 간격을 주시하면서 이 표상들이 우리시대에 적용될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도 역시 필요합니다.

신학방법론도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수업이라기 보다는 신학함이 무엇인지,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신학함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함께 생각하는 시간으로 채워졌습니다.

제 스스로가 이 두 분야에 아직 깊이있는 연구가 부족해서 다소 흥미롭지 못한 경우도 있을테지만, 모두들 열심히 경청하고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보낸 듯합니다.

이제 지난 주에 계대에서 행한 시범강의의 결과에 따라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신학과목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지내야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기다려 봐야 할 일입니다만..

몇일 계속 날이 덥습니다. 동인인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아내는 오랜만에 드라마에 심취하는 것같군요. 즐거운 주일 저녁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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